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리보트/ 이인숙
빈 조개껍데기가 쌓이듯 강가에 수복하다 밤새 달군 술집에서 흘러나온 허기와 탄식이, 목 쉰 취객의 노래 소리와 함께 공중에 부풀려 터져버린 공허가 수북하다 강을 누비던 어미 오리보트는 새끼오리를 돌보는 법이 없다 이따금 손님을 싣고 흘러간 유행가 소리만 낼 뿐 깜찍한 표정의 흰 오리, 노란 새끼오리는 아이를 싣고, 연인들을 싣지만 선택 받지 못한 오리들은 취업 못한 젊은이처럼 일렬횡대로 서 있다 밤이 되자 다시 켜진 불빛과 소음으로 선잠을 잔 오리들은 새벽녘에야 깊은 숙면에 빠진다 엉덩이를 한껏 뒤로 뺀 채
- 시집『오리보트』(학이사, 2014) ..........................................................
‘오리보트’는 시인이 살았던 아파트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 위치한 대구 동촌유원지의 풍경이다. 평소 시인이 운동 삼아 즐겨 산책하는 코스가 금호강 둑길인데, 그곳에서 내려다본 정경일 것이다. 동촌유원지는 1918년경에 개발 조성된 유서 깊은 대구의 대표적인 도심근린공원이다. 오랫동안 시민들의 사랑을 받아온 이 유원지가 한때 금호강의 오염과 주변시설의 낙후 등으로 쇄락의 길을 걸었으나 몇 년 전 새로 말끔히 정비되어 환골탈태한 이후 특히 젊은이들의 발길을 불러 모으고 있다. 다만 노를 저어야 나가는 나무보트는 모조리 사라지고 ‘오리보트’가 그 자리를 대체했다. 지금은 출렁출렁 옛 ‘구름다리’도 철거되고 새로 생긴 222m 길이의 사장교 ‘동촌해맞이다리’밑을 오리보트가 오가고 있다.
이 시는 시인의 문단 데뷔작이기도 하다. ‘빈 조개껍데기가’ 강가에 수북이 쌓인 건 아마 한때 창궐했던 ‘조개구이’집에서 배출된 것일 터. 그게 시인의 눈에는 ‘공허’의 더미처럼 보였던 것이다. 밤새 ‘목 쉰 취객의 노래 소리’가 ‘공중에 부풀려 터져버린’ 잔해였으니 시인의 마음자락에는 불편한 무언가가 도사려 있는 듯하다. 그런 시선의 앵글이 ‘오리보트’로 옮겨간 정황이었으므로 부정적인 심사가 바뀌지 않았을 것이다. 시인에게 오리보트는 비교적 몸집이 큰 흰색과 그보다 작은 ‘새끼오리’로 변별되어 눈에 들어왔다.
‘강을 누비던 어미 오리보트는 새끼오리를 돌보는 법이 없다’ 제 팔 제가 흔드는 이러한 양상은 사회적 불평등과 불균형을 시사하고 있다. ‘일렬횡대로 서 있’는 ‘선택 받지 못한 오리들’이 ‘취업 못한 젊은이처럼’ 보였다. 시인에겐 두 딸이 있고 밑으로 아들 하나가 더 있다. 어쩌면 그 가운데 시인의 자식도 하나 끼어있을지 모르겠다. 두 딸은 출가를 했고 이 무렵에 아들의 취업 문제가 현안이었을지도 모르겠다. 어느 집안이라도 사정은 비슷하리라. 그 연배쯤 되면 최대의 걱정거리가 노후 대책과 한결같은 자식 걱정이다.
평균 수명이 늘어난 현실에서 특별히 모아놓은 돈이 없고 그렇다고 일정한 연금을 받는 처지도 아닌 경우의 노후 대책은 절박한 문제다. 그와 함께 과년한 자식들이 제 앞가림을 못하고 있다면 이만저만한 근심이 아닐 수 없다. 자식들이 부모의 그늘에서 벗어나는 시기가 늦어지는 현실에 대한 안타까움이 시편 가득 감돈다. 취업을 했다손 치더라도 자녀들이 자신들의 기대에 미치지 못해 마음고생을 하는 부모들도 주위에는 적지 않다. 시인의 아들은 현재 안정된 직장을 얻어 결혼 적령기에 있다. 염려가 떠날 날이 없다. ‘엉덩이를 한껏 뒤로 뺀’ 오리보트가 ‘미운 오리’처럼 보이는 날이지만, 그래도 사랑스러운 내 새끼들이다. 시인은 그런 오리보트 같은 자식 셋과 임종 사흘 전에 나온 시집 ‘오리보트’를 남기고 어제 세상을 떠났다.
권순진
Sunset One The Hills - Andante |
출처: 詩하늘 통신 원문보기 글쓴이: 제4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