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시골 마을에 가난한 젊은이가 살고 있었습니다. 집안이 너무 가난해서 굶는 날이 많았지만, 아무런 불평도 하지 않고 낮에는 열심히 일을 하고 밤이 되면 열심히 공부를 하였습니다. 매일같이 공부를 한 젊은이는 드디어 서울로 과거를 보러 가게 되었습니다.
하루 종일 걷다가 밤이 되면 주막에서 잠을 자고, 아침이 되면 일찍 일어나 산을 넘고 강을 건너 부지런히 걸었습니다. 그런데 하루는 산길을 걷다가 그만 날이 어두워져버렸습니다. 갈수록 길은 험해지고 사람이 사는 집은 아무 데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큰 느티나무 아래를 지날 때였지요.
“깍깍깍깍” 갑자기 요란스럽게 울부짖는 까치의 소리가 들렸습니다. 젊은이는 이상하게 여기며 나무 위를 올려다보았습니다. 아, 글쎄 커다란 구렁이 한 마리가 까치둥지를 향해 기어오르고 있었어요. 구렁이는 입을 벌려 둥지 안에 있는 새끼를 잡아먹으려고 했습니다. 어미까치는 어쩔 줄 몰라 “깍깍깍깍” 울며 날개만 퍼덕거리고 있었구요.
“그래, 내가 구해 주마!” 젊은이는 어깨에 맨 활을 빼 들고 구렁이를 향해 쏘았습니다. ‘핑’하고 날아간 화살은 구렁이의 머리에 맞아 나무 아래로 떨어져 죽게 하였고, 어미까치는 ‘까악까악’ 인사라도 하듯, 젊은이의 머리 위를 빙빙 날았습니다.
젊은이는 그 곳을 떠나 걸음을 옮겼습니다. 해는 벌써 지나 세상은 온통 어둠뿐이었습니다. 그러나 주막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할 수 없군. 오늘 밤은 산 속에서 보내야 될 모양이구나.” 그때 멀리서 불빛이 깜박거리는 것이 보였습니다. 가까이 가보니 그 곳은 오래 된 절이었습니다. 어쩐지 으스스하였지만 용기를 내어 주인을 불렀습니다.
“지나가던 나그네인데 하룻밤 자고 갈 수 있습니까?” 나그네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스르르 문이 열리고 하얀 옷을 입은 여자가 나왔습니다. 얼굴은 예쁘지만 얼음처럼 차갑게 생긴 여자였습니다.
“하룻밤 주무실 수는 있습니다만, 먹을 음식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괜찮습니다. 그저 잠만 자고 가게 해 주십시오.” 저녁 한 끼 굶는 것쯤은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방으로 들어간 젊은이는 너무 피곤해 자리에 눕자마자 금방 잠이 들어 버렸습니다. “드르렁 드르렁” 코까지 골면서 한참 잠에 빠져 있을 때 숨이 막힐 듯 답답함을 느꼈습니다. 눈을 뜬 젊은이는 깜짝 놀랐습니다. 커다란 구렁이 한 마리가 자신의 몸을 친친 감은 채 시뻘건 혓바닥을 날름거리고 있었습니다.
젊은이는 몸을 빼내려고 했지만 꼼짝도 할 수 없었습니다.
“이 원수 놈아! 네 목숨은 이제 내 것이다!” 구렁이는 젊은이의 목을 계속 졸랐습니다. “대, 대체 왜 이러는 거요? 내가 무슨 잘못을 했다고.......”
“너는 내 남편을 죽였어. 남편의 원수를 갚고야 말겠다.”
그제서야 젊은이는 까닭을 알았습니다. 바로 젊은이가 화살로 쏘아 죽인 구렁이의 아내였던 것입니다. 젊은이는 무서움에 떨면서도 정신을 차리려고 애썼습니다. 그리고 구렁이에게 애원을 했습니다.
“잠깐, 내 말을 좀 들어 보시오. 내가 당신 남편을 죽인 것은 미안하오. 하지만 새끼까치를 살리려고 울부짖는 어미까치가 하도 불쌍해서 그런 것이오. 제발 한 번만 용서해 주시오.” 이 말을 들은 구렁이는 잠시 생각하더니 젊은이를 풀어 주었습니다.
“네 말을 들어 보니, 네가 진심으로 짐승을 사랑하는 마음에서 그런 줄 알겠다. 어쨌든 오늘 밤 열두시까지는 너를 살려 두겠다. 그때까지 이 절 뒤에 있는 종이 세 번 울리도록 해라. 그러면 너를 살려주마.” 이 말을 남긴 뒤 어디론가 스르르 사라져 버렸습니다. 젊은이는 한숨을 내쉬며 절 밖으로 나갔습니다. 그리고 뒤쪽에 있는 종을 찾았습니다. 거기에는 녹슨 종이 하나 달려 있었습니다. 그러나 종각은 까마득히 높았고 올라가는 계단도 없었습니다. 도저히 종을 칠 수가 없어 털썩 주저앉아 버렸습니다.
어느새 젊은이 곁으로 구렁이가 소리도 없이 나타났습니다.
“자, 이제 죽을 준비나 해라.” 구렁이는 시뻘건 혀를 날름거리며 젊은이에게 덤벼들 기세였습니다. 바로 그때였습니다.
“뗑그렁, 뗑그렁, 뗑그렁.” 종소리가 세 번 울려 퍼졌습니다. 젊은이도 구렁이도 깜짝 놀랐습니다. 종각을 쳐다보았지만 거기에는 아무도 없었습니다.
“남편의 원수를 꼭 갚으려고 했다만, 종소리가 세 번 울렸으니 약속대로 널 살려주마.” 이 말을 남기고 구렁이는 어둠속으로 사라졌습니다.
다음날 아침, 날이 새자마자 젊은이는 종각으로 가 보았습니다. 높다란 종각에는 녹슨 종만 덩그렇게 매달려 있을 뿐 아무리 살펴봐도 종을 울린 사람은 보이지 않았습니다.
“하늘이 나를 도우셨나 보다.” 젊은이는 감사의 기도를 드리려고 머리를 숙였습니다.
“아니 이럴 수가!” 땅바닥에는 머리가 깨져 죽은 까치 두 마리가 있었습니다. 죽은 까치들은 구렁이에게 잡아먹힐 뻔했던 새끼까치들의 어미와 아비까치였습니다. 은혜를 갚기 위해 종을 울려 젊은이를 살리고 자신들은 머리가 깨어져 죽은 것입니다.
“까치야, 고맙다.” 젊은이는 눈물을 흘리며 죽은 까치들을 고이 묻어 주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