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 목요일에 홍*권님과 함께 외출하여 필요한 물건도 사고, 이야기도 많이 나눴다. 그 과정 속에서 홍*권님과 함께 서운한 것이 있어도 잠시 기다려 주고, 이해해주길 약속했었다. 그러나 며칠 지나지 않아 홍*권님은 다시 침대에서 일어나지 않았고, 머리가 아프다는 이유로 식사도 하지 않고, 씻지도 않았다. 불과 며칠 전에 약속했던 내용이 있었는데 다시 그렇게 일상을 멈추는 모습을 보니 직원은 내심 홍*권님이 뭔가 필요한 게 있어서 그러는지, 아니면 속상한 게 있는지 걱정이 됐었다.
화요일이 되고, 홍*권님은 간호사님과 함께 머리가 아프다는 이유로 한의원에 가서 침을 한 대 맞고 왔다. 다녀온 이후로 홍*권님은 다시 일상을 시작했고, 기분이 나아진 모습이었다. 직원의 짧은 생각으로는 홍*권님이 아프다는 핑계로 나가서 필요한 물건을 사오는 건 아닌가 생각했지만 단지 병원만 다녀왔을 뿐이고, 그 뒤에 홍*권님의 문제는 해결 되었다.
아차 싶었고, 반성했다. 홍*권님이 단지 일상을 멈췄다는 이유로 혹시 무엇인가 필요하기에 일종의 시위를 하는 것은 아닌지, 아니면 서운함의 표현인지로만 생각 했던 것이 너무 짧은 생각이었다고 느꼈다. 단지 홍*권님은 아파서 누웠을 뿐이고, 아팠으니 병원에 가서 치료를 받아 몸이 좋아졌을 뿐인데 직원은 저번 주에 한 약속에 대한 의심까지 했으니 말이다.
직원은 관련된 상황에 대해 공부했다. 책을 펴고 ‘월평빌라 이야기’를 읽었다. 책의 후미쯤에 ‘불안정할 권리’라는 단락이 있었다.
상담, 치료, 약이 필요한 정도는 아니지만, 지나친 경우가 있습니다. 자주 짜증을 내고, 종종 거칠게 화내고, 욕하고, 자주 무기력하고, 과하게 웃거나 우는 경우, 이런 경우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지나친 슬픔과 기쁨, 잦은 짜증과 무기력함은 그저 그런 것이 아닙니다. 감정은 배경과 대상이 있습니다. 단체생활의 어수선하고 불안정한 환경이 시설 입주자의 감정에 미치는 영향이 커 보입니다. 여럿이 함께하는 활동이 일상이고, 자기 계획과 일정이 없거나, 통제되고, 직원의 지원이 간섭처럼 느껴지고, 간섭하는 사람이 상시 옆에 있다고 느낄 때 받는 스트레스가 상당해 보입니다.
...(중략)
‘문제’ 삼는 횟수만큼 ‘인정’하려고 노력하면 어떨까요? 문제 삼는다면, 이유가 뭔지 배경이 뭔지 환경은 어떤지 살피면 좋겠습니다. 개인의 문제로만 여기지 않고 환경을 살핍니다.
...(중략)
직원의 할 일이 많고 지원해야 할 입주자가 여럿이라 시간과 여건이 만만치 않죠. 그러니 지혜가 필요하고 협력해야 합니다. 지나친 감정이 일상이 된 입주자, 자기감정을 제대로 표현하기 힘든 입주자를 돕고 싶다면, 진정으로 돕고 싶다면, 공부하고 궁리해야 합니다. 입주자를 제대로 돕고 싶다면, ‘직원이(내가) 어떻게 해 보겠다’는 마음을 내려놓아야 합니다. 입주자의 감정을 감정으로써 맞서면 변화는 없습니다. 감정을 통제하거나 지도하는 것은 임시방편이며, 상황을 지속시키고 악화시킬 뿐입니다. 공부하고 궁리해야 합니다. 어떤 배경과 이유가 있는지 살펴야 합니다.
...(중략)
필요하다면 전문가의 도움을 받아야 합니다. 가족과 친구와 이웃의 도움도 받아야 합니다. 미용은 미용실에서 미용사의 도움을 받고 팔이 부러지면 의사의 도움을 받듯, 그 과정에 가족 친구 이웃과 함께 하듯, 전문가와 둘레 사람에게 묻고 의논하고 부탁해야 합니다. 감정은 대상이 있고 관계에서 비롯합니다. 그 관계를 살피고 살려야 합니다.
...(중략)
매일 입주자에게 칭찬 감사하면 어떨까요? 그렇게 칭찬 감사한 것을 짧게라도 매일 기록하면 어떨까요? 1년 뒤 입주자가 어떻게 변할지, 직원은 또 어떻게 변해 있을지 궁금합니다. 지푸라기를 잡는 심정으로 제안합니다.
-월평빌라 이야기2 중에서-
책을 읽고 공부한 내용대로 돕기로 했다. 우선 홍*권님께 다가갔다.
“홍*권님! 어제 아픈 거 때문에 병원 다녀오신 이후로 몸은 좀 괜찮으세요?”
“네”
“많이 아프셨죠? 지금은 많이 괜찮아 보이셔서 다행이네요”
“네”
“이렇게 아프면 아프다고 솔직하게 말씀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홍*권님께 솔직하게 표현해 줬음에 감사인사를 했다. 홍*권님은 자신의 봉투에 있던 밤이 썩었기에 물로 헹궈 쓰레기통의 버리며 일상을 평범하게 보내고 있었다.
그리고 홍*권님 관련된 내용으로 둘레사람에게 의논하고 부탁하기 위해 홍*권님이 일주일에 한 번씩 보는 신부님에게 전화를 걸었다.
“신부님 통화 괜찮으세요?”
“네 안그래도 저번 주에 홍*권님이 안 와서 몸이 좀 괜찮은지 물어보려고 전화하려 했었어요. 지금 괜찮은거죠?”
“네 어제 한의원에서 침 맞고 오신 이후로는 괜찮으세요 걱정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네 다행이네요”
“네 전화 드린 이유는 의논하고 부탁드릴 내용이 있어서 전화 드렸어요!”
“네 말씀하세요!”
“홍*권님이 평소에 필요한 물건이 있거나 외출하고 싶으실 때 그렇게 하지 못하게 되는 상황이 되면 일상을 멈추는 상황이 자주 있었어요... 그래서 저번 주에 함께 외출해서 물건도 사고 이야기도 많이 나누면서 앞으로는 서운하거나 속상해도 이해하고 기다려주기로 약속을 했거든요 근데 이제 저번 주에는 그런 문제가 아닌 몸이 아파서 누워계셨고요... 어쨌든 지금 홍*권님은 지금 약속을 해주신 상황입니다. 제가 신부님께 부탁드리고 싶은 건 홍*권님이 교회에 가시면 이 상황에 대해서 격려해 주시고 응원해 주시는 말 한 마디씩만 매 주 해주시면 어떨까 해서요! 신부님의 응원과 격려가 있으면 홍*권님이 조금 더 이해하기 위해 노력하고, 일상 속에 힘이 되시지 않을까 싶어서 연락 드렸습니다!”
“네 물론이죠 제가 매 주 교회 오시면 잘 응원하고 격려해 볼게요 뭐 요즘은 필요한 건 없으시데요? 어쨌든 제가 말씀하신 대로 응원하고 격려해 보겠습니다. 전화 주셔서 감사해요”
“아닙니다 제가 더 감사합니다!”
신부님께서 이 상황에 대해 함께 도와주시기로 했다. 큰 힘이 되었고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공부한 내용처럼 홍*권님을 돕기 위해 앞으로 더 노력해 볼 예정이다.
오래 걸릴 순 있어도, 책에 나온 이야기처럼 1년 뒤 모습이 어떨지 직원도 궁금하다.
2023년 5월 3일 수요일 최승호
사회사업답게 제대로 돕기 위해 공부는 당연한 일이죠. 그리고 입주자의 둘레사람에게 묻고 의논하는 것도 당연하고요. 거기에 더해 입주자의 1년 뒤를 기대하며 칭찬, 감사하며 돕겠다는 당연한 일까지. 당연함이 모여 이룬 1년 뒤 홍*권님과 전담직원의 모습을 기대하며 응원합니다. - 다온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