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여자의 뒷모습이 내 시야에서 사라질 때까지,
내 눈밖을 떠나 갈때 까지
하염없이 바라보았다.
하지만 그 여자는,
날 다시는 보고 싶지 않는다는 말과 함께
날 피하기 시작했다.
대체 이 여자는
언제까지 끝없는 나와 줄다리기를 할 셈인가?
잡았다고 안도의 한숨을 쉬기도 전에 저
하늘위의 신이라는 작자는 우리를 못살게
둘 셈이다. 이건 신의 농간이 틀림없다.
이제야 겨우
내 곁에 둘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이건 또 뭐란 말인가!
'왜 나한테 아는 척을 하시는 거지요? 전 당신이라는 사람 몰라요!'
매몰차게 나를 경계심에 가득 찬 눈으로 바라보면서,
다른 남자의 손을 잡고 떠나는 그 여자의 행동에
또 다시 내 심장이 차갑게
식혀지기 시작했다.
다시 그녀의 손목을 붙들고, 벽에 몰아세웠음에도 이 여자.
역시 꿈쩍도 하지 않는다.
오히려 더더욱 반감을 줄 정도로 화를 불러일으킴을 느꼈다.
'이러면 안된다고!!! 네가..네가 나한테 이러면 안돼!!!'
내가 이렇게 간절하게 바라는 데도 언제까지 모른 척 할껀데....
언제까지 바라보게만 할껀데?
'하아! 어이없네요. 난 모른다고 하지 않았나요?
생사람 잡지 말고, 이 손이나 놓아주시죠?'
생사람 잡지 말고?
정말 너의 그 눈은 나를 모르는 사람 취급하는 거야?
너의 마음조차 나를 밀어내는 거야 지금?!
타악!
조그만한 마찰음에 떨어져나가는 그녀의 가녀린
손목과 제자리로 돌아와 허무하게
미동조차 않는 내 손에는 아직도 그녀의 온기가 가득한데...
이렇게 간절한데 왜 이렇게 내 다리는 그녀를 다시
내 곁에 불러들일 수 없는 거지?
왜 이렇게 내 목소리는 그녀를
내 곁에 데려올 수 없는 거지?
뭐길래 뭐길래 나를 이렇게 얼어붙게 만드는 거지?!
결국, 나를 매몰차게 떨구는 여자를 나는 붙잡을 수 없었다.
내 손에 쥐여있는 투명하디 못해 차가운 술잔.
여전히 목에 충족되지 않는 심한 갈증을 느끼면서
술잔에 기대어 호소한다.
이 진정되지 않는 마음과 설움이 물밀듯이 올라옴을
느낌에도 난 눈물을 흘릴 수 없다.
하아....
아른거리는 그녀의 얼굴.
떨쳐버릴 수가 없다. 그녀의 그 차가웠던 말투조차도..
자꾸만 내 머릿속을 강하게 내려쳐온다.
너무 투명해서 꽉 쥐어버리면 깨져버릴 거 같아서
그렇게 소중히 다뤘던 건데..
뭐가 잘못된던 걸까....
어디서 부터 어느 순간부터 서로 엇갈려 버렸던 거지?
가슴이...심장이 울고만 있다.
그녀가 보고싶다고... 그녀를 안고 싶다고.
"뭐가 또 널 그렇게 괴롭히는 거냐? 사하라...이건 너무 너답지 않은데?"
언제부터 있었던 거지?
눈이 흐릿하게 보여서 그런지, 정작 내 주위를 신경쓸 틈이 없었다.
정신이 오락가락하다. 벌써부터 취기가 도는 건가....
"....누....구....지...?"
취기를 조금이나마 없애기위해, 고개를 좌우로 흔들어본다.
조심씩 맞춰져가는 초점에 주위를 한껏 훝어보았다.
서서히 균형이 잡히는 주위의
낯선 시선에 나는 점점 기분이 더 가라앉는 것을 느꼈다.
"이런이런, 천하의 사하라군이 어쩐일로 취하셨을까?"
비아냥거리면서 내 건너편에 걸터앉은 놈.
은근히 내 속을 파헤치는 것 같아 짜증이 들끓어오른다.
그런데 저 놈은 아는지 모르는지 알면서도 저렇게 웃고 있는 건가?
기분나쁘게 웃고 있는 놈을 째려보니, 가라앉는 술기운이라도 빌려서
저 놈을 바닥에 꿇게 하고 싶지만 보는 눈이 은근히
많음을 느껴 그저 내 손은 술병을 향해 뻗고 있었다.
탁!
내 손은 그저 허공을 저어버렸고, 내 손을 떨쳐낸
느낌이 오늘로서 두번째 맞지?
정말 기분이....... 이거..말로 설명할 수 없을 정도로
살인충동까지 들게 한다.
".......뭐야...내놔!"
비록 취기가 도는 작은 목소리였지만, 이 상황을
보고 있을 보통사람들에게는
충분히 고개를 다른 쪽으로 돌려버릴만큼 강압적이고 소름돋는
말이였을거다. 하지만, 정작 본인은 신경쓰지
않는다면서 다시 술병을 갈취해서
술병에 쪼르륵- 소리와 함께 덜컹 입에 털어버린다.
"....무엇 때문에 죽을 상이냐? 어디 초상났냐?"
뭐야 , 이 놈..... 이렇게 강심장인 줄 알고 있었지만,
아줌마같은 면이 있었나? 의외로군....
"신경끄고 갈 길 가........"
술병만을 찾고 있을 내 손을 허공질하게 하는 이 아줌마같은 사내놈.
어째 저 놈이 날 내려다보고 있는 거 같은
환상까지 보게 되는데..... 대체
이게 어떤 상황이지?
"큭큭... 너같으면 신경안쓰겠냐? 사하라님께서 포장마차에 주저앉아
술병쥐고 울고 있는데 어느 누가 그냥 지나갈 수 있겠냐고"
말을 못하면, 소리소문없이 저 목을 단 번에 따버릴려고 했다.
뭐 나는 인간도 아닌 줄 알고 있나 본데,
내 심장이 다시 뛰고 있다고.....내 심장이....
내가 살아있는데..... 살아있음을 다시 한 번 깨닫고 있는데....
또 다시 들리는 그녀의 차가운 목소리.
하아....나라는 인간.. 정말 최저구나..
.....주체할 수 없이 나라는 인간.....진짜 못된 놈이구나..
두 뺨을 타고 흐르는 뜨거운 액체를 신경쓸 틈도 없이,
한 남자는 바닥에 주저 앉아 소리없이 조용히 오열을 내뱉고 있었다.
보는 이로 하여금, 씁쓸한 입술의 메마른 침조차도
넘겨 보내야 할 거 같은......
차오르는 눈물이 되어..
사라질 것만 같은..
두번째 인연 (中)
어릴 적의 기억은 내겐 거의 없다. 아니...
그다지 기억하고 싶지 않은
기억들로 가득하기에 나는 또다시 내 과
거를 외면하고 있었던건 사실이다.
하지만, 어릴 적에 기억나는 이야기 중에
그나마 떳떳하게 밝힐 수 있는 내게 따뜻
했던 그 기억들은 절대 잊을 수도,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다는 걸 나는 그에 더 감사할 뿐이다.
내가 5살 쯤에 병약했던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내겐 혈육이란
어머니에게 훌쩍 떠나다 시피 한국을 빠져나가던 아버지와 나에게 친구가
되어주셨고, 내게 아버지라는 사람을 대신한
따뜻한 사랑을 듬뿍 담아주셨던 할아버지말고는 없었다.
언제나 말동무가 되어주셨던 할아버지,
혈육에게 받는 사랑이라는 마음에 가슴이 따뜻함을
일깨워주신 우리 할아버지..
든든한 보탬이였고, 나를 사랑스럽게 바라보
시던 할아버지의 그 인자한 눈이
떠올라 왠지 나도 웃음이 지어진 적이 한 두번이 아니다.
할아버지께서 심심하다시면서 그 산더미
같은 서류들을 마다하고, 나와 함께
이곳저곳을 돌아다니셨다.
같이 쇼핑도 하고, 같이 놀이동산이라는
곳도 마다하지 않으면서 다녔었다. 그 시간이 너무나도
내겐 행복하고 소중한 시간이였다.
그러던 어느 날, 어느 동네의 좁은 골목길을 지나던 순간...
애처로운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정글짐 꼭대기에서 울고 있던 작은 소녀.
울먹거리고는 있지만, 옷을 털어주는 할아버지에게 오히려
아프다면서 따가운 말로 툴툴거리고 있던 천
사같던 그 소녀로 인해 나는
또 다시 뛰는 심장에 그저 시간이 멈춰줬으면 좋겠다는
말도 안되는 소원을 빌고 있었다.
하지만 그 천사를 아는 나쁜 대마왕에게 천사는 역시 씩씩거리면서
그 대마왕의 등짝을 사정없이 때렸던 기억에 웃음이 픽 하고 나온다.
천사를 만나게 된 시간이 얼마 지나지 않을 무렵,
나는 12살정도 되는 나이에 오직 하나뿐인 할아버지께서는
웃으면서 어머니가 계시는 하늘로 훨훨 날아가시게 되었다.
난 울지 않았다.
내가 울면, 할아버지도..어머니도....
자신들을 더 책망할 뿐이라는 걸 알기에.. 나는 울지 않는다.
그 분들이 슬퍼함은 내겐 지옥과도 같다는 걸
알기에 나는 울지 않는다.
도망치다시피 빠져나간 아버지가 다시 한국의
땅을 밟을 거라는 말에
불끈 쥐어졌던 주먹은 결국 할아버지의 장난
스러운 말투에 의해
한 순간에 풀어져버렸지만...
너무 부유해서 갖고 싶지 않다는 거 말 한번이라도
내뱉을 마음도 없이 너무 과하고, 그만큼 가치성이 떨어지는 것들로
가득차 있었다.
이 의미없는 삶을 위해 나라는 인간은
너무나도 타락해 있었다.
시간이 지나고, 고등학교를 입학한 1년동안은 정말 끈덕지게
쫓아다니는 친구라는 이름으로 주구장창 쫓아다니는 끈쩍이들을
떨궈내고, 다른 지역으로 전학을 오게 되었다.
하지만 내가 그들을 피해다닐 수 없다는 걸 또 다시 깨닫고 말았다.
그 곳까지 쫓아와서 예외의 모습들을 보여줄 줄이야...
...제길...아예 한국을 날라버릴 것을..괜히
다른 지역을 택해서 왔나 싶기까지 했다.
그 끈적이 친구들 중에, 유강아라는 어떡게 보면 괴짜고 어떡게 보면
무서운 놈의 누나라는 사람을 알게 되었다.
어찌 여자가 저리
덜렁덜렁 대는 지 개목걸이라도 둘둘 말아서 끌고 다니면
그나마 덜 덜렁거릴까 싶었는데,
이리가나 저리가나 손을 써야 그나마 말짱해지는 여자였다.
그래서 더 내 심장을 다시 뛰게 했는 지도 모른다.
세번째 흔적 (하)
"푸하하하하!! 강아놈 누님한테 네가 차였다는 소리냐?"
....어이가 없어도, 뭔가 단단히 없었다.
괜히 이야기를 늘어놨는지 내가 너무 분위기에 빠져있었던 건지
시간이라도 다시 돌려보고 싶을 정도로 이놈은 사악하다.
"푸하하하!!!!"
배를 잡고 방방 뛰는 놈. 앞에서 봐도 거슬리는데....
비우형은 이런 동생과 함께 15년을 샀다고 생각하니..정말
비우형이 존경스럽기 까지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