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마 대리운전을 하시는 분들중 저가 콜을 수행하시는 분들이 숫적으로 훨씬 많을 것입니다. 일당벌이의 특성에다 전업 정도, 경력, 스타일 등의 차이로 수입여부는 각양각색일 것입니다. 하지만 고가는 고가대로, 저가는 저가대로 나름대로 맛이 있는 것 같습니다. 서울 시내 전역 1만 2천원 콜, 일컬어 서민콜을 타면서 제가 체험한 사례를 부정기적으로 연재하고자 합니다. 동료 여러분께서도 비슷한 경험이나 사례가 있으시면 리플 달아주시면 대단히 감사하겠습니다. 여기에 연재하는 글과 리플에 추가된 글들을 모아 가능하면 2006년 연말이나 2007년 초에 책으로 발간할 생각이 있음을 미리 밝혀 둡니다.
<서민콜 기행문 1> '누가 뭐래도 나는 나의 길을 간다 ~'
서민콜을 수행하다보면 1톤 화물트럭(일명 복사, 또는 탑차)을 가끔씩 운행하게 됩니다. 그 분들이 종사하는 분야는 건축업이 가장 많았습니다. 건설 현장의 십장에서부터 목수, 미장이는 물론 간판, 인테리어 종사자들도 많았습니다. 배달 등의 운송업에 종사하는 젊은이들도 서너번 태운 경험이 있습니다.
소형 트럭을 대리운전하면서 느낀 가장 큰 공통점은 그분들의 대부분이 오솔길을 선호한다는 것이었습니다. 거리가 가깝고, 큰 길이 있는 데 그 분들은 굳이 돌아가더라도 좁은 길을 선택하는 경향이 있었습니다.
11월 중에 모신 한 분은 신촌로터리에서 미아동을 가시는 분이었습니다. 50대 후반인 이 분은 벽돌쌓기가 전공이셨는데 중동에도 다녀오셨답니다. 지금도 팀을 짜서 벽돌 쌓는 일을 하신답니다.
신촌로타리에서 내부순환로를 타고 정릉이나 길음인터체인지를 거쳐서 미아동으로 가려하니 그 분께서 신촌 - 광화문 - 삼청터널- 아리랑고개를 거쳐서 정릉에서 터널을 지나 삼양동으로 넘어가는 어려운(?) 길을 선택하셨습니다. 가는 도중에도 자신만이 아는 길로 좌회전, 우회전을 얼마나 반복했는 지 모릅니다.
덕분에 삼청터널을 지나 삼청각을 통과하는 그 복잡한 성북동길을 거쳐서 북악 스카이웨이를 통과하면서 서울 야경을 구경하는 행운(?)을 얻었습니다. 물론 정릉에서 삼양동으로 넘어갈 때 또한번 서울의 야경을 감상할 수 있었습니다.
그 분께서는 자주 이 코스를 이용하신다고 합니다. 이유는 차가 덜 막히고, 높은 데서 서울 시내를 보면 가슴이 탁 트이는 느낌이 든다고 했습니다.
지난 연말 봉천동 고개에서 용두동 동아제약 사거리로 가시는 분은 30대 후반으로 슈퍼마켓을 운영하시는 분이었습니다. 그 분께서는 봉천동고개~상도터널~한강대교~강변북로~한남동 진입 -용비교가는 길 - 두무개길 - 금호동 정상(과거 달동네)를 거쳐서 도로교통안전공단 ~ 청계 9가를 거쳐서 목적지에 도착했습니다.
금호동 꼭대기를 넘어갈 때 동대문을 중심으로 한 서울시내가 또 한 눈에 들어오더군요.
며칠전에 모신 분은 용달업을 하시는 50대 초반이셨는데 장승배기에서 반포서래마을까지 가시는 분이였습니다. 저는 장승배기 ~ 상도터널 ~ 흑석동 ~ 이수교차로 ~ 반포로 미리 코스를 그렸는데 그 분께서는 장승배기 ~ 숭실대 삼거리 ~ 사당이수역 ~ 내방역 ~내방역 고개너머 사거리에서 좌회전해서 중간쯤 내려가다가 우회전해서 서초역가는 사잇길로 가다가 좌회전해서 내려가는 길을 택했습니다.
다른 분들도 대부분 자신들의 경로를 갖고 있었고, 그 길을 강하게 고집하고 있는 공통적인 성향을 보였습니다.
신촌로터리에서 중계동 가시는 분들 또한 마찬가지였습니다. 인근 건축현장에서 작업을 마치고 2분이 진짜로 서서 갈비집에서 일당으로 갈비와 소주를 한 잔하시고 댁으로 가는 분들이었는데 차 막힌다며 내부순환, 강변북로 모두 사양하고 세브란스 ~ 사직터널 ~ 독립문 ~ 홍은동 ~ 구기터널 ~ 정릉 ~ 터널(? 이름 모름 정릉에서 삼양동으로 넘어가는 짧은 터널임) ~ 드림랜드 ~ 중계동으로 가자고 했더랬습니다.
탁트인 대로나 무난한 도로를 사양하고 꼬불꼬불, 오밀조밀하면서 어렵고 가파른 길을 선택하는 것이 우연의 일치일까?
우연의 일치만은 아니란 생각이 강하게 듭니다. 원래 그 분들의 성향이 그래서 지금도 서민으로 살고 계신지, 아니면 서민으로 살다 보니까 그렇게 되신건지.....
암튼 저는 그분들께서 나름대로 자신만의 강한 정서와 취향을 갖고 계시구나라는 느낌을 받습니다. 그리고 남들이 모두 대로를 달리고 잘나가더라도 나는 나만의 길이 있고, 내가 잘알고 좋아하는 길을 간다는 소신을 갖고 살아가시는 분들이구나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몇 분들에게 왜 이렇게 다니시느냐고 물었더니 '그냥 그렇게 다녀~' '옛날부터 다녀서 이 길이 정들었어~' '하도 많이 돌아 다녀서 모르는 길이 없어~' '성질이 급해서 차 막히는 꼴을 못 봐. 낮에는 안막혀서 빨리 가는데 밤에는 ? 허허' 이런 정도의 대답이 나왔습니다.
대체적으로 강남이나 목동 사람은 올림픽 대로를, 강북사람은 강변북로를 선호하는 경향이 있는데 서민풍 100%인 소형트럭 고객들께서는 그 분들만의 코스를 갖고 있음이 분명해 보입니다.
소형트럭을 운전한 경우 대개 수고비로 3천원이나 5천원을 더 주셨습니다. 그래봐야 1만 5천원, 많아야 최대 2만원 밖에 안됩니다.
하지만 땀냄새 풍기며 일하는 이들 고객들의 3천원, 5천원은 빳빳한 만원짜리 1~2장보다 분명 적은 돈이지만 다가오는 맛이 다릅니다. 정말 '감사합니다'란 인사를 건네게 됩니다. 물론 돈보다 시간이 많이 걸려 짜증이 날 때도 많이 있었지만요.
정말 후한 인심은 돈이 아닌 먹거리에서 느낄 수 있었습니다.
망원동에서 수유리 4.19 탑까지 가셨던 분인데 이 분께서는 팁 대신에 자신의 작업 사무실에 도착해서 커피를 손수 한 잔 타서 주셨습니다. 시간이 돈인 대리의 생리를 잘 모르시는 그 분이 한 편으로 야속했지만 그 한 잔의 커피는 아주 진했습니다. 물론 30초도 안돼서 한 잔을 다 마시고 '고압습니다'라고 인사하고 도망치듯 나왔지만요.
그 분께서는 원래 음악을 좋아한 가수 지망생이셨는데 제도권에 진입하지 못하고, 오뷰레에서 반주를 하면서 돈벌어 먹고 살다가 벌이가 시원잖아 간판 일을 배워서 요즘 열심히 간판쟁이로 일하고 있다고 했습니다.
수원 봉담에서 가락시장까지 모셨던 마트 사장님 아저씨는 제주도 감귤을 팁으로 줬습니다. 배가 터지도록 먹었습니다.
(돈은 적으나 후한 인심은 다음에 별도의 시리즈로 추가 하겠습니다.)
소형트럭에는 그 분들이 작업에 필요한 갖가지 연장이나 자재들이 실려있습니다. 일용직 노동자들의 경우는 거의 없고 소형 하청일을 하고 계신 분들이 많이 있습니다. 승용차 따로 있고, 작업차량으로 일을 하시는 분들도 꽤 있었습니다.
이 분들은 사실은 중형차를 몰고 다니는 월급쟁이들 보다 더 부자인 것으로 짐작됩니다. 아파트보다 오래된 단독 주택에 사시는 분들이 더 많았습니다. 하지만 그 분들은 위장 서민은 아니고, 자연스럽게 서민으로 살고 말하고 행동하고 계셨고, 저도 거기에 자연스럽게 공감이 갔습니다.
<후기>
소형트럭을 운전하면 일단 쿨한 느낌을 받을 수 있어 좋습니다. 시야가 높고 넓어지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택시들이 피해서 갑니다. 고급외제차와 화물 똥차는 택시기사들이 겁을 냅니다.
물론 소형트럭을 대리운전하면서 억눌린 서민의 엉뚱한 스트레스 해소(일명 똥끼발이)로 인한 고약한 사례들도 많이 겪었습니다.
그런 사례들은 다음에 별도로 정리하겠습니다.
첫댓글 기대 하겠습니다
오늘 화곡동원주추어탕>>신당가는 손님 ..내가 어느길로 갈가요 하니간 알아서 가주세요.. 그럼 성수대교 넘어 가겠습니다 했더니 아니 성수대교는 왜가요? 거긴 강남이잖아요..그럼 성산대교로해서 동대문으로해서 신호 다 받으면서 갈까요?했더니 그럼 성수대교는 어떻게 가요? 거긴 88로가면돼죠..손님..흠 그런가
1톤 봉고차 였는데 여자태우고 88가는동안 내내 옆에서 둘이 옷뒤집어 쓰구 쪽쪽 거리네...뒷자리서 그러는건 봤어서 에고 옆자리에서...흐미 술처먹으면 년이나 놈이이나.. 다들...
택시 타면 대부분 그렇게 갑니다.
음,,이 카페에서 소설가 한분 나오시겟네요,,긍정적으로 편안하게 보시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