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일보|오피니언
[사설]“올 수능 N수생 역대 최대”… 점점 심해지는 학벌주의 망국병
입력 2023-09-08 00:15업데이트 2023-09-08 06:24
크게보기최근 서울 동작구 노량진 한 재수종합학원가에 N수생 과정을 개설한다는 안내가 붙어 있다. 뉴스1
초고난도 킬러 문항 배제 방침을 발표한 후 처음 치러진 9월 모의평가에서 재수 이상 ‘N수생’ 응시자가 10만4377명으로 관련 통계가 공개된 2011학년도 이후 최고치를 기록했다. 킬러 문항 없는 ‘물수능’ 기대감에 졸업생들이 대거 몰려들었다. 수능 전 마지막인 이번 모의평가에서 수학이 쉬웠다는 분석이 나오면서 11월 수능에서는 N수생이 전체 수험생의 34%대인 17만 명에 육박할 것이라는 예측에 힘이 실리는 분위기다.
저출산의 여파로 수능 응시생은 줄고 있지만 N수생은 거꾸로 늘어나는 기현상이 수년째 이어지고 있다. 재수, 삼수를 해서라도 지방대→인서울대→SKY대→의대로 학벌의 사다리 타기를 하려는 것이다. 응시생 10명 중 2명 남짓했던 N수생 비율은 서울의 주요 대학들이 수능 성적만으로 뽑는 정시모집을 확대한 2019년부터 늘기 시작했고 2년 전 문·이과 통합 수능 체제로 바뀐 뒤로는 10명 중 3명으로 급증했다. 대학 이름만 보고 문과에 갔다 적응하지 못한 이과생들과 이과생에게 밀려난 문과생들이 대거 N수 대열에 합류했다. 의대 선호 현상이 여전한 가운데 올해부터는 첨단학과까지 신·증설돼 N수 열풍은 한동안 이어질 것으로 전망된다.
N수의 사회적 비용은 재수를 개인적 선택의 문제로만 보기 어려운 수준으로 불어난 상태다. 올해 재수학원 월 수강료는 200만 원으로 올랐다고 한다. 17만 명이면 매월 3400억 원, 재수 생활 9개월간 3조 원이란 계산이 나온다. N수로 인한 본인의 기회비용과 기회를 빼앗긴 경쟁자들, 연간 10만 명에 이르는 ‘반수생’들이 초래하는 대학 교육의 파행도 감안해야 한다. 졸업 후 직장을 갖는 시기가 늦어지면서 사회 전체의 생산인력도 줄어들고 결혼과 출산에도 연쇄적으로 악영향을 주고 있다. N수 열풍은 ‘망국병’ 수준의 심각한 사회 문제인 것이다.
N수는 입시 제도가 바뀌거나 수능 난도 조절에 실패해 ‘물수능’ 혹은 ‘불수능’ 사태가 벌어질 때마다 증가하는 경향을 보였다. 입시 제도의 안정성과 예측 가능성이 중요한 이유다. 교육과정 개정으로 현재 중학교 2학년생이 치르는 2028학년도부터 대입 제도가 또 바뀌게 된다. 정부가 내년 초 발표하는 대입 제도 개편안에는 2년이고 3년이고 똑같은 문제를 푸는 소모적 경쟁에 청춘을 낭비하며 나라의 성장 동력까지 떨어뜨리는 병폐를 없애는 방안이 담겨야 한다. 그러려면 정부가 대학 자율에 맡겨야 할 입시 제도에 시시콜콜 간섭하는 관행에서 벗어나는 일부터 시작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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