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의 내용들은 이 땅에 완전한 자는 없고, 누구라도 실수하고 범죄하며 살지만 범행한 자는 당연하게 생각하지 말고, 회개하고 바로잡아야한다. 그리고 그것을 보는 자는 타인의 실수나 범죄를 보고 즐기며 나팔을 불지 말고, 이해하고 덮어주고 용서하면서 함께 살아가는 공동체이다. 그러므로 실수는 즉시 고칠 수 있도록 덮어준 셈과 야벳으로 은혜가 임했다. 오늘은 은혜 받으라고 주신 말씀으로 복이 오는 통로라는 제목으로 서로 은혜가 되자.
1. 복이 오는 통로는 셈의 집으로 온다.
셈이 노아의 존엄을 지키는 행동을 하나님께서 높이 평가하신 것이다. 그리고 “셈의 장막에 거하게 하시고”는 사랑받는 모든 자들을 셈의 장막에서 살게 하신다. 장막에서 예배하며 여호와를 찬송하게 된다. 사람에게 최고의 복은 하나님께 찬양이고 찬양이 인생의 목적이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사람을 창조하실 때 찬송하면 기쁘게 받으시기 위해서 창조하신 것이다. “이 백성은 내가 나를 위하여 지었나니 나를 찬송하게 하려 함이니라”(사43:21)했고, “이는 우리 기업의 보증이 되사 그 얻으신 것을 속량하시고 그의 영광을 찬송하게 하려 하심이라”(엡1:14). 사람을 지으실 때 울림 판을 3개 주셨는데 배, 입, 머리의 공간을 울려서 아름다운 음을 낼 수 있도록 최고의 악기로 창조하신 것이다. 시편 103편 1절에 “내 영혼아 여호와를 송축하라 내 속에 있는 것들아 다 그의 거룩한 이름을 송축하라”하셨고, 암몬 자손과 모압이 유다를 치려 복병을 두었는데 찬송이 시작될 때에 복병을(대하20:21-22). 성가대로 전쟁에 승리한다. 능력이 내 안에서 나오지 않고 예수님 안에 살고, 예수님을 기쁘시게 한 모든 행동들이 우리를 능하게 하고 하나님께 영광이다. 삶의 목적이 믿으면 행복한 삶이다. 우리를 구원하시려고 십자가에서 피 흘려 죽기까지 사랑하신 예수님! 부활로 재림의 소망을 주신 예수님께서 베푸신 은혜 감사한 마음!복에 머문 것이다.
2. 복이 오는 통로는 셈과 야벳의 협력으로 온다.
야벳이란 뜻은 번영과 확장하다와 넓어짐을 의미한다. “하나님이 야벳을 창대하게 하사 셈의 장막에 거하게 하시고 가나안은 그의 종이 되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하였더라.”(창9:27). 본문에 야벳을 창대하게 하신 복을 주셨지만 셈처럼 주시지는 않았다. 본문에 “하나님이 야벳을 창대하게 하사”는 셈의 장막에 거한 복이다. 그럼 셈족에게는 어떻게 하셨는가? 여호와 하나님이 아니시고 보통명사인 하나님이라고 밝히신다. 그렇다면 여호와 하나님이란 무엇인가? 약속의 하나님이시다. 그러므로 여기 약속이란 창세기 3장 15절에서 여자의 후손으로 오실 하나님이 인간이 범한 모든 죄를 용서해 주시기 위하여 성자 하나님께서 사람의 몸을 입으시되 성령하나님께서 아버지의 사역을 하신 성령님의 잉태로 오신 성자 하나님을 뜻한다. 다른 말로 말하면 여호와 하나님은 창세기 2장부터 계시록의 끝까지 주어가 되시는 하나님이시다. 창세기 1장에서 말씀하신 엘로힘 하나님이 아닌 여호와이다. 하나님이 여호와 하나님을 계시하시기 위해 성경이 기록되었고 성경의 특징이 예언이며 성취가 되지 않으면 외경이나 가경이다. 성령하나님의 감동과 감화로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은 전능의 능력이 내재된 상태의 말씀으로 믿고 행하는 실천을 통해 하나님의 전능의 능력이 나타난다. 성경 예언들을 나누면 어떻게 오심과 사심과 죽으심과 부활과 승천과 재림이다. 곧 예수님을 믿어 구원에 이르게 하고 영생과 복을 주신다. 성경이라고 애독하고 실천하지만 주어를 놓치면 안 된다. 성경해석은 예수님이란 주어를 알아야 한다. 주어가 없으면 예수님을 만나지 못하니 글이며 말씀이 없다. 예수님께서 “너희가 성경에서 영생을 얻는 줄 생각하고 성경을 연구하거니와 이 성경이 곧 내게 대하여 증언하는 것이니라. 그러나 너희가 영생을 얻기 위하여 내게 오기를 원하지.”(요5:39-40)않다는 것이다. 구원의 장소가 셈이 아닌 예수님 십자가의 피로 사함이란 장소성이다. 이는 아담부터 이어진다.
결론: 복과 구원 장소성은 예수님이고, 십자가피로 구원이다. 야벳에게 셈 장막에 살며, 정복하는 축복들을 오늘 우리가 이어 가자.
첫댓글 설교 올려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