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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217 주일말씀/ 수7:1-5
아이성 정복의 실패
말씀 : 정삼지 담임목사
사람에게 불가능한 것이 하나님께는 가능하고, 사람에게 아주 큰 것이 하나님께는 너무나 작다는 사실입니다. 지난 주 말씀은 난공불락의 여리고성에 대해 말씀을 나누었습니다. 인간의 힘으로는 도저히 어쩔 수 없는 성이 하루 한 바퀴씩 돌고 일곱째 날 일곱 바퀴를 돌아도 꼼짝도 안하던 것이, 하나님이 하라는 대로 하고, 마지막 날 양각나팔을 불고 큰 소리로 외치자 성이 무너져 내렸습니다. 지진 6.0 이상의 지진이 왔을 것이라고 학자들은 예상하고 있습니다. 안된다고 하는 것이 하나님에 의해 될 수 있고, 불가능하다는 것이 하나님께는 가능합니다. 우리 주님은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할 일이 없느니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오늘은 정 반대로 아이성의 전투입니다. 그 이름이 아이입니다. 이름처럼 너무 작았습니다. 학자들은 약 1만 2천명 정도의 인구가 살지 않았나로 예상했습니다. 그래서 정탐꾼들의 보고에 따르면 그것은 쉽게 생각할 만했습니다. 2-3천명만 보내면 능히 이길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3천명을 보냈습니다. 너무 쉽게 이기리라고 생각했는데, 36명이나 죽고 되돌아왔고, 전투는 실패했습니다. 전쟁에서 36명이 죽었다는 것이 작다면 작겠지요. 그러나 그 후유증이 너무도 컸습니다. 사람들이 완전히 기력과 의욕을 상실했고, 그날 밤 통곡을 하고 전쟁할 힘을 잃어버렸습니다.
인생사에도 불가능한 것들이 가능하게 될 수 있지만, 오늘 주시는 메시지는 너무 하찮은 것을 너무 쉽게 생각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이 정도 즈음이야 뭐 해볼 것도 없어, 이런 것은 다 된 거나 마찬가지야, 다 끝났으니까 그냥 가봐”했는데, 너무 작은 것에 실패함으로 충격을 받아 인생이 무너지고 삶이 무너져 내립니다. 바로 그에 대한 메시지입니다. 내 뜻대로 될 것 같은데, 그렇지 않다는 것입니다.
불가능한 것도 가능하지만, 쉽게 생각했고 다 잘 될 거라고 생각한 것이 그만, 그 작은 문제 앞에 고꾸라져서 어떻게 헤어 나오지 못하는 일들이 너무 많습니다. 그것이 아이성의 전투입니다. 두 번째 전투에서의 실패이고, 가나안 땅 정복에서 최초의 실패입니다. 단 한 번의 실패를 너무 하찮고 너무 쉬운 것에서, 정말 우스운 것, 정말 작은 것에서 경험을 하게 됩니다. 인생이 큰 것에서 넘어져 크게 쓰러질 수도 있지만, 말도 안 되는 작은 것에서 넘어져서 쓰러지고 깨질 수 있다는 것을 오늘 본문은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그 원인이 여기 있었습니다. “여호수아가 여리고에서 사람을 벧엘 동쪽 벧아웬 곁에 있는 아이로 보내며 그들에게 말하여 이르되 올라가서 그 땅을 정탐하라 하매 그 사람들이 올라가서 아이를 정탐하고 여호수아에게로 돌아와 그에게 이르되 백성을 다 올라가게 하지 말고 이삼천 명만 올라가서 아이를 치게 하소서 그들은 소수이니 모든 백성을 그리로 보내어 수고롭게 하지 마소서 하므로”(수7:2-3). 이 성 사람들은 소수이니, 간단하게 해결하자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큰 패배를 경험한 것입니다. 즉 하나님이 제외된, 하나님이 없는 삶의 작은 것도 우리에게는 치명적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내가 내 인생에서 하나님을 제외해 버릴 정도로 쉬운 일이었습니다. 너무 가벼운 일이어서 쉽게 처리할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빠져버려도 된다는 자만심, 하나님이 없어도 할 수 있다는 교만이 인생의 큰 치명타를 가져올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함께 하시느냐 안하시느냐가 우리 인생의 결정타입니다. 하나님이 없이도 얼마든지 할 수 있다는 것이 인생의 큰 결과를 가져옵니다. “요나단이 자기의 무기를 든 소년에게 이르되 우리가 이 할례 받지 않은 자들에게로 건너가자 여호와께서 우리를 위하여 일하실까 하노라 여호와의 구원은 사람이 많고 적음에 달리지 아니하였느니라”(삼상14:6).
블레셋이라는 큰 부대가 진치고 있었습니다. 사울의 아들 요나단이 자기의 병기를 든 신하 하나를 데리고 저 큰 부대 중앙으로 가자고 했습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면 얼마든지 할 수 있다고 하며, 어마어마한 블레셋 군대가 진치고 있는 그곳에 가자고 했습니다. 대장이 가자고 하니까, 무기든 병사가 안 따라갈 수가 없었습니다. 요나단은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면 얼마든지 이길 수 있다고 믿었습니다. 하나님의 구원하심은 사람의 많고 적음에 있지 않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계산과 사람의 계산이 다릅니다. 믿는 자는 하나님의 계산을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이번에 우리 청장년팀이 선교지를 다녀왔습니다. 다녀온 사람들만 기뻐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마음을 품는 성도들은 다 같이 기뻐해야 합니다. 그것을 하나님이 기뻐하십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계산법입니다. 내가 기쁘니까 기뻐하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곳에 나도 함께 기뻐하자는 것입니다. 형제자매들이 이번 설날 연휴를 반납하고, 선교지에 가서 열심히 선교하고 왔습니다. 그리고 보고를 했습니다. 함께 감사하고 하나님이 하신 일에 한 마음으로 바라보면, 형제들이 간 곳에서 하나님이 나타나심을 증거하고, 하나님이 일하셨음을 알게 됩니다. 얼마나 감사한 일입니까? 우리를 대신해서 형제들이 대신해서 열심히 일했으니, 격려하고 또 하나님이 하신 일을 찬양하며 함께 기뻐할 수 있습니다.
선교지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차에 짐을 가득 싣고 사람이 가득 탔습니다. 한 40도 되는 온도에 800고지를 오르락내리락 하면서 잠도 3-4세간 밖에는 못자는 등 그렇게 애쓰고 왔습니다. 자기 일이라면 그렇게 하겠습니까? 주의 일이니까 한 것입니다. 그렇다면 주의 일을 한 저들이 경험한 일들이 보고될 때, 우리도 동일하게 감사하고 기뻐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계산을 받아들이면 우리 안에 기쁨이 있을 줄 믿습니다. 인간의 계산으로는 불편합니다. 인간의 계산으로는 안 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계산을 받아들이면 되는 것입니다.
새벽기도가 왜 중요하느냐면 하루를 출발할 때 하나님의 계산을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계산은 사람이 많고 적음에 있지 않습니다. 오늘 하루가 어떻게 될까? 그러나 새벽에 나와서 기도하고 찬송하고 말씀을 들으면, 다시 용기가 생기는 것입니다. 그래도 한번 해보자, 내 실력과 내 능력의 최선을 다하지만, 하나님이 함께 하시면 큰 것도 가능할 수 있고, 작은 것도 얼마든지 가능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작은 것이 얼마든지 큰 역사를 이룰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하시면 겨자씨가 자라서 나무가 되어 많은 새들이 와서 깃들입니다.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함이 없습니다. 작다고 무시하지 말고 크다고 두려워말라는 것이 하나님의 계산입니다. 문제는 내가 하고 못하고가 아니라, 하나님이 일하시면 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없는 작은 것이 인생의 결정적인 실패가 될 수 있습니다. 신앙을 가질 때 이 믿음이 들어옵니다.
신부는 대학을 졸업했습니다. 그런데 신랑 될 사람은 초등학교밖에 안 나왔습니다. 일찍 어머니를 여의고 아버지를 일찍 떠나 서울로 와서 할 수 있는 것이 용접밖에는 못합니다. 31세의 한 청년의 이야기입니다. 월세 값이 없어서 철공소 단칸방에 삽니다. 그런데 이 청년의 신앙은 너무 좋았습니다. 목사님이 보실 때 참 좋은 청년이었습니다. 그런데 목사님이 보니까, 옆의 교회 유치원 교사가 대학을 나왔는데, 둘이 결혼했으면 좋겠다고 생각이 들었습니다. 우리가 그런 사윗감을 쉽게 받아들일 수 있을까요. 목사님이 기도하다가 그 유치원 교사를 불렀습니다. 청년이 초등학교 밖에 안 나왔는데 신앙이 좋으니까 한번 기도해보라고 권했습니다. 그 교사는 알았다고 하고 기도한 후에 결혼하겠다고 결심했습니다.
어마어마한 것이 결코 불가능하지 않습니다. 이렇게 보잘 것 없는 한 알의 밀알이 자라서 어떻게 될 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계산법입니다. 그 교사는 그 청년을 만나서 결혼을 하는데, 한 가지 부탁을 들어달라고 했습니다. 남자가 최소한 초등학교를 나와서야 되겠느냐, 검정고시 공부를 하겠다고 약속해 달라고 했습니다. 대학을 나온 신붓감이 부탁을 하니, 그 정도는 들어줘야겠지요. 그래서 그렇게 하겠다고 약속했습니다. 그래서 중학교, 고등학교 대학검정고시를 치르고 안양성결교 대학을 졸업해서 전도사님이 되었어요. 4학년 졸업하는 그날 신부가 200만원을 주면서, 공부하는 동안에 먹고 사는 것은 자신이 유치원 일을 하며 감당했으니까, 대학 졸업하고 나서부터는 경제적인 문제는 신경 안 쓸 테니까 이제는 가족들을 먹여 살리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남편은 기도하다가 그것으로 고물 트럭 하나를 샀습니다. 그리고 무교동에 가게를 차렸습니다. 토스트 가게입니다. 그리고 원칙을 세웠습니다. 하나님의 계산대로 하겠다고 결심합니다. 매월 첫날 들어온 돈은 선교헌금, 매일 들어오는 것의 십일조는 불우이웃을 위해서 쓰고, 그리고 매일 오전만 장사하고 오후는 옆집 사람들이 장사하라고 문을 닫기로 했습니다. 오전에 남은 토스트는 공원에 가서 할아버지 할머니들을 도와드린다가 원칙이었습니다. 기도하고 또 기도하고 만들다 보니 토스트가 맛이 좋았습니다. 그리고 원칙을 계속 지켰습니다. 무교동 호텔 근처에서 토스트를 했기 때문에 미국인 일본인 중국인들이 와서 사갔습니다. 그래서 영어 일본어 중국어를 밤을 새워가면서 했습니다. 그래서 3개 국어에 능통하게 되었습니다.
생각해보니까 토스트를 하다가 돈을 세면 때가 묻으니까, 각자가 돈 계산하고 가져가라고 했습니다. 수입이 얼마가 되든지 오전만 일했습니다. 시간이 흐르자, 이 맛이 알려지기 시작해서 일본 NHK방송에까지 나왔습니다. 서울 무교동에 이런 토스트가 있다고 소개되었습니다. 그랬더니 사람들이 이 토스트를 먹으러 그날 마지막 비행기로 왔다가 호텔에서 자고, 아침에 토스트를 먹고 사가지고 일본으로 갑니다. 이것만을 위한 여행이 생겨났습니다. 잘된다는 소문이 나니까 삼성 임원 경영진에서 강연을 듣고 싶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삼성 직원들을 상대로 강의를 나갔습니다. 강연을 잘했어요. 삼성에서 점수가 나왔는데, 임원 경영진의 점수가 95점이었습니다. 다시 초청하려면 삼성에서는 아무나 초청하지 않습니다. 한번 강연을 와서 점수가 어느 정도 되지 않으면 다시는 초청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다시 초청했습니다. 우리나라 유명 강사 협회가 있는데, 그 협회 리스트에 95번째 강사로 이름이 올랐습니다. 한 번 강의하는데 1000만원씩 받습니다. 그 협회의 임원이 되었습니다.
이 사람이 원래는 초등학교밖에 안 나온 철공소 직원 용접공이었는데 말입니다. 그의 마음 안에는 믿음이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계산과 인간의 계산은 다릅니다. ‘석봉 토스트’의 주인공이 바로 이 사람입니다. 인간이 보기에는 너무 작고 초라하지만, 그 속에는 어마어마한 가능성이 있습니다. 사람이 보기에는 우습지만, 그것이 인생의 치명적 결정타를 날릴 수 있는 어마어마한 데미지를 줄 수도 있습니다. 사람이 보기에는 절대 불가능한데, 하나님이 보실 때는 얼마든지 가능하다는 것입니다. 인간의 계산과 하나님의 계산은 다르다는 것입니다. 인간의 계산이 전부가 아닙니다. 믿음이 들어오면 하나님이 들어오는 것이고, 하나님이 들어온 것에는 하나님의 계산법을 따르자는 것입니다.
여리고성도 얼마든지 무너뜨릴 수 있습니다. 총 한번 안 쏘고 대포 한방 안 쏴도 6.0의 지진으로 얼마든지 무너뜨렸습니다. 그런데 이 주먹 만한 아이성 전투에서 패하니까, 완전히 마음이 물같이 녹아버렸습니다. 그래서 작은 것을 무시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이 작은 것이 치명타가 될 수도 있고, 이 작은 것이 나무가 되어 어마어마한 역사를 일으킬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이 사람이 누구 눈에 들었습니까? 누가 결혼하자고 한다고 하겠습니까? 그런데 목사님이 하라고 하니까, 결혼한 것입니다. 대학 나온 사람이 초등학교 나오고 월세 방 구할 돈도 없는 사람과 결혼이 가능합니까? 하나님이 인도하신 것이지요.
그런데, 이 사람이 한번 강의를 하번 1천만원의 강의료를 받는다니까요. 돈의 액수를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인생에 대해서 정말로 믿음의 눈으로 바라보고, 우리의 인생에 대해서 인간의 계산이 전부가 아니므로 하나님의 계산을 받아들이고 순종할 때, 역사가 일어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마음이 교만해져서 무시하고 계산도 안하고 함부로 하다가 깨지고 무너질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클 수 있었던 것은 그에게 원칙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원칙이었습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원칙과 법칙을 따르니까, 세계적인 인물이 되었습니다. 우리 아이들과 청년들에게 이런 꿈을 주시라는 기도가 절로 나옵니다.
두 번째 실패한 이유는 탐욕이었습니다. “이스라엘 자손들이 온전히 바친 물건으로 말미암아 범죄하였으니 이는 유다 지파 세라의 증손 삽디의 손자 갈미의 아들 아간이 온전히 바친 물건을 가졌음이라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진노하시니라”(수7:1). 여리고성을 무너뜨릴 때, 첫 번째 전쟁에서 얻는 노획물이므로, 첫 번째 것에 대해서는 손대지 말라는 말씀입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것이니까, 하나님의 창고에 다 넣으라는 것이지요. 한 사람이 손을 대었습니다. 시날 산 외투입니다. 아마 최고급 외투인 것 같습니다. 그리고 200세겔의 은과 50세겔의 금을 훔쳐다가 자기가 잠자는 밑에 감춰두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감찰하고 계셨습니다.
첫 번째 것은 손대지 말라. 이후에 전쟁에서 얻을 수 있는 것이 너무 너무 많으니까, 첫 번째 것을 손대지 말라고 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첫 번째 것을 귀하게 여기십니다. 그래서 첫 번째 직장에서 받은 월급은 하나님께 드리는 것이 신앙적입니다. 그런 원칙을 주셨는데 욕심 때문에 하나님의 법을 어기니까, 말도 안 되는 전투에서 실패했습니다. 그날 밤 밤새 통곡을 하니까, 하나님이 여호수아를 불렀습니다. 그래서 고하니, 그러면 이른 아침에 다 집합하라고 하여 12지파가 다 모였습니다. 그리고 뽑힌 사람이 아간인데, 그 가문이 증조할아버지, 할아버지, 아버지 나오고 나니까, 아간이 딱 걸린 것입니다. 네가 이렇게 했느냐고, 숨겼느냐고 물으니 인정을 했습니다. 그래서 죄를 처리하고 아이성을 정복할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이 하지 말라는 것에 손을 대고 욕심 때문에 하나님의 법을 무시할 때, 우리 인생에는 큰 손해를 경험하게 됩니다. 하나님이 주시지 않는 것은 결코 내 것이 될 수 없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인생과 신앙을 경험하면서 고백합니다. 혹시 내 인생 길이 왜 이렇게 안 풀리나, 왜 이렇게 어렵나 한다면, 하나님이 정해 놓으신 원칙을 무시한 것은 아닌가 하고 돌아보라는 것이 아간이 우리에게 주는 교훈입니다. 탐욕은 절대로 하나님의 축복을 받을 수 없습니다.
미우라 아야꼬라는 일본 작가를 들어보셨을 것입니다. 이분은 폐결핵으로 고생을 하다가 가게를 차렸는데, 그 가게가 너무 잘되는 것예요. 한참 잘되고 있는데, 옆의 가게가 자기 가게 때문에 장사가 잘 안 된다는 소식을 듣게 된 것입니다. 그것이 신앙인으로서 마음에 걸렸습니다. 그래서 남편에게 이야기를 합니다. 우리 가게 때문에 옆 가게가 안 된다고 하니, 가게를 줄였으면 좋겠다는 의견에, 둘이 합의가 되어 가지고 가게를 줄였습니다. 줄이다 보니까 시간이 남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기도하고 말씀을 묵상하는데, 하나님이 은혜를 많이 부어 주셔서 그것을 소설을 쓰기 시작했습니다. 하나님을 묵상하고 성경을 묵상하다가 소설로 쓰기 시작한 것이 바로 그 유명한 ‘빙점’입니다.
이 책은 베스트셀러가 되었습니다. 한두 해 만에 끝나는 베스트셀러가 아니라, 어마어마한 베스트셀러였습니다. 우리나라에서도 큰 반응을 일으켜 많은 사람들이 읽었습니다. 욕심으로는 무엇을 이룰 수 없다는 것을 하나님은 우리들에게 가르쳐 주고 계십니다. 욕심으로 이루어진 것은 오래가지 못합니다. 우리는 욕심을 이루기 위해 살아가는 인생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뜻을 위해 살아가면,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풍성하신 하나님을 깨닫게 됩니다. 욕심으로 행하면 수고도 헛되고 돈도 다 없어집니다. 오늘 주시는 말씀 중에 “그러나 자족하는 마음이 있으면 경건은 큰 이익이 되느니라 우리가 세상에 아무 것도 가지고 온 것이 없으매 또한 아무 것도 가지고 가지 못하리니 우리가 먹을 것과 입을 것이 있은즉 족한 줄로 알 것이니라”(딤전6:6-8). “오직 각 사람이 시험을 받는 것은 자기 욕심에 끌려 미혹됨이니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느니라”(약1:14-15).
욕심으로 되는 것은 없습니다. 하나님이 주신 복으로 우리는 얼마든지 넘치는 축복 속에 살아갈 수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욕심을 부리면 하나님이 함께 하실 수 없습니다. 자만해도 이룰 수 없습니다. 하나님이 도우시지 않으면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습니다. 겸손함이 중요합니다. 욕심으로 인생을 살기 보다는 하나님을 뜻을 이루는 삶, 다 내려놓고 주 앞에 가는 축복이 있기를 바랍니다.
목회를 하면서 지나온 세월을 돌이켜 보니까, 열심히 했어요. 더 이상 할 수 없을 정도로 열심히 일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어마어마하게 부어주셨습니다. 그러나 그 축복이 지금까지 왔다 할지라도, 지금 제가 깨닫는 이 영광스러운 축복과는 바꿀 수 없습니다. 지난주부터 계속 하나님이 원하시는 마음의 소원은, 하나님은 진짜 참 예배를 드리는 한 사람을 원하신다는 것입니다. 수십만 명이 모였을지라도 정말 하나님을 추구하고 찾는 예배자가 없다면, 얼굴을 돌릴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초라한 교회라 할지라도 하나님을 사모하고 정말 갈급하고 하나님께 나가고 하나님께 진정한 예배를 묻고, 하나님이 어떤 예배를 원하실까? 참된 예배드리기를 원하고, 산 제물로 드리기를 원하면서 드리는 한 교인, 열 교인, 백 교인이 어마어마한 교회와 바꿀 수 없는 하나님 앞에서의 가치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고 기뻐하는 하나님이 참으로 원하시는 예배를 드리면 좋겠다는 간절한 마음이 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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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아멘~~
아무리 작은 것이라도 하나님 없이 자기
고집대로 함부로 하면 실패 할 수 있다는 것을
"아이성 전투"를 통해 깨닫습니다.
나의 교만을 버리고 언제나 하나님을 의지하는 겸손을 잃어 버리지 않도록 늘 자신을 낮추고 돌아보는 삶이 되길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