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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
술잔이 찾아오거든 고개를 들어라 현자의 새벽은 술이 절반 어느 지혜에도 그는 복종하지 않았으니 그의 술잔은 굴복을 몰라 술잔에 고인 달빛을 마시고 가슴에 고인 신의 음성만을 들었노니 사랑이 찾아오거든 그대여 고개를 들어라 술잔에 고인 한 잎의 지혜를 그가 마셨노니 꽃잎에 고인 한 잔의 사랑을 그가 마셨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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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8. 오마르 카이얌Omar Khayyam
그대도 나도 이윽고 육신과 영혼이 서로 나뉘어
무덤 위에 기왓장이 세워지리라
그리하여 우리의 뼈가 썩을 무렵
그 흙으로 새로운 무덤의 기왓장이 구워지리니
모든 것을 섬겼으나
모든 것으로부터 그는 뛰쳐나왔다
모든 것을 사랑했으나
모든 사랑으로부터 그는 혼자 걸어나왔다
어제와 내일을 버리고
‘오늘’을 향해
‘이곳’을 향해
시인은 날마다 밖으로 나왔었다
오아크 파크의 벤치에 앉아
잠시 오마르 카이얌을 생각한다
그는 쉴 줄 아는 사람
쉼이 무엇인지 알았던 사람
쉼 속으로 들어가 쉼과 하나가 된 시인
오마르 카이얌Omar Khayyam -
페르시아의 시인
시인으로 모자라
별을 바라보다 천문학자가 되어
셀주크 왕조의 천문대를 운영하다가
역법曆法 ‘자라르 연대기’를 고안하고
책상에 앉으면 수학자가 되어
‘대수학代數學’을 찾아낸 인물
세상이 항상 그를 따라다녔으되
이런저런 세상을 모두 돌려보내고
아무것도 욕망하지 말라 가르쳤었다
술은 그의 벗이었고
사랑은 그의 잠언이었고
꽃은 그의 경전이었으며
시는 그가 부른 단 하나의 노래였다
‘루바이야트Rubaiyat’는 사행시四行詩
시인은 일천여 수의 시를 썼으나
오늘날 남아 있는 것은 고작 250여 편
젊은 시절 여러 현자들을 찾아다니며
이런저런 높은 말을 들었으나
언제나 들어갔던 문으로 다시 나왔을 뿐
내가 얻은 것 아무것도 없어라
저 지조 높은 시인은 현재를 사랑하느라
하늘도 땅도 돌보지 않아
눈앞의 것들만을 존중했기에
신은 그 모든 하늘과 땅을 다른 사람에게 맡겼다
자유주의와 합리주의를 아껴서
있는 대로 사랑하고
없는 것은 애써 따라가지 않았다
그의 시에는 유목의 바람이 불고
수피즘의 냄새도 섞여 있어
정착의 방식은 그의 삶이 아니었다
사랑하는 이여 어서 이 잔을 채워
지난 회한과 내일의 두려움을 씻게 해 다오
닥쳐올 날이야 무슨 소용 있으리
내일이면 이 몸도 수천 년 세월 속에 잊혀질 것을
지금 존재하라
지나간 날은 이미 우리 것이 아니요
아직 오지 않은 날은 우리와 상관없는 것
술탄의 영광도 자고 나면 사라지는 것
과거의 것은 과거에게 돌려주고
미래는 애써 찾아가지 마라
오늘의 불빛도 우리는 충분히 보지 못한다
오마르 카이얌은 페르시아 사람
그의 이름은 중앙아시아의 초원을 풍미하고
여러 방랑자의 마음을 사로잡았으며
욕망하는 자의 마음을 누그러뜨렸기에
모든 바람처럼 떠도는 자의 스승이 되었다
아, 이젠 모든 것을 아낌없이 쓰자꾸나
우리 모두 언젠가는 한줌 흙이 되어질 몸
흙에서 나와 흙으로 돌아가 쉬니
그곳은 술도 노래도 없어 한없이 드넓은 곳
고원의 벤치에 앉아
나는 시인을 생각한다
날은 저물어가고
시인은 가고 없다
그의 시는 고원을 넘어
온 세상으로 퍼져나가
세상의 문을 열면
그의 노래가 문밖에 널려 있었다
우울하면 우울을 사랑하고
가슴에 환희가 넘치면 환희와 하나가 되라
절망이 찾아오면 절망과 어울려주고
노래가 찾아오면 노래와 놀아주라
오마르 카이얌은
키르기스스탄의 것도 아니요
우즈베키스탄의 것도 아니며
카자흐스탄의 것도
투르크메니스탄의 것도
타지키스탄의 것도 아니었으되
중앙아시아에는 그의 자취가 없는 곳이 없었다
오마르는 유목민의 것이었고
고원을 부는 바람의 것이었다
바람은 사방으로 떠돌며
삶을 사랑하는 누구나의 것이었다
그는 한 방울의 세상도 흘리지 않았으되
어떤 세상도 마신 적이 없었다
(이어짐)
첫댓글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