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 나들이(5)--문병 차--진주로
사고는 순간적이다. 어제 저녁 무렵에 꽝하는 소리가 들렸다. 아파트 뒤 창문을 열고 도로 쪽을 바라보니 승용차 한대가 보이고 경찰 순찰차가 여러대 경관등을 켜고 사이랜 소리가 요란했다. 우리 아파트는 왕복 10차선 대로변에 있다. 3년전에도 끔직한 대형 사고가 났다. 밤길에 행인이 엘리베이트를 이용해서 길을 건너야 되는데 차도를 건너다가 대형 버스가 대로에 사람이 건넌다는 것을 전혀 생각지 못하고 달리다가 늦게 사람을 발견하고 급브레이크 밟아서 차가 인도로 들어가서 인도를 걷던 행인 두명을 치어서 숨지는 사고가 발생햇다. 가로수가 쓰러지고 난리 북새통이 터진지 그렇게 오래되지 않았는데, 어제 저녁에는 차가 신호 위반으로 좌회전 하다가 오토바이와 충돌하여 오토바이 기사가 현장에서 붕 떠서 땅에 떨어져 기절했다는데 생사를 모른다. 사고는 순간적이라는 말이 맞는 것 같다. 차를 몰고 다니면 늘 조심조심 해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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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진주에 문병간 선교사 부부도 순간적으로 교통사고를 당했다.
교직을 일직 명퇴하고 아프리카 우간다로 부부가 선교사로 갔다. 부인은 보건소장을 하다가 명퇴를 하고 남편과 함께 선교 활동을 하러갔다. 일반적으로 생각하면 퇴임하고는 여생을 편하게 지나려하는 것이 인지상정인데 더운 곳에 말도 잘 통하지않는 곳에 그것도 덩치가 큰 흑인들이 사는 곳에 간다니 의아하게 생각되었다. 하지만 그들은 사명을 완수한다는 마음으로 간것이다. 간지 7년이 되었다. 가끔 소식은 전해 들었다.
작가 최인호는 가장 존경하는 사람은 성직자라 했다. 가끔 일탈해서 물의를 일으키는 성직자가 있지만 그들은 자기보다 훌륭하다고 했다. 그는 다음으로 초등학교 교사들을 존경한다고 했다. 6-70년대 코흘리게 아이들이 학교에 오면 똥 오줌을 못가리는 아이들을 달래고 얼리고 해서 조국의 산업역군으로 조국 근대화 일꾼으로 길러낸 그들을 사랑하고 존경한다고 했다. 아마 그렇게 생각하는사람들이 대다수 일거다. 나역시 최인호 작가와 생각이 비슷하다.
성직자는 아무나 되는 것이 아니다. 어쩌면 신의 점지가 있어야 될 수 있을 것 같다. 내가 아는 여성 한분은 수녀가 되리라 생각했지만 가족들의 반대로 뜻을 이루지 못하고 평생을 혼자 살면서 많은 사람들의 대모가 되어 주었다. 성직자의 길은 고난의 길이다. 진주의 김선교사 부부 역시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은 것 같다. 감히 퇴임후에 나이도 몸도 힘드는데 그것도 아프리카 생면 부지의 땅으로 간다는 것은 결코 쉬운일이 아니다.
김선교사는 퇴임전에 중등학교 교사였다. 그는 고성의 자그마한 학교에 다섯번이 지원해서 근무했다. 그는 학교 부근에 있는 교회에 충성하기 위해서 또한 아이들에게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 다른 학교에 잠시 근무하고 지원해서 그 학교로 갔다. 그러한 연유로 그는 그 지역에 봉사하는 훌륭한 교사로 남강 교육상을 받았다. 수상후에 우리 수상자들이 그곳을 방문해서 한해 여름에 그곳에서 여름 수련회를 가졌다. 그들 부부의 헌신적인 뒷바라지와 교회와 학교의 적극적인 도움으로 그해 수련회는 유종의 미를 걷우었다. 그후 자주 연락하면서 지나다가 그가 조기 명퇴를 하고 선교사로 떠난다는 말에 또 한번 놀라기도 했다. 그러던 그가 선교활동 7년차 안식년이 다가 왔는데 귀국하지 않고 더 일을 하려다가 아내가 교통사고를 당해서 왼쪽다리가 발목 부근이 완전 골절되고 얼굴 전체에 타박상을 입었다. 생사가 오락가락했는데 우간다 병원에서는 수술이 불가능해서 빨리 귀국해서 수술을 받아야되는데 환자의 귀국이 쉽지않았다. 백방으로 노력하여 귀국하고 수술도 잘 되어서 진주 집으로 퇴원해서 이제는 통원 치료를 받게되었다. 듣기 보다 환자의 상태가 괜찮아보여서 내가 농담을 했다. “하나님이 알아서 안식년이라고 귀국시키고 알아서 수술하게 하고 알아서 치유하게 한다고 했다.”
다행이다. 성직자들에게 비극이 없어야 한다. 물론 일반인들에게도 없어야 한다. 그들은 자기를 위해서 사는 사람들이 아니다. 일반인들은 자기를 위해서 가족을 위해서 전쟁을 하듯이 사는수가 허다하다. 그들은 만민을 위해서 기도하고 자기를 희생하는 사람들이다. 존경받아 당연하다. 우리 5명이 대표단이었다.
대구에서 진주는 약 두시간정도 소요되었다. 기꺼이 한 사람이 운전을 해주었다.
우리가 도착하니 김선교사가 문앞에서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집에 들어가서 환자를 보았다. 생각보다는 상태가 좋아 보였다. 다행이라 생각했다. 그동안 선교활동을 잠시 들었다. 교통사고 경위도 알게 되었다. 우리를 위해서 고성까지 가서 갯장어(하모)회를 푸짐하게 마련해 두었다. 여름에 하모회는 귀하기도 하고 인기라 했다. 무척 고마웠다. 식당에가지 않고 집에서 집밥을 먹었다. 식후에 근방에 공원카페가 있다고 꼭 들러서 가라해서 함께 가보았다. 까페가 규모가 크다. 사람이 꽉 차있었다. 여기나 거기나 사람들이 더우니 시원한 곳을 찾아서 다니는 것은 비슷했다. 돌아오는 발걸음이 가벼웠다. 그들은 몸이 어느 정도 좋아지면 다시 우간다로 간다니 그들의 사명감에 경의를 표하고싶다. 하나님의 은총이 함께 하기를 기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