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맷부리 젖는 날
초연 김은자 수필집 (전자책) / 한국문학방송 刊
망구望九의 언덕에서 미수米壽를 살아내는 언니의 여생을 생각한다. 米壽를 맞이하는 사람은 전 인구의 30% 미만이고 그중에서 걸어 다니는 사람은 15%라는 통계를 본다. 6·25동란을 겪고 고생을 하다가 결혼하고 세 자녀를 거느린 언니는 형부의 재 테크 능력으로 많은 재산을 모았었다. 유복하게 살던 언니는 70세에 폐 섬유화로 고통받던 형부가 소천하셨다. 세 자녀가 장성하고 세 자녀도 잘 살았는데 코로나가 오면서 큰아들의 건축 사업 분양이 부도가 나면서 고난의 길을 걷게 된다. 슬퍼하는 언니를 생각하면 여생이 그리 길지는 않다는 짐작을 하면서 언니의 노년이 너무나 불행하다는 생각이 든다. 내가 위로한들 어마어마한 재산이라 그간에 큰아들이 연속으로 담보대출과 이자에 시달리면서 결국 재산을 거의 다 날렸다. 모든 집착에서 놓여나면 자유로운데 그것이 마음대로 되지 않아서 하루에 지옥을 몇 개나 들락거리는지 모른다. 남이 위로한들 사필귀정事必歸正의 흐름으로 최후의 길목까지 왔다는 느낌이 든다. 언니를 사랑해도 내게 불가능한 영역에서 가슴이 아파 생전의 언니를 기리는 글을 쓴다. 겉으로 소리 지르며 우는 소리에서도 슬픔의 농도를 짐작하는데 속울음 우는 언니의 비명이 내 가슴에 여울진다.
아직 오지 않은 힘든 일을 가불 假拂하듯 미리 걱정하지 말라고 하지만, 어리석은 인간은 노심초사勞心焦思하면서 걱정하며 살 수밖에 없는 것 같다. 언니를 아껴주던 형부가 타계하고 온실에 화초 같던 언니는 살림 일등 주부였다. 걸레와 행주를 구별할 수 없을 정도로 깨끗하게 살림을 잘하니까 대신 몸이 자주 아팠다. 그런데 나이 먹으면서 건강이 좋아지고 성당에 다니면서 잘 살아내고 있었다.
아들이 저지른 사업 실패가 시절 인연을 먹고 불행한 길목에 다다라서 슬픈 목소리로 전화하는 언니가 애처롭다. 세상 살면서 노년이 편안해야 하건만 앞으로의 삶이 걱정이다. 언니가 여섯 살 더 많아서 부모님 사랑을 내가 더 많이 받아서 편애의 서러움을 많이 겪었던 언니다. 나는 콩쥐 팥쥐 동화에 나오는 이야기를 연상하니 본의 아닌 편애의 가해자가 된 것 같다. 코로나가 인류의 재앙으로 지구촌을 난타하면서 목숨을 버린 자도 있고 희귀병稀貴病에 걸린 자도 많지만, 언니의 노후老後는 지옥이다. 눈물을 훔치는 팔뚝에 슬픔이 묻는 언니의 모습이 먹구름처럼 떠 오른다. 사랑하는 언니가 여생이 얼마 남았는지는 모르지만, 산수를 지난 나의 능력은 한계가 있더라. 집착을 가지는 것도 버리는 것도 1인칭이다. 인연이 다하면 흘러가는 아쉬움을 깨닫고 피난 가면서 끼니를 건너뛰던 가난한 시절을 생각하면 못 이기지도 못할 것인데 말이다.
건강만 하면 무엇이나 무서울 것이 없었던 젊은 시절이 어제 같은데 인생이란
덧없다고 여긴다. 백세시대라고 하지만, 병들고 나이만 먹으면 무슨 소용이 있겠나. 거리를 지나다 보면 빈 가게가 많다. 우리 동네에 어울리지 않는 옷 가게가 개업했다. 지날 때마다 곧 망할 집이라는 느낌이 온다. 손님이 보이지 않고 일찍 가게 문을 닫는다. 흥망성쇠의 길은 생로병사의 길과 다르지 않다고 여긴다. 무상한 삶의 길목에서 처연한 언니의 노년을 생각하며 나의 노년을 다독인다. 먼 훗날 이 책을 읽을 어느 후손이 있다면 나도 위로를 받으리라.
나의 언니는 위대했다. 에디슨 어머니의 이야기를 언니에게 들려주고 싶다.
토머스 에디슨이 학교에서 집으로 돌아와 어머니에게 종이 한 장을 건넸다. 선생님이 꼭 엄마에게만 전해 드리라고 하셨어요.” 편지 내용을 살펴본 어머니의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해 졌다. 한 동안 말없이 서 있던 어머니가 에디슨에게 큰 소리로 편지를 읽어 주었다. “에디슨은 천재입니다. 그런데 이 학교는 아드님을 교육시킬 만한 훌륭한선생님이 없습니다. 그래서 어머님께서 직접 가르치시는 편이 나을 듯 합니다.”그 이후 에디슨은 학교에 가지 않고 집에서 어머니로부터 가르침을 받게 됐고,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난 후 에디슨은 세기의 위대한 발명가가 돼 명성을 날리게 됐다. 어느 날, 어머니와 함께 살았던 집을 찾아 갔다가 자신이 어렸을 때 선생님이 어머니에게 전해 드리라고 했던 편지를 발견했는데 편지에 쓰인 내용은 이랬다. “아드님은 제 정신이 아닙니다. 정신적 질환이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학교에 계속 다니게 할 수 없다는 결정을 내렸습니다. 아드님은 제적 됐습니다. 에디슨은 그편지 내용 을 읽다가 감정이 북바쳐 목이 메었다 그날 에디슨은 집에 돌아와 이렇게 썼다 토마스 에디슨은 어머니가 세기의 천재로 변화시킨 정신병이 있던 아이였다. 모든엄마가 위대한건 아니지만 대부분의 엄마는 위대하다. 사랑하는 언니여!
― <머리말>
- 차 례 -
머리에 두는 글
제1부 1887년산 와인 앞
1887년산 와인 앞
감자꽃 따내는 사연
귀가 멀어지는 길목
그녀의 명복을 빌며
글 맞이 외박
제2부 냉장고 심장마비
냉장고 심장마비
다정도 병이었다
덕분입니다
만남의 꽃
제3부 반가사유상 속삭임
반가사유상 속삭임
산장에서 그린 달마도
소나무 쓰러트린 백설
송강정 낮달 반쪽 나눠주네
안창살 익히기
제4부 언니의 소맷부리 젖는 날
언니의 소맷부리 젖는 날
여행길 새벽 설렘
영종도 화선 국수 가닥
이시가키섬의 모래
정초의 연가 판교에 울리다
제5부 주문진 항구 축제
주문진 항구 축제
키비탄 자원봉사자 대회에서
태기산 정기 담은 산나물
허기진 손길
● 서평
[2024.03.25 발행. 133쪽. 정가 5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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