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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마음공부방] 원불교교사 제 1편 개벽의 여명 제 2장 소태산 대종사 5. 대종사의 대각
원불교교사 제 1편 개벽의 여명 제 2장 소태산 대종사
5. 대종사의 대각
설교 : 박세훈 교무님
일시 : 원기 106년 106년 4월 28일
타이핑 : 심현승
제1편 개벽의 여명(開闢 - 黎明) 제2장 소태산 대종사(少太山 大宗師) 5. 대종사의 대각 원기 원년(1916·丙辰) 4월 28일 이른 새벽에, 대종사, 묵연히 앉으셨더니 우연히 정신이 쇄락해지며 전에 없던 새로운 기운이 있으므로 이상히 여기시어 밖에 나와 사면을 살펴보시니 천기가 심히 청랑(晴朗)하고 별과 별이 교교(皎皎)하였다. 이에 맑은 공기를 호흡하시며 뜰 앞을 두루 배회하시더니 문득 이 생각 저 생각이 마음에 나타나, 그동안 지내온 바가 모두 고생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며 고생을 면하기로 하면 어떻게 해야겠다 하는 생각이며 날이 밝으면 우선 머리도 빗고 손톱도 자르고 세수도 하리라는 생각이 일어났다. 날이 밝으매 대종사, 먼저 몸을 청결히 하는 기구들을 찾으시는지라 이를 본 가족들은 대종사의 의외 행동에 한편 놀라고 한편 기뻐하여 그 동작을 주시하였으니 이것이 곧 대종사 출정(出定)의 초보였다. 그날 조반 후에 이웃에 사는 몇몇 마을 사람이 동학의 『동경대전(東經大全)』을 가지고 서로 토론하던 중 특히 “오유영부 기명선약 기형태극 우형궁궁(吾有靈符其名仙藥其形太極又形弓弓)”이란 구절로 갑론을박하는 것을 듣고 문득 그 뜻이 해석되는지라, 대종사 내심에 대단히 신기하게 여기시었다. 얼마 후에 또 유학자 두 사람이 지나다가 뜰 앞에 잠깐 쉬어 가던 중 『주역』에 “대인 여천지합기덕 여일월합기명 여사시합기서 여귀신합기길흉(大人與天地合其德與日月合其明與四時合其序與鬼神合其吉凶)”이란 구절을 가지고 서로 토론하는 것을 들었는데 그 뜻이 또한 환히 해석되시었다. 이에 더욱 이상히 여기시어 ‘이것이 아마 마음 밝아지는 증거가 아닌가’ 하시고 전날에 생각하시던 모든 의두를 차례로 연마해 보신즉 모두 한 생각을 넘지 아니하여 드디어 대각을 이루시었다. 대종사, 이에 말씀하시기를 “만유가 한 체성이며 만법이 한 근원이로다. 이 가운데 생멸 없는 도와 인과보응 되는 이치가 서로 바탕하여 한 두렷한 기틀을 지었도다.” 하시었다. 이로부터 대종사의 심경은 날이 갈수록 명랑해지고 야위던 얼굴과 몸에 기혈이 충만하여 그간의 모든 병증도 차차 저절로 회복되니 보는 이들 누구나 정신이 황홀하지 않을 수 없었다. 대종사의 생장하신 길룡리는 산중 궁촌으로 견문이 심히 적었고 대종사께서도 글공부한 시일이 2년에 불과하였으므로 그동안 어떤 종교의 교의(敎義)와 역사를 듣고 배우신 바가 없었으나, 듣고 보신 바가 없이 스스로 원을 발하시고 스스로 정성을 다하시고 스스로 정(定)에 드시고 스스로 대각을 성취하여, 필경은 천만 교법의 대소 본말을 일원의 이치로써 관통하시었으니 이는 곧 영겁에 수도의 종성(種性)이 매(昧)하지 않은 까닭이라 할 것이다. |
반갑습니다. 지적도를 통해서 대종사님의 행적을 찾아본 것은 이경주 교우가 처음이 아닐까 생각이 듭니다. 그 당시 신문 기사를 통해서 대종사님의 행적을 찾아본 적은 있어도, 지적도를 통해서 실제로 대종사님이 활동하셨던 모습을 찾는 것이 새롭기도 하고, 대종사님의 역사를 만들어가는 데에 종합적인 부분에서 큰 역할을 할 것으로 생각이 듭니다. 오늘 묘하게 대각개교절을 맞이하여 대종사님의 대각을 공부하게 되었습니다. 오늘은 교리를 공부하는 것보다는 기록에 근거한 대종사님에 대한 역사적인 부분을 보는 것입니다. 교리는 어느 정도 연마가 필요하지만, 어떻게 대종사님을 기록하고 있는지, 대종사님의 화려한 모습만 골라 놓은 것이 아니라, 대종사님의 다양한 인간적인 모습들을 살펴보면 좋을 것 같습니다. 대종사님의 대각의 과정과 대각했을 때의 마음, 대각한 이후의 마음, 대각 당시의 제자들이 어떻게 대종사님의 모습을 보았는지 살펴보면 좋을 것 같습니다.
[심촉]
주산 송도성 종사의 심촉心燭 <회보> 9호(1934년)에 수록 나의 마음 한 낱의 밝은 촛불을 늘 이 몸 안에 켜 두오면 깊고 얕음 환하게 비치울지니 전도 낭패 되올 리 전혀 없도다 회오리 치는 사사(私事)로운 바람 욕심 소낙비 그 촛불을 스쳐가고 갈팡질팡 그 걸음 또한 정처 없다 우리 공부 함쓸 바 무엇이매뇨 스러진 그 촛불 다시 켜우고 꺼지거든 또다시 또 또 또다시 비바람과 싸우면 또 또 또다시 끄고 켜기 그 수 몇 번이었나 바람 자고 비 개인 맑은 하늘에 나의 마마음 한낱의 밝은 촛불만 우주 간에 호올로 휘황하더라 |
주산 송도성 종사님의 심촉이라는 시입니다. 역사로 봤을 때에도 가장 고증하기 어렵고 찾기 어려운 것이 깨달음에 대한 역사 아니겠어요? 깨닫기 전에는 제자가 없었으니깐 깨달음은 대종사님 본인 밖에 모르시잖아요. 주산 송도성 종사님께서 수행자로서의, 구도자로서의 고뇌들을 시로 만든 것인데, 이 시로 만든 심경이 아닐까 상상해봅니다.
이것이 주산 송도성 종사님이 쓰신 구도 과정에서 나타난 시인데, 대종사님의 심경이 이랬을 것 같습니다. 여기 보면 조금 마음을 움직이는 이런 문구가 있습니다. '꺼지거든 또다시 또 또 또다시'. 얼마나 많이 깨닫기 위해서 반복을 하시고 수 없이 마음을 잡았다 놓았다 하셨을까요. 대종사님이 깨닫기 직전의 문헌들을 보면 이렇습니다. 때로는 기도도 해보고, 때로는 묵조(선)도 해보고, 때로는 화두도 들어보고, 때로는 스승도 찾아보고, 고창 연화봉을 가서는 겨울에 정신을 차리기 위해서 냉수마찰도 하시고 온갖 것을 하셨습니다. 이런 구도의 과정이 주산종사님의 이 시에 나와 있습니다. 대각이라는 것이 드라마틱하게 한 번에 딱 끝나는 것이 아니라, 천각만각 무수한 깨달음들이 응집되어서 4월 28일 날 터진 것입니다. 0에서 100으로 간 것이 아니라, 뭉치고 뭉쳐서 터진 것입니다. 것이 예비대각여래위에 오르신 주산 송도성 종사님의 시에도 나와 있지요. '끄고 켜기 그 수 몇번이었나.', '또다시 또 또 또다시' 얼마나 많이 마음을 챙기셨겠어요. 이런 과정으로 대종사님이 대각을 하시게 되었는데, 우리도 마음공부를 하다가 마음이 나태해지고, 잘 안된다 힘들다, 반복하는 것 같다는 마음이 드는데 대종사님 같은 상근기도 얼마나 많이 마음을 잡고 챙기고 그러셨을까 생각이 듭니다. 뭉치고 뭉쳐서 4월 28일, 음력 3월 26일날 대각을 하셨는데, 결정적으로 그 전에 3번에 입정이 있었습니다.
[입정]
사진은 원기 28년 귀영바위터 사진입니다. 저기서 대종사님께서 입정에 드셨습니다. 바랭이네가 밥을 차리고 갔는데 밥을 뜨는 중간에 입정에 드셨습니다. 대각은 출정입니다. 22세 때부터 입정에 드셨습니다. 선진터 나룻터에서 입정에 드셨습니다. 지난번 이야기한 것처럼 소변을 보다가, 옷을 올리는 것도 잊고 입정에 드시고 주변 사람들이 미친 사람으로 알았습니다. 가족들도 미친 것으로 알았습니다. 대종사님 부인되시는 양하운 대사모님도 대종사님이 정신 좀 차릴 수 있다고 기도하시기도 했다고 합니다. 아무도 믿어주지 않고, 정신이 이상해진 것으로 보았습니다. 대종사님뿐만 아니라 최수운 선생님도 주변 가족들이 병든 것으로 보았습니다. 대각 직전에는 그런 어려움이 있는 것 같습니다. 이렇게 선진터 나룻터에서, 귀영바위집터에서, 그리고 강변입정상까지 3번을 입정에 듭니다. 다른 사람들이 장보러 갔다가 장을 보고 올 때까지 입정에 들어있습니다.
해가 뜨기 직전인 것입니다. 해가 뜨기 직전에 가장 어둡잖아요. 여러분들도 그러지 않을까 싶습니다. 내가 지금 가장 괴롭다고 하면 그 괴로움 이후에 큰 깨달음이 오지 않을까 싶습니다. 제가 보니깐 아주 큰 괴로움을 잘 이겨낸 분들이 큰 깨달음이 있습니다. 평범하게 살아가는 분들은 평범하게 살지만 또 깨달음에 대한 구도의 열정이 안 나오는데, 어려움을 겪으면 겪을수록 어려움을 벗어나고자 하는 마음의 물줄기를 잘 바꾸면 그것이 구도의 과정으로 이루어집니다.
[간화선과 묵조선]
여러 사람들이 보기에 대종사님이 간화선(看話禪)과 묵조선(黙照禪)을 같이 했다고 합니다. 간화선이라는 것은 간이 볼 간(看), 화가 화두할 때 화(話)자입니다. 화두를 드는 것을 간화선이라고 합니다. 한국 불교는 거의 간화선 흐름입니다. 간화선이 아닌 것은 낮은 것으로 봅니다. 지금 조계종에서는 '이뭣고?'로 간화선을 합니다. 이게 화두를 들고 하는 간화선입니다. 대종사님께서도 이럴 것 같습니다. 삼령기원상에서는 하늘을 보고 의심을 내셨잖아요. 삼령기원상, 구사고생상에서는 간화선이 아닐까 싶습니다. 이때는 계속 생사의 이치를 알고 싶고, 우주의 이치를 알고 싶어하셨잖아요. 삼령기원상, 구사고행상에서는 간화선일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합니다. 묵조선이라는 것은 조동종에서 하는 선인데, 묵자가 묵(默), 조가 비칠 조(照), 해석해보면 적적성성인 것입니다. 묵이라는 것은 적적, 조라는 것은 성성. 우리가 하는 단전주선도 묵조선의 일종인 것입니다. 묵조선의 일종에다가 단전주가 들어와서 묵조선에서 하나 더 들어간 것인데, 22세 때 부터 정에 드시기 시작합니다. 저 같으면 설교하다가 갑자기 정에 들어가지고 몇 시간씩 우두커니 서있는 것. 이때는 묵조선으로 들어가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간화선으로 '이 일을 어찌할꼬' 하다가 그 '어찌할꼬' 마저도 없어지는 단계. 그래서 22세 때부터 입정에 들어가셔서 26세 때 대각을 하십니다. 간화선과 묵조선, 지금 한국불교의 흐름은 간화선이지만, 간화선과 묵조선을 같이 병행하시다가, 나중에는 이제 후대의 제자들에게는 단전주선, 묵조선으로 이야기합니다.
[모든 것이 평범한 성자]
대종사님께서 4월 28일(음력 3월 26일)에 깨달으시는데 대종사님의 깨달음은 드라마틱하지 않습니다. 너무 평범합니다. 대종사님은 다른 성자들과 비교해보면 태어난 것도 평범하시고 대각한 것도 평범하시고 열반하신 것도 평범합니다. 그것이 특별하지 않아서 우리에게 더 희망을 주는 것 같습니다. 지금 앞에 보는 사진이 부처님의 성도과정을 표현한 수하항마상(樹下降魔相)입니다. 수하항마상에서 부처님께서는 35세 때 12월 8일에 대각을 하고 그 때를 성도절이라 합니다. '모든 하늘과 천신들을 보배일산, 보배꽃, 상서구름, 꽃비로 하늘을 가득 채우고, 끝 없는 광명이 시방세계에 두루하며 미묘한 음악이 창공을 울리는 서광 속에 석가모니는 깨달으셨다.' 라고 우리말 팔만대장경에 이렇게 적혀있습니다. 부처님의 성도는 보배꽃들이 있고, 상서로운 구름이 있고 광명이 비치고 묘한 음악들이 나오고 그런 게 상상이 되죠? 지금 같으면 CG가 엄청 많이 들어갔겠죠? 부처님의 본의는 아닐 것입니다. 3천년이 지나면서 뭔가 특별함을 강조하기 위해서 만들어 하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그래서 저는 이 자체를 이상하게 보는 것은 아니지만 깨달음이 신비하게 보이잖아요? 그리고 부처님하고 나는 종이 다른 사람, CG가 들어간 별개의 사람, 외계인처럼 느껴지잖아요.
가장 최근에 깨달으셨던 분들 중 한 명인 증산 선생님은 정확한 자료가 없습니다. 수운 최제우 선생님은 본인이 쓴 자료가 있습니다. 최제우 선생님은 37세에 깨닫습니다. 대종사님이 빨리 깨달으신 것 같아요. 수운 최제우 대신사는 37세에 깨닫게 되는데 1860년 4월 5일 날 깨닫게 됩니다. 우리는 원기 1년으로 하는데 천도교에서는 포덕 1년이라고 합니다. '안심가<安心歌>'에 이렇게 나옵니다. '4월이라 초5일에 꿈일런가 잠일런가 천지가 아득해서 정신수습 못할러라. 공중에서 외치는 소리 천지가 진동할 때'. 수운 최제우 대신사는 천사문답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한울님과 문답하는 과정이 나옵니다. 신비하잖아요?
[대각(大覺) 그리고 출정(出定)]
대종사님은 교사에 읽어보면 나오잖아요. 대종사님은 드라마틱하지 않습니다. 우리도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물리적인 변화도 없습니다. 점진적이고 점차점차 되고 자연스럽습니다. 뭔가 전혀 CG가 없는 인간극장 같습니다.
원기 원년(1916·丙辰) 4월 28일 이른 새벽에, 대종사, 묵연히 앉으셨더니 우연히 정신이 쇄락해지며 전에 없던 새로운 기운이 있으므로 이상히 여기시어 밖에 나와 사면을 살펴보시니 천기가 심히 청랑(晴朗)하고 별과 별이 교교(皎皎)하였다. |
한자가 많이 들어가서 그렇지 완전 인간극장입니다. 계속 머리도 안 깎고, 피골이 상접하고, 한센병 걸려서 폐인처럼 있다가 어느 날 나왔는데 이 날은 평소보다 컨디션이 좋습니다. 쇄락이라는 것은 상태가 좋고, 초롱초롱하다는 의미입니다. '오늘 컨디션이 좋은데' 이런 정도일까요? 다시 방으로 들어가지 않고, 밖으로 나왔습니다. 밖에 나와서 둘러보니 날씨가 좋습니다. 청량하고 별이 반짝거립니다. 이것이 깨달은 것입니다. 다른 성자들의 깨달음은 CG가 많이 들어간 공상과학 같으면, 대종사님은 인간극장같지 않나요? 나왔는데 평소보다 조금 컨디션이 좋고, 밖에 나오니 날씨도 좋고, 별이 밝은 것입니다.
저 사진은 동해에서 해가 뜨기 직전의 사진입니다. 해가 뜨기 직전에는 어둡잖아요. 그리고 10분만 지나도 저렇게 밝아집니다. 일출을 보면 그렇습니다. 너무나 차이가 심합니다. 그런데 어떤 느낌이냐면 대종사님이 대각의 과정을 날이 밝는 거에 많이 비유를 하시잖아요? 저의 지극히 개인적인 관점이라 확인을 할 수는 없지만, 그것이 가장 적절한 것 같습니다. 밝은지 모르게 밝아집니다. 그렇지만 그 순간 대명천지가 되는 것입니다. 점진적으로 밝음이 오는지 모르게 밝아지고, 어둠이 사라지는지 모르게 사라집니다.
대종경(大宗經) 제7 성리품(性理品) 1. 대종사 대각을 이루시고 그 심경을 시로써 읊으시되 “청풍월상시(淸風月上時)에 만상자연명(萬像自然明)이라.” 하시니라. |
대종경(大宗經) 제1 서품(序品) 1. 원기(圓紀) 원년 4월 28일에 대종사(大宗師) 대각(大覺)을 이루시고 말씀하시기를 “만유가 한 체성이며 만법이 한 근원이로다. 이 가운데 생멸 없는 도(道)와 인과보응 되는 이치가 서로 바탕하여 한 두렷한 기틀을 지었도다.” |
그렇게 대종사님이 청풍월상시 만상자연명(淸風月上時 萬像自然明)이라 말씀하십니다. 만유가 한 체성이요, 만법이 한 근원이라는 말씀은 대각하시고 바로 하신 말씀은 아닙니다. 조금 있다가 하십니다. 아까랑 똑같죠? 밖에 나오니 날씨가 좋습니다. 별이 밝고 보입니다. 그래서 청풍월상시, 맑은 바람에 달이 떴습니다. 그랬더니 만상자연명, 모든 것이 스스로 밝습니다. 내가 비추어서 밝은 것이 아니라 그냥 밝습니다. 이런 것이겠지요. 내가 깨치고 나니깐 만상자연명이다. 만물이 스스로 밝게 드러난다는 것은 대소유무의 이치와 시비이해를 다 알게 되는 것이지요.
[한번의 대각으로 깨달음이 완성 되었을까?]
그래서 오늘은 역사적으로 접근해보면서 이런 의문을 가져봅니다. 대종사님이 한번의 대각으로 깨달음이 완성 되었을까요? 어땠을 것 같나요? 4월 28일 이전에는 껌껌하고, 4월 28일 되는 순간 갑자기 레벨이 올라서 되는 것일까요? 그 다음부터는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대각이 완성된 것일까요? 제가 이것은 대종사님에 대해서 역사적으로 접근한다고 했잖아요. 대종경선외록 초도이적장에 이렇게 나옵니다. 대각하시고 나서 심정을 이렇게 표현하십니다.
대종경선외록(大宗經選外錄) 4.초도이적장(初度異蹟章) 2절. 대종사 득도(得道)하신 후 심독희자부(心獨喜自負)하신 법열(法悅)의 심경을 다음과 같이 술회하시었다. "도(道)를 안 후로는 초동목수(草童牧揷)의 노래 소리도 나의 득도를 찬양하는 것 같고, 농군들의 상두 소리도 내가 안 이치를 노래 하는 것 같았다. `일심 정력 드러대어 석 고르게 잡아서 방 고르게 잘 심세` 하는 농부의 노래소리가 그대로 도를 아는 말 같아서 그 사람을 붙들고 물어 본 일도 있었다. 또는 그해 겨울 범현동(帆縣洞)에 있을 때에는 생사 고락 그 이치며 우주 만물 그 이치를 억만 사람 많은 중에 내가 어찌 알았는고 생각하니 생각할수록 흥이 나서 하룻밤을 흥타령으로 앉아 세우고, 이른 새벽 눈은 척설(尺雪)로 쌓였는데, 굽 나막신을 신은 채 뒷산에 올라가 사방으로 돌아다니다가 돌아왔으되 신발에 눈 한 점 묻어 있지 않은 일도 있었다." |
노래하는 농부의 노래 소리가 그대로 도를 아는 말 같았다고 하십니다. 깨친 입장에서 보니깐 모든 말과 모든 모습이 다 도로 보이는 것입니다. 그 사람에게 도를 아는지 물어봅니다. 깨치고 나서 너무 기분이 좋아서 초동 목수가 노래하는 것도 내 깨달음을 찬양하는 것 같고, 농군들의 노래도 일원상의 진리를 말하는 것처럼 들려서 실제로 진리를 아는지 물어보고 그럴 정도입니다. 그런데 깨달음이 한 번에 완성되지 않았을 것 같은 결정적인 구절이 나옵니다. 대종사님이 4월 28일날 봄에 깨달았는데 겨울에 눈밭을 돌아다니셨다고 합니다. 대종사님께서 깨달으시고 나서 완성되기 까지는 시간이 좀 걸렸던 것 같다고 예상해봅니다. 이것은 제가 하는 이야기가 아니라 소태산 평전을 쓰신 이혜화 교도님께서 하는 말씀인데 일리가 있는 것 같습니다.
소태산이 직접 지은 기념문 중에서 "그러하던 중 지난 병진(1916), 정사(1917)에 이르러 천명이 그러함인지 부모님의 정성에 감화됨인지 소자의 정신에 일조의 서광이 비춰와서 평생 숙원인 일과 이치에 대강 분석이 나오며 양양한 전도를 가히 예측할 만한 기쁨을 얻게 되었습니다." |
대종사님께서 부모님이 열반하시고 나서 기념문을 올리셨을 때 이런 구절이 나옵니다. '지난 병진년(1916년)과 정사년(1917년)에 이르러', 1916년과 1917년 사이에 서광이 비춰서 깨달았다고 말씀하십니다. 1916년에 깨달았으면 병진년이라고만 했을 겁니다. 이런 것을 유추해봤을 때, 본인의 깨달음이 완성되는 데에 실제로 시간이 걸리지 않았을까 예상해봅니다. 그 것을 증명할만한 예화가 있습니다. 대종사님이 깨닫고 나서 고창 선은사에 갔을 때 불여만법위려자시심마(不與萬法爲侶者是甚魔)라는 글귀가 있었습니다. 그 문구를 보는데 대종사님이 대각하고 나서 모든 것을 비춰보면 한 생각을 넘지 않았는데 이것은 해석이 잘 안 되는 거예요. 시원하지 않아. 이것이 '만법과 더불어 짝하지 않은 것이 무엇인가'인데 한 번에 밝아지지 않는 거에요. 대종사님이 '내가 왜 그러지? 대각했는데' 하는데 대종사님 수필법문에 나옵니다. 하루 밤을 잘 자고 나서 다시 마음을 챙겨서 보니 그 때 해석이 되었다고 합니다.
깨달음이라는 것은 드라마틱한 것은 아닙니다. 칼로 베듯이 이때부터는 깨달은 것이고 그런 것이 아닙니다. 천각만각으로 밝아지다가 조금 어두워질 수도 있고, 그런데 대세가, 큰 흐름에 완전히 들어간 것이지만 조금 어두워질 때도 있었다고 보는 것입니다. 제가 보기에는 이렇게 골라지는 과정이 1916~17년 아니었을까 생각합니다.
[언제 대각하신 줄 알으셨을까?]
그러면 대종사님께서는 언제 대각하신 줄 아셨을까요? 너무 평범했잖아요. 오늘 아침에 일어났더니 컨디션이 좋고 그래서 밖에 나가보니 날씨도 좋고, '어 깨쳤네?' 이렇게 알았을까요? 부처님 같이 천시도 내려오고 뒤에 음악도 나오고 구름도 뜨고 대각한 거를 알 거 아녜요? 그리고 최수운 대신사님처럼, 한울님과의 대화를 해야지 깨달은 걸 알거 아녜요. 대종사님은 평소와 다르지 않았잖아요. 날씨가 조금 좋고, 컨디션이 조금 좋았는데 어떻게 알았을까. 여러분들이 보신 교사에 나오죠. 아까 같이 우리가 봤을 때는 깨달은 것입니다. 몸의 컨디션도 좋고, 다른 때와 다르게 날씨도 초롱초롱하고, 이러고 나서 아침에 한 번도 씻지도 않았는데 그 날 씻은 거예요. 오늘 한 내용에 나옵니다. 그러고 돌아가다가 동학 신도들이 동경대전의 문구를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그날 조반 후에 이웃에 사는 몇몇 마을 사람이 동학의 『동경대전(東經大全)』을 가지고 서로 토론하던 중 특히 “오유영부 기명선약 기형태극 우형궁궁(吾有靈符其名仙藥其形太極又形弓弓)”이란 구절로 갑론을박하는 것을 듣고 문득 그 뜻이 해석되는지라, 대종사 내심에 대단히 신기하게 여기시었다. |
오유영부 기명선약 기형태극 우형궁궁(나에게 영부가 있으니, 그 이름은 선약이라. 그 형태는 태극이고. 또 그 형태는 궁궁이라.) 그런데 이것을 듣고 나서 그 뜻이 그냥 알아집니다. 그러면서 '조금 이상한데' 생각하십니다. 이혜화 선생님께서는 이때까지는 깨달은 것을 몰랐을 것이라고 말씀하시고 대부분 그렇게 생각합니다. 배우는 것 같습니다. 저는 묻지 않고 아는 체 했다가 해가지고 혼났습니다.
얼마 후에 또 유학자 두 사람이 지나다가 뜰 앞에 잠깐 쉬어 가던 중 『주역』에 “대인 여천지합기덕 여일월합기명 여사시합기서 여귀신합기길흉(大人與天地合其德與日月合其明與四時合其序與鬼神合其吉凶)”이란 구절을 가지고 서로 토론하는 것을 들었는데 그 뜻이 또한 환히 해석되시었다. 이에 더욱 이상히 여기시어 ‘이것이 아마 마음 밝아지는 증거가 아닌가’ 하시고 전날에 생각하시던 모든 의두를 차례로 연마해 보신즉 모두 한 생각을 넘지 아니하여 드디어 대각을 이루시었다. |
그러고 걸어가다가 유학자들이 토론하고 있는데, 이것도 한번 들으니 뜻이 알아집니다. 하나만 알아지면 괜찮은데 하나가 더 알아지니 이상하잖아요. 이것은 컨디션이 좋고, 날씨가 좋은 정도가 아니라, 나에게 깨달음이 있나보다 생각해서 그 동안 본인이 의심이 걸렸던 것을 생각을 일으켜봤더니 한 생각을 넘지 않고 알아집니다. 그러고 나서 대각을 했는지 아셨습니다.
그러고 걸어가다가 유학자들이 토론하고 있는데, 이것도 한번 들으니 뜻이 알아집니다. 하나만 알아지면 괜찮은데 하나가 더 알아지니 이상하잖아요. 이것은 컨디션이 좋고, 날씨가 좋은 정도가 아니라, 나에게 깨달음이 있나보다 생각해서 그 동안 본인이 의심이 걸렸던 것을 생각을 일으켜봤더니 한 생각을 넘지 않고 알아집니다. 그러고 나서 대각을 했는지 아셨습니다. |
그러고 나서 말씀하신 것이 “만유가 한 체성이며 만법이 한 근원이로다. 이 가운데 생멸 없는 도와 인과보응 되는 이치가 서로 바탕하여 한 두렷한 기틀을 지었도다.” 입니다. 드라마틱하게 딱 깨쳤네 하고나서 '만유가 한 체성이며~' 가 나온 것이 아닙니다. 의단이 뭉치고 뭉쳐서 4월 28일 터진 것이고, 본인도 모르고 있다가,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고 본인이 밝아졌음을 알게 된 것입니다. 이것이 역사적으로 바라보는 대종사님의 대각입니다. 그런데 이 대각을 주변 사람은 몰랐고 본인만 알았을 겁니다. 우리같은 사람들은 외모가 바뀌어야지 대각한 줄 압니다. 마음만 바뀌어서는 잘 모릅니다.
[대각 이후 바뀌신 것들...]
대각 이후에 어떤 것들이 바뀌섰을까요. 이것이 대종사님의 최초 사진입니다. 사진 중에서 제일 젊은 사진입니다. 원기 8~9년 경의 사진이라고 합니다. 대종사님 36~7세 정도, 약 삼십대 중반의 사진입니다. 어떻게 기록이 되어 있냐면 대종사님께서 대각하기 직전에 완전 폐인이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피해 다녔다고 합니다. 대종사님이 한센병, 그때말로는 문둥병이라고 하고, 또는 나병이라고도 하는데, 한센병에 걸린 줄 알았다고 합니다. 얼굴에 고름이 막 났고, 머리도 잘 안 깎으시고, 잘 씻지도 않으시고, 또 피골이 상접했다고 합니다. 저것이 부처님의 고행한 모습을 표현한 조각상이잖아요. 저 상태까지는 안 갔더라도, 비슷했을 거라 생각합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미친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거의 피해 다녔다고 나와 있습니다. 저 정도 상태였을 거라고 생각하는 데, 1년 사이에 옆에 있는 사진처럼 된 것입니다. 완전 폐인이었다가 상태가 좋아진 거에요. 평소에 가지고 있던 병들도 다 없어지고 피부도 좋아지고, 살도 조금 찌시고, 몸에서 광채도 나시고 사람들이 보기에, 뭔가 달라졌습니다. 사람들이 그제야 깨친 줄 안겁니다. 완전히 폐인처럼 살다가 저기처럼 보이는 용모처럼 바뀌게 됩니다. 대종사님께서 깨치고 나서 이름도 바꿉니다. 깨치기 전의 이름이 뭐였죠? 박처화. 깨치고 나서 박중빈으로 바꿉니다. 이렇게 하고나서 대종사님이 원기 1년 말에 되서야 제자들도 모으고 원기 2년에 방언공사도 하시죠.
[견성(見性)이란?]
그러면 이런 생각들을 해봅니다. 우리가 대종사님의 깨달음의 역사적인 모습을 봤잖아요? 대종사님의 깨달음이 드라마틱하지 않았습니다. 탄생도 평범했고, 깨달음도 평범했고, 돌아가신 것도 평범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깨달음에 대한 것을 생각할 때 우리가 가장 근접해서 생각하는 것이 견성이잖아요. 불교에서는 견성을 하기 위해서 노력을 하고, 여러분들도 견성을 하기 위해서 노력을 합니다. 견성이란 것이 뭔가 했을 때, 성품을 보는 것이 견성이라고 하잖아요. 그런데 우리가 깨달음에 대해서 학문적으로 접근하거나, 지식적으로 접근하면 머리가 더 복잡해집니다. 왜 그러냐면, 견성이란 무엇이냐 접근해봅시다. 견성이라는 것은 성품을 본다라는 것인데 그러면 질문이 견성이란 무엇인가 하나였다가 성품은 무엇이고, 본다는 것은 무엇인가로 두개가 됩니다. 해석으로 가면 복잡해집니다. 견성이라는 것은 성품을 본다는 의미입니다. 이렇게 이야기하면 되물어봅니다. 성품은 무엇이고, 본다는 것은 무엇입니까 물어봅니다. 또 하나 들어가면 성품이라는 것은 누가, 언제, 어디서, 무엇을, 어떻게, 왜, 우리가 이것을 사량으로서 들어가기 시작하면 견성이라는 것, 의두연마라는 것은 끝이 없습니다. 말꼬리만 잡고 끝나게 됩니다. 우리가 견성이라는 것은 체험으로 하는 것이고, 의두를 붙들고 품어야 되거든요. 그래서 대산종사님께서 진리라는 것은 쓰는 것이 아니라 낳는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우리가 무수한 적공을 통해서, 무수한 진리에 대한 의심을 품어서 이것이 어느 순간, 진리에 대한 의심을 품는 것이 잉태하는 것이고, 그리고 그 것을 낳는 것이죠. 의심을 해야지 잉태가 될 거 아녜요? 견성이란 것을 설교를 듣는다거나 학문으로 접근하다보면 계속 의문만 쌓이는 거에요.
[선종]
어제 정진석 추기경님이 선종하셨습니다. 선종이라는 것은 천주교에서 쓰는 말로 유종의 미를 거둔 것입니다. 천주교에서는 돌아가시는 것을 마지막을 잘 마친다는 뜻으로 선종(善終)이라고 하지요. 특히 돌아가시지 직전에 병자성사라는 것을 합니다. 천주교에는 7가지 성사가 있습니다. 병자성사라는 것은 돌아가시기 직전이 되면 내 병과 고통을 하나님께 다 맡긴다는 것입니다. 그러고 나서 선종에 들게 됩니다. 정진석 추기경님도 염수정 추기경님한테 병자성사를 받고 선종에 드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정진석 추기경께서 돌아가시기 직전에 이런 말을 하셨다고 합니다. "모든 분들에게 감사드립니다. 항상 행복하세요. 행복이 하느님의 뜻입니다." 오늘이 대각개교절이지만 어제 큰 분이 선종에 드신 것을 보면서 이런 생각이 듭니다. 산다는 것은 무엇인가. 그리고 어떻게 살아야지 의미 있는 삶인가. 어떻게 사는 것이 후회 없는 삶인가. 우리가 일반 사람들이 어떤 훌륭한 사람이 열반하셨을 때 뭘 보나요? 그 사람이 깨쳤나 안 깨쳤나 보나요? 정진석 추기경이 깨쳤나 안 깨쳤나 보지 않습니다. 그 분이 어떠한 일을 했는지 봅니다. 기사를 보면 이 분이 깨쳤다 이런 것이 나오는 것이 아니라, 그 분이 한 행동, 실제로 몸으로 보여준 것이 나옵니다. 이분이 5억 원을 희사하셨다고 합니다. 신도분들이 생활에 보탬이 되라고 주신 것들을 모아서 5억 원을 희사하셨다고 합니다. 처음에는 천주교에서는 성직자들에게 돈을 많이주나보다 생각했습니다. 40년 동안 모아서 5억 원을 모아서 대학에다가 희사하셨다고 합니다. 각막을 기증하셨다고 합니다. 각막을 기증하려고 하니깐 의사들이 너무 나이가 들어서 각막을 기증하면 활용도가 떨어진다고 하니깐, 실험용으로라도 써달라고 말씀하시면서 각막 기증을 하셨다고 합니다. 본인 통장에 있는 전체를 명동밥집이라고 어려운 사람들에게 밥을 주는 명동 밥집과, 선교장학회에다가 마지막 희사를 하시고 통장에 800만원이 남았다고 합니다. 그 남은 800만원은 장례비로 써달라고 하시고 나서 본인의 모든 재산의 희사하셨다고 합니다. 16년 동안 바지를 한 벌로 입으셨다는 이야기도 나옵니다. 이걸 들으면 어떤 느낌이 드나요? 설교 영상이나, 어떠한 책을 써서 '나 깨친 사람이다. 나 견성했다'라고 백번 듣는 것보다 이 분의 삶 자체가 깨달음을 보여준다고 생각이 듭니다. 깨달음이라는 것은 관념이 아니라 행동으로 나타나는 것입니다. 깨달으신 분이 아니라면 이렇게 행동할 수 있을까요? 저는 깨달았다고 봅니다. 우리의 입장에서는 깨달았다고 표현하지만 천주교 입장에서는 다른 표현을 쓰기는 하겠죠. 깨달음이라는 것은 관념으로 있는 것이 아니라 무언가로 나타나야 합니다. 여러분들 견성이라고 검색해보세요. 수십만 개의 글이 있고 영상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요? 그 사람의 삶이 불행하고 세상에 유익을 주지 못한다면 그 깨달음은 의미가 없지는 않겠지만 얼마나 도움이 되겠어요? 그래서 대종사님께서는 뭐라고 하셨나요?
[견성에 대한 키워드]
'보기 좋은 납 도끼', '확철 대오', '글씨체와 수본', '변함없는 불공심', '산부처, 죽은 부처' |
대종경(大宗經) 제7 성리품(性理品) 7. 대종사 말씀하시기를 “수도(修道)하는 사람이 견성을 하려는 것은 성품의 본래 자리를 알아 그와 같이 결함 없게 심신을 사용하여 원만한 부처를 이루는 데에 그 목적이 있나니, 만일 견성만 하고 성불하는 데에 공을 들이지 아니한다면 이는 보기 좋은 납 도끼와 같아서 별 소용이 없느니라.” |
대종경(大宗經) 제7 성리품(性理品)
7. 대종사 말씀하시기를 “수도(修道)하는 사람이 견성을 하려는 것은 성품의 본래 자리를 알아 그와 같이 결함 없게 심신을 사용하여 원만한 부처를 이루는 데에 그 목적이 있나니, 만일 견성만 하고 성불하는 데에 공을 들이지 아니한다면 이는 보기 좋은 납 도끼와 같아서 별 소용이 없느니라.”
대종경선외록(大宗經選外錄) 8.일심적공장(一心積功章) 6절. 한 제자가 여쭈었다. "견성 성불이라 하였사오니 견성하는 즉시로 부처를 이룬다는 말이오니까." 대종사 깜짝 놀라시며 말씀하시었다. "그대가 잘 물었도다. 성품을 보는 것은 마치 글씨 배우려는 사람이 선생을 만나 좋은 글씨체를 받아 온 것과 같고, 수(繡) 배우려는 사람이 좋은 수본을 얻어온 것과 같은 것이다. 그러므로 견성을 하였다 하여 만족을 느끼고 그 다음 공부에 등한한다면 글씨 배우려는 사람이 겨우 글씨체만 받아 놓고 있는 것 같고 수 놓으려는 사람이 수본만 얻어다 놓고 그대로 있는 것 같은 것이다. 실은 견성은 그리 어려운 것이 아니다. 자기가 본 그 성품과 같이 원만하고 밝고 바르게 자기 성품을 활용하여 복족 혜족한 부처가 되는 데에 큰 힘이 드는 것이다. 이 앞으로 인지가 많이 발달되면 십여세만 넘으면 대개 초견성은 할 것이요 성불을 위하여 큰 공력을 들이게 될 것이다." |
또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견성은 어려운 것이 아닙니다. 여러분들 지금 마음을 보고 있으면 견성입니다. 그런데 마음을 본다고 해서 마음이 마음대로 되지 않잖아요. 성불하기 위한 공력을 들여야 하는데 견성하는 것만 너무 중요시하고 견성에만 공력을 들이면 보기 좋은 납도끼와 같다고 하시면서 또 이렇게 이야기하셨습니다. 대종사님, 정산종사님, 대산종사님이 공통적으로 견성에 대해서 하신 말씀이 있습니다. 견성이라는 것은 사람들이 '나 견성했네'라고 이야기하는 데 견성한 줄 어떻게 아나요? 견성한 줄 알 수 있으려면 대산종사님께서 그 사람이 불공하는 것을 보면 안다고 하셨습니다. 견성을 하면 내가 부처인 것을 알고 세상 만물이 부처인 것을 아는 것이 견성입니다. 그러면 세상 만물이 부처인 것을 알면 부처로 모실 겁니다.
대산종사법어(大山宗師法語) 제2 교리편 15. 대산 종사 말씀하시기를 “견성을 하면 모두가 다 부처로 보이므로 변함없는 불공심이 나오지만, 견성에 토가 떨어지지 아니하면 부처로 보이지 않으므로 불공할 마음이 나지 않나니, 그러므로 반드시 견성을 해야 하고 견성 후에는 반드시 보림(保任)을 통해 내 마음을 빈틈없이 살펴야 하느니라. 부처님의 대자대비는 하루아침에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정력(定力)이 쌓이고 쌓여서 나오는 것이므로, 시방이 한집이요 사생이 한몸이라는 신념으로 일마다 불공으로 일관하여 모든 일에 대자대비가 나오도록 해야 비로소 사은과 하나가 될 수 있느니라.” |
내가 변함없이 불공하는 마음이 나오고 모든 대상한테 불공하는 마음이 나오면 견성을 한 것인데, 그 마음이 안 나오면 견성한 것이 아니고, 견성했다고 착각한 것입니다. 그래서 견성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견성 후에 성불하기 위한 노력이 중요한 것입니다. 그 노력을 위해서 상시훈련을 하는 겁니다
[마무리]
그래서 대종사님의 대각은 이런 의미가 있는 것 같습니다. 제가 마지막으로 마무리하면서 정진석 추기경님의 모습을 보여드린 것도, 정진석 추기경님의 기사를 보고나서 너무나 존경하는 마음이 나오고, 제 스스로를 돌아보게 되었습니다. 나는 어떠한 성직자인가. 그 분은 제가 보기에는 깨달음을 얻으신 것이기 때문에 그렇게 행동이 나온 것입니다. 우리가 깨달음이라는 것 자체에 집착하지 말고, 깨달음이 하나의 욕심이 될 수 있습니다. 깨달음 자체에 집착하지 말고 깨달으신 분이 내놓은 법대로 살면 됩니다. 깨닫기 위해서 공을 들이지 말고. 그래서 대종사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대종경선외록(大宗經選外錄) 3.구도고행장(求道苦行章) 6절 "이와 같이 나는 길을 인도하는 사람이 없어서 가지가지 고행을 다 하였다. 그러나, 그대들은, 내가 먼저 경험해 보고 나서 눈먼 봉사라도 안심하고 가도록 큰 길을 닦아 놓았고, 이렇게 편안히 의지할 집을 지어서 아무 거리낌 없이 공부할 수 있도록 해 놓았으니 얼마나 다행한가. 그렇건마는, 여기 와서도 딴 길을 바라는 자가 없지 않으니 이는 천만년을 구할지라도 다 허사로 돌아갈 것이다. 그대들은 의심하지 말고 신분의성(信忿疑誠)만 들이댄다면 이는 나의 공부한 수고의 반만 하여도 반드시 성공할 것이다. 내 법대로만 하면 예전에 상근기가 백년 걸려서 할 공부라도 나에게 와서 一, 二년만 닦으면 그 공효를 이룰 것이다." |
대종사님께서 깨닫고 나서 하고 싶은 말씀입니다. 내가 먼저 깨달아서 길을 만들어 놓았으니 이대로 따라오면 되는 거 아니냐, 필요한 것은 신분의성, 믿고, 믿다보면 왜 그럴까 의심이 나오잖아요. 의심하고, 분심을 내서 정성스럽게 하는 것, 신분의성만 있으면 됩니다. 깨달은 분이 길을 열어놓았습니다. 그러면 우리는 훨씬 편한 거잖아요. 나의 절반만 공력을 들여도 됩니다. 두 가지만 점검하면 됩니다. 나는 신분의성이 있느냐 없느냐. 나는 법대로 하느냐 안하느냐. 그런데 사량심을 내서 내가 견성을 했는지 안했는지, 견성이 뭔지 관념적으로 공부를 하다보면 변화가 없습니다. 그러면 실적이 나타나지 않고 삶이 변화가 안 됩니다. 불공도 안 되는 거죠. 나 하나도 변화가 안 되는 것이고, 주변 사람도 변화 못 시킵니다. 그렇지만 신분의성을 들이대서 법대로, 이 두 가지 조건이 채워져야 합니다. 대종사님이 깨달으신 분이라는 확신이 있다고 한다면 그분의 법대로 신분의성으로 하면. 내 법대로만 하면 예전에 상근기가 백년 걸려서 할 공부라도 나에게 와서 1, 2년만 하면 되고, 내가 공들인 것의 반만 들이면 된다고 하셨습니다. 그러면 남는 장사잖아요. 여러분들이 대각개교절을 맞이해서 관념적인 수행이나 견성이 무엇인지 그런 관념적인 것에 너무 집착하지 말고 공을 들이기보다는, 신분의성과 그리고 법대로 하는 것에 공을 들이다보면 나도 천각만각을 해서 대각이 되겠죠. 한 번에 드라마틱하게 되는 것은 아닙니다. 지금 이 순간도 천각만각하고 있습니다. 그것이 쌓여서 대각이 될 것이라 믿고 있습니다. 실적 있는, 사실적인 수행을 통해서 깨달음에, 사람에게 유익을 주고, 실적을 보여줄 수 있는 그런 깨달음이 되면 좋겠다는 말로 오늘 마무리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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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은혜롭습니다~^^*
오오 현승 교우님 감사합니다 고생하셨어요🤩
현승교우님~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