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번 신영복 선생의 <사회과학입문> 강의록을 올렸는데 이번학기에는 정치경제학을
강의하신다네요 고맙게도 역시 동일한 분이 신영복선생 홈페이지에 강의록을 올리고 있어
제가 또 퍼왔습니다 아래내용은 3월분 강의입니다 4월 강의는 4월말 쯤 올리도록 하죠
정치경제학 공부하는데 워밍업하는 데는 유용할 듯 하네요 아니면 마음편하게 좋은 강의
듣는다 생각하시고 한번 훑어보시는 것도 괜찮구요
그런데 등록금투쟁이 벌어지고 있는데 카페에는 별다른 소식이 올라오질 않네요 학우들이
본관점거 상황이라든가 법대형들이 어떻게 싸우고 있는 지 궁금해 하지 않을까요...
자 그럼 시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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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이맘때였나요? 제가 건방지게도 소위, <강의실로부터의 사색> 이라는 이름 아래 사회과학부 전공필수 과목인 <사회과학 입문> 을 이 공간에 7번에 걸쳐 올렸지요. 당시 선생님께 일언반구 말씀도 드리지 않고 선생님의 지적재산권을 침해(?)하는 행위를 했던 일이 실은 늘 찜찜했습니다.
하지만 그 일이 제게 가져다 준 것들은 사실 끔찍함보다는 유익함이 더 많았습니다. 한번은 제 동기 중에게서 선생님의 사과입문 수업에서 배운 것들이 제대로 기억나지 않는다는 얘길 들었던 적이 있었지요. 그때, 저는 이 공간에서의 나름대로의 작업들이 선생님의 소중하신 말씀들을 더 많이 기억에 남게했다는 것을 깨달았지요. 요즘 대학에 다니는 일이 얼마나 사치스러운 일인가를 많이 생각합니다. 수없이 많은 사람들이 배우고자 하여도 배울 수 없는데 저는 엄살쟁이였고, 분수 모르는 자일지도 모릅니다. 다행히 이 공간에서 제게도 적지 않을 성과로 다가올 강의의 중계는 미력하나마 갖가지 여건으로 인해 선생님의 강의를 접하시기 힘드신 분들께 '사색의 꺼리'들이 될 수도 있다고 자위해봅니다.
지난 주 목요일, 학생회관 1층에 위치한 학생휴게실(일명, '카페'라고도 하지요)에서 선생님께 이 '기획'을 말씀드렸습니다. 선생님께선 너무 많은 내용을 쓰지 말고 가장 인상에 남는 것들을 담으라 말씀하셨지요.
하지만 또 걱정입니다. 분명히 저를 훈련시키고 제게도 소중한 기회임은 알고 있지만 제게 결여되어 있을 '자격여부와 적절성', 그리고 '능력'의 부족함 등은 혹시라도 의도치않게 일어날지도 모르는 왜곡과 와전 염려와 더해져 제 욕심과 만용을 말리고 있습니다.
그냥 편히 읽어주시고 많은 꾸짖어주심과 질책 부탁드립니다. 특히 함께 수업을 들으시는 복희 누님이나, 전에 이 수업을 들으신 적이 있으신 혜영이 누나, 용미 씨, 철홍이 형, 영목 씨, 좌경숙 선생님 등께서 더 많은 지적, 책망, 논쟁을 해주세요.
지지난 주 선생님의 강의는 수강생들의 '자기 소개'로 시작되었다. 수업 자체가 사회과학부 전공강의가 아니라 전교생에게 개방되어 있는 교양과목인 탓에 인문, 어문, 공학 계열의 학생들이 제법 많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선생님의 정치경제학 강의는 실상 후하신 학점세례로는 잘 알려져 있어도 맑스의 <자본론>에 관한 강의라는 점은 잘 알려져 있지 않다. 대개는 이제 대학의 강의에 익숙해져 있는 학생들에게, 보통의 강의에서 이러한 '자기소개'는 다소 당황스러운 일이었던 기억이다. 학생들은 요즘 많이 쓰는 표현으로 '뻘쭘한' 분위기에서 엉거주춤 자기 소개들을 하기 시작했다. 영어학과, 사회복지학과, 컴퓨터정보공학부, 그리고 사회과학부, 그리고는 '성공회대학교 98학번'이라고 수줍은 미소를 띠셨던 신복희 누님까지.
"그런데 여러분, 그럼 우리가 서울을 관측할 수 있는 O.P.(observation post, 관측점 - 군사용어)는 어딥니까?" '사회인식'에 대한 설명을 하시던 선생님께선 갑자기 이렇게 물어보셨다. 선생님 강의시간이 종종 그러듯이 아무도 대답하는 사람이 없었다. 남산타워? 63빌딩? 북한산? 선생님이 말씀하실 타이밍이었다. "서울의 O.P.는 '쓰레기 매립장'이 아닌가?"
'사회인식'에 대한 말씀은 계속되고 있었다.
"밀려오는 파도에 그저 부딪히듯이, 살아가면서 만나는 것들을 그저 생각할 것인가? 우리는 보통, 오늘 근사한 데 갔고, 맛 있는 거 먹었고, 좋은 일 당했어서 오늘 하루는 아주 좋았다 하지요. 그런데 그건 자기자신이 '대상화'되는 건 아닐까요? 어쩔수없이, 'I(주체)'임에도 불구하고 'Me(대상)'일 수밖에 없는 구조, 그러나 I + Me = We라고 생각합니다."
"제 생각에도 '허무주의'는 최고의 철학이 맞는 것 같아요. 그런데 진짜 허무주의자는 자살해야 하는 거 아닌가? 제 생각에 자살하지 않는 허무주의자는 가짜다, 하는 생각이 듭니다."
대단히 논쟁적인 issue였다. 자살하지 못하는 허무주의자는 자살하지 않는 허무주의자와 같은가? 하는 생각이 순간 얼핏 떠오르다 가라앉았다. 자살하지 못하는 허무주의자는 더 깊은 허무주의와 덧없음의 나락과 심연으로 가라앉는 자인가?
"여러분, 늑대들도 아침신문을 봅니다. 씨이튼의 동물기를 보면 늑대 '로보'에 관한 일화가 자세히 나오는데 하여튼 포수들이 그 로보를 어떻게든 잡으려고 덫들을 여기저기에 놓으면 로보가 그 덫들을 죄다 못쓰게 만들어요. (그러다 갖은 노력으로도 로보를 도저히 잡을 수 없다고 판단한 포수들 중에서 한 포수가 로보를 계속 관찰하다가 로보와 친한 한 암컷 늑대를 주목해 그 암컷을 노려 결국 로보를 잡고 말지요.- 지난 강의 때는 이 말씀도 하셨는데 이번 강의에서는 생략하셨음) 어쨌든 그 로보가 결국 잡혀 죽는 장면이 있는데 어찌나 쓸쓸해했던지 아직도 그 기억이 남아 있습니다. 그런데 로보가 아침신문을 본다는 말이 무슨 말이냐? 아침이면 그 고장에서 제일 높은 절벽이 있는데 로보가 동틀 무렵 그 정상에 올라 눈을 감고 바람을 받아요. 바람에 섞여 있는 각종 냄새를 통해서 지난 밤에 누가 왔다 갔는지를 아는 거지요."
"제가 감옥에 있을 때, 도무지 세상 소식을 알 길이 없었어요. 신문이 있나, 텔레비젼이 있나, 그래서 '신입'들이 들어오면 한 6개월 전 세상 소식을 빙 둘러앉아서 듣는 게 유일한 낙이었지요. 그러나 어느날 공장출역을 하던 중에 뭔가를 싼 신문지를 하나 얻었어요. 어찌나 그게 소중하던지, 잘 간직해가지고 감방에 들어와 자세히 읽었어요. 그러다 간수가 그만 감방 안을 열어봤는데 죄수가 신문을 읽고 있는 걸 본거예요. 비상벨이 땅땅땅 울리고 감방 안에서 죄수가 신문을 본다고 발칵 뒤집혔어요. 간수들이 막 뛰어다니고, 정신이 하나도 없었는데 감방 안도 난리가 났지요. 그래서 이불 밑으로 신문을 재빨리 돌리면서, 모두 일곱명이니까 각자 찢어서 먹어라, 하고 신문을 돌리는데 그만 일곱번째 사람에게 남은 신문이 좀 많았나봐, 그걸 삼키다가 다 못 삼키고 화장실 변기통에 뱉었지요. 그때 간수 한 명이 계속 감방 문에 있는 작은 문으로 우리들을 보고 있었는데 한 놈이 변소에 갔다오는 걸 봤지요. 결국 문이 열리고 우리 다 복도에 나가 벽보고 서 있는데, 감방 안을 샅샅이 뒤지다가 한 놈에 변소엘 갔다왔다는 말이 보고되고, 공장 마당에 그 인분을 다 퍼서 펼쳐놓았는데 그 냄새란 말도 못합니다. 결국 공장 마당에 쫙 펼쳐진 그 인분에서 씹다 만 작은 신문조각을 찾아내고 말지요. 얼마전 집에서 채 다 보지도 못한 신문뭉치를 끈에 묶어서 폐지라고 갖다버리는데 그때 생각이 났어요."
선생님의 말씀은 고요한 강의실에서 잔잔히 퍼져나간다. 구조는 결국 '뼈대'라는 말씀, '황소의 걸음걸이'와 '오리의 걸음걸이'가 다른 이유는 결국 '뼈'가 다르기 때문이라고, 요즘은 구조에 관한 관점이나 사고는 없고, 느낌과 외관에 대한 관심만 있다고, 그래서 결국 선생님의 자기소개 종용에 관한 이론은 다음과 같으셨다.
"저는 결국 진정한 관계는 그 누구에게도 보여주지 못할 아픔과 상처를 보여주고 알게 된 관계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이런 관계는 이제 거의 없습니다. TV를 보세요. 거기 보면 다 좋다, 최고다, 진짜다, 하는 광고만 있잖아요. 우리 상품은 이런 흠이 있다는 광고는 절대 없습니다. 자기가 얼마나 괜찮은 사람인가, 얼마나 멋진 사람인가 하는 이런 상품미학과 광고의 홍수에 싸여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그래서 진정한 관계론은 설 자리가 없는 것인지도 모르지요."
이번 주의 강의에서도 선생님의 '한문판서'는 전혀 거침 없이 진행되었다.
"知者樂水 仁者樂山 - 물의 흐름은 산이 결정합니다. 강의 굴곡은 산의 자리가 만들어내는 것이거든요. 그러니 물의 흐름을 보기 위해서는 산의 위치를 먼저 보아야 하는 것인데, 보통 우리는 산 보고 물을 보지 않지요. 이를 '道無水有'라고도 합니다. '구조는 안보이고 형식만 있다'는 말입니다."
"여기서 水는 '변화'입니다. 물은 한 번 흘러가고 나면 되돌아오는 법이 없지요. 이른바, 덧없음이요 무상(無常)입니다. 그래서 '지혜'로운 자(知者)는 '변화를 잘 읽는 사람'입니다."
"그리고 여기서 山은 '변화의 원인'입니다. 이른바 부동(不動)이지요. 그래서 변화는 잘 알지 못하는 사람입니다. 그러니까 이 말을 다음과 같이 풀어 쓸 수도 있어요. '지혜'로운 사람은 세상에 잘 맞추는 사람이고(知者樂水), '어리석은'사람은 세상을 자기에게 맞추는 사람이다(仁者樂山). 그러나 저는 역설적으로 후자의 우직한 사람들이 역사와 사회를 만들어나간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우리가 '통합적 인식을 가져야 한다'는 말은 '산도 보고 물도 봐야 한다'는 말입니다. 물론 방해물들이 많지요. 현상의 변화 속도가 아주 빠르고 매우 다양하지요. 이른바, '개성시대'라고 하지 않습니까? 그런데 저는 이 개성시대라는 말을 일종의 '무장해제'라고 봅니다. 그러니까 현상을 가져오는 구조에 관해 인식하지 못하도록 하고 그저 현상 자체에 주목하게끔 하는 것은 아닌가?"
이제 선생님의 말씀은 '이데올로기'에 관한 내용으로 흘러가신다.
"그런데 여러분, '개미와 베짱이 우화'는 과학입니까, 이데올로기입니까?"
"실제로 개미에 관한 생물책의 기록을 보면 개미는 하나도 부지런하지 않아요. 내내 놀다가 겨우 베짱이가 고생고생해서 파놓은 자리를 떼로 몰려가서 빼앗고 차지하는 놈들입니다. 그런데 개미는 여름 내내 부지런히 일해서 겨울에 편히 지내고, 베짱이는 여름 내내 놀다가 겨울에 개미네 집에 찾아가 동냥한다는 얘기는 뭡니까? 저는 이 우화가 이데올로기라고 생각합니다. 열심히 일하라는 얘기지요. 열심히 일하면 성공한다는 이 우화는 과학의 외관을 갖춘 아주 강력한 이 시대의 이데올로기에 불과합니다."
"우리는 먼저 '이데올로기'의 내용을 간파해야 합니다. 저는 어릴 때 친구들과 극장에 가면 제일 먼저 이 서부영화의 주인공이 과연 누구인가 하는 그런 얘기를 많이 했는데 그러다 비법을 발견했지요. 대개 하얀 모자를 쓴 카우보이가 주인공인 경우가 많았습니다."
"우리 사회의 주인공은 누구인가? 주인공을 찾아야 합니다. 사회에는 주인이 반드시 있습니다. 이른바 '보이지 않는 손(invisible hand)'입니다. 그리고 그 보이지 않는 손은 'control hand'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거대한 벽 앞에 선 단독자가 벽과의 대결 관계를 차단 당하고 자기 내면을 응시하게 된다는 근사한 story' 역시 어쩌면 아주 강력한 이데올로기일지도 모릅니다. 왜냐하면 살아가는 데 중요한 것은 바로 '견디는 힘'이기 때문이지요. '자기가 자기 삶을 견디기' 말입니다."
"결국 그 사회의 주인공을 판별해내는 일이 바로 무리를 에워싸고 있는 이데올로기들을 걷어내는 일입니다. 일단 모든 사상은 이데올로기가 아닌가, 하고 의심해봐야 합니다. "
"7,80 년대 민주화운동 당시부터도 이미 YS, DJ가 '주인공 자리를 차지'했었습니다. 그때는 노동자, 농민, 학생, 지식인들이 주인공이었는데 '결국' 빼앗긴 것이 아니라, 이미 그때부터 빼앗겨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런 현실에서 노동자, 농민, 학생들은 최전선의 소총부대에 불과했지요. 저는 이 까닭을 당시 주인공 자리를 빼앗겼던 '이론의 유치성'에서 찾습니다. 가장 먼저 주인공 자리를 차지해야 합니다."
"당대는 누가 뭐래도 broad casting의 시대입니다. 그러나 저는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narrow casting을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협소한 추상'이라고도 할 수 있겠지요. 그럼 취사선택의 기준은 무엇인가? 바로 '사회에 관한 법칙적 인식'입니다."
"모든 운동에는 그 원인이 내부에 있는 것과 외부에 있는 것이 있습니다. 그런데 정치경제학은 일단 '모든 원인은 내부에 있다'고 전제합니다. 여러분이 우선은 내부로 시선을 돌려야 한다는 말입니다."
"마지막으로 구조(혹은 뼈대)에 관한 말씀을 드리면, 근대 건축학에는 설계도가 있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설계도란 말하자면 법칙이나 구조 같은 뜻이겠지요. 정치경제학에서는 이를 '토대와 상부구조'라고 말합니다. 그런데 이른바 post-modernism은 이 근대적 건축학을 해체합니다. 저는 사실 이러한 논리에 일정 정도 동의하는 편입니다. 그리고 저는 설계도에 의한 방식이 갖는 한계를 넘어서기 위한 대안으로 '건축하면서 설계하는 방식'을 생각해봅니다."
"Partisan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흔히 '빨치산'이라고 부르는 말이지요. 이 단어의 원래 의미가 무엇이냐면 '당 중앙과의 모든 연결이 끊긴 상태'를 말합니다. 임무가 없다는, 즉 설계도는 없다는 말입니다. 자기가 알아서 임무를 책정하고 그 임무를 수행해나가야 한다는 말입니다. 거기서 빨치산은 주민들에게서 보급투쟁을 수행하지요. 그러려면 우선 첫째로 주민들과의 관계가 돈독해야 합니다. 아마 이게 '민주주의'겠지요. 그리고 이러한 빨치산식 삶은 이른바 '길을 가면서 길을 만든다'는 것이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어쩌다보니 현재 압구정동에서 지내고 있습니다. 지난번에 학원에서 수업이 끝나고 압구정동에 가장 가까운 버스를 사당 역에서 타고 와 내려 길을 찾아가는데 양쪽 길가에 쭉 늘어선 각종 쇼윈도우와 그 너머 패션진열장들은 진심으로 환상적이더군요. 문득 제가 가장 좋아하는 가수, 정태춘 님의 노래 한 구절을 불러대며 그 환상적인 패션가를 걸었습니다. "... 티끌 먼지 하나 없는 로데오 거리, 커다란 쇼윈도우 너머엔 자본보다 권위적인 아 첨단의 패션...(정태춘 박은옥 6 <92년 장마 종로에서> 中 'LA 스케치' 부분)"
어느 토요일 밤, 10 차선 큰 길을 가로지르는 신호등을 건너 청담동 크라이슬러 자동차 전시매장을 다가가는데 정말 근사한 외관의 승용차들이 꿈 속의 광경처럼 찬연하더군요. 그리고 거기에 설치된 야외 골프연습장은 초록색 그물 너머 야간의 푸른 조명등이 훤하고, 골프연습장 주변은 각종 리무진이나 고급외제차로 잔뜩 복잡했습니다. 길을 계속 걸어 올라가면서 저도 모르게 오른편의 '손님'들을 바라보았지요. 저마다 대단히 진지한 표정으로 골프채를 휘두르고 있더군요.
딱! 딱! 푸른 대형 조명탑의 눈부신 조명을 받으며 새하얀 골프공들이 새카만 밤하늘을 너무도 아름답게 날아가고 있었습니다.
내가 다녔던 초등학교는 광화문 네거리에서 덕수궁 뒷 돌담길 쪽으로 있었다. 그 초등학교 바로 앞으로는 (이제는 이사 가버린) 경기여자고등학교가 있었고, 길건너 (역시 지금은 없어져버린) '덕수제과'가 그 당시의 명소였던 빵집이었고, 그리로 쭉 길따라 가면, 새문안교회를 지나 (물론 지금은 아주 오래전에 이사 가버린, 지금은 '경희궁 복원 공사'가 한창인) 서울고등학교 자리가 나왔다. 그 서울고 자리 바로 초입에 (이 역시 지금은 사라진) 서대문파출소가 있었고, 그 오른 쪽으로 난 일방통행로 초입엔 한때 김종필이 공화당이라고 만들어 출퇴근하던 건물이 아직도 있고, 그 길을 쭉 따라 올라가면 내가 20년을 다녔던 교회도 나온다.
한 '국민'학교 3학년 때쯤이었나? 아마 82년 정도였을 거다. 앞서 대강 그려본 서울고 자리 좀 못가서 '구세군빌딩'이라는 곳이 있는데, 거기 1, 2 층에 기독교인들에게는 제법 알려진 기독교서점이 있다. 당시는 지금의 그 자리가 아니었고, 지금의 왼편에 있는 무슨 까페 자리였는데, 아무튼 당시의 나는 아무 서점이나 턱하니 들어가 카페트 바닥에 털썩 주저앉아 마치 내 집 서재인양 아무 책이나 읽어대던 시절이었으므로 종종 그 기독교전문서점을 놀이터처럼 드나들곤 했었다.
느닷없는, 그것도 별로 나이도 얼마 안먹은 내가 이렇게 시건방지게, 마치 무슨 회고담을 쭉 풀어대는 것은, 꼭 얼마전에 다 읽어낸 노촌선생님의 <산정에 배를 매고> 분위기 영향 탓만은 아니고, 당시의 잊혀지지 않는 아주 강렬한, 그러나 돌이켜 볼수록 헛웃음밖엔 안나오는 체험 때문이다.
아마 내가 거기서 자주 읽어댔던 책들이란 성서만화류와 그림책들, 그리고 어린이독자를 대상으로 출판하던 각종 기독교잡지들이었던 걸로 기억하는데, 그날도 내가 바닥에 앉는채 읽었던 것도 그런 종류의 것이었다. 하도 거기로 등하교를 하던 탓에, 나는 이미 그 서점의 점원들에게 잘알려진 아이여서, 아예 뻔뻔하게 서점 안에 있는 사람들에게 일일이 넉살 좋은 인사도 하고, 바닥에 앉아 책을 보려면 어떤 수칙을 나름대로 지켜야 하는지도 이미 오래전에 교육이 끝난 상태여서 이따금씩 서점의 점원 누나들은 맛 있는 게 있으면 내 것을 준비했다가 건네주곤 했던 추억이 있다.
아무튼 사설이 길었는데 그 날의 기억은 이렇다.
아마 윤모 씨라는 아동만화가의 만화였는데, 한 어린 아이가 할아버지에게 6.25를 비롯한 한국 현대사에서 <공산주의>에 관한 말씀을 듣는다는 내용이었다. 주로 할아버지는 적나라한 묘사와 힘찬 웅변으로 공산당에 대한 고발과 증언을 뜨겁게 토해내셨고, 아이는 그 할아버지의 한 맺힌 고백을 휑뎅그레한 눈빛으로 전해 듣던 그렇고 그런 내용의 만화였다. 그런데 지금도 종종 회상해봐도 아주 '골때리는' 내용이 있었다.
할아버지께서는 아이에게 공산당은 얼마나 피를 좋아하고, 또 잔인하며, 무서운 것인지를 설명하다가 이윽고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신다. "그리고 그 무서운 공산주의라는 이론을 창시한 자는 '칼 맑써'라고 한단다!" 그러자 아이는 깜짝 놀란 나머지 비명에 가까운 소릴 내 지른다. "칼 막써!(피를 뚝뚝 흘리는 칼과 그 칼을 움켜쥔 눈동자 없는 털복숭이 사나이 삽화는 아이의 상상으로 그려져 있었고, 아이는 당연히 부들부들 떨고 있는 장면이었다)"
- 2001 학년도 3 월 12 일 월요일 / 성공회대학교 새천년관 7207호 / <정치경제학> 제 3 강
"(동대문 운동장에서 축구 한일전이 있었는데 그 경기가 끝나고 정해진 출입구로 사람들이 와, 쏟아져 나가는 광경을 상상해봅시다. 그런데 그만 가방을 놓고 온걸 알았다고 해요. 그런데 그 인파가 죄 한 방향으로 나가는데 다시 자기가 앉아 있었던 그 자리로 되돌아갈 수 있습니까? 결국 우리가 사회 속에서 살아가는 삶이란 것도, 그리고 그 사회 속에서 사회의 거대한 흐름에 거슬러지는 생각을 한다는 일도 이런 예로 설명될 수 있을지 몰라요. - 지난 시간의 강의 내용 중에서) 바로 그런 상황이 이른바 '소외'지요. 노동자가 자기가 고생고생해서 생산해낸 생산물로부터 배제당하는 것이지요. 이렇게 말하면 여러분들 잘 몰라. 내가 국민학교 때 한번은 의자들고 벌을 섰던 적이 있어요. 의자라는 것이 실은 사람들 편하라고 만든 것이잖아? 한번 1시간만 의자 들고 벌서봐요. 그럼 소외가 뭔지 알겁니다."
나 역시 예전에 대형할인점에서 <마주앙 모젤>이라는 와인을 몇백병이고 진열했던 적이 있었다. 며칠 전 과 동기들과 광화문에 가서 영화 한 편을 보고 어느 근사한 까페에 갔었는데 거기서 <마주앙 모젤> 한 병을 시켰다. 대부분 그 와인이 처음 보는 거라는데 나는 미친듯이 진열했던 술이라고 말했다. 그리고 누가 나한테 물어보지도 않았는데 나는 오늘 이 자리에서 처음 먹는다고 말했다. 다들 웃는데 한 친구가 말했다. "바로 그게 '소외'지."
"역사를 만들어는 데 사람들은 대개 다음의 2가지 방향으로 조직합니다. 먼저는 '복고(復古)적 방식'이고, 다음은 '이상주의적 방식'이지요. 이 중 복고적 방식은 과거의 찬란한 경험으로 돌아가자는 이론으로 제법 확실하지요. 자기가 체험해봤으니까 이론적 입장이 탄탄합니다. 그런데 이 이상주의적 방식은 과거에 경험한 방식이 아니지요. 단지 어떤 이상주의적 상(想, Model)이 있어, 그 상을 이르기 위해서 최대한 노력을 경주하는 입장이지요. 다르게 말하면 이상적으로 설정된 모델에서 현재의 실천을 받아오는 거라고 말할 수도 있습니다. 이게 바로 지난 시간에 말한 '설계도 갖고 집짓기'입니다. 그러다가 만약에 자신이 이상적 모델로 설정해놓은 것이 무너지면 실천의 혼란이 발생하지요."
"사실 설계도 가지고, 그 설계도 대로 집 짓는 것은 돈 많은 부자들이나 하는 일이예요. 돈 없는 가난한 사람은 설계도대로 집 지을 엄두도 못내거든요. 아무튼 이러한 이상주의적 운동방식이 바로 사회주의 패망 이후의 상황과 어느 정도 상관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바로 이런 근본적인 부분에 반성이 필요하다는 생각입니다. 이를테면 인간이성에 대한 신뢰, 계몽주의적 태도, 거기서 한 발 더 나아간 교조주의, 그리고 이른바 '전시공산주의'라고 하는 스탈린주의에 대한 반성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것이지요."
"그러나 이러한 이상주의적 입장이 하나의 사상적 pool로서는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사람이 살아가고 운동을 하면서 하나의 사상적 목표, 방향, 가치규정은 필요하지요. 반성은 하되 사상적 가치지향으로서 이상주의적 사고까지 놓칠 필요는 없습니다."
"여러분, 그런데 <자본주의>의 반대말은 뭐라고 생각합니까? 어떤 사람들은 <사회주의>라고 하던데 제가 보기에는 정답이 아니예요. 자본주의의 반대말은 <인간주의(人間主義)>입니다. ('자본이 주인되는 세상'의 반대는 '인간이 주인되는 세상'이라고 이해했습니다. - 괄호 안은 진호)"
"여러분, '자본주의'의 반대말은 '사회주의'가 아닙니다. 자본주의도 '사회'를 필요로 하지요. 상품을 생산하기 위해서나, 팔아먹기 위해서나, 사회는 필요하니까요. 우리가 자본주의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인간에 대한 sentimental'이 아니라 '인간관계의 황폐화'에서 그 실마리를 찾아야 합니다. 제 생각으로는 사람이란 결국 관계 속에서 완성되는데 자본주의 사회란 이 관계를 철저히 '이해관계'로 바꾸었거든요. 그래서 이 자본주의에서는 관계가 관계가 아니고, 사회 역시 사회가 아닌 것이지요. 그래서 저는 '자본주의'의 반대말은 '인간주의'라고 생각합니다."
자, 이제 본격적인 본론으로의 진입인 듯 하시다. 교재에는 다음과 같이 써 있었다.
가. 정치경제학과 Marx경제학
1) '자본'은 자본주의 분석이다.
2) Marx와 공산주의
"자본(DAS KAPITAL)은 사회주의 전술전략에 관한 책이 아닙니다. 그런 구체적인 상의 제시가 아닙니다. <자본>이라는 책에는 사회주의에 관한 언급이 거의 존재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자본>을 읽을 때는 사회주의가 아니라 자본주의에 관한 이해, 분석을 위해 읽는다는 생각으로 시작해야 합니다."
"따라서 정치경제학은 일단 사회주의 사상과는 관련이 없다고 봐야합니다. 그러나 자본주의 분석, 비판은 궁극적으로 대안의 모색이겠지요. 저는 우리에게 이 맑스주의에 관한 반성도 필요하다는 생각을 합니다."
"여기서 반성이라는 것은 다음의 두 가지 정도가 아니겠는가 하고 생각합니다. 첫 째, 혁명적 프롤레타리아의 잠재성에 대한 반성이 필요하다. 둘 째, 설계도는 포기하고 건축은 포기하지 않는다."
우선 첫 번째 반성이다.
"맑스의 <공산당 선언(Communist Manifesto)>를 보면 '혁명적 프롤레타리아'라는 개념이 나오지요. 그런데 저는 '혁명적 프롤레타리아'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먼저 우리가 서구의 선진자본주의 국가들의 현대사를 봅시다. 영국의 경우에는 대토지 지주, 귀족들이 산업혁명을 이끌었지요. 영국에는 부르주아가 없었습니다. 프랑스혁명이 보여준 것은 무엇입니까? 본질적으로 프랑스혁명이 보여준 것은 사회주의나 자본주의를 지향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다만 인간이 인간의 운명을 바꿀 수 있다는 주체성이 역사 속에서 최초로, 가장 극명하게 드러났던 것입니다. 저는 이 두 혁명이 맑스에게 엄청난 영향을 가져다 주었다고 봅니다. 산업혁명이 가져다준 생산력의 폭발적인 발전과 프랑스혁명이 보여준 민중의 폭발적인 역량, 혹은 사회를 변혁시키는 인간의 엄청난 의지가 맑스로 하여금 <자본>을 집필하게 했다고 봅니다. 물론 맑스는 기본적으로 자본주의 사회의 역동성과 그 급격히 발전된 생산력을 기반으로 하여 사회주의 사회의 건설을 추구한 것은 맞다고 봅니다."
"과연 맑스가 말한 '혁명적 프롤레타리아'가 당시에 있었습니까? 그리고 지금은 존재합니까? 당시에 혁명의 담지자인 노동자계급은 없었습니다. 물론 공장에서 노동하는 사람들은 있었지요. 그러나 혁명의 주체, 잠재적인 역량을 지닌 노동자, 자기 계급의식을 지닌 노동자계급은 없었습니다. 있었다면 '혁명적 부르주아지'는 있었지요. 그럼 지금은 노동자계급이 존재합니까? 실제로 만나보면 노동자들이 얼마나 보수적인지 모릅니다."
"여러분이 잘 아시는 영화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Gone with the wind)>가 있지요. 그 제목에서 주어(S)는 뭡니까? 저는 주어가 '문명'이라고 봅니다. 그러니까 Civilization has gone with the wind. 겠지요. 마가렛 미첼이 그 영화의 원작소설을 썼는데 그녀는 미국 남부의 유럽적인 문명이 남북 전쟁에서 북부의 공장주들에게 남부의 농장주들이 패배해 사라지는 것을 대단히 안타까워했다고 해요. 저는 여기서의 문명을 '문명의 아류'라고 봅니다. 유럽적인 문명이 일종의 이데올로기화(化)된 것이지요."
"동일하게 저는 '혁명적 프롤레타리아 론(論)' 역시 일종의 이데올로기화 되었다는 생각을 합니다. 맑스는 결코 시스템을 만들려고 하지 않았다고 봅니다. 레닌도 그랬다고 생각해요. 시스템을 만든 것은 엥겔스였고, 스탈린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이 수업에서 앞으로 다루게 될 내용이지만, '잉여가치론'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잉여가치란 일종의 이윤인데 이 가치를 생산하는 노동자에게서 자본가가 수탈하고 착취한다는 설명이지요. 그런데 정말 노동자만 수탈당하고 착취당합니까? 나는 오히려 생산과정에서만이 아니라 판매과정에서도 이 수탈과 착취가 존재한다고 봅니다. 한 상품을 구매하는 소비자들이야 말로 가장 다수의 피착취자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경제적 요인의 규정과 결정, 우위론 역시 반성할 필요가 있습니다. 현대 자본주의의 포섭기제는 거의 문화적이거든요. 우리는 종종 '사적 유물론'을 교조적으로 이해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교조적 이해는 대개 '역사 형이상학'에 빠지고 맙니다. '사적 유물론'은 보다 유연하게 이해될 필요가 있습니다. 자본주의 일반에 대한 탁월한 비판적 지적 준거로서의 맑스 역시 비판해야 합니다."
혼란스러웠다. 우리 과의 투철하신 맑시스트, 김진업 교수님께서 '배움'이란 '인지부조화의 과정'이요, '마음이 불편해지는 일'이라고 하셨는데 그 강의가 그대로 채현되는 듯한 순간이었다. 이윽고 '두 번째 반성'이 시작되고 있었다.
"현대 사상에는 두 가지 큰 흐름이 있습니다. 하나는 자본의 생각인데, 역사는 사회주의 국가들의 붕괴로 말미암아 이미 종언되었으며, 더이상의 체제 논쟁은 불필요하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이른바 포스트 모더니즘으로서, 거대담론을 해체하는 동시에 중요한 것은 생활 속의 미시담론들이라는 입장입니다. 그러니까 궁극적으로는 둘 다 '거대담론의 해체'라는 결론으로 볼 수도 있지요."
"담론의 전선(戰線)을 인간과 사회에 긋는 것 역시 이러한 거대담론의 해체에 일조하고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저는 이렇게 생각합니다. 이상주의나 해체주의에 관한 반성을 하는 동시에, 그러니까 설계도는 폐기하는 동시에 그 가치는 간직해야 한다는 생각입니다. 여기서의 간직이란 일종의 지향성이지요. 우리가 '길을 가면서 길을 만든다'고 했을 때, 그 만들어진 길이라는 것은 수없이 많은 사람들이 다니면서 밟고 다져서 만들어진 탄탄한 길이라는 의미입니다."
"가라타니 고진은 그의 책, <은유로서의 건축>에서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타자의 조명, 타자의 부활'. 여기서 타자란 체제에 대한 타자를 말하지요. 일종의 비주류입니다. 그러니까 체제와 타자의 관계에 관해 말한 것입니다. 그런데 이 관계는 대칭적 관계가 아니라 비대칭적 관계지요. 불공평하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불공평은 물질적으로, 이데올로기적으로 이루어진다고 보는 것입니다. 고진은 그리고 타자의 부활을 주장합니다. 이 관계를 대칭화시켜야 한다는 것이지요. 쉽게 말해 고진의 주장은 '제3세계, 사회주의는 부활되어야 하고 주목되어야 한다'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선생님의 말씀은 나직하지만 둔중한 메아리들을 내 속에서 만들고 계셨다. 사회주의적 방법론에 대한 반성은 필요하지만, 사회주의적 가치는 소중한 것이라는 말씀, 반대측면이 진실하다는 말씀, 그리고 '새로운 세기의 패러다임'이 소중하다는 말씀이셨다.
"저는 새로운 세기의 패러다임이 <관계론>이라고 생각합니다. 모든 하나는 다른 하나들과의 관계 속에서 존재하게 됩니다. 펄스는 존재가능성의 확률로서 존재하는 것입니다. 동시에 펄스는 입자이면서 파동입니다. 양자역학은 존재와 관계 사이에서 존재 그 자체에 관한 소중한 문제제기를 던집니다."
"여기에서 '관계'란 '공존(共存)'입니다. 지배가 아닙니다. 어떻게 자본주의의 '강철의지'를 관계론으로 바꾸어나갈 것인가가 제 기본적인 tool입니다."
"미국을 초강대국으로 하는 세계화, 글로벌라이제이션, 신자유주의, 초국적 자본의 논리에 대항, 저항할 수 있는 대항논리, 저항논리가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세계화, 세계화!하는데, 자본주의화하자는 거 잖아요. 그럼 비자본주의 국가들인 아프리카, 일부 아시아는 세계도 아닌가? 이는 지극히 오만방자한 논리에 불과합니다."
"자꾸 세계라고하니 우리나라와 세계의 관계를 봅시다. 우리나라에 있는 입장들은 크게 두 가지로 정리할 수 있지요. 바로 '개방성'과 '독자성'입니다. 이 둘은 모두 결함이 있습니다. 개방성은 종속으로, 독자성은 낙후로 귀결될 수 있습니다. 이 종속과 낙후의 결과가 외화(外化)된 현상이 '남북한의 분단현실'이라고 생각합니다."
"개화파와 위정척사파는 당시 세계와의 관계에 대한 논쟁과 대립이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제 이 두 가지 측면이 지니고 있는 부정적 측면을 최소화할 수 있는 새로운 패러다임은 바로 개방성과 독자성의 '공존'입니다. 그래서 이 둘의 장점을 모두 이어받아야 합니다. 모든 독자적인 문명은 공존의 형식이 아니면 존속될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논어에 보면 공자가 '군자는 화이부동(和而不同)하고 소인은 동이불화(同而不和)한다'라고 말합니다. 여기서 和란 다양성을 인정하고 차이점을 인정하는 것이고, 同이란 동일시와 강제, 자기 것을 요구하고 강요하는 것이겠지요. 이 '同의 논리'가 바로 지배의 논리고, 강철의 논리고, 존재론적 논리이며, 제국주의적 논리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일본이 우리에게 일본어를 강요하고 우리의 종교를 금지했잖아요. 스페인 역시 남미의 문명들을 보고 이 同을 요구했지요. 스페인의 잉카문명 대학살사건은 바로 이런 同의 논리에서 나온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의 근현대사에 존재했던 군부독재와 강철의 논리입니다. 그런데 '관계론'이란 '和而不同'입니다. 다양성을 인정하면서 동일할 것을 요구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선생님의 강의는 이제 <자연과학과 사회과학>으로 이어졌다. 우주에서 보면 지구가 한 눈에 들어오는데 '도시는 마치 지구라는 생명체에 퍼진 암세포처럼 보였다'는 어느 기사를 인용하시면서 자본의 축적과 자본의 논리를 자연의 논리로 비판하시기 시작하셨다.
"여러분, '사회'를 한자로 쓰면 '社會'지요? 그런데 이 社자(字)와 會자가 무슨 사, 무슨 회 자인지 압니까? 사는 '두레 사'자 이고, 회는 '모들 회'이지요. 그러니까 사회란 사람들의 집합이자 관계입니다. 그럼 어떤 관계로 사람들이 모여 있습니까?"
"일단 이러한 사회 내부의 관계를 바꾸려는 노력을 '계급투쟁'이라고 하지요. 또 민족사회 간의 관계에 우리는 '민족투쟁'이라는 말을 씁니다. 그리고 자연과 사회의 관계에 관해서는 흔히 '생산투쟁'이라고 하지요. 그런데 '민족'은 '계급'에 포함되고, 다시 '계급'은 '생산'에 포함됩니다. 그러니까 '민족투쟁 < 계급투쟁 < 생산투쟁'이라는 포함관계식이 성립될 수 있습니다. 모든 투쟁의 본질은 관계의 효율성 증진 방향에 따릅니다. 그러나 결국 남는 것은 생산투쟁입니다. 어쩌면 모든 이론은 생산투쟁이라고 할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혹 '생산투쟁'이라는 말이 부담되면 '생산실천'이라고 바꿔불러도 상관없습니다."
"그런데 어쩌면 이러한 사고도 역시 근대적 사고의 산물일런지도 모릅니다. 흔히 우리는 일반적으로 자연, 노동, 자본을 생산의 3대요소로 생각합니다. 그런데 자본은 제 생각에 더이상 생산요소가 아닌 것 같애요. 대우자동차공장 한번 보세요. 자본이 자동차의 생산을 파괴하지 않습니까? 저는 이제 노동자와 자본가의 수탈구조를 넘어서서 자본의 자본가에 대한 수탈구조라고 생각합니다."
싸르뜨르는 말했다. "맑스주의는 자본주의의 내적 모순으로 인해 발생되었다. 맑스주의가 발생하지 않을 수 없었던 필연적인 요인이 자본주의 내부에 존재했기 때문에 맑스주의는 존재하게 된 것이다. 따라서 자본주의 내부에 맑스주의가 더이상 존재할 의미가 없는 변화가 없는 한, 맑스주의는 어떠한 강제력에 의해서도 결코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정확한 원문 인용 아님. 인용자 작문 혼재, but 의미왜곡은 없음)"
너도, 나도 할것없이 '세상을 바꾸자'고 한다. 나 역시 진심으로 동감한다. 그러나 문제는 '어떻게(how)'와 '무엇으로(where)'다. 게다가 이진경 씨의 말처럼 이 고민은 결코 고민자에게 엉거주춤할 안도감을 주지 않는다. 젊은날의 성장단계나 낭만으로서의 '학생운동', 추억과 회고담, 무용담으로서의 운동얘기들이 판을 치고 있는 이 상품교환사회에서 나는 이제 내일 모래 환갑이 되시는 20년 무기수였던 스승님의 수업을 듣는다. 내 일생 동안 가게 될 이 길, 나는 지금 지도와 나침반, 그리고 먼저 떠났던 선배에게서 가이드를 받고 있는지도 모른다.
"결국 생각해보면 소크라테스의 말을 쓴 것도 플라톤이었고,
공자의 가르침을 전한 것도 공자가 아니라 그의 제자들이었으며,
예수의 수훈 역시 네 명의 제자들이 기록한 것이었다."
그러니까 신영복 선생님의 말씀을 전하는 것도 당신 자신이 아니라 '얼치기 제자'인 나다? 친구는 그냥 웃었다. 그런데 갑자기 저는 두려워졌다. 내가 지금 무슨 짓을 하고 있는거지? 그리고 고개를 떨군채 새까맣게 필기했던 선생님의 말씀들을 바라보았다. 선생님께선 내가 이렇게 당신의 가르침을 내 눈으로 재단하는 일에 관해 어떤 생각을 갖고 계실까? 그나마도 이처럼 인터넷이라는 완전 개방성의 공간에서 나는 지금 내 자의적인 해석력이 불가피하게 개입된 글쓰기를 통해 선생님을 표현하고 있다...
그리고 지난 토요일 노촌 선생님 댁에서 모였던 <샘터찬물 토론모임>
모임에 나오신 분들이 각자 이 '강의실로부터의 사색'을 프린트해서 가지고 나오신 것을 보고 나는 민망했다. 한 분께서는 전화로 '아주 잘 읽고 있다. 프린트해서 보고 또 보고 있다.'며 고맙다고 하셨다. 나는 그저 망연자실한 표정과 황송한 고개 가로짓으로 연신 땀을 흘릴 수밖엔 없었다.
새벽마다 우유배달을 하시고 대리점을 경영하시느라 , 게다가 거리까지 멀어 청강은 꿈도 못꾸신다는 성경식 님께서는 이 강의실로부터의 중계를 아주 유용하게 읽고 계신다고 좋아하셨다. 하루에 고작 3 ~ 4시간 밖에 못주무신다는 님이 이 못난 글을 프린트까지 해서 읽어주신다는 말씀을 들으며 나는 내 자신이 더 가혹한 책망을 들어야 한다는 생각을 했다. 중요한 것은 중계나 글쓰기가 아니라 더 충실한 내면화, 그러니까 삶이라는 걸 아주 잘 알고 있으면서도 나는 떳떳할 수 없었다. 다시 나는 문득 생각했다, 선생님께서는 이 글들을 어떻게 생각하실까...
<성공회대학교 새천년관 7207호 / 월요일 아침 9시 ~ 11시 40분경>
"노자의 유명한 구절이 있지요. 道可道 非常道, 名可名 非常名 (도가도 비상도, 명가명 비상명). 일반적으로 이 구절은 '도는 도라고 이름 붙일 때 도가 아니며, 이름은 이름을 붙일 때 이름이 아니다'라고 해석되지요. 그런데 저는 조금 다르게 해석을 합니다. '도라는 개념은(道) 도라고 이름을 붙일 수는 있어도(可道) 반드시 도(常道)라고 하지 않아도 된다(非)'"
"이러한 글쓰기는 노자식 글쓰기의 가장 기본적인 개념입니다. 칸트도 비슷한데 노자 역시 그 두껍고 난해한 도덕경에 단 하나의 각주나 참고문헌을 붙이지 않았습니다. 칸트의 <순수이성비판>은 깔끔하게 쓰여진 책입니다. 단 하나의 각주도, 참고문헌도 없어요. 역시 그 어떤 틀이나 자리잡힌 형식이 아니라 탄탄하고 체계를 갖춘 하나의 생각을 쭉 기술해나가는 겁니다. 그리고 이를 노자는 '도라는 개념은 반드시 도라고 부르지 않아도 된다'고 말합니다. 다른 글자로 개념화해도 된다는 겁니다. 예를 들어 '진(眞)'이라고 써도 상관없다는 것이지요."
"저는 먼저 우리가 이 각주 붙이고 참고문헌 다는 '중세적 습성, 봉건적 사고'에서부터 깨어나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지금까지 저는 계란 속에 있는 노른자가 중심이고 그 노른자에게 영양을 공급하는 역할을 하는 것이 흰자라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라면을 끓일 때 계란늘 탁 깨서 넣어 보니까 흰자가 노른자를 막 보듬어요. 그리고 나중에 알게된 것이지만 병아리를 만드는 것은 흰자고 노른자는 그 흰자에게 영양을 공급하는 역할을 하는 거였어요. 저는 이게 봉건적 사고구나, 하고 생각했습니다. 우리가 스스로 자기논리대로 사물을 해석해내는 거지요. 그리고 그 냄비 속을 들여다보면서 이렇게 생각했습니다. 그 뜨거운 물이 자글자글 끓으면서 엄습하니까 저 놈(흰자)이 제 이해관계(노른자)를 꽉 껴안는구나."
"얼마전에 하버드대학교의 명예교수인 에드워드 윌슨이 쓴 책을 보니까 대단히 급진적인 생각이 나와요. 우리들이 흔히 말하는 얘기 중에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하는 질문이 있잖아요? 그런데 윌슨은 다음과 같이 생각합니다. '닭이란 달걀의 내부에 있는 DNA가 자신의 생존과 번식을 위해 선택한 매개체이다(...> 닭 > '달걀(DNA)' > 닭 >...)'. 대단히 급진적인 환원주의적 입장이지요."
"그럼 이제 우리가 자연운동과 사회운동의 차이를 한번 살펴봅시다. 먼저 운동에 있어서 필연성의 문제를 보기로 하지요. 예를 들어 '구름이 끼었다'는 factor가 있다고 합시다. 이를 f1이라고 하면, 여기서 '비가 온다'는 결론을 도출해내는 겁니다. 이를 흔히 '헤겔의 추상적 가능성'이라고 부릅니다. 물론 비가 오는 결과에 부합하는 요인은 f1 하나만 있는 것이 아니고 f2, f3 등 여러가지가 있겠지요. 이렇게 부합하는 요인들을 plus factor라고 합시다. 그리고 당연히 이에 반하는 minus factor들도 있겠지요. 그런데 종합적으로 각 요인들을 살펴보고 'plus factor > minus factor'이면 이 요인들의 종합은 '비가 온다'는 결과에 '실재적 가능성'이 됩니다. 그리고 이러한 방식이 바로 자연과학적 독법입니다. 이렇게 생각해볼 수도 있습니다. 이러한 과정을 거쳐 형성된 '실재적 가능성'은 '현실성'이 되고, 이 현실성은 곧 '필연성'이 되겠지요. 이것이 법칙성이라고도 할 수 있겠지요."
"그런데 사회운동에 있어서는 이러한 '실재적 가능성'이 '현실성'으로 전화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플러스 팩터와 마이너스 팩터 간의 단순한 양적 계산이 불가능하게 때문입니다. 오히려 이 두 팩터 사이의 관계와 싸움은 실천과정을 경유하여 현실화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저는 민주당과 한나라당의 싸움을 보면서 조선조에 있었던 노론과 소론의 싸움을 생각해봅니다. '노론'이란 서울에 거주하던, 강력한 당대의 기득권 세력을 지칭합니다. 이 세력은 조선이 망한 이후에도 결코 사라지지 않고 일제강점기에는 친일로, 이승만 정권기와 박정희 정권기 등 현재까지 유지되고 있다고 봅니다. 물론 그동안 역사의 진행 속에서 수많은 마이너스 팩터들이 있었지요. 그러나 비록 수량적으로는 단일할지라도 강력한 위력을 가진 플러스 팩터 앞에서 이 마이너스 팩터들은 압도되고 맙니다. 우리가 흔히 스페인전쟁 과정을 통해 등장한 프랑코 장군을 강력한 독재자로 생각하지만, 프랑코의 쿠데타가 있기 직전의 스페인이 사회주의 정권에 통치되게 되자 2000여명의 스페인 귀족들이 위기의식을 느껴 프랑코를 스카웃해 정부를 전복시키고 직간접적으로 지원해 다시 스페인을 대리통치했다는 것이거든요. 이처럼 사회과학적 사고는 드러난 현상과 드러나지 않은 요인이 매우 복잡하게 얽혀 있거든요. 그래서 저는 자연과학적 사고와 사회과학적 사고는 일정정도 결별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지난 시간에 제가 잠깐 얘기한 마오(毛)의 이론을 다시 한번 살펴보면, 모택동은 민족투쟁과 계급투쟁과 생산투쟁을 이야기합니다. 그리고 이렇게 모식도를 가져 설명합니다. 역학적 운동 위에 물리적 운동이, 그 위에 화학적 운동이, 그 위에 생물학적 운동이, 그 위에 사회적 운동이 있다고 말합니다. 사회적 운동은 따라서 최고로 복잡하며 최고난도의 운동이라는 것이지요."
"어째서 '민족'이 '계급'에 포함되는가가 문제제기될 수 있습니다. 그에 관해서는 이렇게 설명될 수 있겠지요. '민족 내부에 지배, 독점체제가 편성되는 것은 동일한 원리로 형성된 계급체제의 다른 형식에 불과하다'"
"어떻게 이 복잡한 구조와 법칙을 다 분석할 것인가, 과연 이러한 대상을 가지고 '과학'이 가능할 것인가? 저는 이렇게 봅니다. 사실은 '실천'의 문제가 사회과학에서는 더 중요한 예측성을 지니는 것이 아닐까?"
선생님의 강의에 홀려 나는 끌려가고 있었다. 너무도 자연스럽게 '사회운동에 있어서의 실천의 문제'로 말씀은 연결되고 있었다.
"여러분, '법칙'과 '실천' 중에서 어느 것이 상위개념입니까?"
나는 <감옥으로부터 사색> 중 '나는 걷고 싶다'는 글이 생각났다. 거기서 눈사람이 그려져 있었지. 이론과 실천의 두 다리로 걸어야 한다는 말씀, 절름발이가 되어서는 안된다는 말씀은 한동안 내 가슴에 아로새겨졌던 글귀였다. 그런데 이 두 다리 중 어느 것이 더 상위개념이냐고?
"법칙이라는 것도 결국 사람들이 만든 것입니다. 법칙이나 이론이라는 것도 주체적 실천의 결과물이자 유산일 뿐입니다. 중요한 것은 사회에 대한 적극의지입니다. 진보를 향한 사회변화에의 의지입니다. 객관적, 과학적 관점보다는 실천적, 주체적 관점이 더 중요합니다. 실천이 더 상위개념입니다. 학문이란 '객관적 법칙성'입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암기화의 결과 만들어진 모든 text, 객관성, 법칙성으로부터 '해방'이 필요합니다. 결국 법칙이라는 것은 실천의 결과로 만들어진 하위개념에 불과합니다."
나는 이른바 '인지부조화' 상황에 빠지고 있었다. 나는 이론과 실천이 대등한 개념이며 상보적 관계라고 굳게 믿고 있었다. 그걸 두다리라고 믿고 있었다. 그런데 선생님께선 아예 이 동등한 관계를 파괴시키시고 계셨다. 실천이 먼저고, 더 중요하며, 아예 동력(動力)이라는 말씀이셨다. 나는 마른 침을 꿀꺽 삼키고 있었다.
"결국 사회과학의 연구자가 지녀야 할 연구방법과 연구자의 자세를 저는 다음의 두가지로 생각합니다. 첫째는 '철학적 추상력'과 둘째는 '문학적 상상력'이지요."
"철학적 추상력이란 복잡하게 연관된 현상들을 개념화하는 능력입니다. 가령 예를 들어 우리가 '식물'이라고 했을 때, '식물'이란 단지 개념이지 진짜로 식물이란 실재가 존재하는 것은 아니잖아요. 진짜로 있는 것은 소나무, 담쟁이덩굴, 장미꽃이거든요. 우리가 '식물이 있다'고 할 때는 다양하게 존재하는 현상들을 단지 '식물'이라는 추상적 개념으로 개념화해내는 것입니다. 동일하게 '동물', '물질'이라는 것도 마찬가지겠지요. 그런데 이 철학적 추상력은 대단히 취약한 것입니다. 이 철학적 추상력만 있으면 건조(dry)해지고 경직되기 쉽지요. 개미에게 물어보세요, 네 이름이 개미인지. 인간은 인간이 이름 붙인 한계 내에서의 자연(대상) 밖엔 인식하지 못합니다. 이렇게 보면 앞에서 말씀드린 노자의 개념은 대단히 큰 것입니다. 그러므로 '철학적 추상력'은 반드시 '문학적 상상력'으로 보완되어야 합니다."
"문학적 상상력이란 3월 하늘에서 날아가는 제비를 보고 '봄이 왔구나'를 생각하는 것입니다. 제가 여러번 말씀드렸는데 '얼굴'의 어원이 '얼의 꼴(魂形)'이라는 것 알고 계시죠? 역시 제가 감옥에 있을 때 얘긴데, 한방에 있던 친구 어머님이 접견을 왔다 가셨는데 여동생을 서울역 앞 사창가에서 마침 지나가시던 어머님이 우연히도 보셨다는 거였어요. 하여튼 나가기만 하면 여동생을 죽인다고 난리였지요. 그 여동생이 보따리 하나 싸들고 서울역으로 도망쳐 올라온 나이가 열셋이었답니다. 저는 여기서 '서울의 얼굴'은 무엇인가,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서울의 얼굴은 그 누이동생의 얼굴이 아닌가? 나이 열세살에 서울역으로 올라와 결국 10년 후 서울역 앞 사창가에서 짙은 화장으로 앉아 있는 그 여동생의 얼굴이 서울의 얼굴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입장과 당파성'에 관련된 말씀을 하셨다. 작년 이맘때 사회과학입문 강의에서 내게 깊은 감동을 주셨던 그 말씀이셨다. 그러나 딱 일년이 지난 후 내 마음 밭은 달라져 있었다.
"'입장'이란 '서있는 자리(立場)'라는 말입니다. 또한 '실천의 조건'입니다. 우리는 관념적 입장을 경계해야 합니다. 여기서 '관념적 입장'이란 '비실천적 입장'을 말합니다. 인간이 개미를 개미라고 이름 붙이는 것은 인간적 당파성은 아닌가? 저는 이를 인간적 한계라고도 봅니다. 인정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지요. Marx는 '세계는 해석. 관찰의 대상이 아니라 변혁, 실천의 대상'이라고 말했지요."
"산에서 사는 사람에게는 해가 산에서 떠서 산에서 지는 것으로 보입니다. 섬사람에게는 해가 바다에서 떠서 바다로 지는 것으로 봅니다. 도시에서 사는 사람은 해가 빌딩에서 떠서 빌딩으로 지는 것으로 보지요. 아마 우리는 해가 지고 뜨는게 아니라 해는 가만히 있고, 지구가 해를 도는 것이라 생각하며 앞의 생각들을 비웃을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그렇게 산사람과 섬사람, 도시인들을 비웃는 당신은 지금 해를 어디서 보고 있습니까? 그것은 입장이 없는 것입니다. 입장이 없으면 인식이 없고, 인식이 없으면 실천이 있을 수 없습니다. '객관'이라는 단어를 뒤집으면 '관객'이 됩니다. 그것은 구경꾼이 되겠다는 것이고 방관하겠다는 말입니다."
"제가 글씨로 썼던 것인데, '머리 좋은 것이 마음 좋은 것만 못하고, 마음 좋은 것이 손 좋은 것만 못하고, 손 좋은 것이 발 좋은 것만 못하다. 관찰보다는 애정이, 애정보다는 연대가, 연대보다는 입장의 동일함이 관계의 최고형태이다'는 것입니다."
"결국 대학에서 결정하는 것은 '나는 누구와 같이 살 것인가?', '나는 어디에 설 것인가?'입니다. 먼저 이게 결정되지 않으면 졸업하고 계속 고민하고 갈등하고 치이게 됩니다."
내가 정말 사랑하는 같은 과의 81년생 동기, 오정민 학우는 제 책에다 '노동자가 나를 대학에 보냈다'고 써놓았다. 노동자가 생산한 잉여가치의 총합이 대학을 만들었고 그 가치의 집적으로부터 만들어진 내 삶과 대학이 존재한다는 각성이었다. 정민이는 이미 줄을 선 것이었다. 물론 나 역시 정민이와 같은 줄을 선 것은 느끼고 있었다. 하지만 참을 수가 없었다. 나는 나도 모르는 사이에 큰 소리로 느닷없는 질문을 던졌다.
: 그렇다면 결국 모든 사람들의 입장은 다 의미 있는 것이 아닙니까? 우리가 입장과 입장이 충돌할 때 타인의 입장을 비판할 근거란 그렇다면 과연 무엇입니까? 어떻게 옳고 그른 것이 있을 수 있습니까? 저는 입장을 가지기보다 옳은 편의 뒤에 줄을 서고 싶습니다.
선생님께서는 대답해주셨다.
"여기서의 '입장'들이란 반드시 '상위개념'으로 지향되어야 한다는 전제를 가져야 합니다. 자본에 의한 억압이란 반드시 노동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닙니다. 지난 시간에도 말했듯이 소비자도 피착취자이며, 심지어는 자본가조차도 억눌려 있습니다. 자본가들 역시 이 자본의 논리 아래서 얼마나 비인간화됩니까? 따라서 자본주의의 극복은 노동의 해방과 동시에 자본의 해방이어야 합니다. 궁극적으로 자본과 노동의 가치지향은 상위로 이루어져야 합니다. 타도의 논리는 '和而不同'에서 또다른 '同의 논리'는 아닙니까?"
그렇다면 자본주의 극복의 주체로 자본가도 나서야 하는가? 나는 다시 손을 치켜들었다.
: 이해되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전경련'과 '민노총'이 똑같은 상위개념으로 지향해야 한다는 말씀인듯 한데 저는 불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선생님께서는 고개를 끄떡거리셨다.
"민주주의란 본질적으로 '동일한 목표에 다다르는 다른 방법론의 공존'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전혀 다른 목표에 다다르는 두 개의 방법론 사이에서 민주주의는 불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결국 민주주의도 계급내부의 것이겠지요. 다시말해 계급 간에는 민주주의가 존재할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답변이 됩니까?"
내가 끓었던 강의는 다시 재개되었다.
"'사회는 변화한다', 이는 사회과학의 최대성과입니다. 종래의 입장은 사회는 변화하지 않는다, 였지요. 집에서 애가 이제 자기도 십대라는 얘길해요. 틴에이저라는 것이지요. 그래서 제가 물었습니다. 틴에이저(teenager)는 몇살부터 몇살까지냐? 그랬더니 열살부터 열아홉이라고 해요. 저는 틀렸다고 했습니다. teen이라는 말이 들어가야 한다고 했지요. 열두살도 teen이라는 말이 들어가지 않으니까 아직 틴에이저가 아니다. 틴에이저는 13부터 19까지라고 했습니다. 이처럼 사회적 관념은 나름대로의 법칙성을 내재하고 있습니다. 사회는 그저 변하는 것이 아니라 객관적 변화요인을 내재하고 나름대로의 법칙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저는 이를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窮而變 變卽通(궁이변 변즉통)' 그러니까 '궁하면 변하고, 변하면 통한다'는 것이지요."
어느새 시간이 많이 흘러 진도가 총알처럼 나갔다. 끝으로 '경제학 연구자의 자세'였다. 선생님께서는 칠판에 다음과 같이 쓰셨다. 본래는 마셜의 말인데 이를 동양의 개념으로 쓰면 다음과 같다는 말씀이셨다.
春風大雅能容物 秋水文章不染塵(춘풍대아능용물 추수문장불염진)
"봄바람(春風)은 크고(大) 아량이 있어(雅) 능히(能) 만물(物)을 포용하고(容), 맑고 차디찬 가을물(秋水)과 같은 사상(文章)은 세상의 티끌(塵)에 물들지(染) 않는다(不), 는 뜻입니다."
"그러니까 봄바람(春風)이 말하고자 하는 것은 마샬이 말한 warm heart라고 할 수 있고, 가을물(秋水)이란 마샬의 cool head라고 할 수 있습니다. 다르게 말해서 전자는 '문학적 상상력'이라고 할 수 있고, 후자는 '철학적 추상력'이라고 할 수 있겠지요. 본질적으로 Head는 '작업기'라고 할 수 있고, Heart는 '동력'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마치 기계에서처럼, 동력이 작업기를 그러하듯이, heart는 haed를 규정하는 것이지요."
다음주(3월 26일이니까 이크, 오늘이군!) 정치경제학 수업은 사회과학부의 네 학생이 '제3장 자본주의의 형성'단원을 발표하는 것으로 숙제가 부여되어 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나 역시 그 네명 중에 하나다. 나를 제외한 세 사람이 각각 사회과학부 내에서 가장 출중한 실력자(?)들이기에 발표는 흥미도 가고, 기대도 되지만 아무래도 선생님의 강의가 반으로 줄어들 것이기에 이 중계의 양도 반으로 줄어들 것 같아 안심이다.(어쩌면 더 늘어날지도 모르지)
참, 빼먹을 뻔 했군, 아니면 오히려 '강조'로 써도 좋겠다. 선생님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지.
"저는 결국 절대적 진리의 존재를 믿지 않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진리관에 관해 논쟁했습니다. 개중에는 시대나 지역을 초월하는 절대론적 입장을 지닌 이들과 시대와 지역에 따라 변화하는 상대론적 입장을 가진 이들이 있었지요. 그런데 저는 이 역시 대단히 인간중심의 사유이자 입장이라고 생각합니다. 인간이 규정하고 체계지웠으며 발전시켰던 하나의 논리와 대상을 '절대적인 진리'이자 가장 공정한 옳고그름이라고 신앙하는 것 역시 이데올로기라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