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포 스케치
구포엔 바다처럼 널은 낙동강이 흐른다. 강을 건너는 고속도로와 전철이 있고 대교도 쌍으로 달린다. 서울-부산을 오가는 KTX열차를 이용하는 승객이 부산역만큼이나 많은 구포역. 북구에 생긴 신도시 대단지 아파트들과 만덕고개 넘어 연제 동래 금정구 승객은 물론 김해 양산지역에서도 구포로 사람들이 몰린 때문이다. 강만 건너면 김해공항도 가깝고 덕천로터리에 붙은 거대한 구포시장까지 있어 이곳에 사는 사람들은 살면서 불편함을 못 느낀다는 말을 자주 한다. 지금은 보신탕 간판이 사라졌지만 구포시장 안에 마지막까지 살아남았던 개시장도 유명했었다.
난 요즘도 가끔씩 구포를 찾는다. 전철 10개 역은 20분이 걸리지만 그 전에 내려서 강변을 따라 걸으면 계절의 변화도 느낄 수 있고 잘 가꾼 생태공원 풍광도 만날 수가 있다. 안생 한창 푸르렀던 60년대 말, 구포다리 밑은 강변을 따라 술집과 식당들이 난립해 있었고 서면 직장에선 종종 이곳까지 찾아와 회식을 열었다. 당시 장어나 잉어 같은 민물고기가 인기였지만 위생적이지 못했던 기억이 있다. 구포국수는 지금도 유명세를 타고 해운대나 광안리 같은 번화가에서 그 간판을 달고 성업 중인 업소를 만날 수 있다. 구포동 한복판에 직장의 출장소가 있었던 골목은 낯선 거리가 된지 오래다.
구포엔 덕천역 말고도 구명역과 구남역이 더 있다. 거북 龜자가 나란히 든 것을 보면 거북과 관련이 있을 것 같은데 그 연원을 밝힌 안내문은 보이지 않는다. 대신 이곳 포구가 '감동진'이었다는 기록은 있다. 감동진 간판은 일산호수처럼 꾸며 산책객이 끊이지 않는 호수 옆 잔디밭에 세웠다. 연중 사람들로 바글거리는 구포시장 버스정류장에서 고가교로 철길과 도로를 공중으로 건너면 나오는 호수다. 고가교에 올라 낙동강을 등지면 백양산과 금정산이 파노라마로 눈앞에 펼쳐진다. 세계에 내놔도 손색없는 풍광이다. 봄은 짧아서 또 잠시면 '봄날은 간다'면서 우리 곁을 떠나갈 것이다.
코로나 펜데믹이 어정쩡하게 멈추자, 양산 연극인들은 5백년 전 양산의 변방이었던 구포를 어느날 중앙에서 갑자기 동래로 이관한 조치에 반발하여 난리법석을 피운 역사적 사실을 마치 만세운동처럼 포장하여 격렬하게 저항하는 연극을 무대에 올렸다. 당시에도 만덕고개가 막히긴 했어도 구포에선 동래 편입을 원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들었다. 지금 토목공사가 상당히 진척된 부산지하철 1호선 노포역에서 2호선 양산역 노선이 연결되면 구포~양산~동래를 원을 그리며 돌 것 같아 지역 이관에 따른 백성들 저항을 그린 연극도 하나의 해프닝이 될 것 같다.
지난 선거 때 청홍전에서 구포는 부산에서 유일하게 청군이 승리했다. 구포시장 건너편 보도 갈림길에 청색 띠를 두른 백여 명이 운집해서 구호를 연호하며 웅성거리는 걸 두어 차례 목격했었다. 홍색 플래카드를 걸친 차량이 확성기를 틀어대며 도로를 휙 지나친 것과는 대조를 보였다. '낙동강 벨트'라지만 강물 색과는 또 다른 청군을 강 건너 김해에서도 둘이나 밀어올렸다. 북한에 USB를 건네고 원전 생태계를 파괴하고 휴전선 옹벽을 무너뜨린 쩝쩝이도 깨춤을 추며 선거판에 끼어들었으니 이 나라를 어찌 말아먹을라꼬 그 발광을 해댔는지 모르겠다. 쯧쯧쯧. 싱숭생숭한 봄날에 늙은이의 넋두리로 치부할 수도 있겠지만 이런 인건말종이 한둘이 아니니 나라의 앞날이 걱정이다.
동영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