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제 : 딸, 숙녀, 아내, 며느리, 엄마라는 이름 뒤편.
부제 : 비틀린 시선으로 다시 본 여성의 생,
🙏🎋幸福한 삶🎋🎎🎋梁南石印🎋🙏…
원시 인간이 밀림을 벗어나 공동체 사회로 발전하면서부터 신체적 힘의 우위에 있는 남자는 여성에게 친절한 척하는 방식으로 억압을 정당화해 왔다. “여자는 약하니 보호해야 한다.” 이 말은 화려한 포장지로 곱게 싸여 있었지만, 실제 뜻은 너무도 단순했다. 약하다고 규정했으니, 여성의 삶의 주도권은 남자들이 가져가겠다는 선언이었다.
이 논리는 참으로 편리했다. 신체적 힘이 상대적으로 약하다는 단 하나의 사실을 근거로, 여성은 수천 년 동안 남성 중심 사회의 완충재로 여겨졌고 때로는 남자의 뒷바라지와 착취의 대상으로 존재해 왔다. 부드럽고 조신하게 침묵하며 견디도록 길들이는 문화·관습·규범의 올가미는 인류 전반을 가로지르며 촘촘히 얽혀 왔다. 그 올가미는 눈에 보이지 않지만, 무엇보다 단단했고, 그 흔적은 지금도 사회 곳곳에 남아 있다.
여성은 태어나는 순간부터 이미 누군가의 소유물처럼 이름을 부여받는다. 그녀는 “누군가의 딸”로 불리고, 성장하면 “숙녀” 혹은 “여인”이라는 단어로 다시 규정된다. 그리고 이 “숙녀”라는 말은 비록 남자를 보고 함부로 웃어도 안 된다던 순결 규범의 시대를 지나왔다 해도, 여전히 조신함을 요구하는 보이지 않는 철칙으로 작동해 왔다. 그다음 결혼하면 “아내”가 되고, 시댁에 들어서는 순간 한 여인의 존엄한 인격은 낡은 짐짝처럼 부모의 집을 떠나 남편의 가문에 편입된다. 그 순간 또 다른 의무를 준다.
잘되면 시댁의 공이고, 못되면 사람을 잘못 들여 집안이 망했다는 핑곗거리를 만들지 않기 위해, 아내는 남편의 기분을 맞추기 위한 끝없는 눈치를 본다. 며느리가 되면 전근대적 금령이 마치 법전처럼 들이밀어진다. 삼강오륜, 칠거지악, 그리고 무수히 많은 침묵의 규율들. 숨 한번 크게 쉬는 것조차 허락되지 않는 듯한 공기.…
그리고 아이가 생기면 여성은 “엄마”가 된다. 아들을 낳으라는 노골적 압박, 딸을 낳으면 죄지은 사람처럼 취급받는 현실. 그 순간 여성의 자아 정체성은 산산이 조각난다. 아이를 위해 모든 것을 희생해야 한다는 의무 속에서 그녀의 진짜 이름은 책의 뒷장에 붙어 있지만 누구도 읽지 않는 부록처럼 취급된다. 존재하지만, 관심 받지 못하는 존재.…
더 기이한 아이러니는 이 모든 역할을 떠안은 여성이 실제로 가정을 지탱하는 중심축이라는 사실이다. 그러나 그 중심의 무게를 정확히 재본 사람은 없다. 남편이 “돈 벌어오느라 힘들다”고 말할 때, 아내는 집에서 쉼 없이 돌아가는 일들을 해내지만, 그 노동은 마치 공기처럼 당연하게 소비된다. 밥상이 저절로 차려지고 아이가 저절로 자라는 줄 아는 남편들은 그 헌신을 공기처럼 들이마신다. 공기는 있을 때 고마움을 모르지만, 없으면 바로 숨이 막힌다.
그러면서도 많은 남성은 똑같이 말한다. “여자는 약하니까 보호받아야지.” 그러고는 바로 뒤돌아서 자신이 가진 힘을 단 한 번도 책임감 있게 사용하지 않는다. 여성이 약해서 피해자가 생긴 것이 아니라, 힘을 가진 쪽이 그 힘을 책임 없이 남용했기 때문이라는 가장 단순한 진실조차 외면한다.
여성은 약해서 희생된 것이 아니다. 희생적이라서 희생한 것도 아니다. 그저 힘을 가진 쪽이 너무 오랫동안, 너무 아무렇지도 않게 힘을 남용해 왔을 뿐이다.
그 와중에도 여성들은 살아냈다. 딸로, 숙녀로, 아내로, 며느리로, 엄마로 불리며 자신의 이름을 잃어가면서도 기적처럼 버텨냈다. 그들이 순종적이어서가 아니라, 그렇게라도 버티지 않으면 무너지는 건 온 가족이었기 때문이다. 가정의 중심이라고 찬양하면서도, 정작 그 중심이 짊어진 무게는 아무도 헤아리지 않았다.
이제 묻고 싶다. 왜 절대다수의 폭력 피해자는 여성이어야 하는가. 성 착취, 가정폭력, 데이트 폭력, 묻지마 범죄… 아이와 어른을 가리지 않고 매일 뉴스에 등장하는 여성 피해자들. 만약 여성이 남성보다 신체적 힘의 우위에 있었다면 이런 파렴치한 범죄가 지금처럼 횡행했을까.
왜 여성의 생은 이토록 고달픈 숙명이어야 하는가. 왜 한 사람의 여성이 누군가의 딸·아내·엄마라는 호칭을 통해서만 존재해야 하는가. 그녀가 처음부터 남성과 동등하게 온전한 인격체였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얼마나 더 오랜 시간이 필요할까.
여성은 누군가의 곁에 있을 때 비로소 가치가 생기는 존재가 아니다. 남자와 마찬가지로 여성도 태어난 순간부터 이미 완전한 인격체였다. 이 단순한 사실을 인정하는 데 이렇게 많은 시간이 필요했다는 것 자체가, 우리 사회가 얼마나 비뚤어져 있었는지를 증명한다.
여성의 삶은 더 이상 침묵과 희생의 다른 말이 되어서는 안 된다. 언젠가 ‘딸·여인·아내·엄마·며느리’라는 이름의 역할이 아니라 모든 인류는 성별과 인종 구분도 차별도 없이 동등한 인격체로 인정하고 인정받는 그날이 오기를 바란다. 남자가 그의 할머니, 엄마, 누이에게 그랬듯 당연한 존중과 존엄으로 여성을 대하게 될 그때가 되어서야 남자들은 오롯이 진심으로 미안해할 것이다. 너무 늦게 깨달았음을.…
첫댓글 모성 본능 그리고 아빠 마음입니다.
고맙습니다. 사위 사랑은 장모님 사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