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 5/14일까지~ 약 보름간의 대화 끝에, 이건 아닌데.. 하는 생각이 들었다.
중국 갔을 때, 며느리한테 레바논 미군 장교이야기를 꺼냈다.
- 나라야~ 나한테 여차저차한 일이 있었단다.
- 어머님, 그거 사기예요~ 가스라이팅입니다. 당장 대화종료하시고 신고하세요.
아들도 며느리도 의사, 파병군인을 빙자한 보이스 피싱이 난린데, 어째 그런 정보를
모르고 있냐고, 당장 검색해봐도 줄줄이 사탕처럼 사례가 나온다면서 내 걱정을 했다.
사람의 말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은 고치려고 해도 잘 안 고쳐지는 성격인가보다..
어쩌다 걷기 모임에 가입했다가, 가입하는 날 바로 날아온 쪽지를 받고 처음에는 이거 뭐지?
했으나, 그 말에 속아서 여기까지 온 셈이다. 이른바 로맨스 스캠에 걸려든 것이다.
영혼이 순수한 나를 하늘이 보내신 천사라는 표현을 쓰며, 수시로 감동시켰을 뿐더러
고아로 성장한 그의 처지를 동정하는 자비심많은 누나, 친구로 불리면서 가족같다고도 했지.
그전의 수많은 사연은 차치하고라도 38년간의 미군장교생활을 청산하는 날 한국에 정착하고
싶다는 말과 함께, 도움을 요청했다. 내가 도와줄 수 있는 부분은 도와주겠다고 약속했지.
먼저 만나면, 그는 나에게 영어를 지도하고 나는 그에게 한국어를 지도하는게 급선무였지.
어찌 그리 말도 이쁘게 하던지, 도와주지 않을 수 없었지. 정말이지, 도와주고 싶었다.
그런데, 어제 그만, 출근시간을 미루어가면서, 동네 파출소로 달려가서 그를 신고했다.
인터뷰를 마친 파출소장님 말씀이, 영국택배회사를 비롯한 적십자사, 미군장교.. 모두가
한사람이 벌인 1인 자작극이란 말씀을 하셨다. 말로만 듣던 보이스 피싱에 내가 걸려들었구나..
생각하니, 세상이 이래도 되는 건가? 싶은 생각에 하루종일 밥맛을 잃었다.
주민등록증 분실실고, 112신고, 은행권 출금금지 신청.. 등등
정신적인 에너지를 뺏기고 나니, 누구말 마따나 영혼이 탈탈 털린 기분이 들었다.
결국 결정적인 순간에 눈치를 채고, 냉정하게 돌아섰기에 금전적 피해는 없었다.
경찰에서는 정말 큰일날 뻔 했다고, 대처를 잘했다는 말로 나를 위로해주었다.
그 자는 오늘아침에도 매일 보냈던 꽃 그림과 함께, 아침 문안인사를 건네왔지만,
나는 열어보지 않았다. 경찰에 신고하기 전날, 생각 끝에 카톡을 열고 메세지를 읽은 다음
부글거리는 심정을 한마디 하긴 했다. 당신은 지금까지의 모습과는 달리, 마지막에 나를 기만했다.
세상에는 사악한 탈레반도 있지만, 더 사악한 범죄조직도 있으니 당신도 조심하라고 했더니,
그건 자신하고는 해당없는 말이라고 일축했다. 후훗.. 아직도 처리할 일이 남아있지만,
그건 어리석었던 내 자신이 저지른 일이니, 그 수고로움도 내가 감수해야할 것이다.
세상에서 제일 슬픈 것이 사람을 못 믿는 일이라고 생각했던 나는 정서적인 충격을 경험하며
2주간에 걸쳐 일어났던 일들을 떠올리며, 허탈한 웃음을 지어보는 아침이다. 헛. 참. 나
첫댓글 헛 참 나~~. 그러기도 하네요.
저도 세상에 좋은 분을 만났다고 생각했는데
그럴 수도 있구나 간접 경험을 하네요.
이젠 보이스피싱이 "중국"을 넘어 레바논까지 가나봅니다. 아무튼 다행이시고, 중국여행 잘 마치신거는 축하드립니다.
중국의 보이스피싱 범죄집단들이 레바논을 빙자하여 그런 짓거리를 하고 있다고 파출소에서는 말씀합디다.
믿을 사람은 나 자신 뿐인 것 같아서 입맛이 씁쓸하지만, 더 흉한 꼴 안 당했으니, 다행으로 여겨야겠지요.
오늘로서 3일째 그에 관련한 조치를 취하느라 기가 다 빠졌습니다. 어리석음에 대한 댓가를 톡톡히 치르고 있습니다.
정말 다행입니다. 액땜했다치시고 잊어 버리시길 바래요. 박곰님께 맞는 소중한 인연은 따로 계신가 봅니다. 언젠가 그분을 만날때 생각나시겠지요... 천천히 주위에서 찾아보시고 아시는 분중에서 생각해 보세요. 같이 행복한 일상을 나누실 분이 계실 줄 믿습니다. 늘 행복하시고 건강하세요!
저는 지금도 충분히 행복합니다. 원래부터 고독을 즐기는 편입니다.
살다 보니, 별일을 다 겪게 되네요~ 복잡한 세상에서 나 같은 이는
사람에 치이다가 볼짱 다 보는 것 같습니다. 웬 사람들이 거짓말을 그리 잘하는지.. 신기할 따름입니다.
글로버 시대라 세계적으로 카톡으로 친구가 될 수 있구나 생각했는데
그것이 아니었군요..그나마 천만다행입니다..세상이 어쩌다가~
늘 건강하시고 행복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