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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컵 축구예선이 만든 전쟁 (엘살바도르와 온두라스의 전쟁)
중남미의 엘살바도르와 온두라스 두 나라는 월드컵 예선을 치루면서 생긴 적대감과 증오심이 급기야 총을 쏘고 폭격을 주고받는 진짜 전쟁이 되고 말았다. 이 전쟁을 흔히 ‘축구전쟁’이라고 한다. 고만고만한 나라들이 몰려 있는 중남미는 역사, 인종, 언어, 종교, 문화적으로 공통점이 많음에도 불구하고 사이가 영 좋지않아 툭하면 대립하고 충돌했다. 1969년 엘살바도르와 온두라스 사이에 벌어진 전쟁의 직접적인 도화선이 어처구니 없게 축구였다니...... 전쟁의 서막은 온두라스와 엘살바도르의 멕시코 월드컵 지역예선 1차전이었다. 1차전은 온두라스의 수도 테구시갈파에서 열렸는데 경기 전날 밤 온두라스의 축구팬들이 엘살바도르 선수들이 묵고 있는 호텔 앞에서 밤새도록 소란을 피워 잠을 못 자게 만들었다. 잠을 설쳐 컨디션이 안 좋던 엘살바도르 대표팀은 온두라스팀에게 1대 0으로 패했다. 이 결과에 엘살바도르 한 소녀가 패배에 격분한 나머지 권총으로 자기 머리에 쏴 자살하고 말았다. 이 소녀의 장례식에는 엘살바도르 대통령과 축구대표팀이 대거 참석하여 국가적인 애도 분위기가 조성되면서 온두라스에 대한 적개심과 분노가 극에 달했다. 가뜩이나 두 나라는 이 전부터 국경문제, 이민자 문제 등으로 감정이 안 좋은 상태에서 축구경기가 휘발유에 불을 붙이는 역할을 한 것이다. 사실 두 나라는 전쟁이 발발할 수밖에 없는 내부 요인이 이미 쌓일 대로 쌓여 있는 상태였다. 비록 전쟁은 축구에서 시작되었지만 두 나라 모두 독립 후 정변이 반복되면서 정치적, 경제적으로 매우 불안한 나라들이었다. 1960년대에 들어 서서 엘살바도르와 온두라스의 지도자들은 내부의 불만을 다른 곳으로 돌리려고 돌파구를 찾던 시기였다. 더구나 1900년대 초부터 30여만 명의 엘살바도르 인들이 온두라스로 꾸준히 이주를 했다. 그런데 엘살바도르인들은 온두라스 땅에 정착하면서 경제권을 급속히 장악하고 원주민인 온두라스인들을 무시하고 배타적으로 대하면서 갈등을 키워 왔다. 이런 환경에서 1969년 온두라스 정부는 농지개혁을 실시했고 눈엣가시 같던 엘살바도르 이주민 수 만 명을 엘살바도르 땅으로 추방해 버렸다. 이처럼 앙숙관계 상태에서 1969년 제9회 멕시코 월드컵 지역예선에서 두 나라가 맞붙게 되었다. 홈앤드 어웨이 방식으로 치러지는 예선이 1969년6월8일 온두라스에서 먼저 열렸는데 일방적 응원으로 홈팀 온두라스가 1대0으로 승리했고 이때부터 전운이 감돌기 시작한 것이다. 그로부터 1주일 뒤 이번에는 엘살바도르에서 2차전이 벌어졌다. 홈팀 엘살바도르 응원단과 대규모로 국경을 넘어온 온두라스 응원단이 운집한 가운데 경기가 시작되었다. 이날 경기는 엘살바도르가 3대0으로 승리하면서 승패는 원점이 되었다. 이날 경기를 중계하던 온두라스 아나운서는 적개심과 분노를 참지 못하고 흥분된 목소리로 “엘살바도르에게 죽음을!” “엘살바도르에게 신의 저주를!” 등 악담을 퍼부었다고 한다.
이처럼 증오와 적대감이 난무한 가운데 경기가 끝나기 무섭게 흥분한 엘살바도르와 온두라스 응원단간에 집단 난투극이 벌어졌다. 국경을 넘어 간 온두라스의 응원단이 엘살바도르 응원단한테 집단 폭행을 당하고 있다는 소식이 곧바로 전해지자 분노한 온두라스인들은 자국에 있는 엘살바도르 이주민들을 무차별 폭행하고 방화, 약탈 등으로 수십 명을 살해하는 등 두 나라 사이의 감정은 돌이킬 수 없는 최악으로 치달았다. 결국 1969년 6월23일 두 나라는 단교를 선언했지만 월드컵 예선전은 계속되었다. 지금은 득점을 따져 승자가 결정되지만 당시는 1승이라도 많은 팀이 승자가 된다. 골치 아픈 FIFA는 제3국인 멕시코에서 경기를 속개하기로 결정하고 6월27일 멕시코시티에서 최종전이 열렸다. 이날 경기는 마치 격투기처럼 거친 태클로 피를 흘리고 심판은 경기 진행보다 선수들의 싸움을 말리는데 더 신경을 써야만 했다. 결국 연장까지 가는 접전 끝에 3대2로 엘살바도르가 승리를 거두었다. 온두라스 국민은 경기에 패한 직후 또다시 자국에 거주하고 있는 엘살바도르인들에 대한 테러가 무차별 자행되었고 온두라스 정부는 이를 못 본 척했다. 드디어 분노가 폭발한 엘살바도르는 7월 13일 새벽 선전포고 후 즉각 총공격을 시작해 온두라스의 요충지인 엘포이와 아마킬로를 함락시키고 공군은 여러 도시를 폭격했다. 감수할 수밖에 없었다. 7월15일 미국과 미주기구(OAS)의 긴급하게 중재에 나섰으나 엘살바도르는 온두라스에 희생된 자국민들에 대한 보상과 온두라스에 남아 있는 엘살바도르 인들의 안전보장을 요구하며 거부하다가 결국 7월18일 교전은 멈추고 엘살바도르 군이 철수를 시작하면서 100시간 전쟁은 끝이 났다. 이 전쟁의 결과로 2,000명이 넘는 민간인이 희생되었고 수십 만 명의 난민이 발생하였다. 특히 선제 공격을 감행한 엘살바도르는 온두라스로 이주했던 자국민이 추방 당함으로서 감당할 수 없을 만큼 많은 역이주민을 받아들여야 했고 온두라스라는 거대 시장을 잃어버리면서 경제적으로 막대한 타격을 입게 된다. 이 두 국가 간의 앙금은 그 후로도 계속되다가 1980년10월 평화협정을 체결하면서 간신히 평화를 되찾게 되었다. 사실 월드컵 때문에 벌어진 전쟁이라고 해서 '축구전쟁'이라고 하지만 어처구니 없게도 월드컵이 전쟁의 단초가 돼 버린 것이다. -인터넷에서 발췌 정리- 평화의 나팔소리-빌리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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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음ㅡㅡㅡㅡㅡㅡ
신음 소리 같이 들립니다.
월드컵을 생각없이 즐겼는데 이런 무서운일도 있었다니 증말 어처구니없네요
중남미 쪽 사람들이 대부분 다혈질이라 쉽게 화를 내고 쉽게 흥분하는 등
감정 기복이 심하다고 하네요.
다혈질의 특징은 화가 나거나 흥분되면 물불 안가리는 성격이라 반드시 사고를 친다고 합니다.
금년 월드컵에서 브라질팀이 졌다고 브라질에서는 폭동을 일어 날 조짐이 보인다고 하지 않습니까.
또 언젠가는 자기나라 선수가 실축하는 바람에 자국팀이 졌다고 총으로 선수를 살해하기도 하는 나라들입니다.
사실 스포츠는 스포츠로 끝나야 하는데,,,,,
독일에서 살면서 가끔씩 축구를 합니다.
경기할땐 으르렁거리며 욕도하고
신경질도 부리지만 일단 경기를 끝내고나면
서로 악수하고 화해하며 맥주 마시며 웃음으로
모든걸 잊어버리고 다음엔 더 잘하자고 맥주병 부딪치며
헤어질때도 악수하며 다음 축구경기때 서로 잘하자고 헤어 집니다.
전쟁은 싸우는 군인도 피해지만 많은 민간인들이 희생 됩니다.
오랫만에 댓글을 올려 주셨군요.
사실 독일만 해도 선진국이 아닙니까.
또 스포츠의 기본 취지도 친선과 우의의 다짐이지만 승패에 너무 집착하다보면
신사도는 사라지고 증오와 분노만 남게되지요.
이것이 바로 사고로 연결된다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