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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등신 대통령
0. 텔레비전 드라마에서 불륜 파티가 되자, 텔레비전 드라마에도 ‘국가’가 있었음이 드러났다. : ‘이데올로기적 국가기구’론을 알면 좌파의 전략이 보인다.
주류 우파는 주체와 객체로 세계를 이분화시켜서 보면서, 근원을 추적하여 풀어내면 해법이 될 것이라는 강한 믿음을 갖는 편이다. 솔루션(solution)이란 표현을 쓰면서 쓰는 사고 방식은, 프로이트 심리학에서 고민을 자기 스스로 치유해 나가는 식의 19세기 스타일의 그것이다. 우파는 한국 방송 공사의 좌경화를 사회를 오염시키는 주범으로 보아서 공격적으로 나아갔고, 한국방송공사측은 시청료 인상으로 일종의 ‘힘겨루기’상태로 맞닥들여진 상태이다.
인터넷 통신공간에서 쉽게 찾을 수 있는 ‘이데올로기적 국가기구’에 대한 요약문을 읽어보자.
http://prome.snu.ac.kr/~skkim/lecture/lecture5/hegelmarx/hm41.html
-인용문 시작-
마르크스주의 전통에서 국가는 억압'기구'로서 인식되고 있다. 마르크스주의 국가론은 기술적descriptive '이론'의 단계에 있는 것으로, 모든 이론이 이 '기술적' 이론의 단계를 거쳐야 하는것이기는 하지만, 이론과 '기술적' 형식의 모순은 이 '기술' 형식을 뛰어넘을 것을 요구한다.
기술적 이론을 이론 그 자체로 발전시키기 위해서는, 즉 국가기구의 메카니즘을 더 심도있게 이해하기 위해서는 국가기구라는 국가에 관한 고전적 정의에 무언가 덧붙여야 한다.
마르크스주의 국가론의 요점
1)국가란 억압적인 국가기구이다.
2)국가권력과 국가기구는 구분돼야 한다.
3)계급투쟁의 목표는 국가권력으로, 결과적으로 국가권력을 계급목적의 기능으로 쥐고있는 계급네의한 국가기구의 사용이다.(궁서체 강조는 인용자)
-인용문 끝-
우파는 반공주의 교재의 전통적 우파 보수주의의 구분법을 ‘상무정신’이란 이름 하에 파괴하면서도, <이데올로기=허위의식론=마르크스주의>공식을 사용한다. 따라서, 마르크스주의적인(스탈린적인) 상부구조와 하부구조 이분법을 생각할 때, 상부구조의 힘을 전혀 생각할 수 없다. 상무정신의 우파는 상부구조의 힘을 논의하기 시작하자마자, “문약” “문약” “문약”을 반복하나 아무리 봐도 관념의 영역에서 “무약”일 수 밖에 없는 이들의 호소로 밖에 보이지 않는다.
-인용문 시작-
억압적 국가기구 ISA
정부, 행정기관, 군대, 경찰, 법정, 감옥 종교, 교육, 가족, 법, 정치 ,노동조합,
커뮤니케이션, 문화
하나의 억압적 국가기구 존재 복수의 ISA
공적 영역에 속한다 대부분 사적 영역
억압적 국가기구는 '폭력으로써 기능'하지만, ISA는 '이데올로기로써' 기능한다. 억압적 국가기구는 (물리적 억압을 포함한) 억압으로써 대량으로 그리고 주요하게 기능하는 한편, 종속적으로는 이데올로기로써 기능한다. ISA는 이데올로기로써 대량으로 그리고 주요하게 기능하지만, 종속적으로는 억압으로써 기능하기도 한다.
국가이데올로기 기구 위에서 그리고 그 안에서 헤게모니를 행사하지 않고 오래도록 국가권력을 쥐고 있을 수 있는 계급은 없다. 권력을 쥐고 있는 계급이 억압적 국가기구에서처럼 그렇게 쉽게 ISA에서 법을 명령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이는 이전의 지배계급들이 강력한 입지를 유지할 수 있기 때문이기도 하며, 피착취 계급들의 저항이 ISA의 모순을 이용하거나 투쟁을 통해 ISA내의 유리한 전투진지를 정복하려는 시도 때문이기도 하다. ISA는 계급투쟁의 목표이자 현장일 수 있는 것이다. (궁서체 강조는 인용자)
-인용문 끝-
나는 우파가 지식과 인문사회과학 문화에 관심 가지는 것 자체를 ‘문약’ '문약‘ 반복하는 주류 우파들을 ’무약‘ ’무약‘하고 반복해서 따라가며 비판해야만, 우리 사회의 우파가 조금 더 나아질 것이라고 믿는다. 이것은 좌파들의 대중 산업 사회 버전의 마르크스주의의 한 양상 때문이다.
좌파들이 군대 내에서 인권 문제를 제기한다? 이거 순수할까? 주류 우파의 답변은 두개로 나뉘어진다. 빨갱이들의 음모이거나 완전하고 완벽한 침묵이다. 이데올로기적 국가기구를 파괴하려는 의지를 갖는 이들의 술수임을 모르는 선의의-똥오줌 못가리는-군중들에게 나긋나긋한 입장을 보이거나, 논증이고 뭐고 대중들에게 좌익이 좌익임을 설득하려 하지 않고 곧장 강하게 다가서는 입장이다. 여기에서 ‘진보 판결’이란 주장은 교묘하게 좌파들의 속내를 감춘다.
‘참교육’ 학생들의 인권? 이거 속내는 발전국가 지향적으로 일꾼이 되기 위한 마인드를 파괴하는 것이다. 이것이 파괴되어야 좌파들의 선동의 약발이 잘 먹힌다. 이러한 것을 구체적으로 지적해서 좌파들의 이데올로기 공작을 세부적으로 반박할 만한, 우파들은 젊은 문화 속에 자신의 입을 만들지 못했다. (젊은 보수주의자 닉네임을 썼던 이를 포함해서, 그 유사품들을 지칭하는 게 아니다. 좌파들의 이데올로기공작을 파괴하기에 적절하면서, 대중화 수준일 그 누구나가 괜찮다는 말이다. 즉, 90년대 초반에 서태지 유행을 끝장낼 김건모를 찾자는 말이고, 유행가수가 될 수 없는 이미자선생과 김정구 선생을 부르자는 어법을 다시 보자는 말이다.)
기독교에 대한 집요한 딴지. 청년부를 통한 좌익 문화 유입. 등등은 대한민국 현대사와 연관된 기독교 교회와의 연관성을 파괴하려는 의지이다.
-인용문 시작-
대체로 생산관계의 재생산은 한편으론 억압적 국가기구, 다른 한편으론 이데올로기적 국가기구인 국가기구 내에서 국가권력을 행사함으로써 보장된다.
1모든 국가기구는 억압과 이데올로기로써 기능한다.
2.억압적 국가기구가 조직화된 하나의 전체를 구성하고 계급투쟁 정치학의 통일에 집중돼 있는 반면, ISA는 복합적, 개별적이며 '상대적으로 자율적'이어서 자본가와 프롤레타리아의 계급투쟁의 충돌로 인한 모순에 객관적인 마당을 제공할 수 있다.
3.억압적 국가기구의 통일은 집권계급의 계급투쟁 정치학을 실행하는 집권계급의 통일, 집중된 한 조직에 의해 보장되는 반면 각기 다른 ISA의 통일은 지배이데올로기에 의해 모순적인 형태로 보장된다.
억압적 국가기구는 생산관계의 재생산에 대한 정치적 조건을 폭력으로써 보장하며, 또한 억압을 통해 ISA의 작용을 위한 정치적 조건을 보장한다. 이렇게 억압적 국가기구가 저공한 '엄폐물' 뒤에서 정확히 생산관계의 재생산을 일반적으로 보장하는 것은 ISA이다.
자본주의 이전 역사시대에는 교회라는 하나의 지배적인 ISA가 존재하여 종교, 교육, 문화 등의 기능을 집중시켰다. 자본주의 이후 ISA는 다양화되었지만, 자본주의 사회구성체내의 지배적 ISA는 교육이데올로기 기구이다.
ISA가 자본주의 사회구성체에서 지배적인 이유
1.모든 ISA는 생산관계(자본주의 착취관계)의 재생산이라는 결과는 낳는다.
2.모든 ISA는 각기 이 결과에 알맞는 방식으로 그런 한결같은 결과를 낳는다.
3.이러한 합주는 지배계급 이데올로기라는 하나의 악보를 통해 이루어지는데, 때로 여러 가지 모순(이전 지배계급들이 남긴 찌꺼기의 모순, 프롤레타리아들과 그들 조직들의 모순)에 의해 방해받곤 한다.
4.이 합주에서 지배적 역할을 담당하는 것은 학교라는 ISA이다.
-인용문 끝-(궁서체 강조는 인용자)
이데올로기적 국가기구는 자본주의 사회가 지속되도록 하는 문화적 방패인 것이다. 헌팅턴과 후쿠야마등의 세계적으로 명망있는 보수주의 학자들이 발전을 만들 수 있는 문화가 중요하다는 것의 주장이다.
나는 좌파들이 ‘문학사 다시 쓰기 운동’(통일문학사 운동)을 [조선일보]와 [동아일보]의 문화면 매체를 통해서 홍보함으로, 몇 가지의 복합적인 대한민국주의 파괴 효과를 만들었다고 본다. 1980년대 후반의 교양국어 교과를 엄청난 문화 상품으로 만들어낸 효용가치의 증대에, 우파는 놀라움과 눈이 휘둥그레 해지기만 했지, 그 속에 담긴 정치적 사악성은 잘 보지 못했다.
[조선일보]와 [동아일보]에 자주 기고한 국문과 문학비평가들의 90%이상이 사용하던 헤겔변증법 어투의 원형이 놀랍게도 송두율이었다. 친북주의적으로(내재적으로) 설정된 관념성으로서의 북한을 최초 정립으로, 대한민국을 꺾어내는 반정립을 거쳐서, 북한정신 위주의 변증법적 통일관을 내세우는 송두율주의에서 <결론>만이 제거된 상태의 복제가, 국문과에서는 장려되었다. 대다수의 국문과 대학생들은 송두율에게 간접적으로 이용당한 선의의-한 시대의 문학비평가 전체 저작과 송두율저작의 연관성을 분석해보지 못한 이들에게는 의심의 영역으로 남을 수 있다. 자기가 이용당한 젊음이란 사실을 영원히 승인 안할 가능성이 높은 이들이 많다. 그러나, 사유능력이 있는 소수에게는 다른 해석 가능성이 존재하지 않을-피해자들인 것이다.
그렇다면, 좌파들의 투쟁 전략은 그러했다. 국가기구의 무력화를 1번 라인으로, 그리고 이데올로기적 국가기구의 무력화를 2번 라인으로 내세운 것이다. 여기에서, 우파의 ‘이념 무장론’은 2번에 ‘모래성’이라도 좋으니 대항한 흔적이라도 남길 수 있을까?
좌파 20년 집권론(좌파측 주장)과 좌파 10년 집권론(우파측 주장)의 근본 원인은, 모든 우파 주장의 중심성을 독점하면서도 좌파들의 1번 라인 투쟁을 막는 것을 과시하면서 2번 라인 투쟁에 무방비상황인 현실상황에 대한 비관주의인 것이다. 수없이 많이 인터넷을 우파 네티즌이 장악하려 해도, 2번 라인 대처는 우파 네티즌 스스로가 낯설어한다. 2번 라인에 밀려 버리고 좌파가 그리는 이데올로기적 국가기구에 종속된-좌파의 그물망에 허우적대는 한나라당을 비난하는 우파정치담론이 허위의식에 가득 찬 것이다-네티즌들의 세뇌 흔적 파악은 흔한 일이 된다. 따라서, 늘 우파 네티즌의 인터넷 공간 장악은 일시적 시류적 제한적 한정적이고 장기적이지 못하게 된다. 기성세대 우파의 무의식의 단결을 동원하는 이데올로기는 기성세대 내부에는 장기성이래도 젊은 세대 설득이 불가능하고, 기성세대 우파가 날로 약해진다는 점에서 시대적이란 비판에 자유로울 수 없다.
이혼을 하지 않고 예쁘게 이쁘게 아름답게 살아내고, 가족에서 아름다움을 발견해 내는 속에도 ‘국가’가 있었다. 그러나, 이것에 대해서는 좌파에 대항하는 ‘문화 블록’으로서의 의미를 절하하고, 한편으로는 서구 개인주의 자유주의 문화로 달려 나가며 회피한다. 문화와 인간중심에 철저한 공백을 상무정신이란 이름으로 자랑하는 주류 우파들의 퇴역군인들의 주자학적 정통론에 가까운 주장으로 유교를 반대하는 움직임에 핵가족 개인주의 시대의 비성찰적 문화가 옹호되어 버린다.
1. ‘8등신 미인’을 외계인으로 생각했던 어린 시절.
누구나에게 잘 비례된 조화의 이상형이 있다. 8등신 미인이 미인의 대표인양 알려지던 어린 날에, 8등신이 가능함은 외국인에 무척 대단한 피에서만 가능하다는 생각을 갖던 때가 있었다. 한편으로는 어린 날에는 그것의 심리적 역반응으로 마음이 이뻐야 최고지 하면서, 이상적 여성상을 제시하는 문화가 많았다. 대부분의 가족 드라마에서 그러하듯이 그러한 전형적 스타일을 말한다.
그러나, 아무리 대단하다고 보는 여성상일지라도 그것은 그렇게 만든 규범을 알아야 이해가 되는 것이다. 서구 미학사를 알아야 8등신론에 얼추 감이 잡힐 것이다. (물론, 나는 아직도 이해를 못한다. 8등신이 왜 미녀인지를. 나는 6.5등신 여자가 나에게 딱 맞는다.) 마음이 예쁘다는 이상적 여성상은 아시아의 가족주의 문화를 이해해야 이해가 될 수 있다.
2. ‘8등신 대통령’과 코드 정치
대통령에도 8등신 대통령이 있다. 독재 정치와 힘의 정치의 기억을 잊어버리고, 좋은 감정만을 기억하며, 현실에 남긴 긍정적인 성과를 배경으로 판단하는 박정희 대통령 시대에서의 지도자론을 말한다.
대다수 우파들이 잊어버리는 박정희 대통령과 3김 시대-3김 시대만을 놓고 박정희 대통령을 뺄 수 없고, 박정희대통령시대에 3김을 뺄 수 없다-의 전형적인 문화의 심층 배경이 있다. 지도자는 지적으로 다른 시대 사람들을 압도한다는 바탕이다. 실제로도 그렇다. 1960년대 초반 저작인 [국가와 혁명과 나]의 사상적 궤적을 오늘날에도 완벽하게 다 이해하는 이들은 드물 것이다.
이승만대통령과 박정희 대통령 이후에 우파의 새로운 지도자는 그러한 출중한 지도자를 찾지 못할 것이란 비관론을 내세우는 이들도 있다. 박정희 대통령과 3김 시대 모든 정치인은 한결같이 <사상가 정치인>이고자 했다. 박정희 대통령과 3김 시대 유력 정치인이 상호 교류했다는 흔적을, 칼로 무쪼개듯이 나눠서 박정희 대통령에는 3김 시대 유력 정치인의 행동패턴의 원형이 없었다고 볼 수 없다.
병법서에 해박하고 세계정세에 해박하고 법가적 유교 가치관을 가지며 기독교 사상에 정통하며 불교에 심취하고 부국강병의 중요성을 깨달은 박정희 대통령이 정치를 해 나갈 때에, 인문학적 소양이 출중하며 군인적 추진력이 종합된 바탕에서 과학기술자들의 도움까지도 받게 되니, 완전하고 완벽한 성군의 모습으로 드러날 수 있다고 본다. ‘힘’의 정치와 독재적으로 비춰질 요소를 충분히 잊고, 좋은 감정만을 가질 수 있는 시기에서는 더욱 그러할 것이다.
박정희 대통령시대의 박대통령의 고뇌를 느낀다. 평균적 일상인들의 수준은 대학생들이 흔해 넘치는 오늘날 보다 낮았을 것이다. 그 때 그 상황에서 그러그러한 인적 자원을 가지고, 어떠한 개발성과를 낼 것인가? 우파 이념을 전문적으로 이해한다고 하는 이들의 대부분은, 철저하게 박대통령 시대의 생산물이다. 이것은 너무나 당연하면서도 그 자체로서의 한계를 분명하게 드러낸다. 박대통령은 부국강병의 전제군주위치의 소중함을 생각해서, 좋든 싫든 지도자지위를 계속했었을 것으로 추정한다. (일정한 시간이 되어서 물러났을 것이란 가정은 옳지 않다고 본다.)
군인출신의 대통령과 문인출신의 대통령의 2분법은, 박정희대통령 시대에 얼마나 지식인층의 목소리가 제한되었으며, 부국강병의 정치를 위해서 분리 정책 속에 휩쌓였는가에서 만들어졌다고 보는 게 옳을 것이다. 박대통령 시대를 숲으로 비교할 때 숲속에 있는 사람이라 할 때, 지식문화권력과 무관한 일상인들에 의해서 보장된 박대통령의 이데올로기적 국가기구 장악술은 사상적 공백영역으로 남게 된다.
아시아 사회는 지혜의 세대 전승이 참으로 어렵다. 좌파는 반세기 전의 과거를 그대로 자식 세대에 전수해준다. 그런데, 박대통령 시대에 만들어진 박대통령 시대의 긍정적 권력을 누리려는 주자학적 명분론 때문에, 우파는 좌파들의 이데올로기적 국가기구 장악 투쟁에는 최근 10여년 <아낌없이> <남김없이> <철저히> <가열차게> <환호작약하며> 좌파 편을 들어준 것으로 보인다.
부국강병의 전제군주가 사라지자, 대한민국에서 ‘신’은 죽었다. 부국강병의 군주가 아니면서도 그러한 것 같은 이미지정치를 시도한다는 비난을 자주 받는 이들에 대항하려 하면서, 부국강병의 전제군주가 살아있지 않은 상황에도 살아있는 상황의 판단을 서슴없이 하는 것은, 젊은 세대 우파에는 도움이 없고 좌파에는 별로 방해를 주지 않으며 정치지도자에는 서운함을 주는 것 수준으로 그칠 것이다. 더 이상 우파는 ‘사실’과 ‘진실’과 ‘현실’ 따위에 형이상학적 의미의 고정성을 불어넣을 수 없다.
우파는 대한민국의 ‘민국’사상이란 독립운동가들의 공화주의적 전통을 깨끗이 잊거나, 아랫세대에 전달하지 않음을 자랑으로 생각하며, 박대통령 시대의 부분적 의식을 강조하는 것을 너무나 오래해왔다. 8등신 미인이 서구 미학사 배경으로만 이해되듯이, 우리 사회의 지도자의 ‘8등신’은 ‘민국’사상속에서 이해된다. 박대통령은 독립운동가들의 대한민국 건국 운동의 연속선에서의 정치가일 뿐이다. 그렇게 생각해야만 ‘국가에 이익을 주고 백성에 복을 주는 최선의 정치관’을 통해서, 대한민국을 중심으로 하는 국가안보 차원의 병법술의 이론적 적용이 된다. 남들을 무조건 굴복시킬 권력을 쥐지 못하는 한, 대중 사회에서 지지자를 찾아야 함은 물론이다. 흔들리지 않고 분명한 이데올로기적 국가기구 확립에는 그러한 지지자를 찾아야 한다. 이 배경으로만 ‘코드 정치’는 단죄될 수 있다. 그러나, 우파는 이 배경에 대한 논증을 포기한다. 그러니, 좌파들의 서구사회 이미지를 베껴서 좌파의 독재를 합리화하는 면모를 허락하게 되는 것이다.
3. ‘국가’는 정치학개론의 제1장인가, 억압기구인가, 아니면?
나는 ‘정치학개론의 1장’이란 전제로 사용하고, 국가=억압기구론에 반대했으나, 주류 우파는 정치학개론 1장의 의미로 쓰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정치학개론 1장의 의미가 묻혀지는 주류 우파의 선택과, 좌파의 국가관의 대중화는 교묘한 연결이 있음을 느낀다. 8등신 대통령에서 8등신의 의미를 국민을 바탕으로 생각하지 않으니, 완벽하게 다른 세대를 위해서 논증되어야 할 내용을 훌쩍 건너뛸 수 있듯이 마찬가지라 본다.
정치학개론 1장으로 쓰지 않고, ‘전제군주의 형이상학적 가치관=국가’와 민권을 나누는 일본적 가치관(‘국권파와 민권파 구분의 일본 역사서를 보라)을 나누니, 결국은 활개친 것은 보편적 우파 관념이 아니라 좌파의 국가관이다. 지지자들 다 떨어지고 완벽한 형식으로 남은 국가논리는, 좌파의 입김에 허약해질 수 밖에 없는 것이다.
4. 김윤식 교수의 ‘문학사 다시 쓰기 운동’에 저항하는 신구 세대 문화 충돌을 보수 신문이 키우지 못하는 것은 이해할 수 없어. 곧,한국 전통적인 ‘8등신 대통령’론은 좌파의 ‘8등신 지도자’론으로 교체될지도 모르는데?
젊은 세대 우파들은 좌파들의 문화장악술의 전체그물망 속에서 젊은 우파들도 몰아넣도록 하는 그물망 파괴를 할 때, 기성세대 우파의 도움을 간절하게 바랄 것이다.
주류 우파들이 젊은 우파의 일반적 세대들을 유력 정치인의 꼬붕 이미지로 설정하는 것의 뒷면은, 정치에 여전하게 무관심한 일반인들의 존재에 대한 믿음이다. 주류 우파들이 정치에 무관심한 일반인들을 이용하여 젊은 우파를 외면함으로, 좌파는 더욱 더 강해져 왔다.
나는 1980년대 후반의 신구세대 문화충돌-반공주의 문화 포위 속에서 좌파의 틈새 벌리기-보다도 더 긍정적일 새로운 기획을 시도못하는 우파 보수 언론을 아쉽게 본다.
‘국사편찬위원회’ ‘국어국문학’ 등등의 이데올로기적 국가기구가 있다. 이것의 회복 노력 없이는, 세대 단절이 틈새가 메워질 가능성은 희박하다. 정치적 반론이 아니라 놀고 즐기는 문화주의적 반론으로, 좌파들이 잘 하는 ‘쇼킹’타령으로 우파들이 내재적 반박을 왜 못하게 되는가? 박대통령에 대한 해석 버전이 딱 하나밖에 없는 식으로, 40년 전의 일반인처럼 손발이 묶여야 된다고 하는 넘어감은 넘어감이 아니다. 딱 하나 뿐인 박대통령 해석은 박대통령 해석이 아니다. 점진주의를 믿는 포퍼의 사회공학이 타당하다고 믿는 한에서 그러하다.
좌파의 그물망에서 빠져 나갈 비책은 없다.
‘개혁성’어쩌고 하는 것을 더 따지며, 대한민국 전통의 정치지도자의 ‘8등신’론을 설명하지 못하는 문화 환경을 고치려 하는 데에서만 가능하다. 정치 지도자에게 그물망 못 빠진다고 야단치지 마라. 문화적 방면에서 직접 실천하라.
이데올로기적 국가기구론의 알튀세는 문화와 이데올로기를 정치 투쟁의 장으로 이야기했다. 어딘가에 전문가가 있다고 이야기하는 나태한 다수는 쓸모 없다. 도서관에서 수천 수백의 책들을 쌓아놓고 공부함으로 극복해 내려는 문화적 실천가의 소수가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