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종성 개인전
‘남은 땅, 한 평의 땅’
유화의 맛이란 반드시 물감을 두텁게 바름으로 얻어지는 것도 아니다.
아무리 두텁게 발라도 깊이가 느껴지지 않으면 유화의 맛이 반감하고 만다.
더구나 색채이미지와도 연관성이 있다.
아무래도 색채가 밝아지면 상대적으로 깊은 맛이 줄어든다.
글 | 신항섭(미술평론가)
[2010. 3. 3 - 3. 13 장은선갤러리]
[장은선갤러리] 서울시 종로구 경운동 66-11 T.02-730-3533
홈페이지로 가기 http://www.galleryjang.com
박종성은 단적으로 말해 유화다운 맛을 만끽할 수 있는 그림이다. 두텁게 바른 진득한 물감이 엉겨 붙으면서 지어내는 그 묵직한 표정을 통해 불현듯 유화의 아름다움을 발견 하는 듯싶은 기분이었다. 최근의 감각적인 터치와 세련된 기술을 강조하는 그림들이 유행하는 분위기에서는 확실히 새로운 체험이다. 아마도 물감을 쓰는 방법이나 색채이미지와도 관련이 있겠지만 어쩌면 소재에서 오는 느낌이 더 강렬했는지 모른다.
봄, 91×60.5, oil on canvas
여름꽃, 91×91, oil on canvas
그가 ‘남은 땅, 한 평의 땅’ 이라고 말하고 있는 것은 흙의 순수성과 원초성 그리고 땅의 사실성을 강조하기 위한 수사이다. 다시 말해 꽃이나 풀을 겨냥하기보다는 이들 생명체를 존재케 하는 터전으로 서의 땅에 눈길을 보내는 것이다. 어쩌면 그의 그림에서 느낀 진득한 유화의 맛이란 다름 아닌 흙의 질박함과 동질의 것이었는지 모른다. 새로운 세상과 만나고 있는 듯 싶은 신선함에 매료되었던 것은 그의 그림에 흙의 순수성이 그대로 살아나고 있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유채라는 재료에 대한 그의 이해는 흙이라는 이미지를 통해 극렬하게 전개된다. 그 극렬함이란 사실성이다. 실재와 그림을 혼동하게 만드는 그 사실성은 어디에서 비롯되는 것일까.
그는 서울 부암동, 청와대 뒤편 산기슭에 있는 뒷골에 농가 주택에 화실을 마련하고 흙과 더불어 살고 있다고 한다. 서울 중심에 전통적인 방식으로 농사를 짓고 있는 마을이 존재하는 것도 경이로운 일이요, 거기에서 시골생활을 하고 있는 그 또한 특이하다. 그가 뒷골에서 흙의 참모습을 발견할 수 있었던 것은 우연이 아니다. 급변하는 세상과 절연 되다시피 살고 있는 뒷골이야말로 서울의 마지막 모습이자, 자연친화적인 삶의 본질을 말해주고 있는 곳인지 모른다. 서울의 마지막 숨통이라고 하면 지나칠까. 그 숨통의 모습을 서울 도심한복판으로 끌어내려는 것이다. 우리가 잊고 있는 흙의 정서, 그 진실한 삶의 원형을 찾아내 메마른 현대인의 가슴에 향수와 같은 감정의 불을 지피려는 것인지 모른다.
가을꽃, 91×60.6, oil on canvas
산벗, 91×9,1 oil on canvas
그의 그림에는 확실히 남다른 감동이 있다. 적어도 이전까지는 그처럼 진솔한 흙의 이미지, 땅의 힘을 느끼게 하는 그림과 만난 일이 없다. 땅에서 멀리 벗어나지 못한 채 납작하게 엎디어 있는 풀꽃들의 그 소박하면서도 강인한 이미지에서 아름다운 생명력을 읽게 된다. 무엇보다도 밭고랑에 피어 있는 키 낮은 꽃들의 아름다운 질서는 그의 그림이 가지고 있는 또 다른 매력이다. 발 아래로 내려다보이는 낮은 세계의 풍경은 결코 화려하지는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감동의 물결이 크게 일렁인다. 흙의 실체를 잘 전달하고 있기 때문이다. 유채화의 멋과 아름다움을 새삼 음미할 수 있는 기회였다.
-박종성 작가노트-
인간이 사유한다는 것은 그 삶 체가 녹녹치 않기 때문일 것이다. 더욱이 한 번에 기회만 주어지는 삶속에서 우리는 항상 선택의 문제에 서있게 된다. 작은 일상에서 평생을 결정하는 일들이 그러하다. 미술가의 길, 후회는 없지만 쉽지 않은 길이다. 서툴게 살아온 나로서는 안개 속과 같다. ‘길이 없다는 것은 사방이 길이 될 수도 있다’ 는 생각으로 위안을 삼는다. 모든 분야가 그렇지만 미술도 사람이 하는 일이라 그 사람의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다고 본다. 작가들은 끊임없이 자신의 세계를 열기위해 노력하고 자신의 삶을 가꾸어 간다. 나 또한 다르지 않다.
또한 변화하는 시대에 귀는 기울이되 그것에 연연하지 않는다. 그저 한발 보고 또 한발 내디디면 된다고 본다. 우리는 어느 누구도 현재보다 앞 설순 없다. 존재 하는 순간들은 그것이 길든 짧든 모두 과거이기 때문이다. 삶은 항상 과거와 현재성만이 기억이 되고, 다가온다는 미래라는 것은 그때의 현재가 될 것이기에 그렇다. ‘지금’ 나는 글을 쓰고 있는 과거를 보고 있다. 지금 내주위에 맴돌고 있는 시간들을 하나씩 채워 나가야 한다. 영겁의 역사에 한 점을 기록하기 위하여...
작가는 붓 한 자루를 의지하고 자신의 인생을 그려나간다. 보이는 형상뿐이 아니라 내면의 생각들 까지도. 내가 살아있을 때만이 살아있는 것이 보이고 소통할 수 있을 테니까. 오늘도 나에게 아름다움을 선물하기 위해 진실과 만나는 노력을 할 일이다. 작품도 진실만이 기억 될 테니까. 나는 모든 예술을 믿는다. 그것은 인간에 삶의 본향을 찾아가는 은밀한 통로 일수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