|
출처: 천국 네비게이션 원문보기 글쓴이: Gemi
'18/9 kcdc 설교 예화|설교 예화
창조는 생존하기 위하여 속임수를 사용하는 식물과 동물들로 가득차 있다. 쿠키 커터 상어의 어두움 속에서 밝은 빛을 내는 것은 이러한 속임수 중에서 으뜸이다. 쿠키 커터 상어는 단지 30 내지 45 센티미터 정도의 크기이다. 이것은 튼튼한 근육이 없어서 빨리 헤엄칠 수가 없다. 그러나 그럴 필요도 없다. 먹이가 스스로 찾아오기 때문이다. 이 상어는 보통 수면하 600내지 3000피트 아래에서 서식한다. 이것을 위쪽에서 내려다 보면 이것의 등쪽이 주위의 깊은 바다처럼 아주 어둡기 때문에 이 상어들을 발견할 수가 없고 아랫쪽에서 쳐다보면 수면으로 부터 여과되어 내려오는 빛을 배경으로 이 상어의 어두운 외곽 형태를 인식할 수가 없다. 이것은 이 상어의 첫 번째 속임수에 기인하는 것이다. 즉 이것의 배아래쪽은 빛을 발하는 세포들로 완전히 덮여있는데 이 빛은 위쪽에서 내려오는 조명과 상응하는 빛이다. 속임수는 여기서 멈추지 않는다. 이 상어의 턱밑 주위는 발광하지 않는다. 아래쪽에서 보면 이 쿠키커터 상어는 마치 참치가 좋아할만한 그런 조그마한 물고기처럼 보인다. 참치가 작은 물고기인줄로 생각하고 속도를 내어 가까이 다가오면 마지막 순간에 상어는 참치에게 달려들어 참치몸의 일부를 잘라먹어 버린다. 이것의 둥그렇게 열린 턱뼈는 마치 쿠키를 잘라내듯이 참치의 살을 파낸다. 그래서 쿠키 커터 상어라고 불려진다. 흥미롭게도 이 상어들의 상처의 대부분은 치명적인 것이 아니다. 이 쿠키 커터 상어의 생긴 모양, 속임수 및 생활 습성 등 이들 모두가 서로 잘 조화를 이룬다는 사실은 이 상어가 그저 우연한 진화의 결과가 아니라 창조주의 세심한 디자인의 결과임을 말해준다. (거짓/유혹) ☞ 원수 마귀는 우리가 상상하는 이상의 초월적인 힘을 가지고 있다. 그 힘으로 유한한 존재인 인간을 속이기 위해서 최선을 다 한다. 기도만이 그 유혹을 물리 칠 수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근대화 시기의 한국에 백 선행 여사라는 분이 있었다. 백 여사는 14살 때 결혼을 했으나 이년 뒤 남편이 세상을 떠나 과부가 되었다. 남겨진 재산도 별로 없고, 기댈 친척도 없었기에 그저 악착같이 살면서 돈을 벌었다. 할 수 있는 일은 다하고, ‘안 먹고, 안 입고, 안 쓰며’ 많은 돈을 벌었다. 백 여사는 이렇게 힘든 돈을 말년에 들어 아이들의 교육과 불쌍한 사람들을 구제하는데 전부 사용했다. 여사는 그 이유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저는 돈을 벌 줄은 알았지만 쓸 줄을 몰랐습니다. 기껏 열심히 일해 많은 돈을 벌었지만 어떻게 써야 잘 쓰는 것인지는 알 수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내가 보기에 민족의 스승인 조만식 선생은 돈을 매우 잘 쓰는 사람 같았습니다. 조만식 선생이라면 이 돈을 잘 사용해줄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나의 전 재산을 맡기고 맘껏 가져다 쓰라고 했습니다.” (사랑/나눔) ☞ 여사는 돈을 버는 행동뿐 아니라 올바른 돈에 대한 생각도 가지고 있었다. 자신의 꿈과 편안한 노후를 위해서 돈을 벌려고만 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인 오늘날 특히나 더욱 교훈이 되는 마음가짐이다. 그리스도인은 항상 수단보다 올바른 목적에 초점이 맞춰져 있어야 한다. 재물에도 예외는 없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방법대로 재물을 사용해야 한다. 주님이 주신 물질을 주님을 위해 ....
이리 한 마리가 풀밭에서 한가로이 풀을 뜯고 있는 나귀를 보았다. 이리는 적당한 거리까지 접근해서 잡아먹을 듯한 기세로 달려들었다. 나귀는 얼른 절름발이 시늉을 했다. 이리가 ‘자네, 왜 다리를 저는가?’ 하고 물었다. ‘울타리를 뛰어넘다 가시를 밟았네. 그러니 나를 잡아먹기 전에 가시를 먼저 빼게. 그렇지 않으면 가시가 목에 걸릴 걸세.’ 나귀는 능청맞게 아픈 시늉까지 해보였다. 나귀의 이야기에 수긍한 이리는 함정에 빠진 것도 모르고 나귀의 뒷발을 들어올려 곳곳에서 가시를 찾았다. 이때, 나귀가 발길질을 했다. 그러자 이리의 이빨이 다 부러져버렸다. 놀라움과 아픔으로 정신이 나간 이리는 와락 꽁무니를 빼면서 중얼거렸다. ‘이렇게 되어도 싸지. 아버지가 물려준 백정 일이나 열심히 했어야지, 의사 일은 당초 내 일이 아니었어.’ (고짓/유혹) ☞ 세상에는 이리처럼 교활하고 잔인한 성품을 가진 사람들이 많이 있다. 이들은 자신의 힘으로 무엇을 하는 것이 아니라 노력을 기울이지 않고 공짜로 차지하려는 경향을 지니고 있다. 그러나 이들이 항상 이기는 것만은 아니다. 결국은 자기 꾀에 빠져서 망하기 때문이다.
어느 집에 효심 많은 맏며느리가 있었다. 그녀는 비록 살림은 넉넉하지 않았지만 식탁을 같이 해서 밥을 먹을 때면 항상 시아버지 국에 고기를 듬뿍 담아 드리고 자신의 국에는 고기 건더기를 넣지 않았다. 그래서 식사 기도 시간에 시아버지는 몰래 국을 바꿔 놓곤 했다. 그러면 맏며느리가 곧 눈치를 채고 그것을 도로 바꾸어 놓았다. 세월이 지나서 맏며느리의 자녀들은 항상 맛있는 음식이 생기면 부모님을 먼저 대접하는 효성이 지극한 자녀들이 되었다. 그런데 둘째 며느리는 항상 부모님 대접하는 것을 못마땅하게 여겨 정성껏 대접하지 않고 대신 자기 자녀들을 잘먹였다. 노인들에게 내놓는 음식은 언제나 가장 험한 그릇에 먹다 남은 것을 담아서 드렸다. 그리고 자녀들에게는 가장 좋은 음식들만 먹였다. 둘째 며느리도 할머니가 되어 자녀들의 음식 시중을 받게 되었다. 자녀들은 항상 맛있는 것은 감추었다가 손자들에게 주었고, 먹지 못하고 버릴 것들만 어머니에게 대접했다. 음식을 담아온 그릇도 고양이 밥을 주던 그릇을 물로 씻어온 것이었다. 그녀는 가슴이 너무 아팠지만 자기가 대접한 대로 결국 대접을 받는 것을 깨다고 후회했다. 그러나 이미 때는 늦었다. 그녀는 탄식 속에 남은 여생을 보내야 했다. (후회/부모) ☞ 기회는 머리만 있고 고리가 없다고 한다. 언제나 오는 지금이라는 때를 놓치지않고 최선을 다해서 지금 기뻐하고 감사하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일제 시대 때 평양에 최봉석(崔鳳奭: 1869. 1. 7. ~1944. 4. 15.)이라는 목사님이 계셨다. 이 분은 늘 ‘예수 천당!’을 외치고 다녔다. 그러다가 신사참배를 반대하다가 감옥에 갇히셨다. 감옥에서도 ‘예수 천당!’을 외쳤다. 간수가 조용히 하라고 해도 막무가내였다. 간수가 불러내어 몽둥이질을 했는데 맞으면서도 ‘예수 천당!’이라고 했다. 간수가 어이가 없어서 ‘당신 머리가 좀 어떻게 된 것이 아니냐?’고 했다. 최봉석 목사님은 ‘내 안에는 예수 천당이 가득해서 가만히 있어도 밖으로 나오는데 당신이 몽둥이로 내 몸을 때려 흔드니 예수 천당이 밖으로 나오는 것이 당연한 일이 아니냐? 그것을 가지고 머리가 어떻게 되었다고 하는 당신이 오히려 이상하다. 당신도 예수 믿고 천당 가기 바란다.’ 했다. 간수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고 그 다음부터 최 목사님은 마음 놓고 ‘예수 천당!’을 외쳤다고 한다. 이 분은 감옥에서 40일 금식기도를 하셨다.고 문 때문에 건강을 잃어 석방되었다가 순교하셨다. 최봉석 목사님은 ‘예수 천당!’으로 충만한 분이었다. (예수/천당) ☞ 사람의 생활은 그 사람의 인격을 나타낸다. 또 마음 속에 무엇을 채우고 있는지를 알려준다.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 성령이 충만한 사람에게서는 거룩한 생활이 나타난다. 속되고 깨끗하지 못한 것들로 채워진 사람들에게서는 지저분한 생활이 나타난다. 자신 속에 무엇을 채워야 하는가 하는 문제가 이래서 중요하다. 하나님의 모든 충만한 것이 우리 안에 충만해서 맑은 생활의 모습을 보여주는 성도들이 되어야 한다.
1983년도 ‘Time’ 지 6 월호 6 페이지에 다음과 같은 글이 실린 것을 어느 책을 보다가 인용해서 실린 것을 보았다. 지난 30년간 미국 사람들이 얼마나 바쁘게 살아 왔는지 도무지 스트레스를 풀 만한 휴식과 시간적 여유가 없어 어떤 결과가 나왔는지에 대해 말하고 있다. “과거 30년간 의사와 보건 관리들은 국민 복지에 스트레스가 미치는 피해가 얼마나 큰지를 깨닫게 되었다. 미국 가정 의학회에 의하면 가족 전문의를 찾는 환자들의 2/3가 바로, 스트레스로 인한 증세 때문이었다고 한다. 스트레스가 매년 미국 산업계에 500억 내지 750억 달러 상당의 지출을 발생시키고 있는데 이는 근로자 1 인당 750 불 이상을 지출하고 있다. 스트레스야말로 심장병, 암, 결핵, 우발적 사고, 간경화, 자살 등의 직간접적인 주요한 원인이다”고 밝히고 있다. 1953년부터 83년까지 미국사회를 이렇게 묘사한 것이다. (걱정/병) ☞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는 2018년을 살고 있다. 그 때보다 상상 못할 정도로 더 바쁜 정보화 사회를 살고 있다. 40대에 갑작스럽게 죽은 사람들이 제일 많이 나오는 나라가 대한민국이라고 한다. 원인은 스트레스와 과로 때문이다. 당신은 지금 어떤가?
두 사람이 치고받고 싸우다가 한 사람이 귀를 다쳤다. 그는 상대방이 자기 귀를 물었다며 법정에 고소했다. 아무개1 : “저놈이 내 귀를 물었습니다.” 아무개2 : “아닙니다. 지가 지입으로 스스로 귀를 물어놓고 나에게 물었다고 거짓말을 하는 것입니다.” 방청석에서 구경하던 사람들은 자기 입으로 자기 귀를 어떻게 물 수 있느냐며 아무개 2가 위증을 한다고 수근거렸다. 과연 재판관이 어떻게 판결을 내릴지 궁금했다. 재판관은 물었다. “혹 두 사람이 싸우는 것을 본 목격자가 있습니까? 목격자가 나타날 때까지 30분 동안 휴정을 하겠습니다.” 재판관은 자기 방에 들어가서 자기 입으로 자기 귀를 물려고 애써보았다. 그럴 때마다 몸이 균형을 잃고 바닥에 나뒹굴었다. 결국 얼굴에 멍만 들었다. 자기 입으로 자기 귀를 물려고 할 때 멍이 든다는 것을 알았다. 30분 후에 재판이 재개되었다. 재판관이 판결을 내렸다. “판결은 ‘증거’에 입각하여 공정하게 하는 것이 원칙입니다. 아무개1의 얼굴을 자세히 살펴봐 주십시오. 멍 자국이 있으면 자기 입으로 자기 귀를 문 것이 확실하고, 얼굴에 멍 자국이 없으면 아무개2가 문 것이 확실합니다.” 사람들은 재판관의 현명한 판결에 감탄을 했다. (판단/현명) ☞ 재판관은 ‘증거에 입각하여 억울한 사람이 없도록 공정하게 판결을 하라’고 국민들이 권한을 위임해 준 사람들이다. 만약 재판관이 주어진 권한을 잘 못 사용하면 그 권한을 빼앗는 수밖에 없지 않겠는가?
서울 도심에서 친구들과 오토바이를 훔쳐 달아난 구속된 소녀가 재판을 기다리고 있었고 방청석에서 홀어머니가 지켜보고 있었다. 중년의 여판사님이 들어와 무거운 처분을 내릴 것이라는 예상을 하고 긴장된 모습으로 재판관을 주시하고 있었다. 그 때 이렇게 재판장이 다정한 목소리로 말했다. "앉는 자리에서 일어나 날 따라 힘차게 외쳐보렴." "나는 이 세상에서 가장 멋있게 생겼다“ 예상치 못한 요구에 소녀는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하자 재판장은 더 큰소리로 외쳐보라고 했다. "나는 이세상에 두려울 게 없다. 이 세상은 나 혼자가 아니다. 나는 무엇이든 할 수 있다." 따라하던 소녀는 참았던 눈물을 터트리고 말았다. 소녀는 작년 가을부터 14건의 절도 폭행, 범죄로 몇 년 법정에 섰던 전력 이번에는 무거운 형벌이 예상되었다. 재판장은 이렇게 말했다. “이 학생은 작년 초까지만 해도 어려운 환경가운데서도 불구하고 반에서 상위권성적을 유지했습니다. 장래 간호사를 꿈꾸던 발랄한 학생이었습니다. 작년 초 귀갓길에 남학생 여러 명에게 끌려가 성폭행을 당하고 삶이 송두리째 바뀌어 버렸습니다. 병원의 치료를 받았으나 충격으로 홀어머니는 신체의 일부에 마비가 오고 소녀는 학교를 겉돌고 비행청소년들과 어울리는 생활을 하고 말았습니다." 판사는 참관인들에게 말했다. "이 소녀를 가해자로 만든 잘못이 있다면 여기에 앉아있는 여러분과 우리자신일지도 모릅니다. 이 소녀가 세상에 긍정적으로 살아 갈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잃어버린 자존심을 우리가 다시 회복시켜주는 길입니다.“ 그리고 눈시울이 붉어진 판사는 눈물이 범벅이 된 소녀에게 법대 앞으로 불러 세워놓고 이렇게 말했다. "이 세상에서 누가 제일 중요할까요?" "그건 바로 너야. 이 사실만 잊지 않는다고 약속한다면 나와 우리 모두가 너를 도와주고 싶다. 손을 잡아 주면서 마음 같아서는 꼭 안아주고 싶지만 법대가 가로막혀 더 이상 갈수가 없구나. 판사가 이례적으로 불기소처분으로 판결을 내렸던 방청인들까지 눈물을 흘렸다. 그렇게 소녀는 법정에서 일어서게 하고 따라서 외치는 것으로 판결을 대신하게 되었다. (재판/사랑) ☞ 하나님 아버지는 자기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내어 주시어 이런 죄인들을 위하여 용서하여 주시기를 원하시고 계신다. 용서는 사랑의 출발이다. 사랑은 모든 것을 가능하게 한다는 것을 믿고 실천하자.
성어거스틴의 어머니는 방탕한 아들을 위하여 끊임없이 기도했다. 그러나 아들은 하나님께로 돌아오지 않았다. 그러나 기도한 자식은 절대로 망하지 않는다는 확신을 가지고 기다렸다. 20년 동안 낙심하지 않고 끝까지 아들을 마음에서 버리지 않고 눈물로 드린 기도가 헛되지 않고 마침내 하나님께 상달되어 어거스틴은 기독교 역사에 길이 남는 성자가 되었다. 독일의 루터교 벤야민 슈몰크(Benjamin Schmolck, 1672~1737)목사님은 30년 종교전쟁으로 독일은 전쟁에서 살아남은 1600만 인구가 흑사병으로 인해 600만으로 줄었고, 산업시설들은 잿더미로 변했다. 슈몰크 목사님이 시무하던 실레지아는 가장 치열했던 격전지였고, 거의가 다 가톨릭교회로 돌아가 그 넓은 지역에 유일한 통나무 움막으로 종탑도 없는 흙벽의 교회하나만 허락 되었다. 도심지에는 교회를 세울 수도 없고, 가톨릭교회 신부의 허락 없이는 장례식도 치룰 수 없게 되었다. 슈몰크 목사는 조사 2명과 더불어 36개의 마을이나 되는 넓은 교구를 가톨릭교회 신부들의 눈치를 살피며 돌봐야했다. 그런 어려움 속에 과로로 쓰러졌고, 중풍병과 백내장으로 보이지 않는 눈으로 절룩거리며 널리 퍼져있는 성도들을 충실히 돌보았다. 가톨릭교회와 루터교회 사이를 방황하던 교인들도 목사님의 뜨거운 사랑에 녹아져 교회로 돌아오게 되었고 서로 부둥켜안고 울지 않을 수 없었다. 목사님은 성도를 위하여 기도했고, 성도들은 목사님의 건강이 회복되기를 위해 기도하며 사랑으로 하나가 되었다. 교회는 크게 부흥하였다. 1704년 어느 날 병약한 슈몰크 목사님 부부가 그 먼 지역을 심방하고 돌아와 보니 집이 불타 잿더미가 되어 있었다. 아들 형제를 찾았으나 보이질 않았다. 잿더미를 파헤쳐 보니 두 아들이 서로 껴안고 타죽어 있었다. 두 아들의 시체를 앞에 놓고 무릎을 굻고 하나님께 울부짖은 찬송이 “내주여 뜻대로 행하시옵소서”였다. 내주여 뜻대로 행하시옵소서 온몸과 영혼을 다주께 드리니 이 세상 고락간 주인도 하시고 날 주관하셔서 뜻대로 하소서 (기도/응답) ☞ 하나님의 위대한 인물들은 절망적인 환경 가운데서 믿음을으로기도하는 어머니들이 계셨다. 기도는 만사를 형통하게한다. 그런 능력을 믿고 실행할 때 상상못한 기적이 일어난다는 것을 믿고 살아가야 한다.
미국의 26대 대통령 루스벨트가 어느 날, 한 잡지를 보다가 자신이 형편없는 술주정뱅이라는 기사가 실린 것을 보았다. 놀란 그는 비서관을 불러 이 상황을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 논의했다. 비서관은 당장 잡지사 사장과 기자를 불러 따끔하게 혼을 내 주자고 건의했지만 그건 권력의 남용이라고 생각한 루스벨트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정식으로 고소를 하세. 그리고 명예훼손으로 손해배상을 청구해야겠네." 얼마 뒤, 재판이 열리게 되자 많은 사람들이 법정을 가득 메웠다. 예민한 문제인 만큼 판사는 신중하게 한 사람 한 사람씩 심문을 하고는 이를 종합하여 배심원들과 논의를 했다. 그리고 드디어 판결이 내려졌다. "귀 잡지사의 기사는 허위로 판명이 내려졌으며 개인의 명예를 훼손한 것이 인정되는 바, 귀사는 대통령에게 손해배상금을 지불하시오." 판결이 내려지자, 순간 방청석이 술렁이기 시작했다. 모두들 손해배상금을 내고나면 잡지사는 더 이상 회사를 유지할 수 없을 것이라고 입을 모았다. 그 때 판사의 말이 이어졌다. "대통령이 요구한 손해배상금은 1달러입니다. 이만 재판을 마칩니다." 방청석은 다시 술렁이기 시작했고, 자기 귀를 의심한 비서관은 루스벨트에게 실망스런 목소리로 물었다. "명예훼손의 대가가 고작 1달러란 말입니까?" 그러자 대통령은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내겐 손해배상금이 의미가 없네. 중요한 것은 진실이야. 그리고 그 진실을 판단할 수 있는 것은 권력이 아니라 재판이지. 이제 진실이 밝혀졌으니 오해는 풀렸을 것이고 나는 그것으로 만족하네." (정의/재판) ☞ 대통령이라면 이 정도의 인격은 가져야 되지 않을까? 재판을 지켜보던 사람들이나 미국 시민들은 자신의 명예도 회복하고 기업도 망하지 않게 하는 대통령의 결단과 재판장의 재판이 너무나 맘에 들었다고 한다.
어떤 가련한 과부는 많은 액수의 요금 청구서를 받아들고 큰 낙담에 빠져있었다. 그녀가 요금을 이미 다 치렀는데도 청구서가 다시 날아왔던 것이다. 그녀는 이미 치룬 영수증을 찾을 수 없었기 때문에 요금을 다시 지불해야 되지 않을까 두려워했다. 그녀가 가진 돈은 자기 남편의 장례비로 거의 다 써버렸기 때문에 그녀는 영수증을 찾게 해달라고 주님께 특별히 기도했다. 며칠이 지나자 수금원이 그 과부의 집을 방문하여 만일 그녀가 며칠 안으로 요금을 지불하지 않으면 법정에 고소하겠다고 윽박질렀다. 바로 그 때 나비 한 마리가 열린 창문으로 날아 들어왔다. 이걸 본 그녀의 어린 아들은 그것을 잡아 학습 과제물에 보탤 욕심으로 그것을 쫓기 시작했다. 소년이 그것을 잡으려 하자 나비는 소파의 등 위에 내려앉았다가 그 뒤로 기어들어가 버렸다. 소년은 그 무거운 가구를 혼자 옮길 수 없었기 때문에 수금원에게 자기를 도와달라고 요청했다. 그들이 가구를 밀어젖히자 종이 한 장이 바닥으로 떨어졌다. 그것을 집어든 과부의 눈은 기쁨과 흥분으로 동그랗게 되었다. 그것은 잃어버린 영수증이었다. 하나님께서는 그녀의 간절한 믿음의 기도를 존귀케 하셨던 것이다. (기도/응답) ☞ 하나은 언제 어디서나 기도하면 하늘 문을 여시고 응답의 감도을 주신다. 때로는 내 생각이나 내가 원하는 시간이 아니어도 기도를 멈추지 않으면 응답이 온다는 것을 믿자.
미국에 있는 카네이션 밀크회사는 전 세계 각처에 방계 회사가 뻗쳐 있는 큰 회사이다. 그런데 그 회사 부사장은 믿음이 돈독하고 성령이 충만한 분이었다. 어느 날 밤 자다가 일어나서 기도를 하게되어 기도를 하는데 성령께서 말씀하시기를 “곧 회사에 있는 돈을 전부 모아 가지고 독일로 가져다가 독일 화폐로 바꾸라”고 일러 주었다. 그래서 이 부사장은 아침에 날이 밝아지자 아무 말 없이 회사에 있는 달러를 전부 거두어 독일로 가서 마르크로 바꾸어 놓았다. 영문을 알 수 없는 회사는 비난의 언성으로 높았다. 부사장은 돌았다 미쳤다 어리석다고 하였다. 그러나 며칠을 지나고 보니 달러 평가가 절하가 있어 달러를 가진 회사에서는 많은 손해를 보았지만 달러평가 절하로 오히려 돈 가치가 더 있게 된 마르크를 가진 그 회사는 가만히 앉아서 돈을 벌게 되었다. 정신 이상 자라 미련한 자라는 소리를 들었으나 성령의 인도를 받고 순종할 때 이 회사는 막대한 유익을 보았고 부사장의 권위는 지혜로운 자로 존경을 받았습니다. (믿음/인도) ☞ 하나님께 드리는 기도에는 언제나 실망이라는 응답이 없다. 다만 우리생각대로가 아니라 하나님이 원하시는 시간에 따른다는 믿음으로 기다리면 된다.
어느 날, 몸 지체들이 비상회의를 열었다. 그때 갑자기 코(nose)가 일어나 말했다. 여러분! 지금처럼 경기가 어려운 때에 우리 중에 혼자 놀고먹는 못된 백수가 한 놈 있습니다. 바로 저하고 제일 가까이 사는 입이라는 놈인데, 그 입은 자기가 하고 싶은 얘기는 혼자 다하고, 먹고 싶은 음식은 혼자 다 먹습니다. 이런 의리 없는 입을 어떻게 할까요?" 그 말에 발이 맞장구를 쳤다. “저도 입 때문에 죽을 지경입니다. 우리 주인이 얼마나 무겁습니까? 그 무거운 몸으로 몸짱 만들겠다고 매일 아침에 뛰어대니 내발바닥이 아파 죽겠습니다. 그래서 내가 왜 이 고생을 하나 하고 가만히 생각해 보니 저 입이 혼자만 많이 먹어서 그런 것입니다." 그때 손이 말했다. "게다가 입은 건방집니다. 먹을 때 자기 혼자 먹으면 되지 않습니까? 개나 닭을 보세요. 그것들은 스스로 입으로 먹을 것을 잘 먹는데, 입은 날 보고 이거 갖다 달라 저거 갖다 달라 심부름을 시키고 자기만 먹습니다. 정말 속이 뒤틀려 더는 견딜 수 없습니다." 이젠 눈이 말했다. "이렇게 비판만 하지 말고 행동을 개시합시다. 앞으로는 맛있는 음식이 있어도 절대 보지도 말고, 냄새 맡지도 말고, 입에게 가져다주지도 맙시다." 그 제안이 만장일치로 통과되어 즉시 입을 굶기기로 결의했다. 사흘이 지나자 손과 발은 후들후들 떨렸고 눈은 앞이 가물가물해서 아무 것도 보이지 않았고, 코는 사방에서 풍겨오는 음식 냄새로 미칠 지경이었다. 조용히 침묵하던 입이 말했다. "여러분! 이러면 우리가 다 함께 죽습니다. 제가 어디 저만 위해 먹습니까? 여러분들을 위해 먹는 것입니다. 먹는 일도 참 힘듭니다. 때로는 입술도 깨물고, 돌도 깨물고, 혀도 깨뭅니다. 그러니 너무 섭섭하게 생각하지 말고 서로 협력하며 삽시다." (원망/화해) ☞ 그렇다. 어리숙한 사람은 어리석은 생각과 말을 하여 문제를 복잡하게 만들지만. 지혜로운 사람은 위기문제를 열린 마음으로 잘 풀어간다.
어느 마을에 아버지의 사랑을 받고 자라는 소년이 있었다. 이 아이는 새총을 가지고 놀다가 그만 마당에 놀고 있던 거위를 장난삼아 쏘았는데 죽고 말았다. 겁이 났다. 아버지에게 솔직히 말씀드릴까! 하다가 아버지에게 꾸지람들을 것을 생각하니 용기가 나지 않았다. 아들은 주위를 한번 둘러보고 보는 사람이 아무도 없자 뒤뜰웅덩이에 거위를 던져 넣고 흙으로 덮어 묻었다. 아이는 아무도 본 사람이 없다고 생각했는데 이 모습을 처음부터 끝까지 지켜본 사람이 있었다. 바로 그 집에서 일하는 하녀였다. 하녀는 그날부터 아이에게 이렇게 협박했다. “내가 시키는 대로 하지 않으면 아버지에게 말하겠다.” 하녀는 주인집 아들에게 산에게서 나무도 해오라, 추운데 가서 물을 길어오라, 집안 청소하라 ... 힘든 일들을 시켰다. 소년은 꼼짝없이 자기 집 하녀의 종노릇을 하게 되었다. 소년은 그날부터 하녀가 시키는 대로 일하는 것도 힘들었지만, 아버지에게 혹시라도 말을 할까봐서 항상 불안하고 두려웠다. 그런데, 그보다 더 두려운 것은 아버지의 얼굴을 똑바로 볼 수 없는 것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소년은 용기를 내서 아버지 방으로 찾아갔다. 그리고 자기의 잘못을 고백했다. 그런데 아버지가 화를 내실 줄 알았는데, 아버지는 웃으시면서 말씀하셨다. “아들아, 나는 처음부터 지켜보고 다 알고 있었단다. 이 아빠는 네가 와서 고백하기를 기다렸단다. 아들아 사랑한다.” 그리고 아버지는 아들을 안고 등을 토닥이면서 “얼마나 마음고생이 많았느냐” 하시면서 용서해 주셨다. (고백/용서) ☞ 아들은 자신의 약점을 잡아 협박하고 부려먹었던 하녀 때문에 불안하지도, 하녀대신 일할 필요도 없어졌다. 아버지께 죄를 고백하고 용서받은 아들은 마음에 평안과 자유가 찾아왔다.
그 사람은 조용한 시골에서 태어났다. 집안이 가난했기 때문에 학교에 입학도 못했다. 그는 어릴 때부터 목사가 되기로 작정하고 혼자 있을 때는 의자 위에 올라가서 설교를 하며 목사 흉내를 내곤 했다. 음악에도 재주가 있어서 수도원 합창단을 할 정도였다. 열네 살에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이웃 나라와 전쟁이 시작하자 그는 군에 입대하여 충성을 바쳤고 훈장까지 받게 되었다. 그가 군에 있을 때 어느 날 강아지 한 마리가 막사 안으로 들어왔다. 다른 군인들은 다 본체만체 하는데 이 젊은이는 목욕도 시켜주고 자기 식사도 나눠주었다. 그러다가 누군가가 강아지를 훔쳐가자 섭섭해서 며칠간 앓아누울 정도로 그는 인정이 많은 사람이었다. 또 아이들을 좋아해서 마을 아이에게 연을 만들어 주기도 했고, 어떤 아이가 의자에 머리를 부딪쳐 울고 있을 때는 자기도 똑같이 의자에 머리를 부딪치며 우는 흉내를 내면서 위로할 정도로 마음이 아름다운 청년이었다. 이 정도면 그는 분명 좋은 사람이라고 해도 좋을 것이다. 누가 봐도 괜찮은 사람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 사람이 바로 인류 역사상 가장 잔혹한 인물로 알려진 독일의 그 유명한 아돌프 히틀러이다. (변화/독제자) ☞ 하나님의 말씀을 들었다고 할지라도 그 말씀을 따라 살지 않고 자기 생각대로 살아갈 때 사람이 어떻게 변할 수 있는가를 알게 하는 이야기이다. 그렇다면 지금 나는 누구를 주인삼고 있는가?
교회집사 한 분이 군대를 제대하고 직장을 구하기 위해 서울에 방을 하나 구해 올라갔는데 빈대가 많은 하숙방이었다. 빈대에 시달리던 이 젊은 생명공학도가 화가 나는 마음에 빈대 3마리를 잡아 유리컵에 집어넣고 관찰을 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그 빈대 3마리가 아무것도 먹지 못한 상태에서 석달이 넘도록 그 유리컵 안에서 버티며 살아있더라는 것이다. 거기서 그는 많은 교훈(!)을 받았다. 그 아무 짝에도 쓸모없는 빈대가 그토록 버티며 산다면 하나님의 고귀한 성도야말로 그 어떤 환경도 이길 수 있어야 한다는 신념으로 무장한 것이다. 그 신념으로 직장도, 대학원도, 연구생활도, 학위도, 심지어 결혼까지도 다 이루어 낼 수 있었다. (변화/노력) ☞ 우리 주변에는 순간순간 나에게 감동을 주고 내 삶의 전환점이 되는 일들이 자주 발생한다. 그 순간, 그 찰나를 놓치지 않고 활용하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몇 년 전에 뉴욕에 살던 한 코미디언이 죽기 전에 이런 유언을 남겼다. "내가 죽으면 내 시체를 해부실습용 대상으로 기증하겠소. 특별히 하버드 대학으로 보내주길 바라오. 이것이 부모님의 소원을 들어드릴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기 때문이오. 부모님의 평생소원은 내가 하버드 대학에 들어가는 것이었는데, 내가 하버드에 들어가는 방법은 이 길밖에 없소." 이 사람은 가쁜 숨을 몰아쉬며 "죽음은 역시 고통스럽다"는 말을 남기고 세상을 떠났다. (생명/소망) ☞ 죽음은 웃을 수 없는 사건이다. 우리는 타인의 죽음에 대해서 여러 가지 많은 이야기를 할 수 있다. 그러나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나 나 자신에게 죽음이 닥치면 죽음에 대해 이러니 저러니 쉽게 말할 수 없다. 세상에 많은 종교와 철학과 사상들은 죽음을 미화하려는 경향이 있다. 그래서 자살 예찬론까지 등장하기도 한다. 죽음에 관한 미화는 죽음에서 도피하고 싶은 인간 본능의 한 표현일지도 모른다. 죽음은 필연적이며 산 자와 죽은 자를 분리시키기 때문에 아쉬운 것이다. 그러나 성경은 죽음을 미화하지 않는다. 기독교는 부활의 종교이기 때문이다. 문제는 이것을 믿지 못하는 우리의 불신앙이다. 기독교의 특성은 영혼의 불멸에 있는 것이 아니라 부활에 있다. 기독교는 부활로 인해 모든 종교나 사상을 뛰어넘는다는 것을 믿어야 한다.
위대한 미술가가 어느 가정을 방문하였다. 그 날은 마침 그 집 어린 딸의 생일이었다. 어린 소녀는 생일 선물로 받은 부채를 들고 손님이 있는 곳으로 왔다. 화가는 아이가 귀여워서 그에게 좋은 선물을 남겨 주고 싶었다. 그래서 그는 품에서 그림을 그릴 수 있는 펜을 꺼내들고 아이에게 부채 좀 잠깐 달라고 했다. 소녀의 부채에 그림을 하나 그려 넣고 싸인만 하면 그 부채는 금방에 아주 귀중하고 값비싼 것이 되는 것이었다. 그러나 아이는 "싫어요 내 부채를 버리게 돼요"하면서 그냥 도망쳐 버렸다. 그 소녀가 부채를 세계적인 화가에게 잠깐만 내어주었다면 값싼 부채가 만인의 선망의 대상이 되어 엄청나게 고귀한 부채가 될 기회를 놓치고 만 것이다. (기회/변화) ☞ 하나님의 독생자가 인간의 몸을 입고 이 세상에 오신 이유는 우리들의 부채와 같은 일생에다 그 분의 싸인을 해 주시려고 오신 것이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생명의 싸인을 받고 존귀한 사람으로 영생을 누리는 귀한 성도가 되자.
에샤르니라는 한 프랑스인이 나폴레옹 황제에게 밉게 보여 감옥에 갇히는 신세가 되었다. 오랜 세월이 흘러 그는 친구들에게서 잊혀 지게 되었다. 처음에는 자주 면회를 오던 가족들도 점점 멀어졌다. 그는 너무나 쓸쓸했다. 그는 돌 조각으로 벽에 이렇게 적었다. "아무도 돌보지 않는다." 소망을 잃어버리는 순간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감옥 바닥에 깔려 있던 돌 틈에서 푸른 싹 하나가 고개를 들고 나왔다. 샤르니는 간수가 매일 주는 물을 조금씩 남겨서 푸른 잎사귀에 부어주곤 했다. 그 싹은 마침내 꽃 봉오리가 생기더니 아름다운 꽃을 피웠다. 정말 아름다운 꽃이었다. 그는 먼저 썼던 글을 지웠다. 그리고 다시 이렇게 썼다. "하나님이 돌보신다." 소망이 생기는 순간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감옥 옆방에 면회를 왔던 죄수의 딸이 이 감옥 안을 들여다보다가 아름다운 꽃이 피어 있는 모습을 보았다. 감옥에 아름다운 꽃이 피었다는 소문은 귀에서 귀로, 입에서 입으로 전달되어 조세핀 여왕의 귀에까지 들어갔다. 이 소식을 들은 여왕은 말했다. "꽃을 진심으로 사랑하고 돌보는 이는 결코 나쁜 사람이 될 수가 없다." 그래서 황제에게 건의했다. 그래서 샤르니는 석방되었다. 샤르니는 감옥에서 핀 꽃을 집으로 가지고 왔다. 그리고 생명이 다하기까지 가꾸었다. (소망/꽃) ☞ 소망은 생명이었다. 어떤 경우에도 소망을 잃지 말고 전진하여야 한다. 소망은 우리에게 힘을 주는 원천이 된다. 꿈을 목표가 되어 달려가게 하는 힘을 주기도 한다.
목사의 아들로 태어난 네덜란드 화가 반 고흐는 젊은 날 한때 광산에서 일한 적이 있다. 어느 날 고흐는 광산의 공사판에서 유리를 메고 계단을 올라가는 인부의 작업복 등판에 적힌 '파손주의'라는 글귀를 우연히 읽었다. 유리를 조심하라는 문구였지만 한때 신학을 공부했던 그는 그 글귀를 '깨어지기 쉬운 유리 같은 존재가 바로 인간'이라는 의미로 받아들였다. (경고/생명) ☞ 우리 주위에는 깨지기 쉬운 인생을 부둥켜안고 괴로워하다 생의 단안을 내리는 이웃이 너무 많다. 하나님이 주신 고귀한 생명을 이런저런 이유로 헛되이 버리도록 충동질하는 자살 바이러스가 우리 주위를 엄습하고 있다. 교회가 깨어 이 허무의 시대를 '예수 보혈'로 치유해야 한다.
하버드대 학생이 아프리카에 있던 슈바이처 박사를 찾아가 가르침을 받고자 했다. 그런데 환영은커녕 박사를 만날 수도, 만나주지도 않았다. 몹시 실망해 귀국을 준비하고 있을 때 큰 비가 와 마을이 온통 물에 잠기게 되었다. 그때 한센병을 앓는 한 아이가 물에 빠진 것을 보고 뛰어들어 구해주었다. 그제야 박사가 그를 불러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다. “내가 며칠 자네를 지켜보니 전혀 나를 만날 준비도, 만날 가치도 없었네. 그런데 아이를 구해주는 것을 보고 자네에게 긍휼의 마음이 있는 것을 보았네. 세상을 구할 수 있는 것은 의사나 약이 아니라 긍휼의 마음일세.” (긍휼/사랑) ☞ 세상을 치유하고 변화시킬 수 있는 것은 긍휼의 마음이다. 이 마음이야말로 황폐하고 강퍅한 이 땅에서 품어야 할 마음이다. 지금 이 순간 죽어가는 영혼들에게 긍휼의 손을 내밀어줄 사람은 바로 당신이다.
휴가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나는 60세 가량 돼 뵈는 어떤 목사님 옆 좌석에 앉게 되었다. 무엇 때문에 우리의 대화가 그렇게 흘렀는지는 잘 모르겠으나. 내 삶에 대해서 얘길 했는데 아마도 내가 불평을 했기 때문인 것 같다. 나는 삶을 비관적으로만 보는 35세 된 남자였다. 그 목사님께서 말씀하셨다. “당신은 인생을 폭넓게 사는 것 같지가 않은데요. 왜 그러는지 이유를 아시는지요? 목사님의 질문으로 평소 내가 불만이 많은 생활을 하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을 받으신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글쎄요. 내가 생각하기로는 항상 모든 일에 대해 지나치게 두려워하기 때문일 겁니다. 이렇게 하기도 겁나고 저렇게 하기도 겁이 납니다.” 그러자 목사님께서는 미소를 지으시면서 말씀하셨다. “난 당신이 많은 걸 놓치고 있는 것은 당신이 대답했듯이 지나치게 두려워하기 때문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아요. 오히려 너무 두려워하지 않기 때문인 거예요. 두려움이란 항상 부정적인 것은 아니에요. 바람직한 방향의 두려움도 존재한답니다. 삶에 있어서 진실로 중요한 것을 잃게 되는 것에 대해 두려움을 가짐으로써 그러한 것들을 취하고자 하는 시도를 저지시키는 것은 사라지게 되는 것입니다.” 나는 그때 그 목사님을 잊을 수가 없었다. 전에 느끼던 그 부정적인 의미의 두려움으로 인한 좌절과 실망 혹은 다른 이들의 의견에 강압 받을 때면 그 목사님의 말을 떠올린다. 그때 이후로 내가 시도한 모든 일에 대해서 성공했다고 할 수는 없으나 상당부분을 성공했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게 되었다. (대화/자신감) ☞ “.당신은 너무 두려워하지 않는다.” 그 말은 한 젊은이에게 완전히 새로운 삶을 던져준 작은 충격이었다. 사람에게는 그렇게 만남을 통해서 들려오는 말을 통해서 시인할 때 역사가 일어난다. 그래서 믿음은 말씀을 듣고 입으로 “아멘”할 때 강해지는 법이다.
헨크 프레델링(Henk Vredeling)은 네덜란드의 전직 장관이었다. 그는 2차 세계대전 때 네덜란드 저항군으로 활동했다. 어느 날 그는 위험천만한 작전에 투입되었다. 그는 양말 속에 독일 잠수함 기지에 대한 정보를 담은 문서를 숨겨 기차에 올랐다. 그런데 도중에 어디선가 기차가 멈췄다. 독일군들이 검문을 위해 기차 안으로 들어오는 것이 보였다. 두려움이 프레델링을 엄습했다. 그는 수십 년이 지난 지금에도 기차 한 칸 한 칸을 뒤지며 다가오는 독일군의 모습, 기차 칸막이 문을 세차게 닫는 소리, 저벅저벅 들려오는 독일군의 군화 소리, 이 모든 것이 생생하다고 말했다. 드디어 그들이 프레델링이 탄 칸에 들이닥쳤다. 두려움으로 그의 얼굴이 사색이 되었다. 바로 그때 그는 기차 창밖을 보게 되었다. 너무도 푸른 하늘이 보였다. 두려움 속에서 말씀 한 구절이 떠오르는 것이었다.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찌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하심이라”(시 23:4). 그 순간에 대해 프레델링은 다음과 같이 썼다. “갑자기 무서움이 사라졌습니다. 두려움의 사슬에서 풀려난 것입니다. 그래서 나는 이렇게 생각했습니다. ‘올 테면 오라! 그들이 내게 무슨 짓을 하겠는가?’” (두려움/말씀) ☞ 이것이 하나님을 신뢰할 때 우리에게도 생기는 일이다. 하나님을 신뢰할 때 우리는 두려움에서 해방될 수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동양에 이런 이야기가 전해내려 오고 있다. 밤에 말을 타고 사막을 여행하고 있던 세 사람이 이상한 나그네 한 사람을 만났다. 그 나그네는 그들 에게 얼마 가지 않아 마른 시내 하나를 건너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서 "당신들이 그곳에 도착하거든 말에서 내려 시내에서 자갈들을 주워 자루와 호주머니에 가득 채우도록 하시오. 그리고나서 계속 여행 하다가 해가 뜰 때 당신들이 주워온 자갈들을 살펴 보시오. 당신들은 기뻐하며 한편으로는 애석해 할 것이요"라고 말했다. 그 사람의 말처럼, 세 사람은 마른 시내에 도착했다. 그들은 호기심으로 여기 저기 흩어져 있는 많은 자갈 들 중에 몇 개를 호주머니에 넣었다. 다음날 해가 뜰 무렵 그들은 주워온 자갈들을 살펴 보았다. 그들은 깜짝 놀랐다. 그 자갈들은 다이아몬드, 루비, 에메랄드 및 기타 여러 가지 보석들로 바뀌어 있었기 때문이었다. 사막에서 만났던 나그네의 말을 떠올린 그들은 그제야 그 나그네의 말을 이해했다. 그들은 주워온 자갈들이 보석들로 변해 있어 기뻤다. 그러나 더 많이 주워오지 않은 것이 애석했다. (믿음/물질) ☞ 그리스도인의 삶도 이와 비슷하다. 당신이 성경에서 캐낸 진리들이 영적 보석들로 바뀌어 당신의 금고를 채워갈 때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은 더욱 부요해질 것이다.
어느 추운 겨울, 한 여인이 포도를 구하기 위해 여러 곳을 돌아 다녔다. 중병에 걸린 외아들이 포도를 간절히 원했기 때문이다. 여인은 궁궐의 담벼락에 탐스런 포도가 주렁주렁 열린 것을 보고 관리인에게 사정했다. “100달러에 포도를 파십시오” 관리인은 고개를 저었다. 여인은 다시 200달러를 제시했다. 관리인은 화를 벌컥 내며 이 여인을 궁궐 밖으로 내쫓았다. 공주가 그 광경을 보고 있다가 슬피 울고 있는 여인을 불렀다. “여인이여, 당신은 지금 큰 실수를 했습니다. 이 포도의 주인은 이 나라의 왕이십니다. 그 분은 장사꾼이 아닙니다. 그 분은 포도를 팔지 않고 그냥 주신답니다” (은혜/믿음) ☞ ‘또 내게 말씀하시되 이루었도다 나는 알파와 오메가요 처음과 마지막이라 내가 생명수 샘물을 목마른 자에게 값없이 주리니’(계21:6) 그렇다. 구하면 주시고 두드리면 열린다고 했다. 그리고 응답해 주신다. 대가도 없이 완전 공짜로
독일에서 전해 오는 이야기이다. 농촌에서 성실하게 사는 젊은 부부가 있었다. 이들은 착하게 살면서 열심히 일했다. 그런데 하루는 밤에 꿈속에서 한 노인이 나타나 "동쪽으로 12km정도 가면 큰 나무가 한 그루 있는데 그 나무를 베면 좋은 일이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젊은 부부는 노인의 말대로 큰 나무를 찾아 베었다. 그러자 나무가 쓰러지면서 가지에 있던 둥지에서 새 알 두 개가 나왔다. 두 개의 새알 중 하나에서 새끼 새가 나와 "다른 새알을 까보면 금반지가 하나 나올 것인데 그 반지에게 소원을 빌면 들어줄 것"이라고 말하면서 날아갔다. 젊은 부부는 금반지를 두고 무슨 소원을 빌까를 의논하면서 이야기꽃을 피웠다. 참으로 희망찬 순간이었다. 집을 달라고 할까, 소를 달라고 할까, 땅을 달라고 할까, 돈을 달라고 할까를 의논하다가 그런 것은 열심히 일하면 얻을 것이니 금반지를 잘 보관하고 열심히 일하자고 결정했다. 그들은 반지를 잘 싸서 옷장 속에 넣었다. 무슨 소원을 들어달라는 요구보다 반지가 있다는 사실에 든든해하며 희망과 기쁨을 갖고 살았다. 그들은 힘든지도 모르고 전보다 열심히 일해 땅도 사고 논도 사고 소도 샀다. 나중에는 큰집도 장만해 부자가 되었고 아들 삼 형제까지 두었다. 이런 동안 소원을 들어주는 반지보다 더 귀한 것이 희망과 사랑, 성실과 믿음이라는 것을 알았다. 그들은 아들들과 함께 행복한 나날을 보내다가 평화롭게 숨졌다. 아들 삼 형제는 부모로부터 "금반지 유언"을 듣고 금반지를 꺼내 소원을 두고 의논을 했다. 그때 큰아들이 말했다. "우리는 지금 부족함 없이 살고 있다. 더 이상 무슨 욕심을 낼 것인가. 부모님은 소원을 풀지 않고 희망 속에서 행복하게 사셨는데 우리가 소원을 풀면 되겠느냐? 금반지 때문에 서로 갈라질 것이 아니라 금반지를 그냥 부모님 묘소에 묻어 버리고 희망 속에 살자" 이 의견에 모두 찬성했다. 그래서 그 반지는 부모의 묘소에 묻혔다. (감사/물질) ☞ 희망은 그 자체가 일종의 행복이며 하나님이 베풀어주시는 큰 기쁨입니다. 즉 희망이 기쁨과 행복을 가져다 준다.
오래 전 미국에서 있었던 일이다. 어느 날 한 부자 장로님이 목사님을 찾아가 권면했다. “목사님, 우리 교회 여집사님 한 분이 혼자 살면서 어린아이 다섯을 키우느라 무척 어렵게 삽니다. 남의 집 빨래를 하는 등 고생이 말이 아닙니다. 그런데 이 분이 주일날이 되면 꼭꼭 5센트의 헌금을 합니다. 큰 액수는 아니겠지만 그 여집사님한테는 적지 않은 액수다.” 이 장로님은 2불씩을 헌금하고 있었다. 당시 5센트의 20배에 해당하는 금액이었다. 장로님의 권면인즉 그 여집사님의 몫까지 자기가 대신할테니 그 집사님 불러서 헌금하지 말라고 얘기해달라는 것이었다. 목사님이 그 권면을 받아들였다. 그래서 하루는 그 집사님을 불러 “장로님이 당신 사는 것이 너무 어려운 줄 알고 매주 헌금하는 것을 대신 내주겠다고 하니 다음 주일부터는 헌금 안하셔도 괜찮겠습니다”라고 말했다. 그랬더니 이게 웬일인가? 여집사님은 앉은 자리에서 목을 놓아 우는 것이었다. “왜 우십니까?” 여집사님은 이렇게 대답했다. “제가 비록 남의 집 빨래를 해가며 고생스럽게 살지만 하나님께 5센트씩 바칠 때에는 더할 수 없이 기쁘답니다. 그런데 그 기쁨을 왜 빼앗으려고 하십니까?” 그 순간 장로님도, 목사님도 회개하는 기도를 했다. (감사/기쁨) ☞ 우리가 하나님 앞에 바친다고 할 때에 바치는 일 자체가 엄청난 기쁨이다. 이것을 바침으로써 복받고 어떻게 되는 것이 아니다. 선행이나 헌금은 그 행위자체에서 기쁨과 감격을 얻게 되는 것이다.
1999년 투어 드 프랑스 사이클 대회에서 금메달을 딴 한 선수가 있었다. 그 이름은 랜드 암스트롱이라고 하는 청년이다. 그는 3기 암 환자로서 많은 고생을 하면서 이 엄청난 일을 이루게 된 것이다. 25세에 고환암이라고 하는 사형선고 같은 진단을 받았다. 생존 가능성까지도 희박했다. 폐와 뇌에까지 전이되어서 너무나 쑤시고 아파서 식사도 잘 못하고 신문은 물론 텔레비젼도 마음대로 볼 수가 없을 만큼 그렇게 머리가 터지게 아프고 괴로웠다. 그러나 그는 사이클 경기에 나갔다. 처음에는 형편없는 실력으로 탈락했다. 어머니는 그에게 말했다. "My son, you never quit" 내 아들아 절대로 포기해서는 안 된다. 그는 열심히 사이클을 훈련을 했고 1993년 노르웨이 오슬로에서 있었던 세계선수권 대회에 나가서 우승을 했다. 그리고 노르웨이 왕을 알현하는 그런 기쁨도, 영광도 누렸지만 너무 힘이 들어서 선수생활을 접게 되었다. 어느 날 저녁에 자전거를 타고 산책을 하는데 자기가 가는 길에 환한 빛이 나타나면서 길에 글이 쓰여있었다. 그 글은 역시 어머니가 하시던 말씀이었다. "My son, never quit." 절대로 포기하지 마라. 그 글을 보고 깜짝 놀랐다. 그 뒤에 이어서 "장애를 기회로 바꾸는 사람이 되라." 장애를 기회로 바꾸는 사람이 되라. 그는 다시 일어났다. 다시 자전거를 열심히 탔다. 그리고 1999년 프랑스에서 금메달을 얻었다. 많은 사람이 그를 환영했고 그리고 2001년 5월호 가이드포스트에 대대적으로 이 사실을 발표해서 모두가 다 같이, 세계 사람들의 축하를 받았지만, 본인은 1등이냐 2등이냐 금메달이냐 그것에는 흥미가 없었다. 오직 하나, 그는 암 투병에서 승리했다고 하는 것, 자기와의 싸움에서 이겼다고 하는 것, 불행과의 싸움에서 이겼다는 그 사실을 기뻐하고 있다. 그는 그만이 가지는 기쁨이 있다. 남이야 뭐라고 하든 나만이 가지는 나만이 아는 기쁨을 만끽하고 있었다. (기쁨/노력)
☞ 참 기쁨이 어디에 있는가? 우리는 흔히들 '참 기쁨' 하면 소유에서 찾으려고 한다. 무언가를 많이 가졌고 많이 알고……. 소유가 나를 정말 기쁘게 할까? 그렇게도 소중한줄 알았지만 그게 아니다. 그건 근심만 더할 따름이다. 또한 충족에서 기쁨을 얻으려고 한다. 가지는 욕구 충족, 정신적이건 육체적이건 욕구 충족할때에 그 충족되는 기쁨을 누립니다마는 그야말로 허무한 것이다. 또 하나는 정신적으로 성취감이라는 게 있다. 뭐 하나를 만들어 낼 때, 뭐 하나를 이루었을 때, 스스로 성취했다고 생각지마는 그것 또한 무상하기 그지없는 것임을 알아야 한다. |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