택함받은 나사로반열 같은 자들에게 고함
세상엔 여러가지 정신집단의 종교와 교파와 학문과 사상들이 많지만,
기독계열의 교파와 그 신도수들이 아마도 최다수일 것이며, 인류역사 이래
그 파워 또한 막강하기로 추종을 불허할 것이다.
그래서일까? 창세기 에덴동산에서 하나님은 자기백성에게
"동산각종나무열매는 임으로 먹되, 동산중앙의 선악을 알게하는 나무열매는
먹지말라" 고 엄히 경계하셨다. 여기서 전자의 나무열매와 후자의 나무열매는
언급하지 않기로 한다. 다만 동산주변이 있는가 하면 동산중앙이 있다는 말을
하고 싶은 것이다. 다시 말해
에덴동산은 우리가 살고 있는 현세상이고, 그 에덴동산의 중앙에 있는 자들은
성경을 경전으로 삼고 있는 기독계열 백성이라면, 동산주변에 있는 자들은
그 외 타종교인들과 학문과 사상들이 있는 정신집단이라고 말하고 싶은 것이다.
왜냐면 기독계열 백성이야말로 그 전신인 구약이라고 하는 오랜 전통과 함께
그 막강한 힘으로,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인류역사를 주도해 왔기 때문이다.
그런 관점에서 "성경" 이 우리인간의 주요 화두가 되고 있음에 틀림없다.
성경은 기독교인 뿐만 아니라 궁극적으로 전 인류를 구원하겠다는 예언서이다.
그런데 기독계열 신자들은 성경을 어떻게 보는가?
아주 탐욕과 편견과 아전인수식 편협함으로 구원(영생)을 주문하고 있다.
"예수천당-불신지옥" 의 외침이 기성교단의 단골메뉴임을 볼 때
구원이 그렇게 쉬운 문제인가? 그리고 지옥 가기도 그렇게 쉬운 문제인가?
즉 성경에 대해서 아무 지식도 없으면서
무조건 예수만 믿는다고 해서 천당가고 예수 안믿는다고 해서 지옥간단 말인가?
믿는자는 선이라서 무조건 천당가고 안믿는자는 악이라서 지옥으로 보내다니
그게 바로 하나님이 금하신 동산중앙의 "선악과" 라고 하는 옳지 못한
“선악분별심” 이었으므로 그럴 리는 절대로 없다. 천부당 만부당하다.
무작하게 “예수천당-불신지옥” 을 외치는 기성교단은
구약의 어린양의 실상으로 오신 초림주가 창립한 하나님의 처음 언약백성이다.
초림주의 처음 언약백성은 하나님의 본 자손이요, 본 자손에게는 구원이 없다고
분명히 했다.
죄란 하나님을 모르는 인간의 무지를 말함이요, 그 무지의 죄를 사해줄
능력은 예수님이 흘려주신 육체의 혈액으로는 절대 불가하기 때문이다.
육체의 혈액은 하나님을 모르는 무지의 죄를 털끝만치도 씻어낼 능력이 없는
의문의 피이며 수수께끼의 피이며 비유의 피이며 종의 피이다.
초림예수님은 남종의 값 은 삼십세겔에 팔려서 죽어주신 종의 피이므로
절대로 구원이 없다. 그런데 기독인들은 예수님이 흘려주신 육체의 혈액으로
이미 죄사함을 다 받았고 구원을 다 받았다고 잘못 믿고 있다.
그 같은 잘못된 신앙과 가르침은 바울을 비롯한 사도들과 예수님의
제자들로부터 시작되어 오늘날까지 이르렀다.
하긴 그 같은 오류의 희망찬 신앙이 있었기 때문에 이천년이 흐르는 동안
천국예언의 복음이 땅 끝까지 전파되어 사람들의 손에 손에 성경이라는
거대담론의 구원의 책이
들려져 있게 된 “하나님의 모략” 이 숨겨져 있었던 것이기도 하다.
사람들의 손에 성경이 들려져 있으므로, 이제야 그 성경을 재림주를 통해
해독해 주시게 됨으로 말미암아
그게 곧 하나님이 마귀를 잡고 의로운 자들을 모아 들이기 위한
모략이었던 줄을 누가 알았으랴만…
그런데 정작 내 심중에서 진정으로 하고 싶은 말은 이제부터다.
왜 사람들은 초림예수님의 육체의 혈액이 구원의 참 조건이 될 수 없고
하나님이 마귀를 잡기 위한 모략임을 간파하지 못하는가 이다.
기성교단은 저 이천년 전부터 유구하게 그 전통적 신앙을 전수받은
교단이므로 그들의 무지를 관대하게 간과해줄 수 있다고 치자.
하지만 세월은 흘러 지금은 21세기 벽두,
다니엘12:4에서 예언했듯이 사람의 걸음이 빨라지고 지식이 많은 때로써
더 이상 성경이 비유로만 봉해져 있지 않고, 이제 그 봉함이 떼어질
때에 직면했음을 잘 알려주고 있다.
그리하여 기성교단을 뛰쳐나와 성경을 새롭게 풀어보겠다는 수많은 나사로
반열 같은 의지자들이 왜 아직도 기성교단의 교리의 골간을 전혀 벗어나 있지
못하고 있는가 이다. 지금 자칭 메시야들을 성토하는 게 아니다.
그들은 성경논리에 따르면 적그리스도이기 때문에 여기서 논외로 한다.
지금 지적하는 것은 “내가 그로다” 라고 말하지 아니하고(자칭 메시야 아님)
오직 진리의 새 말씀을 찾아나선 “나사로반열 같은 자들” 이 수없이 많이
있는데, 따라서 나는 그들에게 경의를 표하며 고마워하며 희망을 걸고 있으며
가슴 설레임까지 있음에 틀림없다. 그럼에도 나는 그들을 지적하지 아니할 수
없다. 왜인가?
너무나 반가워서 혹여나 하며 그들의 사이트를 찾아 다니며 글들을 읽어보면
어쩌면 그리도 한결같이 옛적 기성교단의 성경관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는지
놀라지 않을 수 없다. 전혀 새 진리의 말씀이 아니기 때문이다.
기성교단의 말을 그대로 흉내내고 있다. 또 다른 앵무새집단이 양산되어
널려 있는 꼴이 되고 있으니 어찌 그들을 지적하지 아니할 수 있겠는가.
옛적부터 선악과에 취해서 엉뚱한 말을 하고 있는 복음서신들의 성경구절은
왜 그리도 빼곡히 인용하고 있는지, 집단세뇌와 집단최면에 걸려 있다.
성경이란 하나님이 간교한 마귀를 잡고 정직한 자기백성을 찾아내기 위해
쳐놓은 올가미인데 거기에 모두 걸려 있다. 제발 그 올가미에서 빠져나오길
바란다. 어찌해야 빠져나올 수 있단 말인가?
제발 옛것과 타협하지 말라. 구노래를 부르지 말고 새 노래를 불러라.
나사로반열 같은 그들조차 너나 없이 구약성경은 처음 것이고, 예수님이 오신
신약은 신령한 둘째 것이며, 새양식이며, 새노래이며, 참 구원이며, 생명이며
새말씀이며, 성령으로 옷입혀 주신 거듭남이며, 이 땅에서 영원한 복락을
누릴 수 있는 유일한 생명길이라고 외치는 나팔수들이 되어 있음을 보고 있다.
그러니까 기성교단은 죽어서 저 하늘 천당에 간다는 믿음 대신에, 그들은
이땅에서 이루어지는 지상천국으로 바꾼 사고의 전환 하나가 있을 뿐이다.
오늘날 분명히 새 이름으로 오실 재림주를 인정하지 아니하고 그저
신약이라고 하는 초림예수님 그 한분에게만 막연히 모든 구원의 비젼을
두고 있는 나팔수들이 바로 오늘의 나사로반열 같은 자들이었단 말인가.
이제 그 썩은 나팔 그만 불고 반드시 “진정한 새 노래” 를 부르기 바란다.
초림 예수님의 말씀은 비유이기 때문에, 결코 새노래(새말씀)가 될수 없다.
하나님이 우리를 시험하셨던 흘러간 “구노래” 였을 뿐이다.
오늘의 진정한 구원의 말씀은 재림 예수님만이 창세부터 봉한 성경의
일곱인을 떼실 분이므로 “새노래” 가 된다.
초림 예수님과 재림 예수님의 차이점을 확실히 깨달아야만 하는데
도무지 분간을 못하고 있다. 구약성경에 기록된 예수님에 대한 수많은
예언도 모두 초림 예수님께만 구원의 포커스를 맞추어놓고 있다.
그래서 일까? 이사야 53장에 기록된 새 이름의 그분을 사람들이 모두
멸시하는 중에 심지어 “우리도 그를 귀히 여기지 아니했다” 라는
기록이 있는데, 그 예언성취가 바로 그런가 보다.
이사야에 기록된 “우리도 그를 귀히 여기지 아니했다” 했을 때의
“우리도” 는 지금 지적하고 있는 나사로반열 같은 존재들을 뜻하기 때문이다.
나사로반열 같은 사랑스런 님들이여!
구약은 처음 것이 절대로 아니다. 물론 구원의 둘째 것은 더더욱 아니다.
다시 말해 구약은 율법(처음것)도 아니고 구원(둘째것)도 아니다.
구약은 아무 것도 아니다! 구약은 아무것도 아니라고 하니 기가 막히겠지만
그대들에겐 일단! 그렇게 말하지 아니할 수 없다. 오죽 답답하면 이러랴.
구약의 진실은 모형의 율법이고 모형의 구원이 되는
실상에 대한 그림자일 뿐이다.
그리고 신약의 초림 예수님은 구원(둘째 것)이 절대로 아니다.
거듭남도 아니고 새노래도 아니고 생명길이 절대로 아니다.
초림 예수님이 생명길이 아니라고 하니 기가 막히겠지만 그대들에겐 일단!
그렇게 말하지 아니할 수 없다. 오죽 답답하면 이러랴.
이렇게 되면 성경 구약과 신약은 각각 무엇이란 말인가?
하나님은 인간을 구원하시기 위해 반드시 “율법(처음것)” 을 먼저 주신다.
그 이유는 간단히 말해 마귀를 잡고 정직한 자기백성을 찾아내기 위함이다.
처음 것 “율법” 을 먼저 주신 후에 나중 것 “구원” 을 주신다.
따라서 하나님은 늘상 “알파(율법)와 오메가(구원)” 라고 하셨던 것이다.
그렇다면 알파는 누구이고 오메가는 누구인가?
물론 알파와 오메가가 모두 한분 하나님이시지만
알파 하나님은 초림 예수님으로 처음 오셨고, 오메가 하나님은
재림 예수님(새이름)으로. 두번째 오신다.
따라서 처음 것은 초림 예수님이고, 둘째 것은 재림예수님이 된다.
그러므로 구약은 알파도 아니고 오메가는 더더욱 아닌 것이다.
구약은 하나님의 알파와 오메가 중에 그 어떤 것도 아니다.
즉 아무것도 아니다. 하지만 구약이야말로 아주 중요하다.
왜 중요한가? 구약은 하나님의 알파와 오메가에 대한 예언이
낱낱이 기록되었다는 점에서 아주 중요하다.
만일 예언 없이 알파와 오메가 되신 하나님이 인간으로 오셨다면
그 누구도 그 일이 하나님이 하신 일이라고 인정하지 않을 터이므로
하나님은 최초로 예언제단인 구약제단을 세우신 것이다.
이것이 구약성경의 진면목이다. 즉 구약성경은 하나님의 실상에 대한
모형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모형은 구약이요, 실상은 초, 재림주가 되신다.
그러한 구약성경의 모형(예언)이 그대로 실상으로 드러난 것이
이천년전 초림예수님의 강림이고(율법, 처음것, 알파), 다시 오늘날
새 이름으로 오시는 재림예수님의 강림이다(구원, 둘째것, 오메가).
그러므로 처음 것은 초림 예수님이요, 둘째 것인 새노래는 재림예수님이다
우리는 지금 처음 것에서 둘째 것으로 도망나와야 하는
실상의 유월절을 맞이하고 있는 절체절명의 시기에 살고 있다.
심령이 가난한 나사로반열이여! 옛것과 적당히 타협하지 마시라.
오히려 자기를 죽여서 역천(逆天)의 길을 가야한다.
자기를 죽여서 역천의 길을 가라는 것은, 초림 예수님이 곧장
구원이라는 믿음을 버리라는 뜻이다. 구원은 오늘의 재림 예수님께 있기
때문이다. 초림에서 재림예수님께 넘어오는 게 곧 유월절밤의 의미이다.
부디 피나는 열성과 깊은 영성으로 성경의 골간을 잘 깨닫고
현재 우리에게 닥친 “실상의 유월절 밤” 을 잘 지켜주시기 바란다.
원문카페:https://cafe.daum.net/kkysn2
첫댓글 💖좋은 사람하고 함께 있으면 힘들고 어려운 길이라도
거뜬히 잘 견딜수 있는 힘은 마음이 즐겁기 때문입니다.
행복은 누리는 사람의 몫으로 모든 것은 마음속에 있습니다.
언제나 즐거우면서 긍정적인 마음으로 보내시기 위해서는
건강 하고 행복하고 즐거운 나 날 이어가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