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구속사적 성경묵상 ● (셋째 해_8월 8일)
<야고보서 2장> “행함으로 확증되는 온전한 믿음”
“내 형제들아 영광의 주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을 너희가 받았으니 사람을 외모로 취하지 말라. 만일 너희 회당에 금가락지를 끼고 아름다운 옷을 입은 사람이 들어오고 또 더러운 옷을 입은 가난한 사람이 들어올 때에 너희가 아름다운 옷을 입은 자를 돌아보아 가로되 여기 좋은 자리에 앉으소서 하고 또 가난한 자에게 이르되 너는 거기 섰든지 내 발등상 아래 앉으라 하면 너희끼리 서로 구별하며 악한 생각으로 판단하는 자가 되는 것이 아니냐.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들을지어다 하나님이 세상에 대하여는 가난한 자를 택하사 믿음에 부요하게 하시고 또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에게 약속하신 나라를 유업으로 받게 아니하셨느냐. 너희는 도리어 가난한 자를 괄시하였도다 부자는 너희를 압제하며 법정으로 끌고 가지 아니하느냐.....만일 너희가 외모로 사람을 취하면 죄를 짓는 것이니 율법이 너희를 범죄자로 정하리라.....너희는 자유의 율법대로 심판받을 자처럼 말도 하고 행하기도 하라.....긍휼을 행하지 아니하는 자에게는 긍휼 없는 심판이 있으리라 긍휼은 심판을 이기고 자랑하느니라.....내 형제들아 만일 사람이 믿음이 있노라 하고 행함이 없으면 무슨 이익이 있으리요 그 믿음이 능히 자기를 구원하겠느냐. 만일 형제나 자매가 헐벗고 일용할 양식이 없는데 너희 중에 누구든지 그에게 이르되 평안히 가라, 더웁게 하라, 배부르게 하라 하며 그 몸에 쓸 것을 주지 아니하면 무슨 이익이 있으리요. 이와 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그 자체가 죽은 것이라....네가 하나님은 한 분이신 줄을 믿느냐 잘하는도다 귀신들도 믿고 떠느니라. 아아 허탄한 사람아 행함이 없는 믿음이 헛것인 줄 알고자 하느냐. 우리 조상 아브라함이 그 아들 이삭을 제단에 드릴 때에 행함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은 것이 아니냐. 네가 보거니와 믿음이 그의 행함과 함께 일하고 행함으로 믿음이 온전케 되었느니라. 이에 경에 이른 바 이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으니 이것을 의로 여기셨다는 말씀이 응하였고 그는 하나님의 벗이라 칭함을 받았나니 이로 보건대 사람이 행함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고 믿음으로만 아니니라....또 이와 같이 기생 라합이 사자를 접대하여 다른 길로 나가게 할 때에 행함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은 것이 아니냐. 영혼 없는 몸이 죽은 것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이니라” (약2:1-26)
“너희의 믿음의 역사와 사랑의 수고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소망의 인내를 우리 하나님 아버지 앞에서 쉬지 않고 기억함이니 하나님의 사랑하심을 받은 형제들아 너희를 택하심을 아노라” (살전1:3,4)
『야고보서 2장은 믿음과 실천이 조화를 이루는 온전한 신앙에 대해 교훈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야고보는 먼저 그리스도인들이 사람을 외모로 판단해서는 안 된다는 사실을 역설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그는 교회에서 부자들에 대해서는 호의적으로 대하면서도 가난한 자들을 멸시하는 것에 대해 상당히 강한 어조로 비판을 합니다. 그가 그처럼 외모로 사람을 취하며 차별하는 것을 강하게 비판하는 것은 하나님께서는 사람들이 멸시하는 가난한 자들에게 오히려 믿음을 주시고 하나님의 백성으로 삼으시기 때문입니다. 뿐만 아니라 많은 경우 부자들은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서는 돈의 힘을 이용하여 의로운 자들과 교회를 핍박하기도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야고보는 그처럼 외모로 사람을 차별하는 행동은 “네 이웃 사랑하기를 네 몸같이 하라”는 최고의 계명을 어기는 죄악으로서 복음의 정신을 위반한 악행임을 고발합니다. 여기서 그는 예수님께서 믿는 자들에게 주신 서로 사랑하라는 새 계명을 자유의 율법이라고 표현하는데, 그것은 그리스도인들은 구원을 받지 못할까 두려워서 계영을 지키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사랑을 받은 자로서 자발적으로 이웃들과 형제를 사랑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어서 그는 “긍휼을 행하지 아니하는 자에게는 긍휼 없는 심판이 있으리라. 긍휼은 심판을 이기고 자랑하느니라”고 합니다. 이것은 믿음이 있다고 하면서도 사람을 외모로 판단하며 가난한 자들에게 긍휼을 베풀지 않고 살아간 사람들에 대해서는 주님께서도 마지막 심판 때 엄격한 기준으로 판단하실 것이지만, 반면에 자유의 율법을 따라 가난한 이웃들에게 긍휼을 베푸는 삶을 살았던 신자들은 마지막 심판 때 주님의 긍휼히 여기심을 받을 것이기에 전혀 심판에 대한 두려움 없이 오직 주님의 사랑과 은혜만 자랑하게 됨을 말하는 것입니다(요일4:17),
야고보는 아브라함과 라합의 경우 순종의 행함으로써 그들의 믿음이 온전하게 되었음을 예를 들면서, 입으로는 그럴 듯하게 말은 하지만 궁핍한 자를 보고서도 실제로 돌아보는 구체적인 행함이 없는 신앙은 죽은 믿음이라고 규정합니다. 여기서 죽은 믿음이란 구원을 받지 못하는 믿음이라는 말은 아니고, 그 사람이 정말로 구원을 받은 사람인지 입증하는 것이 불가능한 믿음이라는 말입니다. 말하자면 구원을 받았는지 안 받았는지 ‘아리까리한’ 믿음을 말합니다.
이처럼 야고보서에서는 우리의 믿음에 주님의 새 계명을 따라 실제적인 사랑의 실천이 수반될 때 비로소 참으로 구원받은 자의 믿음으로 확증될 수 있음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오늘도 많은 사람들이 교회를 다니며 믿는다고 하지만 그들의 행동을 보아서는 정말로 구원받은 사람인지 확증하기가 어렵습니다. 그런 가운데 우리는 우리의 신앙이 혹 죽은 믿음은 아닌지 돌아보아야 합니다. 그러면서 그리스도의 긍휼을 입어 구원 받은 사실을 기억하고, 그런 주님의 은혜에 응답하여 힘써 긍휼과 사랑을 행함으로써 우리의 믿음이 죽은 믿음이 아니라 참으로 구원받은 온전한 믿음으로 확증될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살전1:3,4).』
● 오늘의 기도 ● “죽은 믿음이 아니라 사랑과 긍휼을 베푸는 행함이 있는 온전한 믿음이 되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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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아멘
행함이 있는 온전한 믿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