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님! 아버지의 심정에 어리는 저희의 마음 몸이 되게 허락해 주시옵소서.
본연의 그 마음에 어리는, 아버지의 심정에 이끌려 감을 느낄 줄 아는 저희 되게 해주시옵소서.
아버지의 기뻐하시는 모습을 대하여 아버지에게로 달음질쳐 나아가 아버지의 목을 안을 수 있는 사무친 심정이 저희의 몸 마음에 싹틀 수 있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은은한 가운데 은은히 나타나셔서 저희 마음을 털어놓기 전에는 동하지 아니하시는 아버지이심을 알았사옵니다.
이제 저희의 마음이 더럽혀졌을망정 아버지를 향하는 충심만은 갖고 있사오니,
아버지, 이 심정을 통하여 저희들을 찾아 주시옵고, 이 심정을 통하여 명령하시옵소서.
몸의 부족함을 뉘우치고 과거의 생활이 불충했음을 깨달아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눈물을 흘리며 아버님을 ‘내 아버님’이라 부를 수 있는 간곡한 심정이 우러나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하늘은 그 누구도 보호하기를 주저하지 아니하시는 것을 알았사옵고, 하늘을 찾아 나오는 자의 친구가 되기를 주저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사옵고,
하늘은 하늘을 향하여 울부짖고 눈물 뿌리는 자들의 친구요, 영원히 같이 살 아버지로서 나타나기를 즐거워하시는 것을 알았사옵니다. 아버님! 은은한 가운데 권고하시던 아버지의 음성이 그립사옵고,
은은한 가운데 품어 주시던 그 놀라우신 사랑의 감촉이 그립사옵니다.
그러한 저희의 마음을 통하여 아버지라 부를 수 있는 한 순간이 그리워지옵고 손을 들어 내 아버지라 자랑하고 싶고 부르짖고 싶사옵니다. 멀리멀리 계신 아버지이신 줄 알았더니 저희의 마음속에 계신 아버지를 만나던 그 순간이 기뻤사옵니다.
멀다 할 때 가까운 심중에 계셨고, 심중에 계시다고 안심하고 있을 때 멀리서 부르짖으시던 아버님이셨사온데,
오늘날 인간들은 여기에 박자를 맞출 줄 모르고 있사옵니다.
저희를 버리신 줄 알았던 그 자리가 아버지와 가까운 자리요,
저희와 함께 계시지 않다고 생각했던 그 자리가 아버지께서 저희와 함께 계신 자리라는 것을, 알지 못한 과거의 저희 자신들을 이 시간 뉘우치게 하여 주시옵소서. 사랑하는 아들이라 명명하시고 사랑하는 딸이라 명명하시는 이상,
그 아들딸들을 고생의 자리에 두고 싶지 않으신 아버지의 마음을 몰랐사옵니다.
아버님의 곡절의 심정을 모르는 저희들은 수고의 길에 내놓으신 아버님을 매정하고 무정한 아버님이라고 알았고,
그동안 아버님을 대하여 자탄한 때도 많았사옵고 원망할 때도 많았사옵니다.
아버지와 저희들 사이에 가로막힌 곡절의 벽을 알지 못하여 원망도 하였고, 배척도 하였고, 무정하게도 대하였고, 불신하는 자리에 나가기도 했던 것을,
아버지, 용납하여 주시옵소서. 이것은 저희 조상이 타락함으로 말미암아 저질러 놓은 죄상 때문이었고, 인류 역사상에 원한의 핏자국을 남기고 선지선열들이 죽은 연고임을 알았사옵니다.
오늘 저희의 마음의 기준이 높은 자리에 있습니까? 그 마음을 불살라 없애 주시옵소서.
내 몸과 내 위신을 내세워 하나님을 대신하고 나타나기를 고대하고 있습니까?
아버지의 성상 앞에 면목 없는 이 몸을 치고 처참한 입장에 계신 아버지이심을 깨달아,
아버지를 부를 줄 아는 아들딸들 되게 하여 주시옵길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아버지! 이제 남은 길에도 수없이 연속되는 고난의 역사가 남아 있는 것을 알게 될 때에,
오늘의 불충함을 아버지 앞에 머리숙여 아뢰지 않을 수 없사옵니다.
원컨대 역사의 서러움을 이 한 몸에 지니게 허락하여 주시옵고,
남아진 고난의 전부도 이 한 몸을 제물삼아 하늘이 밟고 넘어가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아버지께서 안식할 수 있으며, 모든 탄식을 저버리고 기쁨의 한순간을 맞아 서로 목을 껴안고,
내 아버지요, 내 아들이라 부를 수 있는 그 순간이 그립사옵니다.
저희들이 어떠한 희생과 어떠한 각오와 어떠한 비참한 모습으로 땅 위에서 사는 한이 있더라도 그 충절의 일편단심만은 이 땅 위에 세우고 사라질 수 있는 아들딸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그런 길을 가기를 각오하고 있는 저희들이오니, 아버지, 개의치 말도록 몰아 주시옵고 이끌어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니다.
새로운 마음과 몸으로 각오하고 맹세할 수 있는 이 시간이 되옵기를,
아버지, 간절히 부탁드리면서, 모든 말씀 주의 이름으로 아뢰었사옵나이다. 아멘. (1959. 3. 2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