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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에 있는 글들을 정리해 보았습니다.
유익한 정보.
<<록펠러(John D.Rockefeller) >>
뉴욕타임즈가 뽑은 세계의 갑부 16인 중 1위로 세계역사상 최고의 부자인 존 D 록
펠러(1839-1937)는 미국 스탠더드 오일의 창립자로 현재 가치로 따져 1920억 달러
(약 266조원)의 재산을 모았다. 우리 세대 최고의갑부라는 빌 게이츠의 재산이 560
억 달러인 것을 감안하면 록펠러가 쌓았던 부의 규모를 짐작할 수 있다.
록펠러는 경영에서 은퇴한 후 자선사업에 몰두하여 의학연구소와 12개의 종합대
학과12개의 단과대학을 설립했고 4,928개의 교회를 지어 사회에 희사 했다.
UN본부 건립 시는 자신의 토지를 국가에 헌납했고 인류역사상 가장 큰 자선 사업
을 실행 하였으며 소외된 이들과 교육발전을 위해서도 천문학적 금액을 희사 하
는 등 100년이 지난 오늘 날까지 4대에 이르는 활발한 자선 사업을 이어오고 있다
그의 손자 데이빗은 20년 간 뉴욕의 체이스 맨하탄 은행장으로 일했고
손자 넬슨은 미국 공화당 주지사를 거쳐 41대 미국 부통령을 역임했으며
손자 윈스럽은 공화당 아칸소 주지사를 그의 증손자 제이는 웨스트 버지
니아 주지사를 거쳐 같은 주 민주당 상원의원을 또 다른 증손자 윈스럽 폴은
아칸소 부주지사를 역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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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록펠러의 어린 시절과 관련해서 ‘어머니와의 세 가지 약속’이라는
유명한 일화가 있다. 이 일화는 그가 대사업가로 성공한 뒤 발표한 자
서전에서 고백한 것인데, 존은 자신의 성공 비결로 어렸을 때 어머니와
한 세 가지 약속을 평생 동안 지킨 것을 꼽았다.
그 세 가지는 다음과 같다.
1. 십일조 생활을 해야 한다.
2. 교회에 가면 맨 앞자리에 앉아 예배를 드린다.
3.교회 일에 순종하고 목사님의 마음을 아프게 하지 않는다.
그가 자서전을 낸 뒤 어느 신문기자가 물었다.
“회장님께서는 이번에 출간하신 자서전에서 세계 제일의 부자가 된 비결이
어머니가 주신 세 가지 유산 때문이라고 하셨는데, 그것을 말씀해주십시오. “
그 질문에 록펠러는 이렇게 답했다.
“어린 시절, 나는 어머니와 세 가지 약속을 했습니다. 나는 그것을 무슨 일이
있어도 반드시 지켰고, 지금 와서 생각하면 그것이 어머니에게서 받은 유산이
었습니다. 신앙이라는 이름의 유산이었지요. 그 신앙적 유산을 받은 것이 내가
세계 제일의 부자가 된 비결이라고 생각합니다. “
그러자 기자가 다시 물었다.
“세 가지 신앙 유산이란 구체적으로 무엇입니까? ”
“어머니에게서 받은 첫 번째 유산은 십일조 생활을 해야한다는 것입니다.
어머니는 어려서부터 나를 교회에 데리고 다녔습니다. 나는 용돈을 20센트
씩 받았는데, 그때마다 어머니는 십일조 헌금을 해야 한다면서 십일조 습관
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나는 사업에 대한 모든 비전을 기도 중에 얻었고 십일조로 드렸습니다.
내가 만일 그때 어머니에게서 그런 교육을 받지 않았다면 나중에 백만 불
(14억원)을 벌었을 때에 십만 불(1억 4천만원)이라는 십일조를 드리지 못
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나는 어머니에게 철저한 십일조 교육을 받았기 때문에 나중에
세계 최고의 부자가 되어 엄청난 돈을 벌 때도 변함없이 십일조를 정확하
게 드릴 수 있었습니다. “
“두 번째 유산은 무엇입니까? ”
“부자로 성공하게 된 두 번째 신앙 유산은 교회에 가면 맨 앞자리에 앉아
예배를 드리는 것입니다. 어머니는 언제나 어린 나를 데리고 40분쯤 일찍
교회에 나와서 맨 앞자리에 앉아 예배를 드렸습니다.
어머니는 그래야만 목사님의 설교 말씀에 더 많은 은혜를 받을 수 있다고 강
조하셨습니다.어머니는 맨 앞자리를 가장 큰 축복의 자리로 생각하신 것입니다. “
“세 번째 유산은 무엇입니까? ”
“부자로 성공하게 된 세 번째 신앙 유산은 교회일에 순종하고 목사님의 마음을 아
프게 하지 말라는 어머니의 가르침이었습니다. 그래서 나는 조금 마음에 안 드는
일이 있어도 늘 목사님의 말씀을 따랐고, 무슨 일이든 교회에서 정한 것에 대해서
는 불평하지 않고 항상 순종한다는 원칙을 지켜왔습니다. “
록펠러는 엄청난 금액의 헌금을 하고 수천 개의 교회를 지어서 하나님께 바쳤다.
하지만 교회가 이미 결정한 일에 대해서는 늘 순종의 미덕을 보여주었고, 평범하
면서도 순수한 교인의 자세를 견지했다. 그는 그런 자세가 어머니의 기본적인 신
앙 교육으로 인한 것이었음을 깨닫게 되었다고 말했다.
“나는 어머니의 말씀에 따라 하나님께 많은 물질을 드리면서 20년, 30년 후에 그것
이 반드시 어마어마한 결실을 맺는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이런 하나님
의 경제학을 나는 철저히 내 어머니에게서 배웠습니다. “
--------- 이채윤, '십일조의 비밀을 안 최고의 부자 록펠러' 중에서
<< 록펠러의 유대인 어머니의 신앙지침 >>
1. 하나님을 친아버지 이상으로 섬겨라.
아버지가 생계를 위해 필요한 모든 것을
공급하지만 더 중요한 공급자는 바로 하나님이시다.
2. 목사님을 하나님 다음으로 섬겨라.
목사님과 좋은 관계 속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따르는 것이 축복된 길이기 때문이다.
3. 주일예배는 본 교회에서 드려라.
하나님의 자녀로서 교회에 충성해야 하며 가능한
주일 예배 만큼은 본 교회에 참석하여 예배드리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4. 오른쪽 주머니는 항상 십일조 주머니로 하라.
이 말은 십일조는 하나님의 것이므로 먼저 구별한 후
나머지를 가지고 필요하면 사용해야 함을 표현한 말이다.
5. 아무도 원수로 만들지 말라.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가 좋지 않으면 사람들이
거리를 두기 때문에 일마다 장애요소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6. 아침에 목표를 세우고 기도하라.
하루를 시작하기 전 오늘 해야 할 일을 하나님께 맡기 며 하나님이 모든 일에 함께
하여 주실 것을 온전히 믿는 기도가 필요하다.
7. 잠자리에 들기 전 하루를 반성하고 기도하라.
알게 모르게 계속적으로 짓는 죄를
가능한 빨리 회개하여 죄로 인한 어려움과 고통을 피할 수 있어야 한다.
8. 아침에는 꼭 하나님의 말씀을 읽어라.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것을 들으려는 시간이 필요하다.
9. 남을 도울 수 있으면 힘껏 도우라.
그리고 도와준 일에 대해 절대로 나팔을 불면 안된다.
10.예배 시간에 항상 앞에 앉으라.
예배 드리고 말씀 듣는 일에 누구보다도
앞장서서 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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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05년 초 미국 보스턴의 한 교회에서 10만 달러의 기부금을 놓고 한바탕 소란이
벌어졌다. 평소 같으면 기부 사실을 알리고 찬송과 감사 기도가 이어졌을 테지만
이 돈이 존 데이빗슨 록펠러(1839~1937)의 지갑에서 나온 사실이 밝혀졌기 때문
이다. 무자비하게 수많은 사람들을 위협하고 재산을 빼앗아 모은 더러운 돈을 당
장 돌려보내라는 요구가 빗발쳤다."
미국의 대표적인 자선재단인 록펠러재단을 만든 존 데이비슨 록펠러(1839~1937)
는 평가가 극적으로 교차하는 인물이다.
“역사상 가장 잔인하고, 뻔뻔하고, 무자비하고, 탐욕스런 인물”이라는 평가와
“미국 기업인 중 가장 훌륭한 인물” “좋은 일을 한 선행가”라는 평가를 동시에 받
고 있다.
유럽에서 이민 온 전형적인 청교도 가정에서 약장수 아버지와 농부 어머니 사이에
서 태어난 록펠러는 고등학교를 졸업한 뒤 ‘휴이트 앤 터틀’이라는 회사에서 경리
사원으로 일했다. 채무자로부터 악착같이 돈을 받아내는 냉혹한 일처리와 성실
함, 절약과 열성적인 교회 헌금이 젊은 록펠러의 모습이었다.
그는 이리 스트리트 침례교회에서 주일성경 학교 교사 일을 시작했는데, 가장 좋
아하는 성경구절은
"네가 자기 사업에 근실한 사람을 보았느냐? 이러한 사람은 왕 앞에 설 것이요..
(잠22:29) 였다.
록펠러의 인생이 바뀐 계기는 24세 때 8000달러를 투자해 정유회사를 차린 것이었
다. 20세 때 독립해 ‘클라크 앤 록펠러’라는 도매상을 차린 록펠러는 당초 부업 정
도로 정유회사를 시작했지만 유정(油井)개발로 석유산업이 급성장하면서 사업확
장에 나섰다. 하지만 그는 남들처럼 석유탐사에 주력하지 않고 석유 운송과 정유
업에 뛰어들었다.
<<< 록펠러의 사업스타일>>>
----독점, 리베이트
록펠러가 1870년 100만달러의 자본금을 가진 스탠더드 오일(Standard Oil)이라는
회사를 차렸을 때 이미 록펠러는 석유 운송업에 손을 뻗치고 있었다. 록펠러는 원
유 적재에 필요한 유조차량과 컨테이너를 독점한 뒤 안정적인 운송 물량 확보가
절실하던 철도회사에 접근해 ‘리베이트를 보장해 주면 운송 물량을 확보해주겠다’
는 조건으로 계약을 맺었다. 이렇게 리베이트까지 더해 막대한 이윤을 챙겼다.
-----카르텔, 문어발식 사업확장
록펠러는 이후 철도업자들과 카르텔을 맺어 본격적인 ‘경쟁자 죽이기’에 나섰다.
경쟁업자들은 그에게 경영권을 상납하고 주식을 분배받거나 아니면 가만히 앉아
서 고사(枯死)당해야 하는 선택을 강요받았다.
록펠러에게는 ‘문어발’, ‘아나콘다’ 등의 비난이 가해지고 살해 위협까지 잇따랐지
만 스탠더드 오일은 날로 번창하며 독점으로 치달았다
------- 기업 매수, 합병
1871년 12월에서 이듬해 3월까지 치러진 ‘클리블랜드의 대학살’이라고 불리는
기업 매수ㆍ합병 전쟁에서 록펠러는 자신의 근거지인 클리블랜드에서만 24개의
경쟁업체를 인수했다. 스탠더드 오일은 설립 8년 만인 1878년 미국 전체 정유물량
인 360만배럴 중 330만배럴을 차지할 정도가 됐다
하지만 미국 사회의저항을 불러왔고, 법정소송 끝에 해체의 길로 들어섰다. 미국
의회는 1890년 최초의 독점금지법인 셔먼법을 통과시켰고, 거대 독점기업은 34개
의 회사로 나뉘어졌다. 오늘날의 엑손모빌(XOM), 셰브런(Chevron) 등의 석유 대
기업은 당시 스탠더드 오일에서 떨어져 나온 것들이다.
--------- 기업 방해, 경영진 매수
그는 양질의 석유를 생산하지도, 새로운 기술을 창출하지도 않고 그저 독점의 지
위를 누리며 부를 쌓아나갔다. 1879년 타이드워터라는 회사가 석유 생산지대에서
176㎞에 이르는 송유 파이프라인을 건설해 록펠러의 운송수단 독점을 피해가려 했
을 때도 록펠러는 이를 그냥 놔두지 않았다. 그는 파이프라인이 지나는 토지를 사
들여 공사를 방해했고, 노동자들을 협박하거나 건설용 파이프 공급을 차단했다.
타이드워터 경영진을 돈으로 매수하는 일도 서슴지 않았다. 결국 타이드워터가 스
탠더드 오일에 항복하고 자진 매각했고 그 후에야 록펠러는 송유 파이프라인 공사
를 벌였다.
---------- 노조 반대, 탄압, 노동쟁의 유혈진압
록펠러는 직원을 쥐어짜는 것으로도 유명했다.
그는 회사 여기저기를 돌아다니며 직원들에게 절약 방침을 메모로 휘갈겨 건넸다.
그는 또 노조를 죄악시했다.
그는 “상호이익을 위해 부유한 사업가들은 협동해야 하지만 가난한 노동자들과는
협동이란 있을 수 없다”고 믿는 사람이었다.
“노동자들이 왜 노조를 결성해서 자신을 먹여살리는 회사를 무너뜨리려 하는지 도
저히 이해할 수 없다”는 게 그의 말이었다.
록펠러가가 부의 축적 과정에서 씻을 수 없는 오명을 남긴 것은 1914년 발생한 ‘러
드로의 학살’이다. 이 사건은 록펠러가 인수한 콜로라도 석탄·철강에서 벌어진 노
동쟁의로, 진압 과정에서 끔찍한 유혈사태가 벌어졌다.
당시 노동자들은 주법률에 따른 8시간 노동이 전혀 지켜지지 않는 강도높은 노동
과 열악한 노동환경으로 전미국의 탄광노동자 사망률의 2,3배가 넘는 사람들이
죽어나갔다.
일당 1달러68센트의 형편없는 임금을 받았고(캐낸 석탄 양을 재는 저울을 속여 임
금을 적게 지급) 그나마 회사 상점에서만 쓸 수 있는 교환권 형태로 임금을 지급
받았다.
또 높은 집세를 받는 회사 오두막에서 살다가 해고 통고가 오면 사흘 안에 집을 비
워야 했다. 당시 록펠러 회사의 경영진은 매년 2만달러를 쓰며 탐정, 프락치 등을
고용해 노동조합의 결성을 막았다.
결국 전미 광산노동조합의 주도로 광산 인근의 러드로라는 마을에서 대규모 쟁의
가 발생했다. 해고되어 오두막 사택에서 쫓겨난 전체 노동자의 70%와 가족들이 한
겨울 눈밭에 텐트를 치고 저항했다.
노동쟁의가 6개월이 되어갈 무렵인 1914년 3월 10일, 주 방위군의 옷을 입고 기관
총으로 무장한 사측의 구사대(요즘말로 용역업체직원)는 텐트를 불태워 쑥대밭
으로 만들었고,
특히 텐트 밑 토굴에 숨어들어갔던 여자 2명과 열살도 안된 아이 11명의 질식해 숨
진 시체가 발견되면서 노동자의 큰 분노와 저항이 터져 나왔고, 사태진압을 위해
연방군까지 동원됐다.
당시 콜로라도 석탄·철강은 록펠러 2세가 경영을 책임졌지만, 록펠러 1세 역시
“노동자에게 시혜를 베푸는 경영자들이 노동조합에 대해서는 어떤 강력한 수단을
쓰는 것도 정당하다”는 입장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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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여 년 전 미국에는 아이더 타벨이라는 여기자가 있었다. 타벨 기자는 1902년 11
월부터 1904년 10월까지 <매클러> 라는 잡지에 19차례에 걸려 ‘효율성과 독점적
파워 면에서 인간이 만든 어떤 장치보다 완벽한 기계인 스탠더드 오일’의 실상을
폭로함으로써 미국 사회에 엄청난 충격파를 던졌다.
타벨은 기사에서 “스탠더드 오일이 설립된 이후 공정하게 거래하고 경쟁한 적이
있었는지 의심스럽다”고 질타했다.
그의 폭로로 미국인들은 석유회사 스탠더드 오일이 탄생해 독점 자본의 힘을 확장
해가는 과정에서 록펠러와 그의 사단이 벌인 정·관계 뇌물 살포, 경쟁 기업을 상대
로 한 치졸한 스파이 행위와 폭력을 동원한 무자비한 인수·합병, 총수의 특권·사치
행태를 똑똑히 알게 됐다.
타벨의 아버지는 딸이 스탠더드 오일의 비리를 캐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선 “하지
마라! 그들이 너마저 부숴버릴 것이다”라며 극구 말렸다. 군소 석유 채굴업자였던
그의 아버지 프랭클린 타벨은 스탠더드 오일의 인수·합병 전략에 휘말리면서 처참
하게 무너져내려 비참한 황혼기를 보내고 있던 터였다.
타벨은 아버지의 만류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미국 전역을 돌아다니며 추적하고 탐
사해 언론 역사에서 ‘탐사보도’의 대표적인 작품을 일궈냈다.
타벨의 폭로기사는 그 뒤 <스탠더드 오일의 역사>라는 단행본으로 묶여 베스트셀
러 반열에 올랐고, 타벨은 미국에서 가장 유명한 여성이 됐다. 타벨 이후 수많은
언론인들이 탐사보도를 지향하며 정계와 경제계의 비리를 추적해 폭로하기 시작
했다.
타벨의 시리즈 기사는 미국이 당시까지 40여 년 동안 산업화 길을 걸으면서 깊어
진 빈익빈 부익부, 민주주의 정신과 정면으로 배치되는 특권층의 출현, 매관매직
이 일상화한 정·관계의 부정부패로 홍역을 앓고 있던 순간에 던져진 불쏘시개였
다. 미국인들의 분노는 활활 타올랐다. 이후 10~15년 동안 미국 역사에서 ‘거대 기
업과 총수들의 시련기’가 펼쳐진다.
록펠러는 이를 계기로 삶의 방식을 전환한다. 타벨의 폭로 전에도 적지 않은 돈을
사회에 기부했지만, 그때까지는 다분히 생색내기 성격이 강했다. 폭로 이후 그는
공동체 안에서 살아남기 위해 더 많은 돈을 적극적으로 내놓기 시작했다.
자신의 변화를 알리기 위해 극적인 타이밍을 노려 돈을 쾌척하기도 했다. 대표적
인 사례가 미국에 중앙은행이 없던 1907년 금융공황이 발생하자, 줄줄이 무너지
는 신탁회사와 증권회사를 구제하기 위해 재산 절반을 내놓겠다고 공개적으로 천
명한 일이다. 이는 결국 성사되진 않았어도 록펠러는 당시로선 거금인 1천만달러
를 아무런 조건이 없이 시장 안정화 기금으로 내놓았다
하지만 록펠러 개인의 부는 기업해체에도 불구하고 늘어만 갔다. 록펠러의 스탠더
드 오일 지분은 1896년 4000만달러였지만 회사 해체 뒤에 주가가 더 올라 1913년
에는 10억달러의 재산으로 불어났다. 인플레이션을 감안하면 아직도 ‘사상 최고
의 부자’라는 평가를 받는 천문학적인 규모의 재산이 모인 것이다.
“재산 처분 않으면 돈에 치여 죽을 것”
은퇴 후 록펠러는 10년 동안 재산관리를 맡아온 프레데릭 게이츠 목사의 영향을
받아 본격적인 자선사업의 길로 들어선다. 게이츠 목사는 당시 록펠러에게 이런
편지를 보냈다. “회장님의 재산은 마치 눈덩이가 불어나듯이 엄청난 속도로 불어
나고 있습니다. 돈이 불어나는 속도보다 더 빨리 재산을 처분하지 않으면 회장님
의 손자의 손자의 손자까지 재산에 치여 죽을지도 모릅니다.”
미국 최초의 의학연구소인 록펠러의학연구소 건립, 시카고 대학 지원 등 주목할
만한 자선사업을 벌이던 록펠러는 71세가 된 1913년 ‘세계 인류의 복지 증진’이라
는 거창한 목표를 내걸고 록펠러재단을 설립했다.
록펠러가 ‘1억달러의 기금을 출연해 재단을 설립한다’는 결정은 처음에는 사람들
의 의심을 샀다. “스탠더드 오일의 해산 판결을 의식한 정치적 제스처”라는 시선
이 적지 않았다.
대통령을 지낸 시어도어 루스벨트는 록펠러를 향해 “그 부를 갖고 얼마나 선행을
하든지 간에, 그 부를 쌓으려 저지른 악행을 보상할 수는 없다”고 꼬집었다.
<<< 미국의 악덕 자본가들(Robber Baron) >>>
존 스프렉클 John D. Spreckels (샌디에고 운송)
존 제이콥 아스토르 John Jacob Astor (부동산, 피혁)
앤드류 카네기(철도, 철강)
제이 쿡 Jay Cooke (금융)
다니엘 드류 Daniel Drew (금융)
제임스 뷰캐넌 듀크 James Buchanan Duke (담배)
제임스 피스크 James Fisk (금융)
헨리 플래글러 Henry Flagler (레일로드 오일, 스탠더드 오일)
헨리 포드 (자동차)
헨리 클레이 프릭 Henry Clay Frick (철강)
존 게이츠 John Warne Gates (철강, 정유)
제이 굴드 (금융, 철도)
에드워드 해리먼 Edward Henry Harriman (철도)
콜리스 헌팅턴 (철도)
찰스 크록커 (철도)
리랜드 스탠포드Leland Stanford (철도)
존 록펠러 John D. Rockefeller (스탠더드 오일)
-----위키디피아 , PBS(AmericanExrerience. TheRockefellers ),
<록펠러가의 사람들> 주요일간지 서평 등 종합, 인터넷 블로그 및 카페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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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Mammon을 숭상하는 자들의 또 하나의 작은 神 ...? ...
So, what ...?
Mammon이 뭔가요: ^^;;;
1.<성서> (죄악의 근원으로서의) 부(富), 재물, 금전(←누가 복음(Luke) 16. (M-) 마몬신, 부[탐욕]의 신. (*Yahoo에 있는 정의인데요... 한마디로 物神입니다.)
좋은 정보의 훌륭한 글을 봤습니다. 돈의 위력은 하나님의 능력을 얼마든지 닮아간다는 확실한 증거를 확인하게 됩니다. 아무리 위대하고 큰일을 한다해도 돈으로 하는 일은 결코 하나님의 뜻이 아님을 알수 있다는 명백한 사실을 오늘의 교회지도자들이 인식하게 되기를 바라며 좋은 글에 다시한번 감사를 드립니다. 살롬..
제목만 보고는 깜짝 놀라면서.. 주의군사님이 어찌 이런글을.. 했었는데.. 내용을 보고는.. ㅎㅎㅎㅎ 저 록펠러얘기가 애기들이 잘 읽고 따라할 수 있도록 어린이문체로 다시 나왔다지요? 애들에게까지도 하늘문을 닫는군요..
목적이 '선'하다면 과정도 '선'해야겠지요.
럭펠러십일조얘기 요즘 울교회 성경공부소책자 젤뒷장(적용) 부분에 극찬을 한내용이 있어요.. 항상 마무리는 하나님앞에 돈많이 받쳐서복많이 받자... 이런 록펠러의 사악한 경영실상은 쏙 빼먹은체... 목사님들도 잘모르시나봐여 록펠러 실상을 ..
록펠러 프리메이슨 입니다.
목사님들이 록펠러에 대해 비판하는 이야기를 다 모르는 것은 아닌 것 같습니다. 다만 그런 이야기들이 마귀 세력 또는 불온분자들이 하는 얘기라고 치부할 뿐이죠. 록펠러가 로스차일드가 가족이고 프리메이슨이라는 것을 세상이 다 아는데, 눈멀고 병든 교회는 그를 선전하니 화를 자초하는군요
복받기 위해 십일조를 하라고 하는 목사가 주로 예로드는 사람이 록펠러지요. 그래서 록펠러처럼 부자로 살기위해 우리 기독교인들은 매달 혹은 매주 열심히 십일조 봉투에다가 수입의 10%를 넣고 반드시 원하는 것을 얻게 될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그들이 해야할것은 바로 보이는 십일조가 아니라 매순간을 살아가면서 이웃에게 하나님께서 허락하신것을 나누는 것일텐데요. 록펠러가 수많은 선행에도 불구하고 그의 후손이 그 록펠러라는 이름을 숨기려하는 이유는 바로 삶에서 하나님의 뜻을 보여주지 못한 선조에 대한 부끄러움이 아닐런지요. 이젠 주위를 둘러볼때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복의 통로가 되어야합니다.
어떤 福이어야 할까요...? 救援/永生/하나님의 자녀됨의 福입니다... 구제/밥퍼주기 등은... 오히려 세상사랑 아닐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