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요한 것은 의식하지 못하는 곳에 있다 - 프로이트와 루솔로
축음기와 정신분석학의 공통점은?
20세기 초반 이탈리아의 전위예술가 루솔로(Luigi Russolo, 1885~1947)는 사람들이 귀에 거슬려하는 소리들, 즉 소음을 가지고 음악을 만들었다. 심지어 그는 전통적인 악기와 달리 소음을 내는 엄청나게 거대한 악기를 제작하기도 하였다. 미래파(futurism)의 일원이었던 그의 작업에서 우리는 두 가지의 큰 의미를 얻을 수 있다.
첫째, 우리는 일상생활에서 접하는 여러 소리를 소음으로 간주한다. 즉 우리는 늘 소음을 접하고 있으므로 이에 대한 새로운 발견이 필요하다.
둘째, 이러한 소음은 대부분의 경우 우리에게 지각되지 않거나 의식되지 않지만 무의식적으로 우리의 귀에 흡수된다는 사실이다.
백색소음(white noise)은 이에 대한 가장 좋은 예가 될 것이다. 가령 소음이 없는 너무 조용한 곳에서는 정신이 잘 집중되지 않는데, 조금만 소리가 나도 이를 중화시킬 수 있는 소음이 없기 때문이다. 백색소음은 마치 온갖 색이 다 섞여서 빛이 투명한 백색광으로 나타나듯이 우리에게 지각되지 않는 투명한 음으로 나타난다. 우리가 연인의 아름다운 목소리를 들을 수 있는 것도 그것을 방해하는 소음을 중화시키는 백색소음 덕택이다. 우리의 귀에 분명하게 들리고 지각되는 것만이 소리의 전부가 아니다.
19세기 말에 발명된 ‘축음기’는 이러한 사실을 분명하게 보여준다. 사람들은 축음기가 인간의 귀에 들리는 소리를 그대로 담는 기계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는 오해다. 축음기는 인간의 귀와 달리 소리를 의식적으로 지각하든 그렇지 않든 간에 상관없이 모든 음을 기록한다. 축음기의 원리는 의외로 간단한데 소리의 진동을 그대로 파형으로 기록하여 홈을 새기는 것이다. 인간의 귀가 자신이 듣고 싶은 것과 듣고 싶지 않은 것을 무의식적으로 구분하여 선택하는 것과 달리 축음기는 주변에서 발생하는 모든 소리의 파동을 기록한다. 시끄러운 카페에서도 연인의 목소리를 뚜렷이 들을 수 있는 이유는 인간의 귀가 선택적으로 다른 소리를 잡음으로 걸러내기 때문이다.
그러나 축음기는 그러한 선택을 하지 않는다. 연인의 목소리건 다른 사람의 소리건 혹은 카페의 잡음이건 간에 모두 파형으로서의 소리일 뿐이다. 심지어 인간에게 들리지 않는 백색소음까지도 축음기에는 새겨질 수밖에 없다. 그렇기 때문에 축음기에게는 지각하는 음과 그렇지 않은 소음의 구별은 무의미하다. 세상의 모든 소리는 음이자 동시에 소음인 것이다.
루솔로, 〈도시의 각성〉 Risveglio di una Città, 1914
소음으로 만든 음악이다. 우리는 일상생활에서 소음으로 간주하는 소리들을 의식하지 못한 채 듣고 있다. 프로이트는 정신질환을 겪는 환자들을 치료하는 과정에서 그들의 의식적인 진술 내용보다는 소음처럼 흘려 듣게 되는 행동이나 무의미한 잡담 혹은 말실수 등에 주목하였다.
https://www.youtube.com/watch?v=IC3KMbSkYNI
루솔로의 〈도시의 각성〉 연주에 쓰인 악기들이다.
오늘날 심리학의 모태가 되었으며 중요한 학문적 방법론으로 자리매김한 정신분석학은 바로 흥미롭게도 우리가 소음이라고 간주하는 것들에 주목함으로써 탄생하였다. 정신분석학의 창시자인 지그문트 프로이트(Sigmund Freud, 1856~1939)는 정신질환을 겪는 환자들을 치료하는 과정에서 그들의 의식적인 진술 내용보다는 오히려 터무니없는 그들의 행동이나 무의미한 잡담 혹은 말실수 등에 주목하였다. 예전에 이러한 터무니없는 말과 행위는 마치 아무런 뜻도 없는 소음과 같은 것으로 여겨졌다.
그러나 프로이트는 오히려 이렇게 무의미한 소음으로 간주되는 말에 주목했고 그것이 보다 심층적인 인간의 마음을 드러내는 징표라고 믿었다. 그리하여 그는 마치 음과 소음을 구별하지 않고 모든 소리를 기록하는 축음기와 마찬가지로 환자의 모든 소리에 주목한다. 그리고 우리가 무의미하고 이치에 맞지 않다고 생각하는 소음 속에서 의식보다 더 깊은 마음의 영역을 발견한다. 그 영역이 바로 무의식이며, 정신분석학은 바로 이러한 무의식의 발견과 함께 발전하였다.
[네이버 지식백과] 축음기와 정신분석학의 공통점은? (보고 듣고 만지는 현대사상, 2015. 08. 25., 박영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