뇌종양 앓은 30대 뇌병변 장애인
'장애인 더 많이 밖으로 나왔으면'
24만명 중 취업자 3만명 그쳐
'ㅎ...ㅐ...ㅇ, ㅂ...ㅗ...ㄱ'
뇌병변 장애 1급인 박누리 씨(33)가 오른손 검지로 종이판에 새겨진 자음과 모음을 가르킨다.
그가 신체 중 유일하게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는 손가락이었다.
간단한 문장을 완성하는데 약 1분이 걸렸다.
기자가 '행복해요'라는 말씀이 맞을까요?'라고 묻자
박 씨는 눈을 두 번 깜빡이고 입꼬리 한쪽을 올리며 미소를 보였다.
맞다는 뜻이었다.
4월20일 장애인의 날을 앞두고 15일 서울 마포구 뇌병변장애인비전센터를 찾았다.
박 씨 등 뇌병변 장애인 7명이 휠체어에 앉은 채 사회복지사의 도움을 받아
일반 종이와 한지를 촉감으로 구분하는 프로그램에 참여하고 있었다.
뇌병변 장애는 뇌졸증 등으로 신체 일부가 마비돼 말하거나 걷기 어려운 상태다.
표정을 짓기도 쉽지 않지만 이날 참가자들은 움직일 수 있는 모든 얼굴 근육을 활용해
활짝 웃으며 프로그램에 열중했다.
이 센터는 2021년 전국 최초로 생긴 성인 뇌병변 종합 지원 시설이다.
뇌병변 장애인은 특수학교 등을 졸업한다.
하지만 성인이 되면 사회활동을 할 기회를 잃어 고립되는 경우가 흔한데,
이들을 집 밖으로 초대하기 위한 시설이다.
여기 등록된 뇌병변 장애인 15명은 사회복지사 11명 등 직원과
평일 오전 10시부터 오후 4시까지 시간을 보내며 다양한 감각 발달 활동을 한다.
출입문은 힐체어에 앉은 채 여닫을 수 있도록 손잡이가 낮았다.
오래 앉아 있기 힘든 이들을 위해 침대도 갖췄다.
하지만 이들처럼 사회로 니올 수 있는 뇌병변 장애인은 극소수다.
지난해 말 기준 국내 뇌병변 장애인은 24만546명으로, 지체장애와 청각장애, 시각장애에 이어 네 번쨰로 많았다.
하지만 이 중 취업자는 3만2359명에 불과하다.
신체적 제약 떄문에 취업은 커녕 집 밖에 나서기도 어렵기 떄문이다.
박 씨는 중학교 떄 뇌종양으로 장애를 얻었다.
인지능력은 그대로였지만 걷지도, 음식을 씹지도 못해 온종일 침대에 누워 지내며 심한 우울증을 겪었다.
그러나 이 센터를 알게 된 후 웃음이 늘었다.
박 씨는 3분 정도 종이판 위 자음과 모음을 조합해 '장애인들이 더 많이 밖으로 나왔으면 좋겠다'고 표현했다.
그림자 속에서 살아가는 이들의 소식이 알려지는 건 대개 비극적인 사건이 발생했을 떄다.
지난해 1월 경기 양주시에선 뇌병변을 지닌 70대 여성이 집에서 쓰러졌으나 끝내 도움을 받지 못하고 숨졌다.
같은 해 10월엔 대구에서 60대 아버지가 중증 뇌병변장애 아들을 살해하고 본인도 스스로 목숨을 끊으려다 혼자 살아 남았다.
성인 뇌병변 장애인을 위한 지원 시설은 마포구 뇌병변장애인비전센터를 포함해 전국에 3곳뿐이다.
1곳당 15명만 이용할 수 있다.
김민성 뇌병변장애인비전센터장은 '뇌병변 장애인의 보호자들은 '자녀보다 하루만 더 살면 좋겠다'고 말할 정도로
종일 돌봄이 필요하다'며 '그런데 이런 시설이 적다 보니 몇 년씩 대기하다 못 들어가는 경우가 많다.
뇌병변 장애인을 위한 시설이 더욱 많아지면 좋겠다'고 했다. 이채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