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네시아, U23 아시안컵 '도하의 기적'
인니, 68년 만의 올림픽행 청신호
혼혈 귀화 선수들 대거 발표 발탁
맵고 짠 식단 바꾸고 체력 담금질
무슬림 정시 기도, 1%도 터치 한 해
물 앉아 마시지 않기 설득은 애먹어
신 '기쁘지만 마음 한편으론 힘들다'
인니'2027년까지 감독직 계약 연장'
'매우 기쁘고 행복하다.
그렇지만 마음 한편으론 너무 처참하고 힘들다'
한국을 겪고 2024 아시아축구연맹(AFC) U23 아시안컵 4강에 오른 신태영 감독이 복잡한 심경을 전했다.
신 감독이 이끄는 인도네시아는 26일 카타르 도하에서 열린 한국과의 8강전에서 연장까지 2-2로 비긴 뒤
12번째 키커까지 나선 승부차기에서 11-10을 승리해 4강에 진출했다.
이로써 인도네시아는 1956년 멜버른 올림픽 이후 68년 만의 올림픽본선행 가능성을 높였다.
이번 대회 3위까지는 파리 올림픽에 직행하고 4위는 가나와 플레이 오프를 치른다.
인도네시아는 사우디. 우즈베키스탄전 승자와 준결승을 벌인다.
반면 한국는 한 수 아래로 여겼던 인도네시아에 충격적인 일격을 당하며 10회 연속 올림픽 본선 진출이 좌절됐다.
신감독은 4강에 오른 비결에 대해 '4년 동안 동고동락하면서 선수들을 잘 파악하고 있었기 때문에
동기부여만 해주면 성과를 낼 수 있다고 믿었다'고 말했다.
한편 인도네시아축구협회는 신 감독과의 계약을 2027년까지 연장하겠다고 발표했다.
신 감독은 부임 후 네델란드, 벨기에 등에서 뛰고 있는 혼혈 귀화 선수들을 대거 발탁 대표팀의 체격과 체력을 업그레이드하는 등
인도네시아 축구를 근본부터 바꿨다는 찬사와 지지를 받고 있다.
신 감독과 인도네시아의 인연은 2018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러시아 월드컵에서 한국 대표팀을 맡아 세계 랭킹1위 독일을 2-0으로 꺾어 탈락시키는 데 이변을 연출한 뒤 쉬고 있을 때였다.
인도네시아 축구협회에서 대한축구협회(KFA)로 '신태용 감독 연락처를 알려달라'며 이름을 콕 집어서 문의가 왔다고 한다.
당시 인도네시아는 2022 카타르 월드컵.아시아 2차 예선에서 5전5패를 하던 중있는데
신 감독은 '인구 수나 축구열기가 나쁘지 않은 나라인데 왜 이렇게 FIFA 랭킹과 축구 수준이 처져 있나 한번 도전해 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지난 2월 잠시 귀국한 신 감독을 만났다.
'신태용 매직'이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직접 들을 수 있었다.
현지에 가서 보니까 어떤 문제점과 가능성이 있었는지 물었다.
신 감독은 '선수들이 축구를 20분 정도밖에 하지 않는 스타일과 체력이더라.
체력이 있을 떄는 발 기술이 좋아 보였는데 20~30분 지나고부터는 거의 걸어 다니는 수준이었다.
체계적인 웨이트 트레이닝이나 코어 운동을 해 본 적이 없으니, 체력이 받쳐주지 못했다는 걸 알게 됐다.
튀긴 음식과 맵고 짠 음식을 주로 먹는 식단부터 바꾸고 웨이트 트레이닝과 코어 훈련에 집중했더니
선수들이 조금씩 바뀌어가고, 스스로 개인운동을 하기 시작했다'고 설명했다.
체력을 올린 다음은 마인드 컨트롤, 즉 멘탈에 집중했다고 한다.
'절대 포기하면 안 되고 ,거짓말 해선 안 된다는 걸 강조했다.
거짓말이란, 자기가 실수를 해 놓고도 동료가 패스를 잘못 하는 바람에 그렇게 됐다는 식으로 남 탓을 하는 걸 말한다.
그리고 선수들이 시간 약속을 밥 먹듯이 어겼다.
심지어 대표팀 소집을 하는데 갑자기 '할아버지가 돌아가셨다'면서 안 온 선수도 있다.
그런 친구들은 다 집에 보냈버렸다.
지금은 철저히 규율이 잡혀 있다.
신 감독은 눈에 잘 뛰지는 않지만 중요한 성공 요인으로 현지 문화를 존중하고 여기에 녹아들려는 '존중의 리더십'을 꼽았다.
그는 '무슬림으로서 매일 시간을 정해 놓고 기도하는 것'에 대해 1%도 터치하지 않고 존중해 줬다.
다만 상식적으로 이해할 수 없는 부분에 대해서는 '좀 바꿔라'고 요구했다.
예를 들어 아무리 목이 타고 힘들어도 물을 서서 마시지 않고 앉아서 마시는데, 신에 대한 존경을 담은 행동이라고 한다.
제발 서서 먹으라고 설득했지만, 내가 이해하지 못하는 부분을 일방적으로 차단하는 게 아니라 서로 생각의 틈을 좁혀가는
노력을 했다'고 설명했다.
위르겐 클린스만 감독의 중도 퇴진으로 공석이 된 한국 대표팀 사령탑에 신 감독도 유력 후보로 올라 있었다.
실제로 지난 2월 인터뷰에서 'KFA에서 제안이 온다면 어떻게 할 건가'라고 묻자 그는 '아직 KFA에서 어떤 연락도 오지 않았다.
연락이 온다면 그때부터 고민해 보겠다'고 말했다.
기회가 된다면 한국 대표팀을 다시 맡고 싶다는 의지가 엿보였다.
하지만 인도네시아가 계약 만료(올해 6월)을 앞두고 일찌감치 신 감독을 잡아버리는 바람에 한국행 가능성은 사라졌다.
신 감독은 '지금 나는 인도네시아 대표팀을 맡고 있다.
인도네시아를 위해 최선을 다해야 한다.
밤잠 설치고 응원해 준 인도네시아 팬들에게 감사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나는 한국 축구와 선수들을 진심으로 사랑한다.
지금 비록 힘든 시기를 격고 있지만 팬들이 조금만 인내하고 기다려 준다면
머지 않아 '아시아의 호랑이' 위용을 되찾게 될 거라고 믿는다.
특히 대표팀의 젓줄인 프로축구 K리그에 관심과 응원을 보내 주시길 부탁드린다'고 당부했다. 정명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