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소현의 맛있는 클래식] 꼭 나를 기억해주오, 최고의 보양식 '삼계탕'과 어울리는 클래식 음악은?
이열치열 (以熱治熱), 더위에는 뜨거운 음식으로 이겨낸다는 뜻의 사자성어죠. 어느덧 초복, 중복, 그리고 말복을 앞두고 너무나 덥고 습한 올 여름인데요. 긴 장마와 뜨거운 햇살이 번갈아가며 우리를 괴롭혀 몸도 마음도 지치는 요즘, 몸보신할 음식으로 가장 잘 어울리는 음식은 무엇일까요? 바로 삼계탕이겠죠!
삼계탕은 조선시대부터 있어온 음식인 '백숙'과 매우 비슷한 음식이죠. 닭의 뱃속에 재료를 넣지않고 여러 재료를 물에 같이 넣어 끓이는 비교적 간단한 음식인 백숙과 달리, 삼계탕은 닭 한 마리의 내장을 꺼낸 후 그 뱃속에 찹쌀, 인삼, 대추, 밤, 마늘 등을 넣어 물을 넣고 팔팔 끓여 요리하는 음식입니다.
원래 '계삼탕'이라 불리던 삼계탕은 일제감정기에 탄생한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광복 이후 삼계탕을 본격적으로 요리하는 식당이 많이 생겨나며 여름을 대표하는 보양 음식으로 자리잡았습니다.
기본적인 닭과 찹쌀, 인삼 등의 재료 외에도 각종 몸에 좋은 한약재들을 넣어 원기 회복에 큰 도움을 주는 음식인 삼계탕은 자극적이지도 않으면서 진한 국물을 자랑하며 한국을 여행하는 외국인들이 '코리안 치킨 수프 (Korean Chicken Soup)'라며 꼭 챙겨 먹으며 긴 여행에 지친 몸을 보신하는 요리입니다.
깊은 국물의 맛과 쫄깃한 닭고기의 식감, 그리고 반찬으로 곁들여지는 깍두기와 같은 김치들과의 조화 덕분에 최소 600Kcal에서 1,000Kcal의 높은 열량에도 불구하고 복날에는 집에서 직접 요리하거나 전문 식당에 줄을 서서 먹는 대표적인 보양식 음식인 삼계탕과 어울리는 클래식 작품은 어떤 곡이 있을까요? 그 진한 국물처럼 깊고 진한 가사가 인상적인 이원주의 한국가곡 '연 (緣)'은 어떨까요?
한양대학교와 동대학원 서양음악 작곡과를 졸업한 작곡가 '이원주'를 성악가들이 애정하는 한국 가곡 작곡가들의 반열에 올린 작품이기도 한 가곡 '연'은 2007년, 제1회 화천비목콩쿠르 창작가곡 부문 1위를 차지한 곡입니다. 같은해 제1회 CBS 창작가곡제 동상을 비롯하여 2008년 CBS창작가곡제 입선, 제1회 세일가곡콩쿨 작곡부문 1위 등을 수상한 작곡가 이원주는 가곡 '연'을 비롯하여 '베틀 노래', '벚꽃나무 아래', '묵향', '영영', '삼아리랑', '이화우', '별빛 다하여'와 같은 가곡들을 꾸준하게 발표하고 있습니다.
가곡 '베틀 노래'와 함께 이원주 작곡가의 대표 가곡 중 한 곡이 된 '연'은 부산대학교 국어국문과를 졸업하고 1998년에 등단한 시인 '김동현'의 시를 가사로 하고 있습니다.
연 (緣)
시리게 푸르른 그대 고운 날개
내 맘 가까이 날아오지 않네.
이슬 된 서러움에 실어 나를 데려가주오.
닿을 듯한 그대의 품으로
여리게 남은 듯 그대 고운 향기
내 맘 가까이 돌아오지 않네.
그대의 내가 멀지 않아
나를 사랑해주오.
기억 속의 나라면
아 영원한 그리움
나 차가운 눈물에 지워도 기다리네
기나긴 내 사랑
미련을 버리고 편히 잠들라
그 무엇도 남지 않을 듯
꼭 나를 기억해주오
숨결까지 눈물까지
내 모든 것 그대에게로
이별 후 떠나간 이를 그리워하는 미련과 자신을 잊지 말아달라는 간절한 바람을 간곡하게 표현한 김동현 시인의 이 시를 가사로 하여 애절한 선율로 진한 여운과 함께 표현한 이원주의 가곡 '연'은 인연이란 뜻의 한자 제목과도 잘 어울리는 매우 한국적인 가곡입니다.
이제는 성악가들뿐만 아니라 수많은 가수들에게도 사랑받는 가곡인 이원주의 '연'을 듣다보면, 각종 귀한 한약대를 정성스레 넣고 고아 완성한 삼계탕을 못내 주지 못하고 떠난 옛 연인을 미련 가득 기다리며 혼자 눈물을 삭히며 식어가는 삼계탕을 바라보고만 있는 화자의 모습이 겹쳐 그려지기도 합니다.
비가 오는 날보다 햇빛 쨍쨍한 날에 맞이하는 이별이 더 괴롭다는 가요의 가사나 '사랑이 어떻게 변하냐'는 영화 <봄날은 간다> 속의 명대사를 끝으로 이별한 주인공이 실연의 아픔을 가득 채운 여름을 보내는 것처럼, 여름에 더 잔인한 슬픔과 힘든 상황을 이겨내기 위해 꼭 필요한 보양식 '삼계탕'과 어울리는 깊은 맛을 지닌 슬프도록 아름다운 클래식 작품이 바로 이원주의 한국가곡 '연'일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