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펀 신작시 황사라
근동 외
너는 폭발물을 밴에 싣는다 기척을 느낀 엄마는 너의 이름을 부른다 대답하지 않는다 평범하고 고요한 한낮이며 하늘은 지나칠 정도로 파랗다 셔츠 깃을 건드리고 가는 바람은 차갑지도 뜨겁지도 않다 운전석에 앉은 너는 캡모자를 눌러쓰고 손을 뻗어 라디오볼륨을 높인다 예스터데이가 흘러나온다 너는 왜 자꾸 과거로 돌아가려는 거니 건물 밖에 있던 사람들이 픽픽 쓰러진다 너와 내가 함께 했던 볼링장의 핀처럼, 보도블록 위를 뒤덮는 붉은 피와 달려가는 사람들의 발자국 소리 비명 지르는 아이들을 삼켜버린 골목 총에 난사된 창문 유리조각과 떨어져 나온 살점들 봄날의 꽃나무에서 떨어져 내린 꽃잎처럼 바닥에서 으깨진다 나는 단지 너의 책상 위에 한 권의 책을 올려놓았을 뿐이다 그것은 나의 의도와 무관하다 책장을 온통 뒤지며 찾던 책이 엉뚱한 곳에서 발견되는 것처럼, 맑은 물에 검은 잉크가 한 방울 떨어졌다 투명하던 물이 잿빛으로 변한다 이 사회가 불만스럽다 불만은 불안과 같은 성질이라서 나는 자꾸만 검은 물속으로 침수된다 죽도록 내버려 두는 이 사회, 터부시된 이 말을 입 밖으로 터트린 적이 없다 바닥이 보이지 않는다 속을 알 수가 없다 무기를 버리고 투항하라 너는 더 라디오볼륨을 높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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캠프
기점도 종점도 아닌 정류장이 있다 그곳은 탄생도 죽음도 아닌 곳이어서 누군가는 손을 흔들다 사라지고 누군가는 표정 없는 얼굴로 벤치에 앉아 있다 하룻밤처럼 허술한 그곳을 짐을 가득 실은 오픈카가 오른다 긴 의자에 가족들로 보이는 이들이 앉아 있다 희끗희끗 흰머리의 남자는 운전석에 앉아 핸들을 돌리며 표지판 없는 길을 올라간다 멀리서 모기를 쫓는 것인지, 고기를 굽는 것인지 알 수 없는 연기가 피어오른다 저 연기도 언젠가는 흩어지면서 엉덩이를 맞대고 앉아 있던 사람들처럼 사라질 것이다 어린아이들이 비눗방울을 날린다 생성되는 비눗방울 때문일까, 터지면서 사라지는 것 때문일까 웃음소리가 모호하다 데크 위에 텐트가 쳐진다 순식간에 한 채의 집이 지어진다 기둥은 뽑히기 위해 박히고 지붕은 걷히기 위해 드리워진다 머물렀던 흔적조차 바람이 불면서 이내 사라지고 만다 우리는 그곳에서 집을 흉내 내며 웃고, 비눗방울을 흉내 내며 낄낄거리고, 가족을 흉내 내며 훌쩍거린다 그곳은 기점도 종점도 아닌 정류장이라서 흰머리의 남자는 왔던 길을 돌고 또 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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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사라|2023년 《전북일보》 신춘문예로 등단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