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취인 불명> 이라는 영화의 관심보단,
김기덕이란 감독의 <섬> 이후의 영화라는 점이 나에겐
더 끌리던 이유였던 탓에,
영화를 보고 나오면서 어떤 허탈감이 압도 했다는것이
솔직한 내 영화의 평이다.
종일,
미학이란 무엇인지 그에 부연되는 비평이란 무엇인지에
대해 고민스러웠다.
내용과 형식,
어떻게 보면 어느것도 그리 싸잡아 비난을 받을 만큼 모자란 것도 아니였고,
그렇다고 작가의 의식이 작품을 따라가지 못한것도 아니였건만,
김기덕??? 김기덕?????
이런 의문부호를 자꾸 찍게 하는 이유는 뭘까..??
<수취인 불명> 에서 개별적인 어느 한 요소나, 한 관점을 문제로 삼자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어떠한 내용이 나름의 미학적인 작품성을 획득하기 위해서는 그에 가장 부응하는 형식이란 것이 있어야 한다.
내용을 담는 그릇말이다.
<수취인 불명>과 같이 6.25 전쟁이후 줄 곧 우리의 정신적 공백을 메꿀수 없었던 '주한미군'이란 화두는 된장찌게처럼 뚝빼기에 담을 내용이라는 보편적 정서를 뛰어넘어 마치 처음 구입한 유리 냄비를 시험하기 위해 찌게를 냄비에 옮겨 담고 한참이나 부글부글 끓여대는 것 처럼, 김기덕이란 품질보증서가 있는것관 상관없이 심리적으론 위태로워 보인다. 뚝배기에서 무슨 맛이 우러나는 것은 아니건만, 그저 심정적인 이유 일수도 있고, 시각적인 것일 수도 있고, 전통이란 공통화된 오래된 정서일 수도 있고... 어떤 이유에서건 이러한 형식과 내용의 조화를 볼때 우린 '뚝빼기맛'이라는 보이지 않는 맛까지 음미하게 된다.
<수취인불명> 에서 느꼈던 그 불안감을 나는 나름데로 이런 내용과 형식의 부조화에서 찾았다.
김기덕 그는 그만이 가지고 있는 형식미를 왜 포기했을까?
왜 그 많은 내용의 은유를 포화상태가 될 때까지 투입했을까?
김기덕이 <섬> 에서 보여준 엽기코드를 이용한 인간내면에 응혈진 본능적 감각의 투사는 말그대로 '충격'이였다.
지금은 쉽게 김기덕이란 감독과 함께 떠올려지는 '엽기'라는 단어가 영화에서 이렇게 적절하게 사용될 수 있다는 것!
'엽기'자체가 김기덕 영화의 필요충분조건이 될 수는 없으나 그것을통하지 않고서는 전달할 수 없는 이미지가 분명 존재하는 것이다.
다시말해 이미지로 보여주어야만 더욱 효과적인 구조를 연출할 수 있는 주제가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사실을 인정하고 본다면, 김기덕 감독이 앞으로 걸어야 할 향로의 선택이 가장 시급하고, 그가 <섬>에서 이룬 발꾼의 기질을 서사 양식으로 극복할 것이 아니라, 점령한 위치에서 더욱 여실히 파헤치길 바란다.
우리는 형식보다는 내용을 우위에 두려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헨젤과 그레텔의 과자로 만든 집처럼 형식이 곧 내용이 되는 경우도 있다. 김기덕이 추구하는 이미지의 세계와 엽기가 만나는 곳이 그런 곳이 아닐런지....김기덕 감독이 부담감을 벗고, 영화 <섬> 에서 보여줬던 파랗고 진지한 섬뜩함을 다시 보여주길 바란다.
-----------------------------가끔 진지한 행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