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 뿌리를 캔다 -11>
“문자 없었던 漢나라가 桓文 빌려썼을 뿐” 중국史記 자인 조선왕조, 동이문자를 명나라 글자로 상납…漢文으로 왜곡 한문은 한글있어야 완전…간체 30년 지나면 불편해질 것
실로 고대 아시아대륙의 역사와 문화의 중심에 우뚝 섰던 유일무이한 ‘배달겨레나라’가 있었다는 것을 알지 못하고서는 한민족으로서의 자긍심을 저절로 느끼기란 어려울 것이기 때문이다. 상고시대 당시에서는 한(漢)나라의 뿌리는 물론 한족(漢族)의 존재도 찾을 수가 없었고, 앙소(仰韶)문화유적과 용산(龍山)문화유적 그리고 홍산(紅山)문화유적지까지는 동이의 삼황오제유적지임이 확인되었기 때문에 소위 지나(CHINA)족으로 인식되는 상대(上代)는 주(周)나라말기부터 춘추전국시대에 남만족계에서 등장하기 시작하였다고 볼 수 있음으로 한문구(大汶口)문명과도 관련이 없었다는 것이다. 따라서 한(漢)나라로부터 그들의 뿌리를 비정하고 있었던 것이다.
역사 기록에 따르면, 한나라는 불과 2200년 전(BC206년)에 농민반란으로 인해서 스스로 무너져버렸던 진시황조의 강역이 무주공산으로 되자 어부지리로 등장하게 된 유방의 야만세력에 지나지 않는다. 그들 한(漢)나라는 문자가 없었으므로 당시 그 지방에 통용되던 동이문자 즉 한문(漢文)이 아닌 한문(桓文:배달나라 문자)을 차용하여 썼을 뿐이라고 사기(史記)를 통해서 자인하고 있는데, 이는 금세기 최강국을 과시하는 미국이 문자가 없어서 영어와 불어를 차용하여 자기네 것인 냥 쓰고 있는 것과 같다는 표현을 한 것이다.
생각해 보자! 5000년이나 된 동이(東夷)의 문자 한문(桓文)을 그보다도 약2800년 후에 생겨 난 신생국가 한(漢)나라가 빌려 썼다는 것은 당연한 사연이지 않는가? 그러나 이러한 문자를 고리황실을 찬탈한 이단의 조선왕조가 명나라의 신하나라로 전락하면서, 뿌리 깊은 동방군자나라 고리(高麗)의 동이문자를 명(明)나라에 ‘진서(眞書)’라며 상납(上納)하게 되었으니, 마치 ‘한나라 한(漢)의 문자’인 것처럼 한문(漢文)으로 바꾸어 왜곡하게 되었던 것이다. 이제는 되레 한문(역사를 )인 것처럼 한문(韓文)을 한문(漢文)으로 인식하고 있는 실정이 억울하여 다시 한문(桓文) 또는 한문(韓文)으로 명명하고자 국회에 입법제의를 준비하는 중이다.<韓文에 대해서는 부록에서 상세히 다룰 계획이다.>
이와 같이 조선왕조의 자기 비하는 유명조선의 사대주의사상에서 비롯된 것이니, 황조를 왕조로, 태자를 세자로, 황후를 왕비로, 짐은 과인으로 낮추어 부르기 시작하였던 것도, 이긴 전쟁은 비긴 것으로 비긴 전쟁은 진 것으로 진 전쟁은 항거하다 벌 받은 것으로 개작, 조공을 받았던 것은 모조리 조공을 바친 것으로 뒤집어서 조작해 놓았던 것까지도 천조(天朝)를 섬기는 왕조(王朝)의 시작에서 비롯되었던 것임이 사실이다.
이러한 사실들이 지금에 와서는 공개된 비밀에 속하면서 500년의 왕조조선사에 누가 될까봐서 쉬쉬하고 있는 실정이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역사 학자로써 이러한 사실을 모른다면 학자로서의 자질에 문제가 있는 것이고, 알면서도 모른 체 비켜가려고만 한다면 이는 학자로서의 양심에 문제가 있는 것이다.
그래도 한 가지 다행스러운 것은 문자(文字:韓文=한문)는 주었어도 글자(契字:韓契=한글)는 주지 않았다는 것이다. 결국 한문은 한글이 있어야만 완전하게 사용될 수 있기 때문이고 한글은 한문이 있어야만 문명사회로서의 발전에 기여할 수 있기 때문에 문자와 글자를 분리시키는 것은 미래를 망각하고 마구잡이로 사는 데까지 살아보자는 자포자기사회관에서 나타나는 현상인 것이다. 그동안 한문폐지(韓文閉止) 또는 한글전용(韓契全用)을 주장했던 자들은 친일파(親日派) 주시경이의 오류에 빠져서 헤어나지 못한 자들이거나 맹목적인 추종파들과 민족문화를 모르는 자가 한글의 뿌리와 원형을 망각하고 국수주의적 역정을 내는 경우가 허다했음을 보았다.
지금도 중국인들이 한문을 제대로 사용하지 못하는 이유는 한글을 모르기 때문이고, 더구나 일본이 한문을 백제의 이두(吏讀)식으로 간체를 개발하여 가다가나(カタカナ)를 만들었듯이 간체를 개발하였지만, 앞으로 30년만 지나면 오히려 더 불편해질 것이라는 것이 확실하기 때문에, 다시 원형의 한문을 배워야 한다는 고민에 빠져있는 바와 같다.<한글(韓契)에 대해서도 부록에서 따로 다루기로 하겠음>
오늘날에도 강대국가에 의존하여 사대주의를 계속하여야 한다며 미국의 눈치를 살피는 정상배들이 있어서 ‘자주국방’라는 말이나 동북아의 ‘균형자’라는 말만 나오면 “안보를 위협하는 말”이라면서 “미국의 비위를 그슬리게 하는 용어사용을 하는 경솔한 지도자”라고 윽박지르는 세력도 이와 마찬가지이고, “반도(半島)”라는 말이 조국을 비하시키는 용어이고 본도(本島)에 예속(隸屬)되는 일제신조어(일본이 조선정복을 기획했던 정한론(征韓論)에서 만들어 낸 단어)로서 일본의 식민지라는 법정용어인데도 정치인들이 즐겨 쓰는 용어중의 하나인 ‘한반도(韓半島)’가 되어있는 것이라든지, 반도사관(半島史觀)이 망국사관으로서 나쁘다는 것을 알면서도 여전히 ‘반도’라는 용어는 부끄럼 없이 쓰는 나라가 우리나라라는 것이 부끄럽지 않은가? 라고 묻고 싶다.
일제강점기는 35년으로 끝났지만, 정치인들은 일제 36년이라고 거리낌 없이 말한다. 광복된 날 1945년 8월 15일에서 나라 빼앗긴 날 1910년 7월 29일을 빼면 35년에서도 14일이나 모자라는 것이 분명한데, 일본이 ‘식민통치 36년’이라고 하니까 우리도 그냥 36년으로 맞추자는 지식인들 때문에 온 국민이 치욕의 기간을 1년 더 늘려서 일제36년을 부끄럼 없이 쓰고 있는 것이다. 거기에다 더 심각한 문제는 치욕의 35년보다도 훨씬 긴 광복이후 60년이 지난 지금도 역사를 왜곡된 채로 가르치는 왜식역사교육의 대한민국정부를 어떻게 생각해야 할 것인가? 맨날 정상배들의 싸움구경만 하다가 세월을 보냈다는 변명이 합당한가하는 것이다.
필자가 지하철공사와 2년 반 동안 승강이를 벌였던 일이 있었다. 삼청동 103호(청와대 동쪽 문)에 살 때로 기억된다. 주로 안국역에서 지하철 3호선을 이용하였다. 홈에 들어서서 열차를 기다리고 있노라면 열차가 들어오는 것을 안내하는 방송이 어김없이 나왔다. ‘벨소리~ 구파발, 구파발행 열차가 들어오고 있습니다. 손님 여러분께서는 안전선 밖으로 한 걸음 물러나 주시기 바랍니다’라고 하는 것이다.
두리번거리면서 안전선으로 느껴지는 노란색 라인을 확인하고는 한 걸음 밖으로 나가려는데 갈 곳이 없었다. 그래서 밖으로 물러나지 않고 내 상식대로 한 걸음을 안으로 들어섰다가 열차의 문이 열리면 탔다. 몇 개월이 지나도 방송 문안이 시정되지 않은 것이다. 하루는 역무원에게 항의를 했다. “저기 노란 선이 안전선이지요?” “예 그렇습니다” “그럼 안전선 안쪽은 어디를 말합니까?”하고 물었더니 “왜 물으십니까? 그것도 몰라요? 지금 사람들이 줄지어 서있는 이 쪽이 안쪽 아니요?”하면서 답답하다는 심산으로 손가락질로 홈을 가르쳐 보이면서 열을 냈다. “예 이쪽이 안쪽 맞지요?” “암 그렇지요” 필자도 손으로 철길을 향해 보이면서 “그런데 왜 안전선 안으로 들어 오라는 게 아니고 철길 쪽인 밖으로 한 걸음 물러가라는 방송을 합니까?”라고 되물었더니, 역무원은 주춤하면서 “당신보다 다 똑똑한 전문가들이 검토하고 결정해서 안내 방송하는 것이니 그렇게 알면 되지 뭘, 그런 것을 가지고 꼬치꼬치 따지십니까? 내 원 참-!” 귀찮다는 듯이 눈을 흘기고는 가버렸다.
마침 벽걸이 민원 함을 찾아내고 거기에서 엽서를 꺼내어 ‘안내방송의 문안시정’을 요구하는 메모를 하여 넣었다. 7개월이 지났다. 방송은 시정되지 않고 여전히 안전선 밖으로 내모는 실정이었는데 다행히 ‘KBS 동서남북’이던가? 하는 프로에 필자가 초청되어 역사연구에 관한 대담방송을 하게 되었다. 이 때 지하철의 안내방송을 예로 들게 되었다. 앵커가 “그렇게 왜곡된 역사에 대해서 왜 국민들은 모르고 있었을까요?”라고 질문을 했을 때였다.
필자는 “사학자들이 역사를 몰라서 밝히지 못하는 것은 아닙니다. 역사교과서개정 심의위원들이나 현직교수로써 대학에서 제자를 양성하는 학자들의 대부분이 일제의 하수노릇을 하였던 스승으로부터 전수한 탐구방법과 주지된 내용의 범주를 벗어나지 못하고 이어지는 과정이었다면, 다수의 국민들은 격변하는 대한민국에 살면서 ‘일제강점기’로부터 ‘광복’과 ‘미군정시대’ 그리고 ‘6·25’와 ‘4·19’와 ‘5·16’을 겪었으며, 제3·4·5·6·7공화국으로 넘어오는 50여년 동안 헌법을 아홉번이나 바꿔가면서 실로 정신없이 돌아가는 세상에서 정신없이 사느라 정신없는 역사에는 무감각하였지 않았겠습니까? 이를테면 지하철의 안내방송이 ‘열차가 들어오고 있사오니 손님 여러분께서는 안전선 밖으로 한 걸음 물러나 주십시오.’했을 때 아무런 이의나 저항도 없이 자연스럽게 ‘안전선 안으로 한 걸음 물러나는 것’처럼 말입니다.” “하 하 하 듣고 보니 그렇군요. 저도 지하철을 이용하면서 흔히 듣던 방송입니다만, 선생님께서 지적해 주시는 이 시간까지도 몰랐습니다. 이 방송을 통해서 지하철공사는 재검토해 주시기를 기대하겠습니다”라고 한 적이 있다.
그동안 안전선 밖으로 한 걸음 나가라는 살인명령에도 역으로 받아드리면서 용케도 잘 살아가는 지혜가 있는 서울시민들이 대단하게 느껴졌다. 그런 일이 있은 후 지하철공사에서 필자의 집으로 전화가 왔고 “한글학회와 어문학회를 통하여 재검토를 하고 시민에게 불편이 없도록 시정하여 방송을 하도록 하겠다.”는 답을 받았고 “방송문안을 확정한 후에는 아나운서를 택하여 녹음을 하고 모든 역사에 테이프를 배포하자면 6개월쯤 걸립니다. 그 동안만 양해해 주십시오”라고 했다.
필자는 요즘 시정된 지하철역의 안내방송을 들으면서 우리의 역사교과서도 이렇게 시정이 된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을 하며 역사를 신화화하려는 권위주의도 말고, 역사를 비하시키려는 사대주의도 말고, 역사는 역사 그대로 이해하면서 오늘 우리의 생활이 미래에는 역사로 남게 된다는 사실을 인식하여 옷깃을 여미는 마음자세로 살아가는 사회로 정착했으면 하는 작은 소망을 걸어본다.
/김 정 권 <한민족정통사상사 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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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태백일사> 소도경전본훈을 보면 소위 '한자'가 어떤 과정을 거쳐서 만들어지고 정착되었는지 그 대강을 알 수 있읍니다. 그런데 우리 조상님들이 만들었다고 해도 현재 우리가 남의 것이라 여기고 배척한다면 우리 것이 될 수 없겠지요. 한글을 중심으로 문자생활을 하되 필요에 따라서는 한자도 배우고 가르쳐서
편리하게 사용하는 실용적 태도가 바람직하지 않나 생각합니다.
한자를 섞어 사용하는 것이 두뇌 향상에도 도움이 됩니다. 요즘 핸드폰 전화번호메뉴 입력화로 번호를 기억할 필요가 없어져 기억력 감퇴가 온다는군요. 저도 옛날엔 전화번호 약 50개 가까이 외었는데 요즘엔 10개도 힘듭니다. 어떤땐 내 핸드폰 번호도 기억 못할 때가 있습니다. 너무 편리성만 추구하면 오히려 두뇌 퇴보
를 부르니 적절히 한자를 외우며..쓰는 것이 기억력에도 도움이 된다고 봅니다.
한자를 섞어 쓰더라도 일본어처럼 한자를 주로 하고 가나로 발음을 부기하는 식은 좋지 않고, 한글 표기를 주로 하되 의미의 명확화를 위하여 예외적인 경우에 한정하여 괄호 안에 한자를 부기하는 방식이 좋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