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을 뜨니 새벽4시, 기대를 가지고 숙소밖에 나오니 아직도 비는 내리고 있다.
어쩔가? 고민속에 강행군하기로 결정한다.
어제 일찍 취침해서 인지 일행 모두 잠에서 깨어있다. 간단한 식사를 하고 오전5시 벽소령대피소를 떠난다.
덕평봉, 칠성봉, 연신봉을 거쳐 세석대피소에 오는동안 나의 온 몸, 온 정신이 젖어있다.
눈에 들어오는 모든 바위들 그리고 흙들이 흠뻑 젖어있다. 그냥 젖음에 채념하고 우린 그대로 길을 걷는다.
운무는 지리산 전체를 삼켜버렸고 어둠에서 벗어나 동이 트엿어도 앞길은 지척이 구분이 안된다.
분명 가을 향기가 산자락 구석구석 짙게 배어있으나 눈에는 보이는 것이 없고 모두가 몽환적 분위기를 내뿜고있다.
세석을 벗어나면서 비님이 내림을 멈추기 시작한다.
잠간이지만 칠성봉에서 천왕봉도 보여주고 고혹적인 산그리메와 멋진 운무도 펼쳐있다.
대체로 연하선경을 걷는 동안은 지리산의 가을을 만끽한거 같다.
거기다 덤으로 진달래가 눈앞에 들어선다.
장터목에서 처음으로 앉아본다.
비님이 들어가고 바람은 있지만 너무너무 힘들어 야외식탁에서 점심을 즐겼다.
그러나 제석봉부터 천왕봉 오르는 동안 지리산 신령은 무엇에 삐졌는지 모든 시야를 막아버린다.
드디어 천왕봉에 오르고 고맙게도 지리산 능선을 잠간 열어준다. 감질맛이 최고랄가?
찰라의 고혹적 아름다움을 글로 표현하기 어렵다.
중봉에서 보이는 지리능선
중봉에서 써리봉을 지나 하산길에 맞이한 농깊은 가을빛깔
드디어 채밭목대피소에 오후5시30분 도착한다.
장장 15.4km, 12시간 30분의 어려운 사투였다.
고단함에 한 숨자고 이라크전 축구를 보고자 했으나 눈을 떠보니 이미 끝났다.
아! 맥주 한 잔 하고프다...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
대피소 밤하늘...
이렇게 하루가 사라진다.
첫댓글 황대장님을 비롯한 여러선배동지과 지리산 산행 참 공기좋고 천왕봉 반가윘습니다 치밭목 대피소에서 저녁지내고 새재 유평 대원사절 원지와서 목욕하니 살만했습니다 모두들 서로 배려한 마음 너무나 감사합니다
치밭목으로 하산은 처음이었는데 중산리나 백무동보다 힘들었음. 그런데 뭐가 힘들었는지 벌써 기억이 잘 나지 않음. 치밭목 대피소에서 밤에는 별 구경, 다음 날 아침에는 해돋이를 볼 수 있었음. 10월 중순인데 단풍은 아주 조금 밖에 보지 못해 아쉬웠지만 힘들고 행복한 3박4일을 무사히 걸어서 감사한 마음... 오래 기억하고 싶은데, 언제 또 오려나...
함께 걸으신 분들은 정말 고맙고 대단하신 분들.. 오래오래 즐산하시길 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