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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는 안식일 엄수주의의 멍에를 벗어버려야 합니다.
지금 우리는 '주일성수를 어떻게 해야 하는가?' 이 문제를 다루고 있습니다. 이 설교는 다음 세 가지에 대한 구체적인 답을 얻기 위한 것입니다.
● 주일에 반드시 해야 할 일은 무엇인가?
● 주일에 하지 말아야 할 일은 무엇인가?
● 주일에 해도 괜찮은 일은 무엇인가?
이 중 가장 모호하고 그래서 가장 빛을 필요로 하는 것은 세 번째입니다. 저는 지금부터 이 세 번째 의문에 대한 구체적인 답을 드리고자 합니다.
라일 감독은 안식일은 "멍에가 아니라 축복"이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바리새인들은 까다로운 많은 규정들을 만들어 안식일을 멍에로 만들었습니다. 로마 가톨릭에 이어 청교도들과 우리나라의 장로교 역시 율법적인 주일성수를 강조함으로 주일을 멍에로 만들었습니다. 이제 우리는 그 멍에를 벗어버려야 합니다. 그런데 폴 주이트는 이 작업에 필요한 아주 중요한 말을 했습니다.
"우리를 죄에서 구원하신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안식이 이 지구상에 임한 것이 사실이라면, 동시에 하나님의 안식은 장래의 소망이며, 이 소망의 징표가 곧 주일이라는 것도 사실이다. 이 날은 기독교인인 우리가, 우리를 구원해주지도 못하는 일을 떠나서 안식하고, 또 하나님의 백성을 위해 예비된 최후의 안식에 들어가지 못하는 자가 있을까 염려하여, 믿음으로 서로 격려하는 날이다.
따라서 정당한 주일신학은 제4계명과 떨어져서 구성될 수 없고 동시에 주일성수 하는 문제와도 떨어질 수 없는 것이다. 우리가 실제 생활의 수준에서 제4계명에 대한 교회의 '예'와 '아니오'를 어떻게 이행할 수 있는가? 어떤 의미에서 우리가 안식일 계명이 명하는 육체적 휴식을 지켜야 하는가? 또 어떤 의미에서 그렇게 안 해도 되는가? 신약성경에서는 이 문제에 대해 명배하게 언급한 것이 하나도 없기 때문에, 우리는 주일신학을 구성하는 데 쓰인 자료들로부터 마땅한 해답을 추론할 수밖에 없다."
옳은 지적입니다. 지금까지 제가 여러분에게 설교해온 것이 바로 폴 주이트가 말한 "어떤 의미에서 우리가 ... 육체적 휴식을 지켜야 하는가? 또 어떤 의미에서 그렇게 안 해도 되는가?"에 대한 구체적인 답을 얻기 위한 것입니다. 우리는 지금까지 4가지를 살펴보았습니다.
1. 구약의 안식일은 폐해졌습니다.
2. 신약시대에는 모든 날이 다 같을까요?
3. 우리는 일요일을 주일로 지켜야 합니다.
4. 주일을 지키되 율법적으로 지키면 안 됩니다.
우리는 지금까지 배운 이 자료들에 근거하여 주일날 무엇을 해야 하는지 그리고 무엇을 해도 되는지를 규명할 수 있습니다. 지금부터 조심스럽게 그 작업을 해나가겠습니다.
(1) 주일날 음식을 사 먹어도 되는가?
"안식일에 예수께서 밀밭 사이로 지나가실새 그의 제자들이 길을 열며 이삭을 자르니 바리새인들이 예수께 말하되 보시오. 저들이 어찌하여 안식일에 하지 못할 일을 하나이까? 예수께서 이르시되 다윗이 자기와 함께한 자들이 먹을 것이 없어서 시장할 때에 한 일을 읽지 못하였느냐? 그가 아비아달 대제사장 때에 하나님의 전에 들어가서 제사장 외에는 먹어서는 안 되는 진설병을 먹고 함께한 자들에게도 주지 아니하였느냐? 또 이르시되 안식일이 사람을 위하여 있는 것이요 사람이 안식일을 위하여 있는 것이 아니니 이러므로 인자는 안식일에도 주인이니라." (막2:23-28)
이미 살펴본 내용입니다만, 바리새인들이 제자들이 안식일을 범했다고 비난했을 때 예수님은 동의하지 않으셨습니다. 예수님은 안식일 제도를 통해 기대되어왔던 영원한 안식을 제공함으로써, 안식일에 대한 하나님의 궁극적인 뜻을 성취하셨습니다. 그래서 안식일의 주 되심을 주장할 합법적인 권리를 가지고 계십니다. 그러므로 중요한 것은 더 이상 안식일 계명의 문자적 규정들을 단순히 지켜 나가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을 메시아로 모셔들이고, 그분이 주시는 참 안식(=구속)을 얻는 것입니다.
제자들에게는 안식일을 구약성경에 기록되어 있는 대로 지킬 의무가 없었습니다. 즉 구약시대 사람들이 지켰던 것처럼 지킬 필요가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에 의해 성취되었고 제공되는 안식일의 궁극적 목표인 참된 안식에 이미 참여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우리도 제자들과 같은 위치에 있습니다. 그러므로 제자들이 안식일날 밀 이삭을 잘라 먹은 것이 죄가 되지 않는 것처럼 주일날 배가 고파서 음식을 사 먹는 것도 죄가 될 수 없습니다. 밥을 사 먹는 것은 물론이고 주일날 가족들이 모여서 외식해야 할 일이 생기면 하셔도 됩니다. 그리고 장시간 쇼핑하는 것은 피해야겠지만 주일날 꼭 사야 할 물건이 생기면 사셔도 됩니다. 그런 것은 죄가 아닙니다.
(2) 주일날 시험을 보아도 되는가?
국가에서 관장하는 시험 중에 주일날 치르는 것이 많습니다. 평일에는 학교나 직장에 가야 하고 바쁘기 때문에 국민들의 편의를 위해 공휴일인 일요일에 시험을 실시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날이 주일이기 때문에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시험 보는 것을 꺼립니다. 그리고 한기총과 같은 교회를 대표하는 기관들이 정부에 시험날짜를 평일로 옮겨달라고 요청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굳이 그럴 필요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주일날 시험을 본다고 그것이 꼭 주일을 범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죄가 아니라는 말입니다.
여러분, 주일날 치러야 할 중요한 시험이 있습니까? 그러면 가서 시험을 보십시오. 그리고 1부나 3부 등 참석 가능한 시간에 드리는 예배에 참석하시면 됩니다.
(3) 주일날 경기에 참가해도 되는가?
여러분 모두 에릭 리들의 이야기를 들어보셨을 것입니다. 에릭 리들은 1920년대에 세계적으로 유명한 육상선수였습니다. <불의 전차>라는 영화는 그의 전기를 영화화한 것으로 1982년 아카데미 작품상을 받기도 했습니다.
그는 강력한 우승후보자였습니다. 그러나 1924년 올림픽 예선전이 주일이라는 이유로 출전을 포기했습니다. 그 후 평생을 중국 선교에 힘쓰다가 중국 현지에서 생을 마쳤습니다. 그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 보면 이런 말이 나옵니다.
"그는 위대한 지도자나 사상가는 아니었지만 신앙의 원칙을 지킨 사람이었다. 그는 인생에서 무엇을 해야 할지 분명히 알고 산 사람이다."
맞는 말이긴 하지만, 한편 씁쓸한 이야기입니다. 그럴 필요가 없었는데 그렇게 했기 때문입니다. 아마도 중세 이후로 교회 안에 침투한 바리새적인 안식일 엄수주의의 최대의 피해자 중 한 사람이 에릭 리들일 것입니다. 물론 에릭 리들의 정신은 높이 살만 합니다. 그러나 그의 행동까지 본받을 필요는 없습니다.
최근에 한 성도님이 자녀가 운동선수인데, 경기가 가끔 주일날 열려서 매우 고민하고 있다고 어떻게 해야 되느냐고 신앙상담을 해온 일이 있습니다. 그래서 제가 "경기에 참가시키십시오. 그리고 경기 전이나 후 참석 가능한 예배 시간에 꼭 참석해서 예배를 드리게 하십시오."라고 답을 드렸는데 얼마나 기뻐했는지 모릅니다. 주님의 멍에는 쉽고 주님이 주시는 짐은 가볍습니다. 할렐루야!
(4) 주일날 시험공부를 해도 되는가?
폴 주이트는 이 질문에 단서가 될 만한 이런 말을 했습니다.
"우리는 고대 교부들이 안식일의 쉼에 대해 문자적인 성수보다 오히려 예표적인 성격을 더 강조하였다는 것을 보았다. 당시 기독교인들이 안식일을 지키기 위해선 옛날 이스라엘처럼, 무슨 일이고 간에 다 그만두어야 하는 것으로 생각했다는 증거는 교부들에게서 찾아볼 수 없다. '우리는 여드렛날을 즐거움으로 보낸다.' 이것은 바나바의 말인데 이것은 하루 전부를 공적, 사적 예배에 바쳤다는 의미가 아니다. 과연 하루 전부가 그리스도인들에게는 특별한 의미로 보내어졌고 그것이 즐거운 날이었던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그들이 유대인의 안식일을 그대로 본받아 모든 일을 다 그만두었다는 표현은 아니다. 사실은 시리아의 「디다스칼리아」(13장)에는 신자가 교회에 있는 시간 외에는 어느 날 어느 시간이나 부지런하게 일해야 한다는 권면이 들어 있다.
일요일에 일을 하지 말고 쉴 것을 제일 처음으로 분명히 언급한 저자는 터툴리안(A. D. 200년경)이다. 그는 일요일에 신자가 무릎을 꿇고 기도하지 아니하는 전통에 대해 이야기한 다음 계속해서 말하기를, 마귀에게 어떤 빈자리를 내주지 않기 위해 우리는 모든 일을 쉰다. 그리고 꼭 같은 축제의 기쁨이 넘치는 오순절에도 그렇게 한다고 했다. 그러나 여기서도 일을 그만두게 한 것은 사람들을 예배에 참여케 하기 위한 것으로 볼 수 있을 것이다. 초대 교회 신자들이 일요일에 쉬는 문제에 관심이 없었던 것이 아니라 그들은 그것을, 목적을 위한 수단으로 다시 말해서 쉰다는 개념을 예배의 필요를 돕는 보조적인 것으로 보았다는 점이다."
이처럼 초대 교회는 주일이라고 일을 쉬지 않았고, 일을 쉬는 것을 언급할 때도 예배에 참석하게 하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주일날 예배를 드리고, 자기 은사나 달란트대로 봉사할 것을 다한 후에 남는 시간에 시험공부를 하는 것은 죄가 아닙니다.
학생들 중에 월요일부터 시험인데 주일이라서 공부하지 않고 밤12시가 되기까지 기다렸다가 그때부터 공부를 하는 학생들이 많습니다. 부모가 보기에도 안쓰럽지만 주님이 보시기에도 얼마나 안쓰럽겠습니까? 앞으로는 그렇게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예배를 드리고 자기가 맡은 봉사를 한 후에 마음 편히 공부하십시오. 그것은 죄가 아닙니다.
그렇다고 주일날 예배만 달랑 참석하고 하루 종일 공부하라는 말은 아닙니다. 그렇게 하는 것은 함정이 될 수 있습니다. 즉 주객이 전도될 위험이 있습니다. 주의 날인데 주의 날이 아니라 나의 날이 될 수 있다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그렇게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5) 주일날 TV를 시청해도 되는가?
인간은 일만 하는 존재가 아닙니다. 오락도 필요합니다. 당연히 오락은 죄가 아닙니다. 하지만 구약성경에 의하면 두 가지 경우에 오락이 금지되었습니다.
하나는, 금식할 때입니다.
"우리가 금식하되 어찌하여 주께서 보지 아니하시오며 우리가 마음을 괴롭게 하되 어찌하여 주께서 알아주지 아니하시나이까? 보라 너희가 금식하는 날에 오락을 구하며 온갖 일을 시키는도다." (사58:3)
또 하나는, 같은 장에 나오는데 안식일에 오락이 금지되었습니다.
"만일 안식일에 네 발을 금하여 내 성일에 오락을 행하지 아니하고 안식일을 일컬어 즐거운 날이라, 여호와의 성일을 존귀한 날이라 하여 이를 존귀하게 여기고 네 길로 행하지 아니하며 네 오락을 구하지 아니하며 사사로운 말을 하지 아니하면" (사58:13)
많은 성도님들이 이 구절 때문에 주일날 TV를 보지 않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주일이 아닌 안식일에 지켜야 할 규정입니다. 그러므로 얽매일 필요가 없습니다.
그리고 생각해볼 점은 TV를 보는 것이 오락인가? 아니면 휴식인가? 하는 것입니다. 둘 다에 어느 정도 해당되지만 저는 쉬는 것에 더 가깝다고 생각합니다. 몸을 쉬는 것만 쉬는 것이 아닙니다. 정신을 이완시키고 정신적으로 쉬는 것도 쉬는 것입니다. TV를 볼 때 우리는 그것을 경험합니다. 그러므로 저는 TV를 보는 것이 죄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참고로, 중세 암흑시대 때 율법주의적인 안식일 엄수주의가 성행하다가 16세기가 시작되면서 일요일 휴일에 대한 교회법이 완화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전에 금기시되었던 많은 것들이 허용되었는데, 그중에 오락에 관계있는 것들도 있었습니다. 즉 사냥과 낚시가 예배에 출석하는 일을 방해하지 않는다면 그리고 그 날의 대부분을 그런 일에 소비하지 않는다면 둘 다 허용되었습니다. 그러나 예배에 참석도 못하고 일요일 대부분을 소비하는 일이라면 금지되었습니다. 이것은 균형 잡힌 한 가지 선례를 우리에게 제공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주일에 예배 참석은 필수적인 것입니다. 그리고 안식일에는 일하지 말고 쉬라는 명령이 있지만 주일에는 그런 명령이 없습니다. 하지만 명령이 없어도 일주일에 하루 정도는 쉬어야 하기 때문에 우리는 휴식을 취해야 합니다. 그런데 TV를 보는 것도 정신적인 휴식입니다. 그러므로 예배에 참석하고 맡은 봉사를 하고 난 이후의 여유 시간에 TV를 시청하는 것은 잘못된 것이 아닙니다. 단, 안젤리카 자매의 간증에도 나오는 것처럼 아이들이 보는 만화 중에 주술적이거나 폭력적인 것이 많습니다. 그리고 어른들이 보는 프로그램도 선정적인 것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런 것들은 영혼의 안전을 위해 피해야 합니다.
(6) 주일날 급한 용무를 보아도 되는가?
주일날은 일을 하지 않는 것이 좋습니다. 그러나 급한 용무가 생겼을 때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양용의 교수님은 이 문제에 도움이 되는 이런 말을 했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구약시대 사람들이 지켰던 것과 동일한 방법으로 구약의 안식일을 지켜야 할 의무가 더는 없다. 왜냐하면 제자들은 이제 예수님에 의해 성취되었고 제공된 안식일의 궁극적 목표인 종말론적 안식, 곧 구속에 참여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사실은 마태복음 12:5-6에서 너무도 강력하게 시사되고 있다. 만일 제사장들이 성전 안에 있는 한 안식일 율법을 준수해야 할 의무가 없었다면, 제자들은 성전보다 크신 예수님과 함께 있기 때문에 안식일을 지켜야 할 의무가 훨씬 덜하다는 것이다(또한 참조. 12:7, 12b).
이러한 사상은 마태복음 안에서 좀 더 전개시켜 볼 수 있다. 만일 안식일보다 더 큰(12:6) 성전이 예수님의 성취로 말미암아 그 모형으로서의 기능을 그만두게 되었다면(24장 참조. 27:51), 안식일은 예수님의 성취 이후에(참조. 12:8, 11:28-29) 훨씬 더 쉽게 그 모형으로서의 기능을 그만 두게 되지 않겠는가?"
안식일은 확실히 폐해졌습니다. 그리고 주일에 대한 규정은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예배하고 봉사해야 할 의무가 우리에게 있습니다(히10:24-25). 그 일들을 효율적으로 하기 위해 쉼이 필요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주일날 일을 멈추고 쉬는 것을 원칙으로 해야 합니다. 그러나 절대로 어떤 일도 하지 말아야 한다는 율법주의적인 결의론을 들이대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예배와 봉사를 우선시하고 거기에 방해가 되는 모든 일들과 행위들을 삼가야 합니다. 그러나 예배와 봉사에 방해가 되지 않는 경우에는 필요한 일들을 해도 됩니다. 더구나 부득이 해야 할 급하고 중요한 일일 경우에는 더더욱 그 일을 해도 됩니다.
"또 이르시되 안식일이 사람을 위하여 있는 것이요 사람이 안식일을 위하여 있는 것이 아니니" (막2:27)
예수님은 사람이 안식일을 위해서 있는 것이 아니라, 안식일이 사람을 위해 있는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이 구절에 대해 폴 주이트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안식일을 지키기 위해서 사람이 필요로 하는 것을 부정해야 한다는 주장은 안식일 제도를 곡해하는 데서 오는 것이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작정하사 인간에게 허락하신 축복인 안식일을 인간보다 매우 더 중시하는 처사가 된다. 이 축복을 즐기기 위해 사람은 그 날을 지키는 데 짐이 될 만한 속박에서 벗아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렇다면 온종일 일하는 것이 아니라서 주객이 전도될 위험도 없는데, 그리고 그 사람이 주을 위해 살고 있는데 왜 피해를 보면서 꼭 해야 할 일을 하지 말아야 합니까? 그러므로 이 구절에 나타난 원리에 의해 생각할 때 주일이라도 꼭 필요한 일을 하는 것은 죄가 아닙니다.
하지만 주의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공부에 대해서 말할 때 언급한 것처럼 이것은 주일날 온종일 일을 해도 된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주일은 문자 그대로 '주의 날'이 되어야 합니다. 예배만 달랑 드리고 일하는 '나의 날'이 되면 안 됩니다. 어떤 주제에나 양쪽 도랑이 존재하는데, 하나는 '율법'이고 다른 하나는 '불법'입니다. 예를 들어 엘리자베스 여왕 시대에는 로마 카톨릭의 노동 전면 금지에 대한 반동으로, 주일에도 공적 기도회 후에는 거의가 일을 하였었습니다. 이처럼 율법주의를 피하려다가 방종에 빠질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조심해야 합니다.
(7) 주일날 일하는 직업을 포기해야 하는가?
저는 할 수만 있으면 주일날 일하는 직장은 피하는 것이 좋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믿기 전에 이미 그런 직업을 갖고 있는 분들이 있습니다. 또 자신의 전공분야가 그것이고 다른 일은 할 수 없는 분들이 많습니다. 특히 꿈이 그 업종인 분들도 있습니다. 이런 분들의 경우 주일날 일하는 직장이라도 그 직장에 다니며 계속 일하셔도 됩니다.
생각해보면 주일에 일해야 하는 직업이 굉장히 많습니다. 버스 운전사, 기차나 배 그리고 비행기 조종사, 경찰, 소방관, 응급실 의사, 운동 선수 ... 등 굉장히 많은 분야들이 있습니다.
그러면 생각해보십시오. 주일날 절대로 일을 하면 안 된다면, 프로 선수들은 다 운동을 그만두어야 합니까? 그런 조건이라면 운동선수들이 어떻게 예수님을 믿을 수 있겠습니까? 요리사나 비행기 조종사들도 직장을 그만두어야 합니까? 만약 그래야만 한다면 어떻게 그들을 전도할 수 있겠습니까? 과연 주일날 일하는 모든 직업을 포기해야 한다고 말함으로써 영혼 구원을 막는 것이 주님의 뜻이겠습니까? 절대로 아닙니다.
그러면 주일에도 일하는 분들은 어떻게 신앙생활을 해야 할까요?
최근에 요리사 자격증이 있는 성도님이 대부분의 식당이 주일도 일하기 때문에 번번이 취직을 하지 못해서 심각한 경제난을 겪고 있다며, 오늘도 두 곳에서 주일에 일할 수 없다는 이유로 불합격 통보를 받았는데 어떻게 해야 하느냐고 상담을 해왔습니다. 그래서 제가 "취직하십시오. 그 대신 일 끝난 후에 주일날 일할 수밖에 없는 직업을 가진 분들을 위해 신설하는 주일 밤 9시 예배에 참석하십시오."라고 말씀드린 일이 있습니다. 이것이 답입니다! 주일날 일하는 직장에 다닐 수밖에 없는 분들은 그분들을 위해 신설하는 주일 4부 예배에 참석하시면 됩니다.
그런데 제 말을 듣고도 아직도 뭔가 마음에 걸리고 꺼림칙한 분들이 계실 것입니다. 두 가지가 마음에 걸릴 것인데, '그래도 주일날 일을 해도 되나?'라는 의문과 '낮에는 종일 일하고 밤에 와서 예배드리는 것이 하나님께 합당할까?'라는 불안감이 그것일 것입니다. 그런 분들을 위해 성경적으로 속 시원하게 확실한 답을 해드리겠습니다.
먼저, '그래도 주일날 일을 해도 되나?'라는 의문에 답해드리겠습니다.
여러분, 마음을 편하게 가지십시오! 성경에 나오는 초대 교회 성도들이 그렇게 신앙생활을 했습니다. 그 당시 주일이 공휴일이 아닌데 어떻게 성도들이 주일날 쉽니까? 더구나 성도들 중에 노예도 많았는데 노예가 어떻게 공휴일도 아닌 날에 쉽니까? 그랬다가는 맞아 죽을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들도 그런 요구를 전혀 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므로 주일날 일할 수밖에 없는 성도님들이 일을 하고 그 후에 예배드리는 것은 성경적으로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다음으로, '아무리 직업이 그래도 그렇지, 낮에는 종일 일하고 밤에 와서 예배드리는 것이 하나님께 합당할까?'라는 불안감에 대해 답해드리겠습니다.
사실 저 역시 이것이 상당히 마음에 걸리고 꺼림칙했습니다. 그러다가 성경에서 확실한 답을 발견한 후 마음이 편해졌습니다. 안식일이 주일로 바뀐 것은 예수님의 부활 때문입니다. 그런데 성경에 보면 예수님이 부활하신 후 주일날 저녁에 제자들에게 나타나셨습니다.
"이 날 곧 안식 후 첫날 저녁 때에 제자들이 유대인들을 두려워하여 모인 곳의 문들을 닫았더니 예수께서 오사 가운데 서서 이르시되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요20:19)
그뿐 아니라 초대 교회의 사도들과 성도들이 안식 후 첫날 모였는데, 오늘날처럼 주일 낮 11시가 아니라 저녁 시간에 모였습니다.
"그 주간의 첫날에 우리가 떡을 떼려 하여 모였더니 바울이 이튿날 떠나고자 하여 그들에게 강론할새 말을 밤중까지 계속하매" (행20:7)
여기서 '밤중까지 계속했다'는 것은 이들이 저녁에 모였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이처럼 초대 교회 성도들은 예배하기 위해 주일날 저녁에 모였습니다. 주일이 공휴일이 아니었기 때문에 일을 마치고 저녁 때 모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일을 하고 저녁 때 모여서 예배드리는 것은 비성경적이거나 잘못된 것이 아닙니다.
신앙생활은 예배드리는 것이 전부가 아닙니다. 물론 예배를 드려야 합니다. 더구나 주일예배는 필수적입니다. 그러나 신앙생활은 그 이상입니다! 신앙생활은 월요일부터 주일까지 일주일 내내 성경 읽고, 기도하고, 말씀에 순종하고, 하나님의 얼굴을 구하고, 사랑하고 선을 행하며 사는 것입니다. 그것이 진짜 신앙생활입니다!
꼭 주일날 온종일 쉬어야 신앙생활을 바르게 하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꼭 주일날 오전 11시에 예배를 드려야 신앙생활을 바르게 하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초대 교회 성도들은 일요일이 공휴일이 아니었기 때문에 주일날도 일하고 저녁 때 예배를 드렸습니다. 그러나 사도행전을 읽어보면 얼마나 모범적으로 신앙생활을 잘했습니까? 여러분도 그렇게 신앙생활을 하시면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고정관념을 버리시기 바랍니다.
추가로, 여러분에게 이것을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제가 교회에서 이에 대해 설교할 때 성령님께서 제 마음에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오늘 말씀을 전하고 난 후에 성도들에게 결론적으로 이 말을 해주어라!'
성령님은 제게 '바리새인들이 무엇을 중요하게 여겼는가? 그것을 상기시켜라!'라고 하셨습니다.
바리새인들의 관심사는 무엇이었습니까? '의식' 그리고 '전통'이었습니다. 밖에서 들어와서 손을 씻느냐? 안 씻느냐? 안식일에 이런 일을 할 수 있느냐? 없느냐? ... 그들은 의식과 전통에 몰두했습니다. 율법의 계명들을 필요 이상으로 세분화하여 지키는 데 열심이었습니다. 그것을 철두철미하게 지키면 신앙생활을 잘하는 것이고 그러지 않으면 못하는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 율법의 행위를 통해 마음에 안정감을 얻었습니다.
그때 예수님이 오셨습니다. 그리고 바리새인과 충돌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의식이나 전통을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전통이 무엇입니까? 청교도들은 주일을 이렇게 지켰다, 장로교에서는 이렇게 지킨다, 고신 측에서는 주일을 이렇게 지킨다, 이런 것이 전통입니다. 전통은 하나님의 말씀이 아니라 사람들이 고안해낸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전통에 무관심했습니다. 예수님은 전통에 대항하셨습니다. 그것을 '바리새인의 누룩'이라 칭하며 주의하라고 하셨습니다. 전통에 매여 있는 지도자들을 영적인 '소경'이라고 하셨고 '소경이 소경을 인도하면 둘이 다 구덩이에 빠질 것'이라고 경고하시기까지 하셨습니다.
바리새인들과 달리 예수님은 의식이나 전통이 아닌 다른 것을 중요하게 여겼습니다. 그럼 예수님은 무엇을 중요하게 여기셨을까요? 예수님은 보다 근본적인 것, 보다 본질적인 것, 보다 근원적인 것을 중요시했습니다. 즉 예수님은 회개를 중요하게 여겼습니다. '이 사람이 전통을 지키나? 안 지키나? 의식을 지키나? 안 지키나?'가 아니라 '이 사람이 죄를 뉘우치고 죄에서 떠났는가?'를 중요하게 여겼습니다. 또 예수님은 믿음을 중요하게 여기셨습니다. '정말 마음으로 믿고 순종하는가? 정말 자기 삶의 주인이 바뀌었나? 여전히 자기중심적이고 이기적이지는 않은가?'에 관심이 있으셨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행동이 아니라 마음에 관심이 있으셨습니다. 예수님은 계명들에 대해서 바리새인들과 관심의 초점이 달랐습니다. 바리새인처럼 '안식일을 어떻게 지켜야 하느냐?' 이런 것이 아니라 마태복음 5장 21절 이하에 기록되어 있듯이, 살인하지 말라, 간음하지 말라, 맹세하지 말라와 같은 계명들의 정신에 관심이 있으셨습니다. 그래서 마음이 온유한 자가 되고, 마음이 청결한 자가 되고, 마음이 진실한 사람이 되고, 마음으로 사랑하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강조하셨습니다. 이것이 예수님의 주된 관심이었습니다.
여러분, 이제 바리새인과 예수님의 관심의 차이가 분명하게 보이십니까? 이것에 주목하십시오. 그러면 여러분 안에 있던 불안감이 완전히 사라질 것입니다.
그런데 성령께서는 이 날 제게 한 가지 말씀을 더 주셨습니다.
'이것이 너희 큰믿음교회의 특징이라고 말하라!'
정말 맞는 말 아닙니까? 이 설교를 듣는데 '주일날 시험 공부해도 된다. TV 봐도 된다. 밥 사 먹어도 된다. 급한 일은 해도 된다. 주일날 일하는 직장을 반드시 포기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이게 다 무슨 말인가?'하는 생각이 들 수도 있습니다. '큰믿음교회가 갑자기 타락했나? 큰믿음교회가 갑자기 세상적이 되고 타협이라도 할 생각인가? 하는 생각이 들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런 것이 아닙니다. 그 증거로 큰믿음교회의 메시지가 무엇입니까? 큰믿음교회는 회개를 강력하게 외칩니다. 행함 있는 산 믿음을 강력하게 외칩니다. 마음이 청결하게 되어야 할 것을 강력하게 외칩니다. 주님을 사랑해야 될 것을 강력하게 외칩니다. 무슨 말이냐 하면, 큰믿음교회는 바리새인을 닮지 않았습니다. 세세한 규정을 만들어 놓고 '안식일은 반드시 이렇게 지켜야 한다.'고 주장하는 바리새인을 닮지 않았습니다. 그 대신 큰믿음교회는 예수님을 닮았습니다! 바리새인들이 강조한 것을 강조하지 않지만 그렇다고 타협한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이 가르치고 강조한 것을 모두 조금도 타협하지 않고 그대로 전하고 있습니다. 즉 '모든 죄를 회개해야 한다. 습관적인 죄가 없어야 한다. 예수님을 구주로만이 아니라 임금으로 모셔들여야 한다. 마음이 청결한 자가 되어야 한다. 주님을 사랑하고, 영혼을 사랑하고, 다른 사람을 사랑하고, 원수와 핍박자까지 사랑하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전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이런데도 불안하십니까? 전혀 불안해하실 이유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이것이 곧 예수님의 뒤를 따르는 것이며 정로이기 때문입니다!
저는 여러분에게서 예수님의 멍에를 제거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바리새인이 지운 멍에를 제거하려는 것입니다. 바리새인은 예수님 당시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가톨릭 시대에도 있었고, 청교도 시대에도 있었고, 한국 교회 안에도 있습니다. 바리새인들에게 전통과 교리가 있었던 것처럼, 종교개혁 시대 이후로 성경적으로 진리가 회복된 것도 많지만 여전히 비성경적인 전통들이 있습니다. 저는 여러분에게 불필요하게 부과된 이런 바리새인들의 멍에를 이 설교를 통해서 제거하고 싶은 것입니다.
현재 다는 아니지만, 적지 않은 교회들이 바리새인의 멍에는 열심히 지우고 예수님의 멍에는 지우지 않습니다. 즉 회개하라고 외치지 않습니다. 행함 있는 산 믿음을 갖지 않으면 천국에 가지 못한다고 외치지 않습니다. 거룩을 추구하고 마음이 청결한 자가 되지 않으면 멸망한다고 외치지 않습니다. 거짓말하지 말고 양심을 지키라고 그러지 않으면 믿음이 파선된다고 외치지 않습니다.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지운 멍에를 제 맘대로 제거해버립니다.
예수님의 멍에는 곧 예수님의 말씀입니다. "바른 말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과 경건에 관한 교훈에 착념치 아니하면 ... "(딤전6:3)이라는 말씀에 드러나듯이 진짜 바른 진리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사도들에게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마28:20)고 명령하셨음에도 불구하고 많은 교회들이 그중 많은 것을 도외시하거나 간과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큰믿음교회는 보기 드물게 예수님이 분부한 모든 것을 실제로 가르쳐 지키게 하는 교회입니다. 할렐루야!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리하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마11:28-29)
여러분, 교회 다닌다고 쉼을 얻습니까? 설교 듣는다고 쉼을 얻습니까? 여전도회장 되고 남전도회장 된다고, 권사 되고 장로 된다고 쉼을 얻습니까? 아닙니다. 큰믿음교회 성도들처럼 예수님의 멍에를 메야 합니다! 루터나 칼빈의 가르침을 따르며 루터나 칼빈의 멍에를 메지 말고 예수님의 가르침을 따름으로 예수님의 멍에를 메어야 합니다. 예수님의 가르침을 그대로 받아들이고 지켜야 합니다. 그래야 마음에 쉼을 얻을 수 있습니다.
우리 교회 성도님들은 예수님의 멍에를 메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가르침을 그대로 받아들이고 순복합니다. 그래서 성도님들의 마음에 쉼이 있고, 얼굴이 다릅니다. 자주 다른 교회 성도들이 우리 교회에 왔다가 놀랍니다. 성도님들의 얼굴을 보고 "이 교회 성도들은 이상하게 얼굴이 환하다. 밝다. 천사 같다." 그런 말들을 자주 합니다. 너무 많이 들어서 이제는 신기하지도 않을 정도입니다. 여러분, 이게 이단입니까? 아닙니다. 진짜 정통입니다. 주일날 이것도 하면 안 되고 저것도 하면 안 되고 그것은 바리새적인 것입니다. 정통을 흉내 내는 것입니다. 짝퉁 전통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도 바리새인의 멍에를 뿌리치고, 예수님이 지워주신 멍에를 멤으로 진짜 정통이 되시기 바랍니다.
끝으로, 금요일이 휴일인 이슬람 국가들에 대해서 잠시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대부분의 이슬람 국가들은 일요일에 쉬는 것이 아니라 금요일에 쉽니다. 금요일이 공휴일이고 일요일은 평일입니다. 저는 그런 나라에서 선교하는 분들이 금요일에 예배를 드린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그러나 저는 그렇게 하는 것에 찬성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로마서 14장 5절을 주일과 안식일에 대한 언급으로 착각한 데서 나온 것입니다. 그러나 그 말씀은 그런 의미가 아닙니다. 무엇보다도 성경에 의하면 금요일이 아니라 일요일이 '주의 날'입니다(계1:10). 그러므로 저는 반드시 주일날 예배를 드려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슬람 국가들처럼 주일이 공휴일이 아니더라도 그것은 이유가 될 수 없습니다. 주일은 공휴일이 되기 전부터 주의 날이었습니다. 초대 교회 때도 주일은 공휴일이 아니었습니다. 이슬람 국가랑 같은 상황이었습니다. 하지만 주일날 모였습니다. 그러므로 성경대로 주일 밤 시간에 모여서 예배를 드려야 합니다. 그 후 금요일에는 우리가 수요기도회에 모이는 것처럼 모이는 것이 좋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