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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편 48편 예루살렘에서 부르는 노래
1.본문배경
유대인뿐만 아니라 아랍인 그리고 기독교인들에게 예루살렘은 거룩한 도성이다. 유대인들은 평화의 도성이란 의미에서 '예루살라임'이라고 부른다. 아랍인들은 예루살렘을 알굿'(아랍어로 거룩한 도시를 의미한다.)이라고 부른다. 기독교인들에게 예루살렘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고통을 당하신 고난의 도시일 뿐 아니라 사망권세를 이기시고 부활하신 승리의 장소이다. 더욱이 이곳에서 성령의 역사로 인한 교회가 시작되었다는 점에서 예루살렘은 소중하다. 예루살렘에 대한 시편 기자의 생각은 어떠한가?
시편 48편은 예루살렘에서 하나님을 찬양하는 고라 자손들의 노래이다. 이는 예루살렘이 열왕들의 공격으로부터 구원 받은 것을 기념하기 위해 지어진 감사의 노래이다. 만일 그렇다면 히스기야 시대에 앗수르 왕 산헤립의 군대로부터 극적으로 구원 받은 역사적 사실을 배경으로 지어졌을 가능성이 높다(사 36 : 18 -20 37:5-7, 14-20,32-36),
또한 시편 48편은 성지순례자의 시편으로도 알려져 있다. 시인은 하나님의 도성을 순례하고 연구하고 잘 살펴 후대에 전할 것을 권고한다. 하나님의 도성을 순례하는 자들이 해야 할 일이 시인의 노래 속에 나타나 있다.
“시온을 돌아라 시온을 감싸 안아라, 망대를 세어 보아라, 궁전들을 넘나들어 보아라. 보고 살핀 것은 후손에게 전달하여라. 예루살렘의 아름다움을 마음에 담아라."
예루살렘에서 시인은 이렇게 고백한다. "이 분은 하나님 우리 하나님이시니 영원무궁토록 우리를 죽을 때까지 인도하실 것이다" (14절).
2.본문 주요내용
시편 48편은 예루살렘에 대한 시편 기자의 신학을 자세하게 설명한다. 먼저 예루살렘은 어떠한 곳이며, 왜 중요한지를 시인이 사용하는 예루살렘에 대한 다양한 표현을 통해 살펴보자.
본문에서 말하는 예루살렘에 대한 표현은 '우리 하나님의 성'(히브리어로 이르 엘로헤이누, 1절), '그의 거룩한 산'(하르 코드쇼, 1절), '큰 왕의 산(키르얏 멜렉 랍, 2절), '북방에 있는 시온 산(하르 찌온 야르케테이 짜폰, 2점), '피난처' (미쓰갑, 3절), '만군의 여호와의 성'(이르 아도나이 쩨바옷, 8절), '주의 선' (헤이칼레가, 9절)이다.
시인은 예루살렘은 하나님께서 머무시는 도성이라고 말한다. 시인에게 하나님은 누구이신가? 하나님은 광대하시며, 거룩하시며, 큰 왕이시며, 만군의 여호와시며, 인자하시며, 이름에 찬송이 있고, 오른손에 정의가 충만하며, 정직한 판결을 하시는 분으로 고백한다. 이러한 하나님이 친히 임재하시는 예루살렘은 왕의 성읍일 뿐 아니라 주의 성전으로 마땅히 왕께 예배해야 함도 아울러 밝히고 있다.
시인과의 관계는 어떠한가? 하나님은 자기를 피난처로 알리신다. 여러 궁중에서 자기를 피난처로 알리셨다는 의미는 예루살렘 자체가 피난처라기보다는 예루살렘에 거하시는 하나님이 피난처라는 뜻이다. 왜냐하면 예레미야 선지자가 애가로 말한 것처럼 예루살렘 자체는 무너질 수 있기 때문이다. "대적과 원수가 예루살렘 성문으로 들어갈 줄은 세상의 모든 왕들과 전하 모든 백성이 믿지 못하였도다" (애 4:12).
예루살렘의 보전은 하나님이 가지고 계시는 자비 (헤쎄드)와 의(쩨덱), 공평(미슈파트)이 충만할 때만이 가능하다( "의와 공의가 주의 보좌의 기초라 인자함과 진실함이 주 앞에 있나이다" (시 89 : 14 참고>), 모세의 바다노래와 시편 48편을 묶어 읽어 보자. "주께서 백성을 인도하사 그들을 주의 기업의 산에 심으시리이다 여호와여 이는 주의 처소를 삼으시려고 예비하신 것이라 주여 이것이 주의 손으로 세우신 성소로소이다 여호와께서 영원무궁하도록 다스리시도다" (출 15 : 17-18).
3.오늘의 기도와 관상
하나님께서 나의 예루살렘을 통해 베푸신 은혜가 너무나도 크고 광대합니다. 시편 기자가 시온을 돌고, 감싸 안으며, 망대를 계수하고, 성벽을 자세히 바라봄 같이 나의 예루살렘에 펼치신 당신의 은혜의 손길 하나하나를 더듬어 봅니다.
이 은혜를 마음에 담고 하나님의 이름을 찬미합니다. 하나님! 영원히 이 성에 머물러 계심으로 이 성이 영영히 견고케 하옵소서! 이 성을 통해 하나님의 백성들이 영원토록 당신의 인도를 받게 하옵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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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편 49편 깨달음의 은혜
1.본문배경
우리에게 귀한 것이 많이 있다. 이목구비, 사지백체, 오장육부, 신경, 조직, 유전자, 세포, 피부, 하나님의 인간창조에 대한 정보량을 논문으로 담기 위해서 무려 31억 글자가 필요하다고 한다. 박사논문 7만 자와 비교하면 5만 배나 더 큰 분량이다. 즉, 하나님의 논문과 세상 논문은 5만대 1이라는 이야기이다. 내용의 깊이나 심오함은 비교조차 불가능하다. 육신의 건강을 유지하기 위한 값의 치름을 당연하게 생각한다. 감사한 것은 요즘은 의료보험제도가 있어 우리의 부담금의 퍼센트를 낮추어 준다는 점이다.
영혼의 건강을 유지하기 위해 지불해야 할 값은 얼마일까에 대해 생각해 보자. 더욱이 이미 죽어 버린 혹은 훼손되어 못쓰게 되어 버린 영을 다시 살리려면 얼마의 대가를 치러야 할까? 1억? 아니면 10억? 아니면 1조? 그 값을 치르고 살릴 수만 있다면 아마 그 값을 지불해서라도 영을 살리려 할 것이다(물론 타락한 인간들에 의해 단지 20불에 어린아이가 팔리는 비정함이 지구촌 곳곳에서 종종 일어나지만). 하지만 우리에게는 그럴 능력이 없다. 두 가지 문제가 우리에게 있는 것이다. 첫째, 지불할 능력이 없고 둘째, 그렇게 할 필요성을 전혀 느끼지 못한다.
시편 49편은 고라 자손이 영장에 맞추어 부르는 지혜의 노래이다. 노래는 주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여 얻은 지혜와 총명과 비밀을 그 내용으로 담고 있다. 노래의 청중은 열방이다. 1절에서 시인은 이렇게 말한다. “온 나라 백성과 지구촌에 거하는 거주민들이여, 귀를 쫑긋하고 잘 들어 두시오. 내가 그동안 '주' 말씀'에 나의 귀를 기울여 받았던 지혜와 총명 비밀을 수금에 맞추어 불러 보리다(여기서 히브리어 마샬의 의미는 '교훈', '예'인데 여기서는 '말씀'으로 번역했다. )
인간은 누구나 죽으며 인간이 가진 지혜, 물질, 명예가 죽음으로부터 인간을 벗어나게 할 수 없소. 죽음에 이르는 병을 앓고 있는 인간이 살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인지 아시오? 방법이 있다면 오직 하나 하나님께 돌아가는 길이라오. 왜냐하면 인간으로서는 생명의 구속이 너무 비싸서 속전금을 바칠 수 없기 때문이라오. 본 시편은 우리의 생명을 구속하기 위하여 하나님께서 친히 지불하신 직불카드(Direct Debit Card), 예수님을 생각하게 해 준다.
"긍휼이 풍성하신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 그 큰 사랑을 인하여 허물로 죽은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고”(엡2:4-5)
2.본문 주요내용
시편 49편은 12절과 20절 두 중심 구절로 구성되나 같은 내용을 반복한다. 사람은 존귀하나 장구하지 못함이여 멸망하는 짐승 같도다"(12절), "존귀하나 깨닫지 못하는 사람은 멸망하는 짐승과 같다"(20절 참고구절 "그들이 자기가 짐승과 다름이 없는 줄을 깨닫게 하려 하심이라 <전 3 18>).
본 시편에서 시인은 잠언과 수수께끼, 지혜와 지식을 이용하여 생명을 전하는 방법에 대해 교훈한다.
첫째, 인생이 가진 부가 인간의 생명을 구속할 수 있는가? 사람들은 자신이 쌓아 놓은 부를 신뢰하고 그것을 자랑한다. 하지만 값비싼 영혼의 값을 치르기에는 인간이 가진 부는 무기력하고 유한하다(1-8절).
둘째, 모두 죽는다는 점을 알라. 지혜자도 죽고 어리석은 자와 깨달음이 없는 자도 죽는다. 본 시편은 전도서의 주장과 비슷하다. 그들의 부를 타인이 가져간다. 무덤이 그들의 거처가 된다(9-11, 17-19절, "지혜사 우매자도 영원하도록 기억함을 얻지 못하나니 후일에는 모두 잊어버린지 오랠 것임이라 오호라 지혜자의 죽음이 우매자의 죽음과 일반이로다" <전 2:16>).
셋째, 자신을 신뢰하는 것은 어리석다. 왜냐하면 부가 있어도 그 부를 영원히 소유할 수 없고 짐승처럼 멸망하는 것이 인간이기 때문이다(6, 12절).
넷째, 하나님은 의로운 자를 구속하신다. 하나님은 나를 영접하시고 내 영혼을 음부의 권세에서 구속하시리로다(15절).
시편의 결론이다.
부와 영광이 증가될 때에 그것으로 자랑하지 말라(6절).
부자를 두려워하거나 그 부를 칭송하지 말라(16절).
죽을 때 가져가는 것이 없다(17절, “그가 모태에서 벌거벗고 나왔은즉 그가 나온 대로 돌아가고 수고하여 얻은 것을 아무것도 자기 손에 가지고 가지 못하리니 <전5:15>),
깨달으라(20절, "그들은 악을 행하면서도 깨닫지 못함이니라" <전 5 : 1>),
3.오늘의 기도와 관상
“탐욕으로 완전히 굳어져 버린 저의 존재를 성령의 불로 태우시고 십자가의 보혈로 씻어 주소서!
제 눈을 열어 제가 얼마나 나 중심적이며 세속적인지를 깨달아 알게 하소서!
끊임없이 말씀의 인도를 받음으로 하나님 위에 견고히 뿌리를 내려 하나님의 가치만으로 이 땅을 살아가게 도우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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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편 50편 아삽의 노래
1.본문배경
시편 50편은 아삽이 노래로 부른 시다. 42편부터 49편까지 고라 자손의 노래를 듣다가 갑자기 등장하는 아삽의 노래는 베토벤 곡에 익숙하다 모차르트 곡을 듣는 것과 같은 느낌을 가져다준다. 갑자기 무대가 환해지면서 침묵하시던 하나님께서 등장하신다. 1절에서 하나님을 일컫는 세 가지 히브리적 표현들이 다 동원된다(엘, 엘로힘, 아도나이).
하나님께서 해 돋는 데서부터 지는 데까지 온 땅을 부르시는데 모이는 장소는 하나님이 나타나시는 온전히 아름다운 시온이다. 온전히 아름답다는 의미의 히브리어 ‘미클랄 요피’는 '완성된 아름다움'을 뜻한다. 사실 시온은 이집트의 헬리오 폴리스(heliopolis)나 앗수르의 수도 니느웨(Nineveh)보다 물리적인 면에서 작고 보잘것없지만 아름다운 이유는 가장 아름다우신 분이 그곳에 머무시기 때문이다.
도시 자체는 초라해도 가장 아름다운 하나님께서 머무시기 때문에 완성된 미를 가졌듯이, 우리 인생도 마찬가지다. 질그릇이지만 보배를 담으면 보배함이 되듯이, 예수님을 모신 인생, 가정, 도시는 아름다운 인생, 가정, 도시가 되는 것이다.
본문을 통해 배우는 교훈을 정리해 보자.
바른 예배를 드려라. 감사의 제사를 드리라. 서원한 것을 갚으라 하나님께 기도하라.
어려움은 누구에게나 있다. 중요한 것은 기도하느냐 하지 않느냐의 차이가 있을 뿐이다. 인생은 환난 날에 하나님께 부르짖고 하나님은 인생에게 응답하신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주님의 은혜로 환난을 벗어난 사람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것이 무엇인가? 23절에 나와 있다. "감사로 제사를 드리는 자가 나를 영화롭게 하나니 그의 행위를 옳게 하는 자에게 내가 하나님의 구원을 보이리라.“
2.본문 주요내용
본문에서 예배자는 하나님과 제사로 언약한 경건한 자라고 말한다. 늘 드리는 우리의 예배를 점검해 보기 원한다. 먼저 예배를 받으시는 하나님은 누구신지 알아보자.
전능하신 하나님 여호와 하나님의 전능하심은 해 돋는 데서부터 지는 데까지 세상을 부르시는 능력에서 나타낸다(1절). 빛을 발하시는 하나님 : 하나님이 빛을 비추임으로 시온은 온전하게 아름다워진다(2절), 침묵을 깨시는 하나님 : 하나님은 불과 광풍으로 그분의 임재를 나타내신다(3절). 심판장이신 하나님 : 하나님은 그 백성을 판단하시려고 성도를 주 앞에 모으신다(6절). 지극히 높으신 분이시다 : 윗 하늘과 아래 땅도 해 돋는 데서 해지는 데까지에 있는 모든 것들을 주님이 아시고 소유하신다 (14절). 나는 하나님 곧 네 하나님이로다. 이러한 하나님이 그분께만 예배하는 성도들의 하나님이시다(7절).
8절부터는 열납되는 예물은 어떠해야 하는지에 대해 말한다. 형식만 갖춘 예물은 하나님이 거절하신다. 왜냐하면 살림의 짐승들과 천산의 생축이 다 주님의 것이기 때문이며, 하나님은 물리적으로 수소의 고기를 드시거나 염소의 피를 마시는 분이 아니시기 때문이다(8-13절). 중요한 것은 예배자의 자세이다.
어떤 예배를 드려야 하는가? 14~15절에 잘 나타나 있다. "감사로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라", "네 서원을 갚으라.", "환난 날에 하나님을 부르라.”
시편 50편을 통해 배우는 교훈은 첫째, 예배를 받으시는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 정확하게 아는 것이고 둘째, 하나님이 받으실 예배는 어떠해야 할지를 배우라는 것이다. 우리가 늘 드리는 예배가 감사로 드리는 제사인가? 하나님 앞에서 말을 바꾸지는 않는
가? 하나님을 간절히 찾고 구하고 있는가?
3.오늘의 기도와 관상
"주님, 지금 저는 매우 극복하기 어려운 환난 가운데에 처해 있습니다. 만물의 주재이시며 내 생애의 주인이신 주님이시여, 당신을 향한 신뢰와 믿음이 흔들리지 않게 하옵소서.
"주여! 이 시편에 나타나는 다윗의 심정을 맛볼 수 있도록 저의 기도를 인도하여 주옵소서. 환난 날에 조바심하지 않고 삶의 주인이신 하나님을 바라며 잠잠히 기다리게 하옵소서.그리고 하나님의 구원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게 하옵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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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편 51편 우슬초로 나를 정결하게 하소서
1.본문배경
51편 시는 유명한 참회의 기도이다. 이 기도의 주제는 '죄의 용서'이다.
이 시인은 그의 '죄사함'을 위하여 하나님의 은혜가 얼마나 중요한가를 세가지 다른 말로 표현하고 있다. 당신의 인자, 사랑(헷세드), 긍휼(하난), 자기(라함) 등이 그것이다. 하나님께 '정한 마음의 창조'를 간구하는 사람은 우선 자기가 저지른 죄로 말미암아 더럽혀진 그의 마음을 정하게 만들어야한다. 우리 마음을 정결케 함은 오직 하나님만 할 수 있다. 그러기에 이 시인은 "당신이 내 죄악을 지워 주소서!", "말갛게 씻기소서!", "깨끗이 제하소서!" 하는 간구를 하나님께 호소한다(2절).
하나님 앞에 진실을 가진다는 것은 곧 자기의 지은 죄를 숨기지 않고 낱낱이 고백하는 것이다. 정결한 마음을 창조 받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은혜를 구해야 한다. 자기의 죄를 고백하지 않고서는 하나님의 새 마음 창조의 축복을 받을 수 없다.
이 시인은 이것을 잘 알았기에 자기 죄를 솔직히 고백한다. 그는 죄를 표시하는 말도 은혜의 경우와 같이 세 가지로 표시하는데, '페샤아'(거스리는 죄), '아온'(실수한 잘못), 그리고 핫타아(삶의 목표를 잃어버린 행동)가 이것이다. 이렇게 하나님 앞에서 될 수밖에 없는 모든 가능성을 다 열거하는 철저한 고백이다.
이 기도는 사죄의 은총을 노래함보다 우리 인간이 운명적으로 지고 있는 죄악의 경향성을 하나님이 창조해 주시는 새 마음으로 극복할 수 있기를 간구함을 보여 준다. 예수의 속죄 은총은 이러한 인간들의 요구를 하나님이 들어주신 것이다. 그래서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이 된다(고후5:17).
2.본문 주요내용
구약에 등장하는 회개기도들의 기본이 되는 문장은 “내가 범죄하였나이다."라는 고백이다. 시편 51편은 이 고백에 대한 가장 온전한 해설이며, 예배나 개인의 경건 시간에 가장 많이 사용된 성경본문이라고 말해도 무리가 없을 것이다.
시편 51편은 일곱 개의 회개시편 중에 네 번째 참회의 기도로, 사순절을 시작하는 시편으로 찬송가로, 정기적인 고백의 기도로, 예배의 전례문으로, 그리고 기독교 교리를 반영하는 본문으로 사용된다.
제목에 의하면 이 시편은 다윗이 밧세바와 동침한 후 나단 선지자가 그에게 와서 그의 죄를 지적할 때 다윗이 드린 기도이다(삼하 11-12장), 이 시편을 기록한 학식이 풍부한 서기관은 이 시편이 다윗의 이야기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고 생각하고, 4절의 말씀과 사무엘하 11:27과 12:13을 연관시키고 있다. 제목을 바탕으로 이 시편은 다윗의 경험과 참회를 표현한다고 해석되어 왔다.
이 기도의 죄의 고백은 하나님의 은혜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 이 기도의 시작은 '내게 은혜를 베푸시며'라는 구절이다. 하나님의 인자하심과 풍성한 긍휼하심을 간구하는 것이다(1절). 이 기도는 단순히 인간적인 후회나 실패, 또는 좌절감에 대한 집착을 표현하는 것이 아니다.
이 기도는 자아를 넘어서 하나님을 바라보며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를 의지하는 것이다. 죄의 고백은 이미 의롭게 되는 과정이다. 우리는 죄인이다. 하나님은 은혜로운 분이시다.
성전에서 자신의 가슴을 치며 회개한 한 세리를 예수님께서는 의롭다고 말씀하셨는데, 그 세리의 고백은 "하나님이여… 나는 죄인이로소이다."였다(눅 18 : 13), 이 고백이 바로 시편 51편의 첫 구절이다. 그러므로 이 시편은 회개를 통해서 의롭게 되고, 거룩하게 되는 것을 가르치고 인도하고 있다.
3.오늘의 기도와 관상
"하나님! 이 시편에 나타난 다윗의 심정을 맛볼 수 있도록 나의 기도를 인도하여 옵소서.
다윗처럼 제 안에 숨겨진 죄의 뿌리와 그 죄의 경향성에 대한 깊은 자각 통회가 일어나게 하여 주옵소서.
이 모든 죄를 압도하는 주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의 사랑을 경험하게 하시고, 내 안에서 주님을 향한 감사와 찬양이 터져 나오게 하여 주옵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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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편 52편 위기를 만났을 때 부르는 노래
1.본문배경
이스라엘의 첫째 왕으로 선택된 사울은 시기심으로 인해 민족을 위기에서 건진 용사 다윗을 죽이려 한다. 자신의 사위인 다윗이었건만 사울 왕의 질투심은 눈과 마음을 멀게 만들었다. 억울하게 쫓기는 신세가 된 다윗은 현재 예루살렘 히브리 대학 자리에 있었던 제사장 마을 놉으로 피신하여 도움을 구한다.
놉의 제사장 아히멜렉은 다윗의 요구에 따라 진설병과 골리앗의 칼을 그에게 준다. 여기서 유추할 수 있는 사항이 골리앗과 맞서 싸울 때 다윗은 막대기를 든 소년이었지만 이제는 장성하여 적장 골리앗이 소유했던 칼을 들 정도로 성장하였다는 점이다. 그 후 다윗은 골리앗의 칼을 들고 아둘람 굴로 피신하여 그곳에서 그의 혈육인 형제들을 비롯하여 마음이 상한 자들 400여 명의 무리와 함께하게 된다.
한편 다윗이 놉에 머물렀다는 정보를 에돔 사람 도엑이 사울에게 전한다.
사무엘상 21:8에 의하면 도엑은 에돔 사람으로 사울의 가축들을 관리하는 총 책임자가 된 사람인데, 다윗이 놉을 방문했을 때 정결예식을 위반한 죄로 제사장 마을에 갇혀 있었다. 그러나 사울에게 다윗에 대한 정보를 전하고 복직되었으며, 놉의 제사장에게 분노를 발한 사울이 제사장을 죽이라고 명령할 때 신하들은 하나님께서 기름 부으신 종들에게 손을 대는 것을 꺼려 하나 이방 사람이었던 도엑은 아무런 거리낌 없이 하나님의 사람 85명을 칼로 쳐 죽인다(삼상 22:9, 18), 그뿐 아니라 제사장 마을의 남녀노소 가축들은 불에 타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이 슬픈 소식을 가까스로 목숨을 건진 아히멜렉의 아들 아비야달이 전한다.
바로 이때 다윗이 하나님께 읍소하며 쓴 시가 본 시편이다. 시의 장르는 교훈시로 악인에게는 재앙이, 의인에게는 은혜가 임함을 강조한다.
2.본문 주요내용
본 시는 두 부분으로 나뉜다. 즉, 악인의 모습과 그 삶의 결과를 자세히 설명하는 첫 단락 (1-7절)과 의인은 누구이며, 그 삶의 결과는 어떠한지에 대해 설명하는 두 번째 단락(8-9절)으로 나뉜다.
악인은 누구인가? 그들은 힘을 의지하는 강포자이다. 악한 계획을 자랑하며 혀는 날카로운 삭도 같아서 간사를 행한다. 선보다 악을 사랑하며 거짓을 의보다 더 사랑한다. 간사한 혀로 남을 삼키는 말을 줄곧 하며,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고 재물의 풍부함이 그들의 의지하는 신으로 스스로 자긍하는 자이다.
이들의 결말은 어떠한지 시인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첫째, 하나님이 악인을 취하여 그 거처에서 뽑아내 버리신다. 둘째, 생존하는 땅에서 악인의 뿌리를 캐내신다. 결국 악인은 영영히 멸망당하는 것이다.
반면에 의인은 누구이며, 그들의 삶의 결과는 어떠한 지에 대해서도 말한다. 의인은 하나님의 인자하심을 영영히 의지하는 자로 하나님의 집에 심긴 푸른 감람나무 같은 자이다. 의인은 주의 선하신 이름을 의지하며 주께서 행하신 기사들로 인하여 성도들 앞에서 주께 감사하는 자를 말한다. 의인과 악인의 분명한 대조적 삶의 모습을 본 시편을 통해 보게 되었다. 선택은 우리의 몫이다. 여호와의 선하심을 의지하겠는가 아니면 인간이 쌓아 놓은 바벨을 의지하겠는가?
3. 오늘의 기도와 관상
"주님, 이 세상의 일들이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악한 계획에 의해서 움직여지는 것 같습니다. 매일 매일 돌아가는 이 세상이 온통 그들의 손에 의해서 점령당하며, 경건한 자의 목소리는 끊어지는 듯합니다. 그들은 주님을 의지하는 이들을 비웃습니다.
이때 우리는 어떻게 하여야 합니까? 인간의 풍부함과 계략이 하나님의 부유하심과 지혜에 미치지 못함을 영의 눈으로 보게 하옵소서. 그래서 여리지만 하나님의 집에 있는 감람나무가 마침내 그 생명력을 지키며 번성하리라는 믿음을 가지게 하옵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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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편 53편 지식과 지혜의 만남
1.본문배경
시편 53편은 14편과 거의 같은 내용을 담고 있다
(14편-다윗의 영장에 맞춘 노래/53편 -다윗의 지혜의 노래, 악기 마할랏에 맞춘 영장 노래),
두 시편을 비교해 보자. 사용 단어는 다르지만 내용은 거의 흡사하다.
14편 1절 히브리어 '알릴라' - 제멋대로 행동함/53편 1절 히브리어 '아벨' - 종교적으로 부패한 삶 :
14편 2절 '싸르' - 곁길로 치우침/53편 3절 '싸그' -왔다 갔다 함 ;
14편 5절 엘로힘 베도르 짜딕' - 여호와께서 의인의 세대에 계시도다/53편 5절 하나님께서 의인을 치는 악인을 벌하시는 장면을 구체적으로 묘사한다 - 두려움이 없어졌으니 이유인즉 하나님께서 의인을 치기 위해 포위망을 친 자들의 뼈를 흩으셨기 때문이다.
14편 6절 - 가난한 자의 경영을 부끄럽게 하나 여호와는 그의 피난처가 되시도다/53 편 5절 하반절 - 하나님께서 그들을 싫어하시기 때문에 그들에게 부끄러운 일이 생길 것이다.
학자들은 두 시편이 원래 한 노래로 시간이 지나면서 두 개로 전수되어진 것이라는 견해를 가진다. 하지만 두 시는 공통된 부분을 공유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다른 시이다. 이유인즉 두 시가 각각 가지는 중요한 특징이 있기 때문이다.
첫째, 하나님의 이름 사용에 있어서 다르다. 14편에는 하늘의 하나님을 표현할 때 거룩한 성문자 4자로 된 일명 '예호바'를 사용하나, 53편에는 그냥 '엘로힘'으로 표기한다. 동일하게 하나님을 부르지 않는다는 표현에서도 14편은 '예호바'를 사용하나 53편은 그냥 '엘로힘'으로 표기한다. 14편은 그의 백성의 포로됨을 돌이키시는 분을 '예호바'로 표기하나 53편은 '엘로힘'이란 표현을 고수한다. 단 예외는 14편에서 하나님이 의인의 세대에 계신다는 표현에서 하나님을 '예호바' 대신 '엘로힘'을 사용한다.
둘째, 14편 6절 부분은 53편에는 나오질 않는다. “너희가 가난한 자의 계획을 부끄럽게 하나 오직 여호와는 그의 피난처가 되시도다"
셋째, 제목이 다르다. 14편의 제목은 “다윗의 영장에 맞춘 노래" (라메나쩨아흐 레다비드)인데 히브리어 문자대로 번역하면 다윗의 승리를 위한 노래인 반면, 53편의 제목은 "다윗의 지혜시 - 마할랏에 맞추어 부르는 승리의 노래" (라메나쩨아흐 알 마할랏 마쓰킬 레다비드)이다. 즉, 53편은 14편과 달리 지혜를 뜻하는 '마쓰킬'이란 단어와 악기 이름으로 추정되는 '마할랏'이 첨가되어 있다. 추측컨대 14편의 노래가 먼저 있었고 이것을 다시 확장해서 악기를 사용해서 재편집하였거나, 아니면 완전히 다른 노래로써 공통된 부분은 고대부터 전승되어 온 자료를 각각 다르게 전수 받아 현재 형태로 최종 결정되었을 가능성이 높다.
2.본문 주요내용
어리석은 자는 그 마음에 이르기를 하나님이 없다고 말한다(1절). 어리석은 자로 번역된 히브리어 '나발'은 영어로 '바보'(be senseless, foolish)란 뜻이다. 바보는 감각을 상실한 사람을 말하며, 쉽게 어떤 사실을 결정하는 사람을 의미한다. 그런데 아랍어로 나발의 의미는 정반대의 의미를 가지고 있다. 그 뜻이 귀족처럼 고상하며 뚜렷한 인상을 주는 지식계층을 의미한다.
지식이 자신을 가두면 그 너머에 있는 존재를 볼 수 없는 경우가 종종 있다. 지식은 후퇴한다는 말이 있듯이 영원한 지식이 아닌 일시적인 지식은 뒤에 오는 지식에 그 자리를 내어 줄 수밖에 없다. 따라서 잠시 머물러 있는 지식을 가지고 초자연적 사실이나 신의 존재에 대한 단정적인 말은 그것이 중심에서 홀로 속삭이는 것일지라도 어리석은 것이 될 수 있다는 점을 시인은 강조하는 것이다.
지식은 부패하기 쉽고 가증한 일을 행하기 쉽다. 지식인이 타락할 수 있는가? 성경은 있을 수 있다고 말한다. 우리 주변을 살펴보면 대답이 분명히 나온다. 학처럼 올곧게 바른 삶을 사는 분도 있지만, 지식이 그 인생을 부패하게 하고 파멸시키는 경우를 보게 된다. 지식과 도덕이 동반자가 되면 좋거니와 서로 대적이 되면 오히려 무지한 것을 낳는다. 왜냐하면 변명이라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선과 무관한 지식은 위험하다. 지식인일수록 선을 행하여야 한다는 점을 강조한다. 선이 수반되지 않는 지식은 무용지물이다. 천체물리학자들이 태양계에서 명왕성을 제외하는 결정을 내리는 데 70년이 걸렸다는 뉴스를 접하면서 이런 생각을 해 보았다. 태양계 안의 것도 다 알 수 없는데 그 너머에 계시는 하나님의 존재는 우리 지식의 한계를 뛰어넘는 일이 아닌가? 따라서 성경은 믿음을 강조한다.
지식과 믿음은 서로 동반자가 되어야 한다. 왜냐하면 믿음은 지식을 윤택하게 해 주고, 지식은 믿음을 돋보이게 하기 때문이다.
지식이 지혜는 아니다. 지혜로운 자들은 하나님을 찾는다.(2절) 히브리어로 지혜로운 자란 '마쓰킬'이며 의미는 "형통케 된다."이다. 이 단어의 히브리어 원형인 '세겔'은 지혜를 뜻하며, 우리 앞에 놓인 수많은 난제들은 하늘이 주시는 지혜로 하나하나 다루다 보면 결과가 좋다는 것을 의미한다.
시인은 하나님을 찾는 자들이 지혜로운 자, 혹 형통한 인생을 영위해 가는 사람들이라고 말한다. 왜 그런가? 우리의 인식의 한계를 뛰어넘는 것들이 너무 많이 있기 때문이다. 또한 우리가 할 수 없는 것이 너무 많이 있기 때문이다. 지식인이 바보라는 언어적 뉘앙스는 많은 것을 시사해 준다. 똑똑한 바보가 되기보다는 어리석은 신앙인이 되어야 할 것이다.
3.오늘의 기도와 관상
주님, 마음 깊은 곳에서 꺼지지 않는 등불로 좌정하고 계시는 주 예수님을 주목하게 하옵소서.
자칫하면 마음 깊이 자리잡고 있는 또 다른 죄악된 속성이 나를 무지하게 만듭니다.
그래서 하나님 없이 사는 자가 될 수 있음을 인정합니다.
주님, 당신은 내 마음의 등불이요, 빛입니다.
그래서 내가 당신을 주목할 때에 나는 즐거움을 누리고 그곳이 안전한 평안을 주시옵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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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편 54편 주의 이름으로, 주의 힘으로
1.본문배경
시편 54편은 비교적 짧은 시의 하나이지만, 그 제목의 설명에도 있듯이 다윗과 같이 생명의 위협을 느끼고 있었던 사람이 드린 기도라 하겠다. 특히 3절에 나온 “낯선 자들이 일어나 나를 친다.” 함은 다윗을 죽이려던 사울과 내통하고 있는 이방인들이라 할 수 있다.
이 기도하는 자가 3절에서 말하는 '낯선 자들'과 '포악한 자들'은 사울에게 첩자노릇을 한 십 사람들과 그의 목숨을 노리던 사울과 그의 일당이라 할 수 있다. 포악한 자들은 압박자들이라 할 수 있다.
이렇게 사방을 원수들에게 둘러싸여 순간순간 그의 목숨을 노리고 있다는것을 알게 된 기도자의 살길이란 위에 계신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도움밖에 없다.
이것은 기적이다. 죽음에 직면하여 절망적이지만 그래도 하나님의 구원의 손길을 기다림은 당연한 일이다. 주 하나님은 자기 생명을 붙들어 주시는 분이라 함인 동시에 자기를 돕는 사람들과 함께하시는 분이라는 것이다. 이것은 하나님이 위험 중에 처한 시인과 함께하신다는 말만이 아니라 위험 중에 있는 기도자를 위하여 돕는 사람들도 기도자 편에 있다는 것을 알려 준다. 어딘가에 나를 돕는 사람이 있다.", "나는 외롭다. 하지만 어딘가에 나를 위하여 기도하는 사람이 있다. 그들과 함께하시는 하나님이 나를 도우신다."는 승리의 확신을 알려 주는 것이다.
이렇게 하나님이 그와 함께 계시기 때문에 그는 "당신은 나를 악으로 대하는 사람을 물리치십니다."라고 고백한다. 시인 자신은 아무것도 할 수 없어도 하나님이 갚아 주실 것을 믿는다는 고백이다.
이것은 거룩한 전쟁 제도에서 인간은 가만히 있지만 하나님이 직접 나서서 싸워서 대적을 물리쳐 주신다는 이스라엘의 전통적인 신앙을 표시한 것이다.
2.본문 주요내용
이 시편은 짤막한 도움을 구하는 개인의 기도이다. 이 시편은 우선 하나님을 부르며 하나님께서 들으시고(2절) 도우시기를 간구한다(1절). 이 간구의 배경이 되는 환난이 간략히 묘사되어 있다(3절),
4절의 시작을 '힌네' (보라는 뜻)란 말로 시작했다는 것은 사방이 꽉 막혀 있는 이 절망의 자리에서 한 줄기 구원의 빛이 갑자기 비치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일을 보라~!!지금까지 이 기도자가 당면한 고난과 위험, 절망과 죽음의 현실을 전적으로 부정하는 용기의 외침이다. 이것은 역사를 갑자기 딴 방향으로 돌리는 하나님의 손을 보게 함이다.
이렇게 죽음의 자리에서 삶의 자리로 전환시키는 것을 알린 다음, 그것이 어떤 것인가를 알려 주는 것이 다음 구절이다. "엘로힘 오즈레 리."는 "하나님은 나를 도우신다."는 말이다. 그 다음에는 하나님에 대한 확신을 선포하며 (4-5절상) 하나님이 원수를 대적하여 역사하시기를 간구한다(5절 하). 이 기도는 희생제사의 서원과 그 제사를 동반할 찬양으로 변하는 감사를 끝으로 결론을 맺고 있다.(6-7절).
이 시편은 하나님께서 주의 이름으로, 그리고 주의 힘으로 구원하시기를 간구하고 있다. 하나님의 이름과 힘은 동의어로 사용되고 있는데, 이것은 하나님의 이름이 하나님의 능력으로 이해되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이름은 하나님 본인이시다. 이 시에서 구원을 구하는 기도를 드린 이유는 3절에 묘사되어 있는 원수들이 가져온 환난 때문이다. 신실하지 못한 원수들의 위협에 직면해서 이 시편기자는 하나님의 신실하심에 호소한다(5절).
3.오늘의 기도와 관상
"하나님! 내가 부르짖을 때에 내 입의 말에 귀를 기울이소서, 어떤 고난이나 아픔에서도 내가 홀로 버려진 존재가 아닌 것을 기억하게 하소서. 오히려 환난 가운데서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가를 참으로 알고 주님의 이름과 힘을 체험하게 하소서.
고난 중에 있는 우리의 현실 가운데 도움으로 생명으로 숨어 계신 하나님을 알 수 있도록 인도하소서. 이제 끝도 없을 것 같은 우리의 고난이 오히려 주께 드리는 기쁨의 제사가 되도록 인도하소서.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