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 내 자식들이 바르게 클 것 같아서... -
권다품(영철)
"니는 다른 사람 초상집에 갈 때 뭐 입고 가노?"
누나가 전화가 와서 묻는다.
"검은 계통 양복 입고가지. 왜?"
"어제 상갓집에 갔다 왔는데, 거기서 보니까 '누나의 시어른'이 돌아가셨는데, 양복을 안 입고 회사 작업복을 입고 온 사람이 있길래, 니는 상가집에 갈 때 신경쓰라꼬... 젊은 사람들은 아무것도 아니라고 생각할 지 모르지만, 그런 것 가지고 집안 욕하고 부모 욕하는 사람들도 많다. 또 욕이 무서운 게 아니라, 아~들(아이들) 눈이 무섭다 아이가! 아~들이야 어른들 하는데로 따라한다 아이가. 신경써라."
"어디 멀리 출장갔다오다가 급하게 연락을 받았거나 무슨 사정이 있었겠지 뭐."
지난 일요일 문중 전체의 벌초가 있는 날이었다.
전국의 문중 자손들이 고향에 모여 윗대 조상님들의 벌초를 하는 날이다.
그동안 벌초 때는 주로 어른들만 오고 젊은 사람들이 거의 안 왔다.
그래서 어느 해에는 문중회의에서 "특별한 일이 없는 한, 젊은 자녀들을 데리고 와서 벌초를 하자. 객지로 나가 살다보니, 가까운 촌수면서도 서로 누군지도 모르고, 몇 촌인지도 모르고 사는 젊은이들에게, 아재인지 조카인지 촌수는 일러주고, 문중 풍습이나 예절도 가르쳐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그 문중회의가 있은 후부터는 젊은이들이 제법 많이 참석했고, 예상에 없이 영감과 같이 살던 고향에서 영감 산소라도 한 번 보고싶은 할머니들도 오셨고, 또 남편을 먼저 보낸 집안 아지매, 형수들도 제법 많이 오셨다.
또, 질부들, 어떤 집에서는 시집간 딸과 사위, 어린 외손주까지 데리고 참석하는 등, 예정에 없던 고마운 일도 더러 생겼다.
아낙들은 집안 제실에 모여, 추어탕, 도토리묵, 금방 뭍혀낸 김치, 돼지 수육에 술까지 장만해 놓고, 집안 사람들끼리 그동안 서로 떨어져 못 나눴던 얘기들로 웃음꽃을 피우며, 땀흘리며 내려올 신랑이나 아들들을 기다린다.
잠시후면 조상들의 산소를 깨끗이 손질하느라, 온몸이 땀에 홈빡 다 젖은 남자들이 웃으며 내려와서 차려놓은 음식들을 먹을 것이다.
이날은 마치 문중 잔칫날처럼 즐거워 보인다.
추석, 설 명절보다 문중 사람들을 훨씬 많이 모여서 좋기도 하고, 문중의 어린 자손들에게 반드시 전해주고 싶은, 너무 좋은 우리의 풍속이다 싶기도 하고.
점심을 먹고는 시원한 제실 마루에서 늘어지게 한 숨 자는 사람도 있고, 노부모님이 계시는 집으로 가서, 집안 청소도 해드리고, 풀도 뽑고, 텃밭에서 싱싱하게 자라는 채소들도 뜯고....
엄마 혼자 지키고 계시는 우리 집에서도 그동안 못해드렸던 청소도 하고, 이것저것 정리를 할 것들이 많았다.
옆집이 왁자한 걸 보니 벌써 누가 출발하나 보다.
그 멀고 높은 산속에 혼자 누워있을 남편이 너무 불쌍하고, 자식에게도 말 못하고 가슴에만 묻어놓고 사는, 그 남편이 너무 보고싶어서, 서울에서 아들 차로 천리길을 마다않고 벌초를 핑계대고 내려왔다가, 다시 또 서울로 올라가는 모양이다.
그렇게 보고싶던 남편은 아무리 불러도 대답도 없고, 얼마나 보고 싶었을까?
'당신 알기나 해? 다른 부부들이 시장도 같이 가고, 식당가서 국수라도 같이 먹는 모습을 볼 때, 내 마음이 어떤 지, 당신 그렇게 누워있기만 하면서 알기나 해?'
아마 이런 안타까운 원망도 해 봤으리라!
마음이 아팠다.
네 식구 같이 살다가, 저 높디높은 산마루위에다 신랑만 혼자 묻어두고, 데리고 왔던 아들만 달랑 데리고 떠나야 하는 여인의 마음이 어떠랴 싶었다.
"벌써 올라갑니까? 피곤해서 우짤랍니까?"
"괜찮아요. 천천히 가지 뭐. 얘가 바빠서 빨리 가야 돼요."하면서 운전대에 앉은 아들을 가리킨다.
"할머니 집에 계십니까? 인사드리고 가야 될 낀데..."
"안 계십니다. 제실에 계실 낍니다. 마, 차 더 막히기전에 빨리 출발 하이소."
"아재, 그럼 할머니한테는 인사도 못 드고 간다고 전해 주이소."
목소리가 신랑이 살았을 때처럼 맑지 못하고 뭔가 눌러 참는 것 같았다.
"예. 어서 출발 하이소. 차 많이 막히겠다!"
그런데, 이렇게 형수가 출발하려고 차를 빼는데도, 배웅을 해야 하는 시동생들이 보이질 않았다.
왜 그럴까 싶어 언뜻 집안을 들여다 봤다.
시동생 둘이 마루에서 자고 있었다.
그 높은 곳까지 올라가서 여러 산소들 벌초를 다 하다보니 많이 피곤했나 보다.
마루에 누워있는 모습들이 보였다.
남편을 먼저 보내고, 그 외로움과 아픔, 말로 다 표현하지 못할 설움을 고스란히 가슴으로 담아가는 형순데...
'안자고 있는 사람들이 깨워서라도 배웅을 좀 해줬음 더 좋았을 걸....'
여인의 모습이 더 쓸쓸해 보였다.
아무말 없이 운전대에 앉아 앞만 보며 엄마가 타기를 기다리는 설흔이 넘은 저 조카는 삼촌들을 어떻게 생각할까?
자기 엄마를 무시하는 삼촌들에게 존경심이 있을까?
그런 와중에도 손아랫 동서 둘의 배웅이 있어서 그나마 다행이었다.
그 중 한 동서는 차가 떠날 때까지, 차안을 들여다 보며 안타가움을 전하는 모습이 참 보기가 좋았다.
"형님 잘 가이소. 전화드릴께예."
왜 그런지 혼자서 차안을 들여다 보며 배웅하는, 착하기만 한 그 동서의 표정이 어둡게만 보였고, 목소리마져 외롭게만 들렸다면 내 생각만 그럴까?
우리는 남을 통해서 나를 배울 수 있을 것 같다.
정말 큰 걸 배우고, 그만큼 큰 걸 깨닳았다.
아직 철없는 내 자식들에게도 분명히 말해줘야 겠다.
"집에 손님이 오실 때는, 하던 일을 다 멈추고 반갑게 인사부터 해야하고, 배웅할 때는 반드시 대문밖까지 나가서 배웅을 해야 한다"고.
그리고 "세상이 아무리 돈돈하지만, 돈보다 중요한 것들이 분명 있다."는 것도 말해주고 싶다.
그리고 "잔치집이든, 상가집이든 참석할 땐, 아무리 바쁘더라도 지켜야 하는 예의는 꼭 지켜야 한다."고.
"혹시라도 '마음이 중요하지 형식적인 옷차림 따위가 뭐 그렇게 중요하냐?'고 말을 할 지 모르지만, 그 아무것도 아니라고 생각하는 '형식'이 '내용'을 지배할 수도 있다"는 것도 설명을 좀 해줘야 겠다.
나도 자식들이 있으니, 먼저 나부터 다듬어 봐야 겠다.
나 자신을 다듬다 보면, 내 자식들이 바르게 클 것 같아서....
2010년 9월 15일 새벽,
권다품(영철)이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