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찬이 제주도로 수학여행을 갔기 때문에 웬지 집안이 허전~
선산을 지키는 굽은나무처럼 녀석의 존재감이 그렇다.
퇴근 후 현관문을 열고 들어설때 반기는 말리의 몸짓에서도 활기가 덜 느껴진다.
아무래도 이런날은 정해진 코스를 시간을 재며 달리는 '훈련' 보다는 놀듯이 여기저기를 돌아다니는 '나들이' 개념이 좋을 것 같아 녀석의 어깨띠를 채우고 리드줄은 자동줄감개로 연결해서 밖으로~
전북대 대학로를 지나 구정문에 들어설 때까지 복잡한 인파속을 거쳐 나가는데 사람이 많은 곳에서 워낙 단련이 된 녀석이라 누가 어떤식으로 관심을 보여도 휩쓸리지 않고 '쌩까'면서 갈길로만 간다.
구정문 바로 안쪽에는 양쪽길을 막고 총학생회장 선거전이 뜨겁게 펼쳐지고 있다.
작년말에 선거시비가 생기면서 선출이 무산되었다는데 이제야 다시 시작되나 보다.
입후보 진영에서 내건 팀명이 이채롭다.
'신바람'과 '각시탈'
터널을 지어 구호와 율동을 하는 대열을 통과해 분수대 방향으로 가려는 도중 털복숭이 중형견(견종은 모르겠고)을 봤는데 녀석 얼른 거기로 달려가서는 계속 도발을 한다.
지나가던 학생들은 총학선거전 보다 개들의 재롱에 더 관심이 끌려서 몰려들더니 급기야는 후보들까지 이쪽으로 와서 기웃기웃... 그야말로 선거전이 개판이 되어버렸다. 유쾌한 개판^^
한참을 그렇게 개판을 친 뒤 분수대광장과 중앙도서관을 거쳐 대학병원으로 넘어가고 거기서부턴 건지산 숲속으로 들어가 본격적인 산길달리기가 시작된다.
덕진체육공원으로 나왔다가 소리문화전당을 거쳐 오송지를 지나 송천동 진흥더블파크와 한라비발디아파트 주변을 돌고 현대아이파크 뒷쪽으로 해서 다시 건지산 연화동산으로 들어선다.
날은 이미 완전히 어두워졌고 산길은 가로등 하나없이 컴컴한데 말리녀석이랑 둘이서 가니까 적적하지도 않고 길을 찾는데도 아무런 문제가 없다.
하기사 건지산은 어느코스가 됐건 눈을 감고도 훤~하기 때문에...
최명희묘지로 빠져 나오려는데 깜깜한 묘지 주변에 웬 군발이들이 열댓명 잠복해 있어서 순간 오싹!
그런데 녀석들 하는 꼬라지 하곤... 군복은 거의 완벽한 위장색이라 이런 밤중엔 눈에 띄지를 않는데 그놈의 핸드폰들을 들여다보고 있으니...날 잡아가슈~!
아마도 예비군훈련이나 하고 있나보다.
정규 군인들이 이런때 이런곳에 숨어 있을 이유도 없고 더군다나 핸드폰을 들여다 보는 것은...
전북대 노천극장과 대운동장을 지나 덕진광장, 법원, 사평교를 거쳐서 집으로 돌아왔더니 총 2시간이 넘게 소요되었다.
건지산 숲길에 들어선 뒤 최명희묘로 빠져 나올때까지만도 46분이나 걸렸으니 나들이 치고는 제법 길게 돌아본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