⑬ 태안 천리포수목원 태을암
618,397㎡(187,000평)규모의 수목원은 6만6000여㎡(20,000여평)만 일반에게 공개되고 있다. 나머지는 종 보존을 위해 계속 제한적으로만 문을 연다. 2000년 국제수목학회로부터 아시아에선 처음으로 ‘세계의 아름다운 수목원’으로 인증 받기도 했다.
후박나무.
천리포해수욕장
수선화
목 련
태안 마애삼존불은 일반적인 삼존불 양식과 다르다. 가운데 한 관세음보살을 양쪽의 두 부처님이 외호하는 형식이다.
최근 불사로 새로운 모습을 갖춘 태을암.
‘짧은 봄날’아쉬움, 삼존불 미소로 위안 받다
한식을 지내고 아직 음력으론 3월인데, 낮은 벌써 여름이다. 이러다가는 정말 사계절이 뚜렷한 우리나라 날씨가 여름과 겨울 달랑 두 계절로 나뉘어질지도 모를 일이다. 너무 짧아진 봄, 늦기 전에 봄의 향기를 만끽하기 위해 부지런히 태안으로 향했다. 태안에는 40년 동안 굳게 닫혀 있던 ‘비밀의 화원’이 있다. 미국 통역장교로 왔다 귀화한 미국인 칼 밀러(한국명 민병갈.1921~2002)가 평생 독신으로 살면서 가꾼 ‘천리포 수목원’이다. 규모만 해도 61만 8184㎡를 넘는 너른 정원이다. 그동안 특정인에게만 문을 열었던 수목원이 올해 4월1일부터 일반에 공개됐다. 천리포 수목원이 문을 연지 열흘째 되는 날 그곳을 찾았다. 제법 많은 사람들이 정원을 둘러보고 있었다.
목련꽃이 제철을 맞아 수목원 곳곳을 환하게 장식했다. 연꽃같은 어여쁜 꽃망울이라 해서 이름붙여진 목련(木蓮), 그리스 신화에서 물에 비친 자기모습에 반해 물에 빠진 아름다운 청년이 죽은 자리에서 피어난 수선화, 울릉도 호박엿의 원재료 후박나무 등 산책길에 피고지는 온갖 나무와 꽃은 저마다의 사연과 향기를 머금고 거니는 이들을 맞아주는 듯 했다. 민병갈 원장은 생전에 “사람에게 보여주기 위한 숲이 아니라 나무를 위한 숲”이라는 원칙을 지켜왔다고 한다. 자연을 인위적으로 가꾸는 것보다 자연 그대로가 사람들에게 더 큰 감응을 준다는 것이다. 지난 해 기름유출로 몸살을 겪었던 태안 바닷가의 수목원. 탐욕 때문에 자연을 거스르고 그 탓에 큰 해를 입는 우리네 현실을 되새겨보니, 숙연한 마음이 생긴다.
이어 태안의 너른 바다와 평야를 한눈에 바라보는 백하산으로 향했다. 백하산엔 태안마애삼존불(국보 제 307호)을 모신 태을암이 있다. 산 전체가 흰돌로 덮여 있는 백하산은 그 모양이 경주 남산과 흡사하다. 최근 불사로 깔끔하게 정비되어 있는 태을암 대웅전에 참배를 하고 삼존불을 친견했다. 유명한 국보 제84호인 서산마애삼존불보다 앞서서 조각된 백제의 가장 오래된 마애불이다.
관세음보살이 가운데 모셔져 있고 양쪽에 부처님이 서 계시는 모습이 이채롭다. 전쟁으로 얼룩진 삼국시대에 중생을 돌보고 자비를 베푸는 관세음보살에 대한 절대적인 믿음에서 관세음보살을 두 부처님이 외호하는 양식을 취했다고 전해진다. 관세음보살을 지켜주는 듯한 두 부처님의 상호엔 따뜻한 미소가 번져 있다. 관세음보살의 ‘보디가드’라도 되는 듯, 미소를 머금은 두 부처님의 기세가 마냥 든든하고 믿음직스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