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 팬데믹 여파로 1년 미뤘던 2020 도쿄 올림픽이 결국 사상 최초로 무관중으로 진행되고 있다. 아직 대회 초반이지만 올림픽 효자종목인 양궁에서 연이어 금메달 소식이 전해지면서 코로나19로 힘들고 답답했던 우리나라 사람들의 마음을 시원하게 뚫어주고 있다.
대회 둘째 날이던 지난 7월 24일 올림픽 정식종목으로 처음 채택된 양궁 남녀 혼성 단체전에서 첫 번째 금메달 소식이 들리더니, 다음날 열린 여자 단체전에서는 모두가 예상한 것처럼 금메달을 다시 목에 걸어 1988년 서울 올림픽부터 이번 도쿄 올림픽까지 무려 9연패를 달성하는 위업을 이뤘다. 그리고 26일 열린 남자 단체전에서 세 번째 금메달을 따내 지난 2016 리우 올림픽에서 거뒀던 사상 첫 양궁 전 종목 석권을 다시 달성하는 것은 아닌지 기대치가 높아지고 있다.
포물선 운동과 궁사의 패러독스
한국인들에게 올림픽 금메달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종목은 아마도 양궁일 듯싶다. 처녀 출전한 1984년 로스앤젤레스 올림픽부터 금메달을 모으기 시작한 우리나라의 양궁은 지금까지 총 26개의 금메달을 따내 24개인 쇼트트랙을 넘어 올림픽 최고의 효자종목으로 자리잡고 있다.
양궁은 활을 가지고 일정 거리 이상 떨어진 과녁에 화살을 정확하게 맞히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스포츠다. 영어로는 일반적인 활을 가리키는 ‘Archery’라는 단어를 사용하는데, 우리나라에는 고유의 국궁(國弓)이 있기 때문에 이와 구별하기 위해 서양을 가리키는 한자어를 앞에 붙여 양궁(洋弓)이라고 표현한다.
양궁에서 사용하는 도구인 활은 칼, 창, 도끼 등과 함께 인간이 선사시대부터 사용한 살상 도구였다. 초기 활은 주로 날쌘 동물의 사냥과 물고기를 잡는 어로에 사용했는데, 화살촉이 돌에서 금속으로 바뀌면서 강력한 원거리 무기로 발전했다. 그러나 14세기 후반 인류가 화약을 발명하자 활보다 강력한 총포가 등장해 전쟁무기로써 활은 가치를 잃게 됐다. 레저스포츠로서 양궁이 발전하게 된 것은 바로 이때부터다.
2020 도쿄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목에 걸어 올림픽 9연패에 성공한 우리나라 양궁 여자단체 대표팀. ⓒ 도쿄 올림픽 홈페이지(https://olympics.com/tokyo-2020)
활은 반달 모양의 활대의 양 끝을 시위라 불리는 줄이 묶여있는 형태로 돼 있다. 화살을 쏠 때는 시위에 화살을 걸어 힘껏 당긴 후 놓으면 된다. 얼핏 고무줄 총처럼 시위가 탄력 있게 늘어난다고 오해할 수 있는데, 활은 활대의 탄성을 이용해 화살을 날리는 도구이지 시위의 탄성과는 전혀 상관이 없다. 만약 시위가 고무줄처럼 탄성을 갖고 있다고 하면 시위를 당길 때 줄이 늘어나고 활대의 탄성을 활용할 수 없어 화살을 멀리 보낼 수 없다.
화살을 당길 때는 강한 힘이 활시위에 저장돼 있다가 시위를 놓는 순간 화살에 힘이 실려 멀리 날아가게 된다. 화살이 날아갈 때는 중력의 영향을 받아 아래쪽으로 떨어지기 때문에 과녁에 맞추기 위해서는 약간 위를 조준하고 발사해야 한다. 결과적으로 화살은 활시위를 떠나 과녁에 도달할 때까지 포물선 운동을 하게 된다. 화살은 과녁에 낙하하면서 꽂히는데, 포물선 괘도는 발사각도와 과녁까지의 거리, 화살을 당기는 힘, 화살의 무게 등의 영향을 받는다.
초고속 카메라로 촬영해 화살이 날아가는 모습을 보면 활시위를 떠난 화살은 마치 물고기가 헤엄치듯이 좌우로 흔들리면서 날아간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이를 궁사의 패러독스(Archer’s Paradox)라 하는데, 시위를 놓는 순간 화살의 꼬리 부분에 강한 힘이 전달돼 화살 앞쪽을 앞서려고 하기 때문에 심한 흔들림이 나타나게 된다. 따라서 화살을 과녁에 명중시키기 위해서는 포물선 운동은 물론 궁사의 패러독스를 완벽하게 이해하고 화살을 쏠 수 있어야 한다.
슈팅 기술은 일관성이 특히 중요
한국 양궁은 왜 강한 것일까? 양궁에서 화살을 정확히 과녁에 보내려면 무엇보다 안정적인 슈팅 기술이 필요하다. 슈팅은 정적인 상태에서 동적인 미세한 근육의 움직임을 조절해야 하는 아주 섬세한 과정이다. 슈팅 순간에는 아주 작은 오차라고 하더라도 화살의 비행거리가 멀어질수록 차이가 크게 나타나 기록에 중요한 영향을 미친다.
슈팅 기술은 특히 일관성이 경기력에 중요한 영향을 미친다. 높은 점수를 얻기 위해서는 매 슈팅을 항상 일정하게 반복할 수 있어야 하는데, 이를 위해서는 무거운 활을 들고 신체자세를 유지하는 근력, 올바른 힘의 분배와 균형적인 자세, 호흡 변화 등의 조절이 필요하다.
양궁에서 슈팅은 사선(Shooting Line)에서 표적과 일직선으로 스탠스(Stance)한 후 활을 발등에 올려놓는 준비자세인 세트(Set) 동작으로 시작된다. 화살을 시위에 거는 노킹(Noking) 동작이 마무리되면, 팔을 들어올리는 셋업(Set-up), 시위를 당기는 드로잉(Drawing), 당긴 활시위를 고정시키는 앵커링(Anchoring), 표적을 조준하는 에이밍(Aming), 그리고 손가락에서 활시위를 놓는 릴리즈(Release) 동작으로 연결되면서 슈팅(Shooting)이 이뤄진다.
양궁 슈팅은 활시위를 당긴 후 활시위를 고정하는 앵커링과 표적을 조정하는 에이밍을 거쳐 릴리즈 동작으로 이어진다. ⓒ 최동성 『여자양궁선수들의 슛 성공 여부에 따른 상지주요근육 및 척추기립근의 근활성도 비교 분석』
스탠스부터 슈팅까지 모든 과정은 10초에서 15초 사이의 짧은 순간 동안 마치 물이 흐르듯 연속적으로 진행된다. 여기서 가장 중요한 핵심은 시위를 당기는 동작을 멈춘 앵커링 시점에서부터 슈팅을 실시하여 화살이 손가락에서 떠나는 시점인 릴리즈 사이의 구간이다. 이 구간에서 미세한 근육의 작용과 자세의 변화, 흔들림 등은 슛 성공과 실패 여부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
전문가들은 슈팅 시 안정성인 자세를 유지하기 위해서 코어 근육의 사용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또 숙련된 선수들의 경우 활시위를 당길 때 팔의 근육보다 등과 관련된 근육들을 더 많이 사용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광배근과 승모근 등을 안정화하고 효과적으로 사용하면 어깨 근육의 진동을 감소시켜주고 보다 안정된 자세로 슈팅할 수 있게 된다.(최동성 『여자양궁선수들의 슛 성공 유무에 따른 상지주요근육 및 척추기립근의 근활성도 비교 분석』 참조)
슈팅 동작 중 호흡의 안정성은 경기결과에 영향을 주는 중요한 변수로 작용한다. 슈팅 순간 신체를 정적으로 안정된 자세를 취하려 하더라도 심장 박동과 호흡 등에 의해 미세하게 흔들리는 동적인 상태를 피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런 신체의 동적인 움직임은 특히 긴장도에 따라 커져 생체역학적, 운동 생리적 요인 이상으로 중요해진다.
경기력의 핵심은 강인한 심리기술
한국 양궁이 세계 최강인 이유는 단순히 기술적 요인으로 모든 것을 설명할 수는 없다. 양궁은 슈팅 순간 아주 작은 오차에 의해, 혹은 단 한발의 실수가 경기 전체에 커다란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매우 섬세한 스포츠이다. 따라서 양궁에서 좋은 결과를 거두기 위해서는 경기 중 겪게 되는 다양한 압박감을 극복하고 경기가 끝날 때까지 최적의 심리 상태를 유지하는 정신적 능력이 매우 중요하다.
실제 스포츠의 경기력에 영향을 미치는 구성요인인 체력, 기술, 전술, 심리 요인 중 심리 요인이 양궁의 경기력에 가장 중요한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나타났다. 연구에 따르면 양궁의 경기력에서 심리 요인의 중요도는 다른 스포츠보다 압도적으로 높아 절반이 넘는 51.9%에 달했다.(윤영길 외 『종목에 따른 경기력 구성요소의 기여도』 참조)
스포츠 경기에서 심적인 부담이 경기력에 미치는 부정적 요인은 잘 알려져 있다. 과중한 심리적 부담은 불안이나 좌절, 분노, 동기 저하 같은 현상을 발생시킨다. 이로 인해 선수들은 주의결핍이나 오류, 집중력의 방해를 받게 된다. 또 신체적 긴장을 야기함으로써 비효율적인 시합을 수행할 뿐만 아니라 쉽게 피로해지거나 무기력을 유발하기도 한다.
양궁에서는 최근 경기 방식이 바뀌면서 심리적 요인의 중요성이 더 커지고 있다. 예전에는 선수들이 자신의 과녁을 쏘아서 점수가 높은 순서로 시상했는데, 지루하고 재미없다는 이유로 지금은 예선만 이와 같은 방식으로 진행한다. 여기서 성적순으로 16명을 뽑은 후 올림픽 본선은 토너먼트 세트 방식으로 진행된다. 토너먼트에서는 상대와 번갈아 슈팅하기 때문에 이전보다 시합 중에 더 다양한 심리적 긴장과 압박 상황을 유발하게 됐다.
한국 양궁은 다양한 경쟁력을 보유하고 있지만, 특히 심리 정신적인 강인함이 돋보인다. ⓒ 대한양궁협회
한국 양궁이 세계 최강인 이유는 국가대표의 공정한 선발, 대한양궁협회의 적극적 지원 등 다양한 이유가 있지만, 특히 심리 정신적인 강인함이 돋보인다. 우리나라 양궁 선수들은 흔히 정신연습이라고도 부르는 심리기술 훈련(Psychological Skills Training)을 진행한다. 심리기술이란 심리상태를 조정하여 운동 중 최상수행을 발휘할 수 있는 능력으로, 불안수준을 낮추는 효과가 있다.
양궁선수들은 최상 수행을 위해 강력한 의미를 가진 혼잣말을 개발하여 사용하며, 어떤 상황에서도 긍정적인 생각과 태도를 유지하고, 성공의 이미지를 자주 사용하며, 최적의 결과를 내는 데 필요한 자신만의 고유한 동작이나 절차 등 루틴(Routine)을 활용한다.
양궁 국가대표 선수들은 심리기술을 강화하기 위해 수만 명이 운집한 야구장에서 슈팅 연습을 한다. 이번 도쿄 올림픽을 준비하기 위해서는 바람이 많고 습한 환경에 대한 적응 훈련을 하고, 태풍을 대비해 강풍기 앞에서 활을 쏘며, 심지어 지진까지 대비하는 연습을 했다고 한다. 어떤 예상치 못한 상황이 발생하더라도 준비된 선수들은 심리적으로 위축되지 않고 성공적인 대처를 보여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