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스트학습사례 우수작 - 꿈꾸는 방송대인의 행복한 학습법 (감동했어요)

[강창조(전북문교132)]

45살의 나이로 신입생이 되다

지금으로부터 정확히 12년 전 처음으로 대학생이 되었다. 고등학교를 졸업한지 25년 만에 우리 대학에 입학을 한 것이다.

입학하기 2년 전부터 좋아하는 글쓰기를 배우기 위해 인천문화원 문학창작반을 다니고 있었다. 학창시절부터 글을 잘 쓴다는 말을 종종 들었고 막연하게 작가가 되는 꿈을 가지고 있었기에 시작한 일이었다.

문학반에는 나처럼 고등학교를 졸업한 전업주부들이 대부분이었지만 국문과를 포함한 대학출신자들도 여럿 있었다. 선생님은 성격이 분명하고 지도에 열정적이셨는데 그 열정 때문에 상처를 받기도 했다. 거기다 난 선생님의 지적을 잘 이해하지 못해 더 더욱 상처를 받았다. 그러면서도 배움의 즐거움이 커서 그만두질 못하고 계속 다녔다.

그곳에서 만난 친구가 방송대 입학을 권유했다. 고등학교시절부터 방송대에 관심은 있었지만 고등학교 성적이 좋지를 못해 엄두를 내지 못했었다. 그 친구는 나이가 많으면 가산점이 주어지니 염려하지 말라고 했다. 그렇게 해서 새천년이 시작되는 2000년 45살의 나이로 국문과에 입학을 했다.

홀모델을 마난다

내게 입학을 권유한 친구는 국문과를 1등으로 졸업한 학생이었다. 그 때문일까 다른 사람들은 목표가 4년에 대학을 졸업하는 것이었지만 나는 장학생이 되는 것이었다. 첫 강의는 윤용식 교수님의 대학국어로 TV강의였다. 윤교수님은 입학을 축하하며 어떻게 대학생활을 해야 하는지에 대해 이야기를 하셨다. 친구와의 만남도 TV시청도 줄이고 공부를 해야 한다고 하셨다. 입학을 권유한 친구도 자신은 공부할 때는 초인종 소리가 나도 문도 안 열어주고 전화도 안 받았다고 했다. 또 교과서는 3번씩 읽고 강의는 다 들었다고 했다. 난 아주 훌륭한 롤 모델을 둔 셈이었다. 대신 스터디 활동은 하지 않았다. 공부는 혼자 하는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것은 지금 생각해도 아쉬운 점이다. 다행인 것은 내가 운이 참 좋았다는 것이다. 출석 수업을 3월에 했기 때문에 일찍 좋은 친구들을 많이 사귈 수 있었다. 스터디 활동은 하지 않았지만 내가 사는 지역에 속한 스터디 친구들의 도움을 많이 받았다. 특히 내게 많은 도움을 주었던 친구는 지금도 연락을 하며 지낸다.

기왕에 하는거 부지런히제대로

나는 비교적 사람들의 말을 경청하는 편이며 잘 받아들이는 편이다. 앞서 이야기한 윤교수님, 입학을 권유한 친구의 말을 마음에 새기고 실천하려 노력했다. 당시의 강의는 녹음테이프, 라디오와 TV로 이루어졌다. 또 지역대학에서 하는 특별강의가 있었다. 그 중에서 대학영어 특별강의의 인기가 참 좋았다. 많은 학생들이 고등학교를 졸업한 지 10여년 이상 영어에 손을 놓고 있었기 때문에 그 과목을 힘들어 했고 선배들도 통과하기 어렵다며 겁을 많이 줬기 때문이다. 어쨌든 상당히 많은 학생들을 수용할 수 있었던, 강당을 이용한 강의실이 학생들로 빽빽이 들어찼기에 의자가 부족해 서서 듣는 학생들도 부지기수였다. 일요일에 이루어졌던 그 강의 시간, 좋은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아니 의자를 차지하고 앉아 수업을 듣기 위해 일찍 서둘러 학교로 갔다. 덕분에 늘 앉아서 강의를 들었고 교과서를 3번 독해했더니 그 어렵다는 대학영어Ⅰ, Ⅱ에서 A학점을 받았다.사람들은 학점 이수에만 관심이 있는 것 같았다. 그래서 온갖 요령과 편법을 동원했다. 애초에 방송대에 온 목적은 잊고 학점 따기에만 골몰했다. 왠지 난 그런 모습이 싫었다. 기왕에 공부를 하려고 들어왔으면 제대로 공부를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먼저 이해가 되던 안 되던 교과서를 죽 흩어 읽고 한 장(章)을 정독하고 그 부분에 관한 강의를 듣고 중요한 부분은 밑줄을 긋고 보충설명은 여백에 써넣었다. 시험 때는 중요한 부분과 보충설명 부분을 다시 읽고 강의를 다시 들었다. 강의는 테이프이거나 내가 녹음 혹은 녹화한 것이었기에 책을 읽다 눈이 아프거나 피로하면 소파에 누워 들었다. 시간을 절약하고 잠을 자지 않으려는 궁여지책이었는데 그래도 깜박 잠이 들곤 해서 다시 돌려 듣곤 했다.

교과서에서 언급한 책은 될 수 있는 한 보려고 노력했다. 국문과를 나왔으면서 한국문학작품을 제대로 읽지 않았다는 것은 수치스러운 일이라는 생각에서였다. 교과서 외의 책은 주로 방학, 특히 겨울방학을 이용해서 읽었다. 그렇게 해서 처음에 세운 목표대로 내내 장학생으로 4년을 보냈다.

수박 겉핥기식이 아닌 폭넓은 공부를

주변의 학우들은 말했다. 실업계 고등학교를 나왔으면서 어떻게 그렇게 공부를 잘할 수 있느냐고 아마 머리가 좋은가보다고. 하지만 그렇게 말하는 학우들이 틀렸다. 그건 성실한 노력의 결과이기 때문이다. 또한 수박 겉핥기식이 아닌 폭넓은 공부를 한 결과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고등학교 시절 마구잡이로 읽은 독서 덕분이기도 하다.고등학교시절 책에 미쳐 살았다. 어차피 대학도 가지 않을 것 공부가 시들해졌다. 대신 도서관에 틀어박혀 문학서적들을 읽고 또 읽었다. 빌려온 단행본은 하얗게 밤을 새우며 하루에 한 권씩 뚝딱 읽어치웠다. 그래서 엄마는 전깃불 닳는다며 일찍 자라고 채근을 하곤 하셨다. 어느 일요일엔가는 전날 책을 읽느라고 늦게 자 아버지 표현대로 ‘해가 똥구멍을 치받는’데도 일어나질 않자 화가 난 엄마는 “네가 문장이 될래. 책버러지가 될래. 빨리 일어나지 않을 래” 하고 소릴 치셨다. 덕분에 학교 공부는 엉망이어서 당시 꿈의 직장이던 은행은 꿈도 못 꾸고 작은 규모의 회사 경리사원으로 전전하다 결혼을 했다. 그렇지만 그때 읽은 책들이 이렇게 대학공부에 도움이 될 줄 어찌 알았겠는가.

공부의 목적, 열망을 기억하다

내가 대학에 들어온 것은 졸업장 때문도 취직 때문도 공부에 포한이 져서도 아니고 글 쓰는데 도움이 될까 해서다. 그래서 대학에 다니면서도 문화원 문학창작반에는 계속 나가고 있었다. 그렇지만 창작에 전념할 수가 없어서 선생님께 숱하게 꾸중을 들었다. 나중에는 본말이 전도된 이 현상을 어떻게 이해해야 좋을지 몰라 ‘공부를 쉴까’ 생각하기도 했었다. 그러다가도 ‘조금만 참자 글 쓰는 일은 졸업하고 열심히 하면 되지’하며 스스로를 다독였다. 그러나 막상 대학을 졸업하자 동시에 고등학교를 졸업한 아들이 대학에 진학을 하고, 만만하지 않은 학비 때문에 돈을 벌어야 했다. 그렇게 문학은 나에게서 멀어져 갔다.

문학창작반 수업을 듣기 위해 자유공원을 오르는 것만으로도 행복했던 시절을 뒤로 하고 아이들을 모아 독서논술을 가르치는 선생이 되었다. 이 일이 어느 정도 몸에 익자 비로소 문학에 대한 내 열망이 서서히 머리를 들기 시작했다. 마침 기회가 돼서 다시 문학공부를 시작했고 그토록 열망하던 작가로 등단을 하게 되었다.

세로운 도전

2011년 나는 다시 방송대 학생이 되었다. 교육학과에 편입을 한 것이다. 나이는 어느새 50대 중반이 되었고 비록 반일제이긴 하지만 직장에도 나가고 있었다. 과연 대학공부를 제대로 해낼 수 있을까 숱한 고심 끝에 한 번 해보기로 결론을 내렸다.

막상 편입을 하고보니 많은 것이 바뀌어 있었다. 수강신청에서부터 강의 듣는 것 과제물 제출까지 모든 것이 인터넷을 통하여 이루어졌다. 내 앞에는 목적지만 있고 이정표는 없는 길 아닌 길들이 덤불에 덮이어 모습을 감춘 채 놓여있었다. 어디로 어떻게 가야 좋을지 학교에 물어도 어느 누구도 친절히 가르쳐 주지 않았다. 묻고 또 물으며 앞으로 나갔다.

이제 나는 10년 전에 40대의 용감한 학생이 아니었고 세상은 나를 앞서 저만치 가고 있었다. 친절한 안내자가 필요했다. 스터디에 가입하기로 했다. 내 예상은 틀리지 않았다. 스터디에는 내가 의지할 수 있는 젊은 친구들이 서너 명 있어 신속하고 정확한 정보를 물어 날랐다. 정보는 이 친구들이 제공해 주었지만 공부 방법은 예전 식을 따랐다. ‘공부에는 왕도가 없다’는 말을 굳게 믿었기 때문이다.

대학공부를 해봐서 그런지 생각보다 어렵지 않았고 요령도 생겼다. 또한 예전에는 없던 워크북이 있어 따로 노트필기를 하지 않아도 좋았고 강의록을 복사할 수 있어서 교과서는 한 번만 읽으면 되었다. TV강의도 인터넷을 통하여 다시 들을 수 있으므로 시간을 맞추느라 긴장하지 않아도 좋았고 복사를 뜰 필요도 없었다. 나도 비로소 문명의 利器(이기)의 혜택을 누리게 된 것이다.

사람은 환경에 적응하면서 살아가는 동물임에 틀림없다. 뿐만 아니라 환경에 적응하기 위해 끊임없이 도구를 발명하는 창조성과 그 도구를 자신의 생활에 맞게 이용하는 응용력을 지니고 있다. 이를 통해 끊임없이 진화하는 것이니 그 진화는 인간뿐만 아니라 조직도 마찬가지다. 내가 처음 방송대에 입학했을 때는 전업주부였다. 하나밖에 없는 아이는 중학생이었고 전업주부생활에도 이력이 붙어 시간이 비교적 여유로웠다. 또한 체력도 제법 쓸 만 했다. 그랬기에 교과서를 3번씩이나 읽으며 공부할 수 있었다. 그러나 2011년 편입 했을 때는 직장생활을 하고 있었고 50대 중반으로 체력이 하향곡선을 그리는 시기였다. 더군다나 ‘한국어교사자격증 시험 준비’도 함께해야 했다. 만약 방송대가 인류가 발명한 문명의 이기-컴퓨터에 기반한 인터넷-를 이용하여 진화하지 않았다면, 대학주변 서점에서 참고서에 매달리는 학생들에 주목하여 워크북을 만들지 않았다면 간신히 기본학점이나 이수하는 졸업생이 되었을 것이다. 그리고 변화된 환경에 적응하느라 스터디에 가입하지 않았다면 역시 기본학점이나 이수하는 졸업생이 되었을 것이다. 2012년 12월 마지막 시험이 끝나고 망년회를 겸해서 우리 스터디학우들이 만났다. 졸업하면 팀을 해체할 것인지 계속 만날 것인지를 의논했다. 내 의견을 묻는 학우에게 이렇게 대답했다. “젊은 그대들이 만나주겠다는데 마다할 이유가 있어.” 우리는 만남을 계속 이어가기로 했다. 처음 스터디를 결성했을 때 10명도 넘었던 인원 중 마지막까지 남은 7명이었다. 아마도 이 모임은 오랫동안 이어질 것 같다. 교육학과에 편입해서 얻은 가장 값진 결실이다.

2013년 2월 방송대학을 두 번째 졸업하게 되었다. 더불어 평생교육사와 한국어교사 자격증도 취득하게 되었다. 그것은 하루 24시간을 쪼개 쓰며 주부로서 직장인으로서 학생으로서 성실히 산 결과이다. 이런 내가 자랑스럽다.

[조정옥(문화교양11/전북)]

저 역시 마흔다섯에 방송대를 만났고, 나름 열심히 공부하였다 자부하지만 이분의 열정 만큼은 미치지 못함이 부끄럽네요. 다시 초심으로 돌아가 열공해 봐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