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요의 바다> 최항용 감독, SF 미스터리, 넷플릭스 8부작, 2021년
SF는 크게 두 종류로 나뉘는 것 같다.
우주에서의 스펙터클을 펼치며 선악의 대결을 벌이는 신화물과
우주에서의 고립과 공포를 배경으로 한 심리물.
이 드라마는 후자다. 전자의 신화물적 SF는 누구나 쉽게 공감하는 서사물이지만,
후자의 심리물은 밀실공포증을 유발할 만큼 지루함을 느끼게 하기도 한다.
하지만 우리가 우주에서 느끼는 실제 정서란 사실 전자라기보다 후자에 가까울 것이다.
그런 점에서 이 SF는 첫번째 기대를 깨고, 두번째 기대에 부응한다.
그래서 이 드라마는 재미 없고, 또 재미 있다.
적어도 심리적 불편함과 지루함을 견딘다면 드라마를 보며
지구와 인류문명에 대해, 그리고 생명의 근원인 물에 대해,
그리고 차가운 달세계에 대해.
밀실공포증에 내포된 문명의 불안에 대해.
이 작품이 2014년 최항용 감독의 동명 단편영화에서 출발한 것을 떠올리면,
시나리오 안에서 펼쳐진 얽힌 관계의 레이어들이 수년을 거치면서 보완된 것임을 알게 된다.
드라마를 보고,
나는 지구공동체라는 말을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인류공동체는 휴머니즘에 기반한 근대를 묘사하는 사유의 틀이 될만했다.
하지만 환경오염과 기후위기, 생태위기는 인류의 건강한 생존을 위해서라도
'나'의 정체성과 함께하는 '우리'의 범주가 인류만이 아니라,
지구생태계로 확장되어야 하는 것이라는 사실이다.
지구라는 항성의 생명시스템을 하나로 보고 행동의 기준으로 삼아야만 하는 시대가 되었다.
물론 우주공동체라는 실존적이고 존재론적 사유도 가능하겠지만,
지구공동체라는 관계론적 사유가 절실한 때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물이 가진 기억을 다시 상상하게 되었다.
나는 물이 지구의 역사와 함께 생명의 기억을 다른 방식으로 기억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다소 신비적이지만 그런 상상을 하면 하게할만큼 지구생명이 물에 근원하고 의존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드라마의 살아 증식하는 물의 생명을 상상하며 착안되었다는 것이, 그래서 재밌다.
지루할 수도 있지만 여러가지 생각을 자극하는 드라마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