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랫 입술 없는 사나이
구한말 시대 어떤 나그네가 함경북도 회령에 있는 어느 시장에서 국밥을 먹고 있는데
맞은편에서 역시 국밥을 먹고 있는 사내가 국에든 국물을 연신 질질 흘리면서
한손으로 국물을 열심히 손에 게걸스럽게 담아 입으로 가져가더랍니다.
그모습이 여간 추례하고 흉한 것이 아니라서 자리를
바꿀까하다가 문득 이 사내의 아랫 입술이 행방불명된 것을 알았습니다.
호기심이 작동한 나그네가 그 사내에게 넌즈시 물었습니다.
"노형, 노형의 입술이 원래 없었던가요?"
"입술이 원래 없으면 배내 병신이죠. 나는 있다가 그만 어느 계기에 없어져 버렸다오"
하면서 말을 더 시키지 않았는데 그 입술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는 것이었습니다.
사내의 이야기는 이렇게 시작이 됩니다.
머리빗, 종이, 기름 등 생활용품이 든 것을 파는 방물장사를 하면서 고을을 돌아다니던중
어느날 백두산 근처에서 야밤에 길을 잃었다고 합니다. 그렇잖아도 그곳에는 호랑이가 출몰
해서 사람들을 여럿 잡아먹었다는 흉흉한 수문이 있던지라 여간 겁이 나지 않았습니다.
칠흙같은 밤에 가끔 야생 밤짐승의 울음 소리가 기분나쁘게 들리고 어디 은거할 곳을
찾다가 바로 애래마을에서 불빛이 비추었습니다.
인가가 딱 한채뿐인 것같았습니다.그래서 사내는 불빛을 따라 갔지요.
거기에는 쓰러져가는 초가깁이 한채 있었는데 안을 들여다 보니 키가 구척이나 되는 고대수
같은(갑신정변때 여자 역사)젊은 여자가 소복을 입고 곁의 누워있는 사내를 들여다 보고
있더랍니다.
"계시오?"
"뉘신지요?"
"길을 잃어서 하루밤 유(留)힐까하오이다."
"그러자 우렁우렁한 여인의 목소리가 들렸습니다."
"손님에게 방을 빌려드릴 처지가 되지 못하오니 어쩌겠습니까?"
그래서 그 사내는 손이 발이 되도록 그 여인에게 빌었습니다. 간신히 사내는 집안으로 들어갈
허락을 받았는데 바로 여인의 곁에는 호랑이에게 물려죽은 것으로 보이는 그 남편의 시신이
널부러져 피를 철철 흘리고 있는 끔찍한 모습이 보였습니다.
"보시다 시피 이렇습니다. 조금전에 남편이 호랑이에게 물려서 죽었습니다. 그래서 원수를 갚으
려고 준비를 하고 있어요. 손님께서는 호랑이 소리가 나더리라도 꼼짝말고 머리를 이불속에
파묻고 들지 마십시오"
사내는 시체를 보자 한기가 온몸으로 몰려와서 얼굴에 혈색이 달아났습니다.
바로 그때였습니다.
"어흥~
호랑이였습니다. 그 호랑이는 여인의 남편을 처참하게 만든 범인이 틀림없었습니다.
여인은 순간 팔뚝을 걷어 부치고 비호같이 밖으로 나가서 위협하는 호랑이의 면상을 함마로
가격을 하듯 냅다 후려쳤습니다. 그리고 목을 졸랐습니다.
"이놈!"
"퍽 ..."
호랑이는 여인의 일격에 숨을 멈추었습니다.
이 모습을 문구멍 틈으로 보던 사내는 그만 너무 놀라서 아랫입술을 꽉 물어 버렸습니다.
그때는 아픈 줄도 몰랐습니다.
너무나 세게 아랫입술을 물어선지 그만 사내의 아랫입술이 뜯겨져서 너덜거리다가 땅바닥으로
떨어졌습니다.
그때는 아픈줄도 몰랐습니다.
너무나 세게 아랫입술을 물어선지 그만 사내의 아랫입술이 뜯겨져서 너덜거리다가 땅바닥으로
떨어졌습니다.요즘 같으면 입술을 들고.성형외가로 달려가면 복구 할수도 있겠지만 어디
그시절에는 그런 병원이 있겠나요.평생 병신이 됐지요. - 무애의 글을 김광한이 옮긴 글
양주동
호 무애(无涯). 경기도 개성(開城) 출생.
1928년 일본 와세다대학교 영문과를 졸업하였으며, 그 이전 1923년 시지(詩誌) 《금성(金星)》을 발간하였다.
1928년 평양 숭실전문(崇實專門) 교수에 취임하고, 1929년 《문예공론(文藝公論)》을 발간,
1940년 경신중학(儆新中學) 교사로 취임했다.
1945년 동국대학교 교수가 되고, 1954년 대한민국학술원 종신회원에 선임되었다.
1958년 연세대학교 교수에 취임하여 문학박사 학위를 수여받았고,
1962년 다시 동국대학교 교수가 되어 동 대학원장을 역임했다.
대한민국학술원상을 수상하고 정부로부터 문화훈장·국민훈장 무궁화장이 수여되었으며,
신라 향가(鄕歌) 등 한국 고가(古歌)를 연구하여 초기 국어학계에 큰 업적을 남겼다.
저서로 《조선고가연구(朝鮮古歌硏究)》 《여요전주(麗謠箋注)》 《국학연구논고(國學硏究論考)》
《국문학고전독본(國文學古典讀本)》 등이 있고 시집으로 《조선의 맥박》,
에세이집으로 《문주반생기(文酒半生記)》 《인생잡기(人生雜記)》 등이 있다.
역서로 《T.S.엘리엇 전집》 《영시백선(英詩百選)》 《세계기문선(世界奇文選)》 등이 있다.
첫댓글 무애(无涯)는 스스로 國寶를 자처하는 분이었다.
기억력이 뛰어나고 학문적인 견해가 특출하여
이분 앞에서 아는 소리를 했다가는 망신을 당한다.
이분이 국보가 된 에피소드...
어느 날 신촌에서 지나가던 차에 치일뻔 했는데 ...
"어이쿠, 하마트면 국보 한 사람 사라질 뻔 하였네."라고 했다.
이 말이 소문이 나서 정말 국보가 되었다고 한다.
또 하나,
약주를 아주 좋아하셨다는데
어느날 좀 거나하게 취해 비틀 비틀 하니까 자칭 "국보 넘어 간다." 하면서 걸으셨단다.
라디오 프로 '재치문답' 시간에 출연하여 이야기가 좀 길어지면 스스로 "그만" 하고 끝내셨다.
해박하고 재치있는 달변가로도 아주 유명하셨던 분이다.
며느님이 마해송 작가(아들은 마종기 의사 시인)따님이었는데
며느리에게 담배 심부름을 가끔 시키셨다.
성격이 급한 시아버님은 며느리에게
"대문에서 담배를 그냥 던지거라." 하고는
마루에서 "오냐."하고 받으셨다고 한다.
체면을 중시하는 보수적인 유교 전통의 그 시절에 파격적인 시아버님이셨던 게 분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