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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4일 오후 새누리당 대구시당, 경북도당 앞에서 열린 대구 · 경북 지역 천주교 사제 수도자 시국선언 기자회견 중 김영호 신부(대구대교구 정의평화위원장)가 발언하고 있다. ⓒ한상봉 기자 |
대구 · 경북 지역 사제와 수도자들이 국정원의 대선 개입을 비판하고 민주주의 수호를 외치며 시국선언에 나섰다.
특히 천주교 대구대교구 사제들의 시국선언은 1911년 교구 설정 이후 처음 있는 일이다. 대구 · 경북 지역은 박정희 군사정권 이래 줄곧 정치적 보수성을 유지해 왔으며, 이 지역 교회 역시 보수적 성향을 띄고 심지어 군사독재정권에 적극 참여해 오기도 했다. 최근 대구대교구는 정의평화위원회가 재출범하면서 새삼 ‘사회정의’를 강조해 왔는데, 이번에는 경북 지역에서 유일하게 진보적 성향을 보여 온 안동교구와 함께 시국선언에 참여하게 된 것이다.
시국선언 기자회견은 14일 오후 3시 대구 수성구 새누리당 대구시당, 경북도당 앞에서 열렸다. 이번 시국선언에는 천주교 대구대교구 사제 103명, 안동교구 사제 66명, 성 베네딕도회 왜관수도원 등 남자수도자 72명과 예수성심시녀회 등 여자수도자 265명을 포함한 총 506명의 사제와 수도자들이 참여했다.
이번에 15명이나 참여한 대구 가르멜 여자수도원은 봉쇄수녀원으로서, 시국선언에 동참하면서 “현시대에 교회의 역할이 무엇인지, 예언자직을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스스로에게 많은 질문을 하게 되었습니다. 교회가 진정 살아있는 파수꾼의 몫을 충실히 살아갈 수 있기를 늘 기도 안에 지향을 모아봅니다. 저희 또한 시대의 오류와 상처를 치유할 수 있는 표징으로서의 수도자의 몫을 다할 수 있도록 기도하겠습니다”라는 내용의 편지를 보내왔다.
“우리 목소리는 증오가 아니라
정의를 회복하려는 사랑에서 나온 것”
시국선언에 앞서 봉헌한 시작기도에서 참가자들은 “대구대교구와 안동교구, 그리고 대구 · 경북 지역의 수도회에 속한 사제들과 수도자들이 작고 여린 목소리를 모아 이 나라가 진리와 정의가 존중받고, 거짓과 부정에 대항하는 나라로 거듭나기를 청한다”며 “우리의 목소리가 결코 파괴를 위한 증오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정의를 회복하고 새로움을 창조하기 위한 사랑에서 나오는 것”이라고 밝혔다.
이 자리에서 권혁시 신부(대구대교구)는 “1911년 대구교구 출범 이후 처음으로 공동선 실현을 위해 대구 · 경북 지역 사제와 수도자들이 함께 모였다”며, “이는 국정원의 불법 정치개입이 민주주의에 대한 역사상 유례없는 도전이라는 심각성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어 “교회가 시국선언에 나설 수밖에 없는 이유는 도덕과 양심의 문제이고, 정권에 대한 신뢰와 신의의 문제이기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같은 경북 지역이지만, 1970년대 이후 줄곧 민주화운동에 앞장서 왔던 안동교구에서는 정진훈 신부가 발언했다. 정 신부는 “이번 시국선언은 대구대교구가 안동교구와 같은 시각으로 미래에 대한 꿈을 꿀 수 있다는 것이 가장 큰 의미”라고 말했다. 이어 “조직적 폭력 앞에서 희망의 씨앗을 뿌리기 위해 이 자리에 왔으며, 남쪽에서 시작된 이 바람이 동토 북쪽까지 퍼져나가길 바란다”고 말했다.
▲ “모든 거짓말쟁이들이 차지할 몫은 불과 유황이 타오르는 못 뿐이다”. 14일 오후, 대구 · 경북 지역 국정원 사태 천주교 시국선언에 참여한 이들이 “민주주의 수호” “국정원 규탄”이라고 적힌 손팻말을 들고 있다. ⓒ한상봉 기자 |
“정부가 법과 원칙 외면한다면 대구 경북 사제 · 수도자들이 나설 것”
이날 시국선언문은 대구대교구 정의평화위원회 위원장 김영호 신부가 낭독했다. “모든 거짓말쟁이들이 차지할 몫은 불과 유황이 타오르는 못 뿐이다”(묵시 21,8)라는 성경 말씀으로 시작하는 대구 · 경북 지역 사제 수도자 시국선언은 “교회는 정의롭지 못한 현실 앞에서 침묵하는 것을 죄악으로 규정하고, 우리에게 불의에 저항할 권리와 의무가 있음을 가르친다”(교회와 인권 57)면서, “교회의 입장에서 바라본 작금의 대한민국 현실은 분노를 넘어 우리를 경악하게 한다”고 비판했다.
시국선언은 “국정원이 특정 정당의 대통령 후보를 위해 수준 이하의 댓글 공작을 자행하면서 국가를 저버리고 정권의 하수인으로 전락했다”며 “새누리당은 이에 동조하여 국정원 사태를 해명하기 위한 국정조사를 파행으로 몰아가고 있고, 박근혜 정부는 침묵으로 일관하면서 책임을 외면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박정희의 유신독재와 전두환의 군사독재는 민주주의에 대한 국민들의 열망을 저버린 중대한 범죄행위였다”며, 박근혜 정부와 새누리당이 왜곡된 언론 보도에 기대어 국정원의 범죄 행위를 덮으려 한다면 “이는 한국 현대사에서 부당한 권력 장악의 역사를 또 한 번 반복하는 것”이라고 경고했다. 또한, 박근혜 정부가 법과 원칙을 외면한 교묘한 말 바꾸기로 국민들을 혼란에 빠뜨린다면 “대구 · 경북 지역의 사제들과 수도자들은 대한민국 국민과 더불어 조금도 망설임 없이 진리를 증거하기 위해 나설 것”이라고 전했다.
시국선언에서 대구 · 경북 지역 사제 수도자들은 국정원의 대통령 선거 불법 개입과 남북정상회담 대화록 불법공개의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을 요구하고, 이러한 국기문란 행위에 대한 박근혜 대통령의 사죄와 근절대책을 요구했다.
국정원 사태에 대한 천주교 사제 · 수도자 시국선언은 7월 25일 부산교구 사제단의 시국선언을 시작으로 7월 29일 마산교구, 7월 31일 광주대교구, 8월 7일 인천교구와 8일 전주교구에 이어 14일 대구대교구와 안동교구 사제 수도자들, 대전 · 원주교구로 이어졌다. 수원교구는 20일 오전 11시 정자동 주교좌성당에서 교구장 이용훈 주교 주례로 시국미사를 봉헌하고 시국선언문을 발표할 예정이다.
국정원 대선개입 규탄 민주주의 수호 “모든 거짓말쟁이들이 차지할 몫은 불과 유황이 타오르는 못 뿐이다” (묵시21,8) 진리를 증거하고자 하는 대구 경북지역 천주교 대구대교구와 천주교 안동교구의 사제 및 수도자 506명은 최근 국가정보원 및 국가기관의 불법적인 대통령 선거 개입 사태와 이에 대한 진실을 요구하는 국민의 소리를 계속해서 왜곡하고 은폐하는 정부와 새누리당 및 정치권의 소모적인 논쟁을 보면서 우리의 입장을 밝힙니다. 교회는 이 세상 안에서 하느님 나라의 건설을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하느님 나라는 진리와 정의가 존중받는 나라, 거짓과 부정에 대항하는 나라입니다. 교회는 정의롭지 못한 현실 앞에서 침묵하는 것을 죄악으로 규정하고, 우리에게 불의에 저항할 권리와 의무가 있음을 가르칩니다(교회와 인권 57). 이러한 교회의 입장에서 바라본 작금의 대한민국 현실은 분노를 넘어 우리를 경악하게 합니다. 대한민국의 안위를 위해 음지에서 일하며 양지를 추구한다는 국정원이 특정 정당의 대통령 후보를 위해 수준 이하의 댓글 공작을 자행하면서 국가를 저버리고 정권의 하수인으로 전락하였습니다. 그 뿐만 아니라 국정원은 자신들의 불법적 선거개입을 은폐하기 위하여 2007년 남북정상회담 회의록을 공개하는 또 다른 불법을 저지르고 말았습니다. 그런데도 새누리당은 이에 동조하여 국정원 사태를 해명하기 위한 국정조사를 파행으로 몰아가고 있고, 박근혜 정부는 침묵으로 일관하면서 책임을 외면하고 있습니다. 한국의 현대사는 독재자에 의한 부당한 권력 장악의 역사였습니다. 박정희의 유신독재와 전두환의 군사독재는 민주주의에 대한 국민들의 열망을 저버린 중대한 범죄행위였습니다. 박근혜 정부와 새누리당이 왜곡된 언론 보도에 기대어 국정원의 범죄 행위를 덮으려 한다면 이는 한국 현대사에서 부당한 권력 장악의 역사를 또 한 번 반복하는 것입니다. 과거를 돌이켜볼 때 이러한 정권은 결코 국민들로부터 환영받지 못했고, 결국 국민에 의해 심판받았음을 현 정부는 꼭 기억하기 바랍니다. 박근혜 정부는 진리의 엄중함과 고귀함을 잊지 마십시오! 눈과 귀를 열고 국민의 소리를 들으십시오! 법과 원칙을 외면한 교묘한 말 바꾸기로 국민들을 혼란에 빠뜨리지 마십시오. 그런 일이 계속된다면 대구경북지역의 사제들과 수도자들은 대한민국 국민과 더불어 조금도 망설임 없이 진리를 증거하기위해 나설 것입니다. 이제 대구 경북지역의 천주교 대구대교구와 천주교 안동교구 사제 및 수도자 506명은 예언자적 사명으로 우리가 믿고 따르는 신앙의 가르침과 국민적 경고를 담아서 박근혜 정부에 다음과 같이 촉구합니다. 1. 국정원의 대통령 선거 불법 개입의 진상을 철저히 규명하고, 책임자를 처벌하라. 2013년 8월 14일 <천주교 대구대교구 사제 103인> ※가나다순 <천주교 안동교구 사제 66인> <남자 수도회 72인> <여자 수도회 265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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