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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행기 스크랩 진주시계 3구간 (발산재~수리재)
조은산 추천 0 조회 192 13.01.27 20:40 댓글 0
게시글 본문내용

 

 

 

 

 

진주시계 3구간

 

 

2012. 12. 5 (수)

산길 : 발산재~수리재

사람 : 객꾼, 동만, 학봉, 조은산

거리 : 9km

 

 

구간거리

발산재~1.4~깃대봉갈림(낙남정맥)~0.9~만수산~3.3~한골재~0.7~보잠산~2.7~수리고개  / 9.0km

Cartographic Length = 10.8km Total Time: 05:00

  

03(발산재~수리재).gpx

 

 

 

 

 

진행거리가 겨우 두 자리수 나왔다. 그것도 GPS(실)거리이고 도상거리는 9km 밖에 되지 않는다. 전과 동일한 요령으로 중앙시장 제일식당에 갔으나 그 시각동안 객꾼은 잠에서 깨지 않았다. 전화기도 꺼져있어 사무실로 집으로, 해외(제주도)에 까지 물어 물어 겨우 연결이 되었고, 여차저차 1시간이 지체되어 산행이 시작되었다.

 

 

제주 사는 동만이 바람쐬러(?) 나왔는지 진주에 왔고, 죽이 맞는 술꾼끼리 만나 무한정으로 빨았던 모양이다. 그나마 두어시간 자고 그 시각에 정신 수습하고 나오는거 보면 철인은 철인이다.

 

 

지난번 발산재로 내려서면서, 마산시계와 접하는 진주시계라 둘이서 마산 사는 학봉이 얘길 했고, 다음에는 연락을 해보자 했던것이 성사되어 학봉이 참가를 하고, 제주 동만까지 함께하니 인원이 100% 증가했다. 시계종주 선수가 아닌 손님격이라 적당한 대우가 필요했고, 오늘 밤에 객꾼일행은 제주도 배를 예약한 상태라, 이러저런 이유를 갖다 대며 일찍 마쳤다. ‘사람이 먼저’ 이지 산길이 먼저가 될 수는 없는 것이라.

 

 

 

 

 

 

08:30 발산재

08:54 조망바위

09:18 낙남정맥 분기봉(475m)

09:45 만수산

10:11 불당재

10:35 ×365

11:12 한골재

11:46 보잠산 (△439.3m)

11:55 보잠산 정상석 (×453m)

12:55 ×339m

13:20 수리고개

 

 

 

 

 

 

 

 

수발사 입구

 

 

 

 

효열공 묘소

 

 

 

 

08:30 발산재 (120m)

학봉과 먼저 가 있으니 얼마 안 있어 동만 차를 타고 둘이 왔다. 동만이 제주도에서 차를 갖고 나온 모양이다. 수발사 입구에 차를 대놓고 효열공 묘소로 가는 시멘트길을 따라 올라간다. [준봉산 효열공 고종후선생 묘소 입구] 표석이 있는데 준봉산(?峯山)이란 명칭은 고종후선생 묘소에 그 후손들이 붙인 이름으로 사료된다. 진주사람 객꾼이 표석을 읽어 보더니 고종후는 몰라도 부친인 고경명은 알고 있단다.

 

 

고경명(高敬命,1533-1592. 장흥고씨)은 원래 호남(광주)출생으로 문신이다. 영암군수, 서산군수, 동래부사를 끝으로 퇴임하여 고향에서 여생을 보내던 중 임진왜란을 맞아 의병을 일으켜 크게 활약하다가 금산전투에서 둘째 아들과 함께 전사했다.

 

 

 

낙남정맥 할 때. 이 비석이 도로 저편에 있었던것 같은데, 도로를 새로 내는 바람에 옮기면서 더 반듯하게 꾸며 놓은듯 하다. 준봉산 역시 그 때(2002년)는 없었던 이름이다.

 

어쨌든, 발산재 저쪽에서 도로위에 설치된 생태통로를 통해 건너오는 길보다 훨씬 양반스럽게 올라간다. 시멘트길은 위쪽의 고종후선생 묘소까지 연결이 되고, 이후 역시 정맥길이라 아주 널널하다.

 

 

 

 

 

 

 

 

발산재 2번국도

 

 

 

 

 

[준봉산 등산로]

 

 

 

 

 

 

流芳百世 꽃다운 명성을 후세에 길이 전하다는 뜻이다. ‘유방백세하다’는 성어로 쓰인다.

기왕에 반대말까지 알아두자. 유취만년(遺臭萬年) : 불명예스럽거나 추악한 이름을 오래도록 남김.

좋은 일하면 백년가고, 나쁜 일은 만년가나...?

1世를 30년 잡아도 300년, 1세기로 치면... 만년이 되나. 그러면 쌤쌤이구만.

 

 

넓은 길은 효열공 묘소까지 이고, 이후는 산길이라도 낙남정맥이니 길상태로 말하자면 A++이다. 10분 올라가면 머리위로 커다란 바위가 보이다가 올라서니 세상이 다 열리는 전망대다.

 

 

전망대

 

 

전망바위 (315m)

올라서기 적당한 반석이 두 개 있는데, 굳이 올라서지 않더라도 조망은 그대로다. 발산재에 대놓은 우리차가 보이고 멀리로 여항산에서 서북산으로 이어지는 낙남 산줄기가 보인다. 그 너머로 빠꼼히 머리를 내밀고 있는거는 무학산인가. 마산사람(학봉)이 그렇노라 확인해 준다.

 

 

여항산~서북산

 

 

 

 

"저짜, 저.... 뭔산인지 아능교?"

"여항산 아이가?"

"객꾼쎄이도 알거는 다 아네...?"

 

 

늦잠자고 헐떡거린 와중에도 맥주는 네개나 챙겨왔네. 누가 여기와서 글공부를 하는지 독서실용 책상달린 의자가 하나 있다. 여기 앉으면 공부가 더 잘될랑가. "원래 공부 몬하는 인간들이 연장 나무래고 분위기 탓한다니께요~"

 

 

만수산으로 가는 진주시계 (송전탑 뒷봉이 만수산)

 

 

진주시계 분기봉(475m)

조망을 안주삼아 캔맥주 한 통씩 털어넣고, 다시 15분 더 오르면, 깃대봉 800m 못미쳐  진주-창원-고성이 갈라지는 3군(市)봉에 올라선다. 서쪽으로 열린 편편한 테라스 바위가 있다. 낙남정맥은 남쪽으로 직진이고, 우측(서쪽)으로 갈라지는 능선이 진주시계가 되는데 송전철탑이 보이고 그 뒷봉이 만수산이다.

 

 

 

 

 

묵은 임도

475봉 테라스 바위 아래로 그런대로 선명한 길이 보인다. 만수산-보잠산-경남수목원 코스로 제법 사람들이 다니는 모양이라. 급비탈을 줄줄 내려가면 475봉 오르기 직전에 우측으로 들어가는 임도를 봤는데, 475봉 옆구리를 찔러 여기로 나온다. 허나 임도는 이미 잡목이 점령한 상태라 임도의 기능을 상실했다.

 

송전철탑

안부를 지나 오르면 분기봉에서 보던 그 철탑 아래를 지난다. 송전선은 남쪽으로 골짜기를 건너 낙남정맥 능선으로 연결이 되므로 타잔처럼 줄을 타고 건너뛰면 낙남정맥 ×471봉으로 사뿐히 날아가겠다.

 

 

 

만수산 정상직전 전망대 (×456)

 

암봉 ×456

만수산인가 싶어 올랐더니 바위 두 개 있는 봉. 남쪽으로 조망이 시원하다. 다음봉이 만수산인데 살짝 내렸다가 올라선다,

 

 

낙남 산하

 

 

 

 

 

만수산

 

 

만수산 (萬壽山 456m)

낙남 분기봉(475봉)에서 두 개의 봉우리로 보였는데, 첫봉이 바위가 있는 봉이 지형도에 표기된 ×456봉이고, 북서로 연이은 봉우리에 정상석이 있다. 지형도에 해발표기는 없지만 높이는 동일하다. 이반성산악회에서 설치한 정상석의 해발 표시는 445m로 되어 있다.

 

정상석에 고도표시가 잘 못 되어 있다만,

이런들 어떠하며 저런들 어떠하리

만수산 고도가 낮아지면 어떠하리.

.... 이방원의 만수산은 개경에 있다.

 

 

보온병 커피 한잔 마시고 왼쪽(남서)으로 내려가니 전기톱 소리 웽웽거린다. 능선 우측비탈에 작업인부들이 많다. 시계 우측이니 진주관할이라, 남자들은 자르고 여자들은 끌어 모은다. 작업중인 아줌마들에게 인사를 건네니 대뜸, “따라 가까?” 반응을 보내오는데, 아무리봐도 연식이 좀 곤란하다...

 

 

잘라 낸 나무를 모아서 제선충 표시가 된 비닐포장을 덮어씌우는데, 전문가(객꾸이)가 보기엔 제선충이 아니라 아무거나 끌어 모으는거 같단다. 한 때, 최초로 발견하여 신고하면 1500만원의 포상금을 준다던 제선충은 저절로 소멸이 되었는지 어떤지 요즘은 크게 떠들지도 않는다.

 

 

 

남쪽 건너편에 낙남정맥

 

 

 

 

 

불당재

 

불당재 (274m)

456이나 되는 고도를 한순간에 다 까먹으며 쑤욱 떨어지면 편편하고 넓은 안부.  좌우로 내려가는 길이 뚜렷하게 보이고, 제선충 작업반의 전기톱이 놓여있다.

 

 

불당재 (뿔당재)

수성 남쪽에서 고성군 개천면으로 넘어가는 고개이다.  예전에 불당(佛堂)이 있었다하여 불당재라 한다. 

 

수성(壽星) : 돈두동은 지금 수성이라 부르는데 칠성과 사이에 능선을 경계로 하여 양 동으로 분리되었다가 이후 통합되면서 돈두동과 칠성동을 수성이라고 한다.

 

 

 

다른말로 1년봉이라 한다 (조은생각)

 

×365 

하루에 1m씩 오르면 딱 1년이 걸릴 봉우리. 올라서자말자 우측(북)으로 급하게 꺾인다.  객꾸이도 그랬듯이 혼자 왔더라면 무조건 직진할 장면이란다. 급한 내림길이 다하면 한동한 평탄하게 갈비가 폭신하게 밟히는 능선길이다.

 

 

 

 

 

 

 

 

 

 

335쯤 되는 봉에서 왼쪽으로 꺾어 내려가면 효열공과 한 집안인 장흥고공 묘터를 지난다. 우측(북)으로 ×369봉이 갈라지는 봉우리에서  역시 시계(한골재)는 왼쪽이다.

 

 

 

 

한골재 오르는 도로가 보이고, 건너편은 보잠산이다.

정면은 도로 절개지라, 왼쪽으로 내려가면 재령이공 문중묘터를 지나 아스팔트로 나간다.

 

 

 

한골재

 

 

한골재 (250m)

2차선 아스팔트 도로. 진주시 이반성면과 고성군 개천면의 경계다. 절개지를 피해 고개 왼쪽으로 내려왔고, 고갯마루로 올라가면서 건너편 들머리를 찾았으나 정작 들머리는 내려선 바로 앞에 있었다. 틈만 나면 쉰다.

 

 

 

 

 

한골재(이리고개)

깊은 한골 남쪽에 있는 고개이다. 옛날 고개가 깊고 험하여 행인들이 고개밑 주막에서 이레동안 여러 사람이 모여 같이 고개를 넘었다는 뜻이다.

 

대천리

심신(深新 : 깊은 한골) : 대천 위쪽에 있는 마을이다. 골짝 안의 끝 마을을 뜻한다.

 

콘크리트 방벽을 올라서면 450m 까지 고도를 높혀야 하는 까꼬막이 기다린다. 어쩌다 객꾸이 뒤에 섰더니 초 냄새가 진동을 해, 얼른 앞장 섰다. 산돼지 처럼 쉭쉭거리며 까꼬막을 오르는 모습이 가관이라.

 

 

보잠산 (△함안312)

 

 

寶岺山 (439.3m △함안312)

돌출부가 납작하게 문드러진 구형(?形) 삼각점 뒤로 옆으로 길게 누운듯이 자란 참나무가 특이하다. 북으로 갈라지는 능선을 따라 이반성과 일반성의 면계다. 남쪽은 개천면이니 삼면봉이 되고, 북으로 경남수목원에서 작당산(×249)을 거쳐 여기로 올라오는 일반 등산로가 열려있다. 정상석은 다음봉에 있다. 이 봉우리를 지리원의 지형도는 ‘寶岺山’으로 표기 했는데 읽으면 보령산이 된다.

 

 

보령산이 아니고, 보잠산이다.

옆으로 길게 뻗다가 사슴뿔 처럼 두 개의 가지를 뽑아 낸 특이한 나무.

 

 

 

 

월아산,  장군대산

 

 

 

 

 

보잠산 정상석 (×453)

 

 

 

보잠산 정상석 (×453m)

남서쪽으로 450m 거리에 지형도상 ×453봉인데 보잠산 정상석은 이곳에 있고, 정상석에는 岑인지 岺인지 묘한 서체로 새겨놨는데, 어쨌든간에 보잠산이 맞다.

 

보잠산, 보령산

가운데 글자인 봉우리 잠(岑)자를 고개 령(岺)으로 잘못 읽어 지형도에다 寶岺山(보령산)으로 표기를 해서 헷갈리게 한다. 나 역시 처음 지도를 보고는 보령산인줄로 알았다.

 

또, 현지에서는 조금 더 높은 453봉에다 정상석을 설치하면서, 산 이름은 보잠산으로 ‘寶岑山’ 맞게 해놓고 해발 표시는 삼각점봉의 높이인 ‘439m’를 새겼다. 결국 국가지형도와 현지 정상석 둘 다 맞지않는데, 정상석을 삼각점봉에 옮기고, 지형도를 수정하면 제대로 맞겠다만, 그렇게 하더라도 어느 봉우리를 보잠산 정상으로 하느냐 하는 문제는 여전히 남는다.

 

결론은,

1. 높은 봉우리(453)을 정상으로 한다면 정상석의 해발 표시를 수정해야 하고,

2. 삼각점봉을 정상으로 한다면 정상석을 옮겨야 한다.

3. 이러나 저러나 지형도의 한자는 수정해야 한다. (岺 → 岑)

 

 

 

 

 

25,000 지형도 - 반성(358141) 도엽

 

 

진주 보잠산성(寶岑山城)

경상남도 진주시 일반성면 남산리 보잠산(寶岑山) 왼쪽 봉우리에 있는 산성이다. 돌로 쌓은 테뫼식 산성으로 고려시대에 지었다. ‘보령산성(寶嶺山城)’이라고도 한다. 훼손이 심해 본래 모습을 알아보기 힘들다.

임진왜란 때 고성 쪽에서 침입하는 왜병을 보잠산에서 성을 쌓고 싸웠다는 전설이 있다. 지금은 대부분 붕괴, 멸실되고 흔적뿐이다.

 

고성군을 향해 쌓은 것으로 보아 남쪽의 적을 막기 위해 쌓은 것으로 추정된다. 성벽은 직사각형의 깬 돌로 쌓았으며, 둘레는 약 400m이다. 남아 있는 성벽은 높이 1.4~2m, 너비 약 1.5m이다. 남문으로 추정되는 곳의 동쪽에 7단 정도의 계단이 있다. 내부에 순환로가 있다.

 

 

 

방어산

 

 

정상석 뒤편 북쪽으로 몇발 나가면 조은조망대가 있다. 월아산, 방어산, 오봉산 여항산 서북산까지 Full Wide 화면으로 조망이 된다. 얼른보고 지나갈 장면이 아니라 여기다 점심상을 폈다 (~12:25)

 

 

 

오봉산

 

 

 

 

여항산

 

 

 

 

월아산 :  진주팔경의 하나다(월아산 해돋이)

 

 

월아(月牙)산

가진(佳津)리에 위치한 월아(月牙)산은 진주의 명산이며 영산(靈山)이다. 최고봉인 장군대는 해발 482m이고, 봉화대가 있었다고 하며, 국사봉 북편에는 임진왜란 때 김덕령 장군이 의병을 조련하던 목책성과 석성이 지금까지 그 흔적이 남아 있다.

 

국사봉 정상에는 무지개터가 있어 풍수학적으로 그곳에 묘를 드리면 재상(宰相)이 난다하여 암매장이 많으므로 해마다 날씨가 나쁘거나 한재(旱災)가 계속되면 군민적인 기우제를 지내고 제단주위에 암매장묘가 있으면 해골(骸骨)을 내동댕이 치고 하던 시대가 1960년대까지 있었다. 영산이라 하여 기우제를 지내고 하산하면 비가 내렸다 하며, 조선조 진주목시대에는 목사(牧使)가 제주였다고 한다.

6.25사변 때는 국군과 유엔군은 월아산 동쪽 묵계천을 사이에 두고 북한공산군과 치열한 공방전의 전개로 예음·동산·대흥·천곡 등 4개 마을 초토화되었다.

 

 

 

시계능선은 정상석 뒷쪽이다.

 

 

진주市界는 北으로 간다.

점심 다 먹고 배낭 둘러매고 무심코 정상석쪽으로 나와보니 방향이 반대방향이라 조망바위쪽으로 ‘뒤로 돌아’ 들어갔다. 지형도상 북서 방향이지만 체감방향은 정북으로 내려간다.

 

 

보잠산에서 내려서면 산길은 확연히 달라진다. 겨울철인데도 잡목이 긁어대고 넝쿨이 발목을 걸어댄다. 학봉이 마빡에 한 대 얻어맞더니 십원짜리 백원짜리 다 ?아낸다. 여름철이면 코피터질 산길이다. 드문드문 [부산일보 산&산]과  경상대 OB Forever 선배님의 빨간 리본도 보인다. 30분간 덤불을 누비다가 올라선 봉우리가 339봉이다.

 

여기도 올라서자 말자 우측으로 꺾이는 장면인데, 무심코 정면으로 나가다가 전화벨이 울려 받았더니 아들놈이다. 애비가 산에 갔는지 회사에 근무하는지도 모르고 전화를 했다. 요일 개념도 없이 사흘들이 비번이니, 어떤 때는 마누라도 잘 모른다. 전화기 말아넣고 가만 살펴보니 트랙을 벗어난지라 발길을 돌렸다. 아들이 어문데로 가는줄 알고 전화를 했나...?

 

 

 

마을에서는 '수리봉'이라 하는 339봉. 올라서자말자 우틀이다.

 

 

이제 내려서면 아스팔트 도로가 지나가는 수리고개이고, 다음고개까지 거리를 짚어보니 탕근산 직전 도로까지 5km 넘는다. 시간을 보니 두어시간 더 진행해도 되겠다만, 덤불 구디이를 예상도 못하고 따라나선 동만과 학봉이, 또 객꾼 일당들이 제주도 가는 저녁배를 예약해놓은지라, 모처럼 한해 농사 마치고 단체로 여행을 간다는데 준비할 것도 있지 않겠나. 수리고개에서 끊기로 하고  택배를 불렀다.

 

 

"그만~"을 부르니 얼굴에 화색이 돈다.

 

 

 

 

수리고개 (수리재, 소리재)

 

 

수리고개(135m)

진주 진성면과 고성 개천면을 잇는 2차선 아스팔트 도로가 산허리를 따라 편편하게 이어지는 고갯길이다. 철망 울타리 연결부분에 터진 구멍, 다음 들머리를 확인하고 파고라 시설(쉼터)을 해 놓은데서 여장을 풀었다. 주위가 너무 지저분하다 싶었는데 객꾸이는 전화를 하고 있다.

 

"아, 그... 진성면인교?  내가 시방 외국인들과 관광을 다니는데 여기 너무 지저분해서 말이 안나오는데 말이지요..."

옆에 있던 동만과 학봉이 졸지에 외국인이 되고 말았네.

 

 

수리재(愁理嶺) : 반성 고성간 지방도로가 이어지는 곳으로 진양군과 고성군의 경계에 있는 재이다.

(예전 유래라 진주를 진양군이라 했다)

 

 

 

 

 

 

잠시 후 택배차가 도착하고, 발산재는 고성 개천쪽으로 내려가 한골재를 넘는게 빠르다. 발산재 차량 회수하고, 학봉 동네 내서IC는 진동으로 가는게 더 빠르고, 고성 마산간 도로가 얼마나 시원하게 뚫려 있는지 내서까지 순식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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