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십일조를 드리면, 율법주의자라는 둥, 심지어 지옥에 간다고 협박까지 하면서 마치 십일조 드리는 사람들을 무식한 자요, 악인으로 몰아가는 사람들이 많은데,
이는 필시 교회를 재정적으로 고갈시켜서 말살하려는 자들의 작태가 아닐까 의심이 들 지경입니다.
물론 그들이 그처럼 입에 거품을 물고 십일조를 못하게 하는 근거는 있습니다.
성경에 "율법은 폐해졌다"고 말하는 구절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저도 율법중에서 의식법과 시민법은 폐해졌다고 믿는 사람이기에 당연히 십일조도 폐해졌다고 보긴 합니다만,
그렇다고 해도 십일조하는 사람들을 저렇게 경멸하는 말을 하면 되겠습니까?
얼마든지 자원하여 할 수도 있는 십일조인데, 이것까지 금지한다는 것은 어찌 보면 공산주의 보다도 무서운 사상이고, 필시 한국교회를 고사시키고, 세계에 복음을 전할 동력을 차단하겠다는 심산이 아니겠느냐는 것입니다.
그것도 지옥까지 운운하니 말입니다.
세상에 이런 법은 없는 것입니다.
성경에는 하나님을 마음을, 목숨을, 뜻을, 힘을 다하여 사랑하라고 했는데, 십일조 조차도 하지 말라고 하는 것은 하나님 사랑하지 말라는 협박이요, 신앙의 자유에 대한 억압이요, 폭거인 것입니다.
마음에서 우러 나와 하는 헌금은 십일조가 됐건, 그 이상의 무슨 헌금이 됐건 절대로 금해서는 안됩니다.
그래서 이러한 공격에 맞서서 십분의 일이나 그 이상의 헌금을 바치는 방법을 제시하겠습니다.
1. 우선 십일조라는 용어는 사용하지 않는 것이 좋겠습니다.
십일조(十一組)라는 것은 영어로는 Tithe라고 하며, 모세가 십분의 일을 의무적으로, 제도적으로 드리도록 법제화한 조항을 말합니다. 그러므로 이 용어를 사용하는 것은 사실 신약교회에서는 적당하지 않습니다.
십일조는 구약시대에 레위지파가 제사업무를 담당하고 있을 때에 그들의 생활비를 조달하기 위해 모든 백성들이 부담한 것으로써 법률에 정해진 조세였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것은 의무였기 때문에 위반한다는 것은 하나님의 것을 도적질 하는 것과 같은 것이었습니다.
말3:8 "사람이 어찌 하나님의 것을 도적질하겠느냐 그러나 너희는 나의 것을 도적질하고도 말하기를 우리가 어떻게 주의 것을 도적질하였나이까 하는도다. 이는 곧 십일조(tithes)와 헌물이라."
말3:10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너희의 온전한 십일조(tithes)를 창고에 드려 양식이 있게 하고..."
그러나 이제 신약시대에서는 이러한 율법에서 벗어났으므로 더 이상 십일조에 얽매일 필요는 없게 된 것입니다.
2. 그 대신 <십일헌금> 이나 <십분일 헌금>을 드리면 되는 것입니다.
이 헌금을 영어로는 a tenth, 혹은 one-tenth라고 합니다. 이것은 법적인 용어가 아니라 단순히 1/10을 의미하는 말입니다. 다시 말해서 의무적인 헌금이 아니기 때문에 구속받을 필요가 없는 자유로운 헌금인 것입니다.
아브라함이 멜기세댁에게 바친 헌금이나(창14:20), 야곱이 무사한 귀가를 보장해 주시면 하나님께 드리겠다고 약속한 헌금이(창28:22), 바로 이런 헌금이었습니다.
창14:20 "너희 대적을 네 손에 붙이신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을 찬송할지니라 하매 아브라함이 그 얻은 것에서 십분의 일(a tenth)을 멜기세덱에게 주었더라."
창28:22 "내가 기둥으로 세운 이 돌이 하나님의 집이 될 것이요,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모든 것에서 십분의 일(a tenth)을 반드시 하나님께 드리겠나이다 하였더라."
아브라함이나 야곱은 아직 율법이 있기도 전에 이런 헌금을 드렸기 때문에, 절대적으로 의무적으로 법에 매여서 드린 헌금일 수가 없습니다. 자원하는 마음으로 드렸던 것입니다.
우리도 이렇게 자유롭게 드릴 수 있어야 합니다.
3. 십분의 일은 그것이 법제화된, 십일조가 되었든, 법제화되지 않은 <십분일>이든, 영광스러운 것입니다.
구약의 십일조는 땅의 소산물중에서 레위인에게 드려 하나님의 일을 위해 쓰여졌다는 점에서 매우 귀한 열매임에는 틀림이 없습니다.
왜냐하면 레위인은 열두 형제중 초태생, 곧 장자가 감당해야할 제사 직책을 맡은 자들이기 때문입니다.
또 우리는 십분의 일이 가지는 또 하나의 영광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바벨론에서 돌아온 이스라엘은 예루살렘에 원상복구하는 일에 있어서 주민이 필요했습니다. 그래서 총독 느헤미야는 예루살렘에 거주할 주민을 선발하여 그 도성에 거하게 하였으니 그들의 수효가 1/10이었습니다.
느11:1 "백성의 지도자들은 예루살렘에 거주하였고, 그 남은 백성은 제비 뽑아 십분의 일(one-tenth)은 거룩한 성 예루살렘에 거주하게 하고, 나머지 십분의 구는 다른 성읍게 거주하게 하였으며..."
저는 이것을 예사롭게 생각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요한 계시록에서도 새예루살렘은 아무나 거주할 수 있는 성읍이 아니라 구별된 백성들만이 거주할 수 있는 성읍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적어도 새예루살렘에 거주할 수 있는 거룩한 백성이 될 꿈을 가지는 것이 아름다운 것이며, 모든 면에서 그렇게 실천하는 것이 복이 될 것이라 생각합니다.
적어도 우리는 1/10은 장자권에 속한 자들의 숫자임을 염두에 두어야 할 것입니다.
첫댓글 개인적으로 '십일조'라는 헌금보다는 교회의 연보를 생각합니다.
그리고 고린도후서 9장 7절이야말로 성경적인 헌금관이라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