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기 암환자란 수술과 약물요법, 방사선치료에도 불구하고 경과가 개선될 여지가 없는 환자를 말한다. 전이가 있거나 4기라도 항암치료를 통해 의미있게 생명을 연장할 수 있다면 여기에 해당되지 않는다.
말기 암환자 가족들로부터 가장 많이 듣는 질문이 “앞으로 얼마나 살 수 있을까요?이다. 그러나 실제로 얼마를 더 살 것인가는 판단하기 어렵다. 일반인의 시각에서 보면 개별 환자에 대한 의사의 판단은 정확하지 않은 것으로 악명높지 않은가. 그러나 일반적인 통계에 따르면 3∼6개월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
● 말기암환자 관리 현황
암은 워낙 치명적인 질병이어서 지금까지 주된 관심사는 완치율을 높이고 생존 기간을 연장하는 데 있었다. 그러나 최근 들어 치료가 불가능한 말기 암환자의 삶의 질에 대한 관심이 고조되면서 이들의 삶을 의미있게 해 줄 의료 시혜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 연간 사망자 25만명 가운데 6만명의 사인이 암이다. 이들의 대다수가 적절한 통증 조절이 안되거나 중환자실에서 외롭게 임종한다. 환자뿐 아니라 가족까지 포함하면 연간 20만∼30만명이 암으로 인한 통증과 죽음의 고통으로 삶의 질을 위협받고 있는 셈이다.
● 호스피스·완화의료란
호스피스·완화의료란, 이런 환경의 말기 암환자와 가족들이 극한상황에서 마주치는 신체·정신적 문제와 사회·영적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 제공되는 전인적인 의료서비스를 말한다. 즉, 환자와 가족의 고통을 줄이고 삶과 죽음의 질을 향상시키자는 것이다. 여기에는 일정 자격기준을 갖춘 의사와 간호사, 사회복지사, 성직자 등 전문직 종사자들과 자원봉사자 등이 팀 구성원으로 참여한다.
최근에는 임종 예상시점 이전이라도 투병과정에서 발생하는 통증 및 증상완화가 필요하다고 판단되는 경우 담당 의사에 의해 보다 적극적으로 호스피스·완화의료가 제공돼야 한다는 점이 강조되고 있다. 하지만 아직도 일상화와는 거리가 멀다. 대다수의 사람들이 임종 직전에나 호스피스를 이용하는 것으로 잘못 인식함으로써, 너무 늦게 호스피스 서비스를 의뢰하는 까닭에 많은 환자들이 충분한 서비스를 받지 못하고 죽음을 맞는 것이다.
지난 94년 세계보건기구(WHO)는 환자의 삶의 질에 가장 효과적인 조치 중의 하나가 말기 암환자에게 제공되는 호스피스·완화의료라고 밝혔으며, 미국 영국 호주 일본 등지에서는 이 시스템이 제도화돼 많은 말기 암환자들이 활용하고 있다. 우리가 눈여겨 봐야 할 대목이다.
● 어떤 기관·단체가 있나
우리나라의 경우 지난 65년 강원도 강릉에서 ‘마리아의 작은 자매회’소속 수녀들에 의해 갈바리의원이 세워져 처음 호스피스라는 이름으로 말기 암환자들을 돌보기 시작했다. 지금은 전국적으로 70여개의 호스피스·완화의료기관이 설립돼 다양한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이런 기관을 이용하기 위해서는 해당 주치의와 상의 후 한국호스피스완화의료학회(02-818-6035), 한국가톨릭호스피스협회(02-3779-1412), 한국호스피스협회(02-592-7893) 등에 문의하면 도움을 받을 수 있다.
● 임종관리에 대한 사회적 합의 있어야
우리나라에서도 이런 일련의 호스피스·완화의료의 제도화를 위한 시범사업이 진행중이어서 머잖아 말기 암환자들에게도 양질의 혜택이 제공될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그러나 보다 양질의 서비스가 광범위하게 제공되기 위해서는 치매요양병원이나 정신보건센터 등에 정부와 지방자치단체가 예산을 지원하듯, 호스피스·완화의료기관에 대해서도 재정적 지원을 하는 등 적극적인 육성책을 강구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먼저 말기 암환자들의 신체·정신적 고통과 이에 수반되는 막대한 사회적 비용을 감안, 이들이 여생을 더 뜻깊고 안락하게 보낼 수 있는 것은 물론 품위 있는 죽음을 맞이할 수 있도록 임종관리에 대한 사회적 합의를 이뤄내야 한다. 죽음은 특별한 선택이 아니라 모두가 맞는 피할 수 없는 과정이기 때문이다.
환자 정신건강 안정되면 면역계 활성화
얼마 전까지만 해도 암은 사형선고였다. 지금도 더러는 암의 경우 ‘진단’이나 ‘통고’라는 말 대신 ‘선고’라는 용어를 쓴다. 극심한 통증에 시달리는 힘겨운 투병을 거쳐 결국 죽는다는 의미의 표현이다. 그러나 의료기술은 하루가 다르게 발달해 이제는 암 환자 두 명 중 한 명은 완치되는 시대가 됐다. 암은 더 이상 불치병이 아니라 난치병이며, 장기적인 관리가 필요한 만성질환일 뿐이다.
이처럼 암 생존율이 높아지고 투병 기간이 길어짐에 따라 환자의 정신건강에 대한 관심도 함께 높아지고 있다. 과거에는 진단 결과 암일 경우 보호자에게만 통고하고 환자에게는 숨기는 게 관례였지만 최근에는 환자에게도 처음부터 병명을 밝힌다. 이런 추세는 불가피하게 환자들의 정신적 충격을 수반한다. 이런 가운데 삶의 질에 대해 주목하는 사회 분위기는 암 환자의 정신건강을 돌아보게 하는 계기가 됐다.
통상 암은 종양내·외과, 방사선종양학과 등 3대 분과가 주축이 돼 치료를 시행했다. 그러던 것이 70년대 초 미국에서 정신종양학이 암 치료팀의 일원으로 참여하면서 변화가 일기 시작했다. 암 환자들의 정신 건강이 새로운 관심사로 부각된 것. 암환자들 중에는 심한 우울증과 불안장애, 섬망(착란), 외상후 스트레스장애, 심인성 성기능장애 등의 고통을 겪는 사람이 많다. 처음에는 침착하게 대처하다가 갈수록 심한 우울증을 보이는 사례도 흔하다. 그러나 암에 걸리면 당연히 우울해질 것이고, 암이 낫기 전에는 우울증이 해소되지 않을 것이라고 여기는 것은 잘못이다. 심리적으로 안정되면 면역계가 활성화되고 삶의 질뿐 아니라 암의 치료율이나 생존율이 향상된다는 연구보고도 있다.
암은 각기 발병 부위가 다르지만 모든 암이 공통적으로 침범하는 장기가 있다. 바로 마음(mind)이다. 정신적인 안정에 기초한 적극적 투병의지가 성공적인 암 치료의 기본임을 알아야 한다.
의료용 마약성 진통제 초기 통증부터 투여를
암 환자가 겪는 가장 고통스러운 증상은 통증이다. 일반적으로 항암치료를 받는 환자의 30%,진행된 환자의 70%가 통증을 호소한다. 특히 이들의 80%는 두 가지 이상의 다발성 통증으로 고통받고 있다. 통증은 그 자체로도 고통스럽지만 수면장애와 식욕부진, 신체활동 감소, 의욕상실, 우울증, 성기능 감소는 물론 타인과의 관계까지 단절시키는 등 삶의 질을 극도로 제한한다. 따라서 암환자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통증을 완화시켜 삶의 질을 향상시키고 가정 및 사회로의 복귀를 돕고, 이에 따른 가족의 고통과 경제·사회적 손실을 최소화하도록 하는 것이다.
통증 원인은 크게 암에서 비롯된 것과 치료 과정에서 나타나는 것,그리고 암과 무관한 만성 통증으로 나뉘는데, 이중 암과 관련된 통증이 60∼80%나 된다.
이런 통증을 완화하기 위해 진통제를 투여하거나 신경 차단, 방사선 및 항암제 치료, 혹은 정신·신경외과적 수술 등 여러 가지 방법이 동원된다. 이 가운데 중요한 것은 진통제 투여. 진통제는 대부분의 환자에게 적용하는 약물요법으로,90% 이상의 환자가 이 방법으로 통증을 조절한다. 약물 중 아스피린 등 비마약성 진통제는 주로 가벼운 통증에 사용하며, 통증이 상당히 심한 경우에는 코데인, 모르핀 등 마약성 진통제를 사용한다.
일부에서는 마약성 진통제의 중독을 걱정하지만, 의료용 마약의 경우 1만명중 한 명 꼴로 중독 현상이 나타나므로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이런 까닭에 통증이 시작될 때부터 적극적으로 마약성 진통제를 투여해 통증을 치료하는 것이 좋다는 것이 최근의 추세다.
항우울제와 항경련제를 투여해 통증을 다스리기도 한다.
주로 통증 원인이 신경계를 침범해 타는 듯하고, 찌릿찌릿한 양상의 통증이 나타나거나, 마약성 진통제가 잘 듣지 않을 때 사용한다. 또 뼈에 전이가 있는 경우에는 방사선치료, 췌장암 등 내장 통증을 유발하는 경우에는 신경을 차단해 통증을 감소시키기도 한다.
암 환자의 통증 조절이 어려운 것은 주로 의사와 간호사, 그리고 환자와 가족의 편견에 기인한다. 그런 만큼 암 환자의 통증을 조절하기 위해서는 의료진과 환자, 보호자의 유기적인 협조와 노력이 무엇보다 절실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