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샤머니즘이 존재하는 곳이라면 그 어느 곳이든 반드시 어떠한 대상이 인간이 아니라고 해서
경시한다거나 함부로 대하는 경우가 없다.
길 가에 피어있는 작은 꽃 한 송이, 보잘것없는 돌멩이 하나에도 의미가 부여된다.
마치 인간에게 영혼이 있다는 오래된 믿음과 같이 그러한 것들도 역시 영혼을 가지고 있다고
여겨지는 것이다.
그래서 샤머니즘의 강력한 자장 하에 있는 곳에선 이유 없이 꽃을 꺾는다거나 동물의 생명을
앗아가는 것이 금기시되어 있다.
사람들은 불가피한 경우 즉 자신의 목숨을 보존하기 위한 경우가 아니고서는 동물을 죽이는
일도 없으며 결코 자연을 훼손하지도 않는다.
세상 만물에는 의미가 깃들어있으며 인간 역시 그러한 의미를 가진 것의‘일부분’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주제는 탐미적인 요소와도 관련이 있는 것처럼 보인다.
샤머니즘 안에서는 좀 더 넓은 시야로 사물의 아름다움을 꿰뚫어 볼 수 있게 된다.
그리고 그 아름다움 앞에서 경탄하게 된다. 꽃을 예로 들어보자. 보통 사람들은 봄날 꽃이
피어있는 그 모습만을 아름답다고 여길 수도 있다.
그러나 샤머니즘적인 관점으로는 꽃의 피상적인 아름다움뿐 아니라 그 안에 보이지 않는
아름다움까지 볼 수 있다.
그 꽃이 피는 모습, 지는 모습, 시들어 죽는 모습, 그리고 다시 싹이 자라고 봉오리가 생겨
결국 꽃이 다시금 피는 그 모든 과정 과정들을 간과하지 않기 때문에 그러한 생명의 순환
과정의 측면에서까지 아름다움을 고찰할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아름다운 요소들은 역시나 경외와 감탄의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것이다.
샤머니즘의 이러한 주제들을 마주하고 있으면 나는 마치 유미주의를 대하는 듯한 느낌이
들기도 한다.
정신보다는 감각을 더 중시하고, 내용보다는 형식을 더 중시하며, 현실보다는 몽상을 추구하고,
진과 선의 가치보다는 미를 추구하는, 또한 악에서 미를 발견하기도 하는 유미주의의 특징들이
내가 찾은 샤머니즘의 공통된 주제와 아주 밀접하게 느껴졌다.
확실히 샤머니즘의 주제는 보다 감각적이고 인간의 본능에 가까운 것이었다.
그것은 인간의 깊은 내면에 자리한 본성을 일깨우는 것과 같았다.
21세기의 인간과 구석기 혹은 신석기 시대의 인간은 완전히 다른 모습을 하고 있다.
그러나 그 내면의 원초적인 모습은 아주 놀라우리만치 흡사한 부분이 많았을 것이다.
샤머니즘은 그러한 인간의 원형에 좀 더 근접해 있기 때문에 요즘과 같이 고도로 과학이 발달하고
물질만능주의와 배금주의가 만연한 세대의 인간의 모습과는 어울리지 않는 면이 많이 있다.
이성적으로 뭔가를 판단하는 것보다는 감각적이고 즉흥적으로 사물에 대해 인식하는 것이 샤머니즘의
주제와 관련이 있다.
또한 샤먼의 의례를 보면 그들의 형식주의를 알 수 있다.
그들의 의례는 늘 일정한 형식과 절차가 있다.
그러한 형식은 상징적인 것을 표현하는 경우가 많이 있다.
또한 그러한 엄격한 형식을 통해 독특한 미학을 선보이기도 한다.
그래서 굿판에는 신명이 있는 것이다.
그리고 현실의 문제를 타개하기 위한 아주 실용적인 수단으로써 샤머니즘을 바라볼 수도 있지만
샤머니즘의 일반적인 이미지를 보면 상당히 몽상가적 이라는 느낌을 지워버릴 수가 없다.
과학적인 관점으로는 트랜스 상태에 빠지고 영혼과 육체가 분리되어 빙의 현상을 불러일으키는
정신분열증적인 모습이 미친 사람 내지는 몽상가답다는 느낌을 받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게다가 샤머니즘은 세상의 논리로 옳고 그름을 따지지도 않으며 선과 악을 나누지도 않는다.
다만 의식에 집중하고 당면한 문제를 풀 궁리만 한다.
그리고 그러한 의식을 주도하는 샤먼은 늘 화려한 장신구와 눈에 띄는 의상을 착용하곤 한다.
또한 악한 신령과 선한 신령이 혼재해서 나타나기도 하며 악한 신령이라고 무조건 배척하는
것도 아니다.
결국 이러한 특징들을 가지고 있는 공통된 주제들로 인해 샤머니즘은 다른 종교와 비교하여
고유한 종교적 특성을 구성하게 되었는데 거기에 대해서 이제부터 살펴보도록 하자.
샤머니즘 이외의 다른 종교들이 제각각 다른 특성을 가지고 있어서 그 모든 종교를
샤머니즘과는 다른 타종교로 뭉뚱그려 비교 설명하기는 상당히 힘든 일이다.
그래서 현대 사회에서 가장 중요하다고 여겨지는 종교인 그리스도교를 예로 들어 비교
설명하는 방법을 택하기로 하겠다.
그리스도교에선 인간에게 영혼이 있다고는 하지만 동식물에 영혼이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또한 무생물 즉 바위나 산, 바람과 태양 같은 자연적 요소에 정령이 깃들여 있다고도
생각하지 않았다.
다만 그 모든 것들은 유일신 하느님이 주재하신 것이라 성경에서 말할 뿐이다.
그러나 샤머니즘은 어떠한가? 모든 요소들마다 정령이 깃들여 있다.
산이며 들이며 개울이며 바다며 바위며 자갈이며 어느 것 하나 의미가 없는 것이 없다.
그 모든 것들이 인간에게 영향을 미치고 인간은 그러한 정령들에게 소원을 빌기도 한다.
또한 그리스도교에선 엄숙함, 경건함과 같은 가치를 중시하며 내세의 구원이라는 커다란 주제를
가지고 있지만 샤머니즘은 신명을 가지고 있고 세상의 아름다움을 풍류를 즐기듯 즐길 줄 안다.
세상의 온갖 사물 속에 숨겨진 신비한 힘들을 숭배하며 그러한 힘들을 숭배하는 숭배의 자리엔
늘 신명나는 굿판이 있다.
그리고 그 속엔 늘 아름다움의 요소가 자리 잡고 있었다.
아름답게 색상을 맞춘 재단, 연극적인 샤먼의 몸동작은 묘한 아름다움을 풍긴다.
마지막으로 그리스도교는 지나치게 인간 중심적인 사상을 가지고 있지만 샤머니즘은 그러한
요소를 가지고 있지 않다.
인간은 단지 의미를 가지고 있는 수많은 요소들 중 하나의 부분을 차지하고 있을 뿐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현재 인간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부득이하게 다른 요소의 희생을 불러일으키기도
하지만 이는 합당한 제의를 통하여 이루어진다.
존재하는 갖가지 요소들의 가치의 선후 관계가 명확하게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이는 인간 중심적인 그리스도교와는 상당히 다른 내용이다.
이와 같이 다양한 형태로 존재하는 샤머니즘의 공통된 주제가 구성하는 그것의 고유한 종교적
특성은 이러한 모습을 하고 있는 것이다.
어쩌면 샤머니즘은 인류가 지금처럼 오만해지기 전 만들어진 종교의 가장 순수한 형태를 오늘날
까지 간직하고 있는 아주 오래된 종교일 것이다.
그러한 순수한 모습이 찌들대로 찌든 우리 현대인의 마음에 진한 여운을 남겨주는 이유가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