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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 하십니까 ?
우리 동기중에 현역으로 근무하고 계시며 현재 외국선박회사의 배를 움직이고 (직책 ; 선장) 있는
사공 윤 친구가 최근에 김연수친구한테 아래와같은 선박생활의 변천사를 보내와 알려 드립니다.
상기 사공 윤 친구는 약 35년여동안 해상 생활을 하여온바 많은 Know How가 있으리라 믿습니다.
이제 우리 친구들을 위하여 그동안의 삶의 애환을 들려줄수 있으리라 믿습니다.
우리 친구들의 많은 격려를 부탁 드립니다.
감사 합니다.
재경 총무 최길현
보고싶은 친구들아
내가 지금 승선하고 있는 배는 DEADWEIGHT 76,633 MT 길이 224.94M 선폭 32.26M 로 흔히 PANAMAX라고하는. 화물을 76,633 Metric Ton 선적할 수 있고 1910년 개통한 Panama 운하(폭 34 Meter)를 통과 할 수 있는 가장 큰 선박이라는 것이지(많은 PANAMAX들 중 한척)
본선의 전 승조원은 20명이며, 선장을 제외한 19명은 모두 필리핀 선원이어서 한국말이 하고 싶고, 김치가 먹고 싶고, 된장찌게가 그리운 사람이라네.
1978년에 처음 3등항해사로 승선생활을 시작했으니 벌써 34년이 지났네.
자기 사업을 하는 여러명과 나처럼 특수직종에 종사하는 소수만 빼고 대다수 친구들은 현직에서 RETIRE하여 나름 즐거운 나날을 지내고 있겠지.
바다에서 날아 온 한국말이 하고 싶은 친구의 넉두리라 생각하시게.
젊은 시절 한때는 해상생활을 계속해야 하나 하는 고민도 많이 하였었는데 어찌어찌 하다 보니 지금까지 오게 되었고, 친구들 중 성완용이는 ENGINE PART로 외아들이라 해상생활은 하지 않고 울산 현대 미포조선소에서 근무하다 1983년경 DOCK 수리중인 그리스 선박에서 기관실 화재로 인해 인명사고 발생시 명을 달리 하였지.(승선중 소식을 들음 – 해기사협회에서 발행하는 海技지를 통해서)
나도 승선선박이 수리차 입거중 친구의 집을 방문한 적도 있었는데 참 그립구만.
다른 친구 유민수 와 배명수도 2등항해사까지(3,4년정도) 하다가 해상생활 끝낸 걸로 알고 있고, 강신창이는 1등항해사까지 하다가 항만청으로 이직 한 것으로 알고있지.
처음 승선했을 때가 생각나는군. 지금은 여러가지 최신 항해장비등 본선 위치를 쉽게 알 수 있는 장비가 있지만 당시에는 SEXTANT(육분의)라는 태양이나 별 등의 고도를 측정하여 본선 위치를 계산하는 장비뿐으로 일본의 어느 항구를 출발하여 태평양을 건너 SAN FRANCISCO를 입항하는데 태평양 날씨도 좋지 않아 태양과 별 볼일도 별로 없고 ROLLING PITCHING으로 똑바로 서기도 힘든 상태에서 잠시 얼굴을 내민 태양의 고도를 측정하며 항해하는데, 정말로 SAN FRANCISCO 항구를 제대로 찾아 갈수 있을까? 의구심이 많았지, 지나가는 선박도 없는 망망대해를 그렇게 2주정도 지나 GOLDEN GATE BRIDGE아래를 통과하였으니 당시는 참으로 신기하고 그 위치 계산법을 만들어낸 선구자들이 정말 존경스러웠지.
지금도 각 선박에는 SEXTANT를 법정비품으로 비치하고 있으나 요즘 항해사들은 어떻게 사용하는지
아는 사람이 없고, GPS를 이용 쉽게 본선 위치를 구하지.
요즘 육상에서는 GPS NAVIGATOR가 보편화 되어 있지만 선박에서는 20여년 전부터 사용했고.
당시에는 내가 촌놈 이어선지 모르나 영화에서나 보았던 타자기를 사용하여 C.Q.I.(CUSTOMS, QUARANTINE, IMMIGRATION) 입항서류를 작성하였으니 촌놈 출세했다 생각했던 때도 있었네.
1967/8 년도경 한창 한일회담 반대 데모 하던 때, 당시 중앙 정보부장이던 이후락씨가 학생들을 선발
하여 정보부를 견학시켜 준 적이 있었는데 통신실을 구경하던중 타자기와 똑같이 생긴 것이 저 혼자서 열심히 치길레 신기해서 한참을 보고 있었는데 승선하고 나서야 그것이 바로 TLX라 하는 것이라고 알았지.
통신시설의 발달로 본선에서도 PC나 전화를 사용 INMASAT 위성을 이용하여 육상과 통신하고 있으며 고급선박(돈을 많이 들인) 대형 여객선 등에서는 INTERNET이 바로 이용되는 선박도 있다고 하더군.
현재 선박에 설치된 대부분의 RADAR는 MADE IN JAPAN으로 일본이 RADAR 기술 강국이지만 미국에 선전포고 하던 당시에는 RADAR도 없이 태평양 전쟁을 도발한 일본은 참으로 대단한 사람들이라 생각되네.
재독학자 송두율이 자기는 남과북의 경계에 있는 경계인이라 하드만, 지금까지 해상에서 생활하다보니 우리사회에 깊이 들어가지 못하고 그렇다고 다른나라에도 부둣가에서만 머물다 만, 바다에서 떠돌아
다니는 나야말로 경계인이 아닌가 생각 되는군.
근래에 와서 이 생에서 더 해보고 싶은 것이 있다면 해적선 선장이라네. 왜냐고? 육상에서도 공직이나 기업체 심지어 자기 사업하는 사람도 만사가 자의 보다는 타의에 의해 더 움직이는 것 같고, 자유로운 영혼이 되고파 바다로 나왔는데 송화주와 수화주의 결정에 의해 선박은 이동하고 승조원은 선박이 가는데로 따라기기만 하다보니 내 의지는 어디로 갔는지 아직도 마젤란 해협을 통과해 보지 못했다네 그래서 이제라도 내가 하고싶은 대로 하고싶어서.
어떤 친구가 그러더군 생선회는 실컷 먹겠구만 이라고, 우리는 어선이 아니고 상선이라 생선은 돈 주고 먹어야 한다네.
또 어떤 사람이 육상에서 하는 일도 잘 안되고 어려운데 배를 탈 수 있느냐 묻더군. 해서 말했지. 육상에서 안되는 사람은 해상에서도 안된다고, 왕년에 해상생활을 하다 선박회사에 근무하던 사람이 잠시 2주 정도 승선하는 경우가 있었는데 3일정도 지나니 안절부절하더군 위성전화를 계속 들고 있더군 처자식이 보고싶어 어쩌질 못하고 있더구만, 우리는 어느날 갑자기 출근하면 일년 후에나 퇴근하고(요즘은 8개월 정도면 휴가 갈수 있지만) 3-4일만에 일년 사계절을 경험하는 경우도 있으니 계절감각 및 세월에 둔감하지만 사랑하는 사람과 떨어저 생활하는 외로움을 이겨내야 하고, 승조원이 적어 내가 할 일을 다른
사람이 대신해줄 수 없어 책임감이 강해야하고, 대양에서 장비의 고장이 발생한 경우에도 육상에서는 전문가 수리가 쉽게 이루어 지지만 해상에서는 우리 스스로가 처리해야 한다네 물론 중요한 장비의 SPARE PARTS는 가지고 다니지만, 또 험한 파도 및 역경을 이겨낼 수 있는 용기와 뱃짱이 있어야 한다네.
선박에서는 LEFT 또는 RIGHT라 하지 않고 PORT, STARBOARD라고 하지. 오래 전 범선시대가 끝나고 POWER DRIVEN VESSEL(동력선) 시대가 오면서 PROPELLER를 사용 선박의 추진력을 얻고, PROPELLER는 대개 전진시 RIGHT HAND TURN(우회전) 함(뒤에서 보았을 때) 후진시는 좌회전,
대개 선박이 부두에 접안(ALONGSIDE)시 선수에 MOORING ROPE 잡고 ENGINE을 후진 즉 PROPELLER를 좌회전 시키면 PROPELLER에서 발생한 배수류가 선수쪽으로 좌회전하고 흐르며 본선 우측 선미를 외쪽으로 밀어주게 되어 선미가 왼쪽으로 밀리게 됨 이런 현상으로 주로 좌현 접안을 하게 되며 그래서 왼쪽을 보면 항구가 보이고 오른쪽을 보면 별이 보인다 하여 왼쪽을 PORT 오른쪽을 STARBOARD라 한다는 야그가 있음(믿거나 말거나), 허나 요즘은 TUG BOAT가 여러척 본선 옆에 붙어서 밀고/당기며 본선을 BERTHING 시켜 주고 있음.
어떤 친구가 백마 타 보았냐 하더군. 백마나, 흑마나, 갈마나 대동소이 개개인에 따라 다르다는 것을 이제는 다들 잘 알고 있겠지.
오래전 3등항해사 시절 당시는 우리네 각 가정마다 TV가 귀한 시절, VIDEO는 더더욱 보기 어렵던 시절 미국에서는 PORNOGRAPHY 상영관이 있었지.
어느날 본선 승조원 몇몇이 구경 갔는데 당시 재외근무중인 상사 직원이 부인과 함께 구경 중 부인 왈 미국땅이니 한국말은 아무도 못 알아듣겠지 하고 남편에게 “여보,여보” “우리도 있다가 저렇게 한번 해봅시다” 그 소리를 들은 우리 승조원 못 들은 척 하시지 짖굳게 “잘~~ 해보슈” 그소리를 들은 그들 부부 크게 놀라고 부끄러워 줄행낭 한 일도 있다네,
육상과 통신을 모르스 부호를 이용 할 때는 통신장이 승선하고 있었으나 통신장비의 발달로 TLX, VOICE, 또는 PC등을 이용 평문으로 통신하다보니 통신장의 필요성이 줄어들게 되니 항해사들에게 GOC(GENERAL OPERATING CERTIFICATE)라는 증서를 주면서(실제로 통신장비를 사용할 줄 알던 모르던) 1990년대 초 대개의 선박에서 통신사들을 하선조치 하였지. 그래서 통신사 일은 선장에게 돌아가게 되었지.
오래전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화장실에 가는데 앞서 가던 어떤 젊은 친구가 입구에 있는 화장지를 여러장 뽑아 들더군, 큰일 보러가는 모양이로군 하였는데 나하고 옆에 서서 일 끝낸후 흔들어 터는 것이 아니라 꾹꾹 눌러 짜더군, 허!! 그거 좋은 방법이네,
나이들면서 몸과 옷, 입에서 냄새 안나게 관리 잘 하시게 들 점점 전립선도 안 좋아져 가는데 흘리지 말고, 손자 손녀들이 달려들면 서 있지 말고 얼른 앉아서 안아주도록 숨도 잠시 멈추고.
옛날에는 객사는 호상이 아니라 하였는데 이제 나이가 점점 많아지다 보니 객사야 말로 가장 바람직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더군, 병원에서 생명줄을 연결하고 오래 사는 것 보다는 활기차게 걸어 다니다 길거리에서 쓰러지는 것이 호상이 아닐까 하네.
열심히 운동 많이 하시게, 등산도 많이 다니시고, 잘먹고 잘빼고 신진대사가 원할하면 건강한 몸이 아닌가 하네(특별한 병이 없다면) 나도 날씨가 허용하면 매일 1시간- 1시간 반 정도 속보로 갑판을 돌고 있다네.
다들 잘 알고들 있겠지만 SOMALIA를 중심으로 인도양 대부분을 IMO(INTERNATIONAL MARITIME ORGANIZATION) 라는 국제해사기구에서 HIGH RISK AREA로 정하여 항해를 자제시키고 어쩔 수 없이 안으로 들어가야 하는 경우에는 선사에서 추가로 보험료를 부담하고 항해한다네.
우리도 지난 항차(VOYAGE) 카나다 VANCOUVER에서 석탄 선적하여 파키스탄 카라치 옆 BIN QASIM이라는 곳에 DISCHARGING 을 위해 HIGH RISK AREA를 항해하는 동안 선체외판 옆에 이중으로 철조망 설치하고 인도 해안에서 12마일 안으로 항해 한 일도 있다네.
인도 COAST GUARD들은 인도항을 입항하는 것도 아닌데 12마일 이상 나가라고 밀어내려고 하더군.
요즘은 스웨즈 운하를 통과하여 항해하는 선박은 무장 GUARD TEAM을 승선하여 HIGH RISK AREA를 통과한다고 하더군.
몇 년전 서부 프랑스 LAPALLIS(?)라 하는 곳에서 곡물 25,000MT 정도 선적(HANDY SIZE 선박)하여 스웨즈 운하 통과하여 마다가스카르 오른쪽 모리셔스라는 작은 섬나라 PORT LUIS에 입항하라 하여, 선사 및 영업 부서에 도움 요청 하였으나 CHARTERER측에서 가라 하면 가야 한다 하기에 본선이 납치되면 선사도 손해 발생하고 선원들 빼내려면 고생할 것 아니냐 하며 CHARTERER에 부탁하여 아프리카 서쪽으로 돌아가게 해 달라고 하였으나 안되어 결국 직접 CHARTERER에게 SUEZ통과하면 통과세도 지불해야 하며 위험부담도 있는데 아프리카 서쪽으로 돌아가면 한나절 정도 더 항해하게 되고 BUNKER 추가 비용도 그리 많은 것도 아니니 아프리카 서쪽으로 돌아가게 해 달라고 일주일 정도 승강이 하여 결국 돌아가기로 결정하였지. 그 결과를 선사에 통보하니 선사에서는 본선에서 잘 처리 했다고 하더군, 선상생활도 좋은 선사에서 해야 함을 느끼게 한 경우였지(한국선사로 국내에서 네 손가락 안에 드는 선사였는데)
우리들 해상생활 하는 사람들은 휴가중 집에서 식탁위에 있는 유리잔을 개수대나 식기함으로 옮기거나 또는 장롱등을 넘어질까 끈으로 묶으려 하는 행동을 하면 해상생활 정리해야 한다는 야그가 있는데, 아직 거기까지는 가지 않은 것 같네.
휘영청 밝은 달빛아래 잠 못 이루며 이것이 처음이자 마지막이 될 수도 있고 다음에 다시 소식 전할 수도 있고 아무튼 잘 모르겠네 ….
2012. 11. 18
첫댓글 동기 동창이 480명에 이르니 요즘 만나면 얼굴을 보아도 모르겠고 이름을 들어도 모르는 동창이 부지기수인데, 사공 윤 동창은 내가 얼굴도 기억하고 이름도 기억하는 것으로 보아 학창시절 어느정도는 알고 지냈던듯하네.
But, 아무리 생각해도 나와 사공 윤 동창이 어떻게 지냈기에 내가 얼굴과 이름을 기억하고 있는지를 모르겠어. 아마도 나만 기억하고 사공 윤 동창은 나를 기억하지 못할지도 모르겠다 싶다. ^^
아직도 현역 일선에서 선장의 직책으로 오대양 곳 곳을 누비고 다니는 동창이 부럽네. 물론 남들이 이해 못하는 애환도 많겠지만 일단 나이들어 직장에서 물러난 내 입장에서 하는 소리지. 내 내 행복하기 바라네.
참으로 오랫만에 보는 친구의 이름에 감개가 무량합니다.소식을 몰랐는데 아직도 현역에서 맹 활약하심에
존경심마저 듭니다.부디 건강하시게 해상생활을 하기를 기원드립니다.가슴 뭉클한 좋은 소식글에 감사드립니다.
연수친구! 사공 윤 친구소식을 전해줘 고맙네. 인상 만큼이나 젊잔고 품위있는 친구이지.
수년전 어느 친구 아들 결혼식장에서 잠간 만나서 배를 타는것은 알고 있었지만 아직도 현역으로 일하고 있다는
소식을 접하니 대단하다는 생각이 드네.그것도 엄청나게큰 상선의 선장으로. 윤이 친구 부디 건강하시고 은퇴후
에라도 얼굴한번 보고싶네. 글 마지막 줄 귀절에 가슴이 뭉클해져오네.
연수친구도 틈나는대로 윤이 친구소식도 전해주시고....감사합니다.
연수야! 좋겠다! 그 많은 친구중에 너를 기억하고 선택해준 사공 윤 같은 친구가 있으니....
나도 학창시절 어렴푸시 생각이 난다만,정말 반갑고 대단한 친구네 그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