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월이
이 태 준
산월(山月)이는 오늘 저녁에도 잊어버렸던 것처럼 제 나이를 따져보았다.
“흥, 스물일곱! 기생은 갓스물이 환갑이라는데…….”
산월이는 머리맡을 더듬어 자루 달린 거울을 집어 들었다. 그리고 스물일곱은커녕 서른 살도 넘어 보이는 제 일굴을 한참이나 훑어보다가 화가 나는 듯이 거울을 내던지고 거의 입버릇처럼,
“망한 녀석!”
하고는 한숨을 지었다.
이 산월이의 ‘망한 녀석!’이란 늘 두 녀석을 가리킨 것이다. 한 녀석은 지금으로부터 오륙 년 전에 산월이에게 미쳐서 다니다가 산월이가 그렇게 말리는 것도 듣지 않고 아편을 찌르기 시작하여 마음씨 착한 산월이의 알돈 사천 원을 들어먹고 나중에는 산월이 집에서 독약을 먹고 죽어 송장 감장도 감장이려니와 죄 없는 산월이를 수십 차례나 경찰서 출입을 시킨 윤가(尹哥)라는 녀석이요, 다른 한 녀석은 산월이가 스물네 살 되던 해 봄인데, 제법 화채 한푼 이렇다 못 하는 뚝건달 녀석 하나가 꿈결같이 하룻밤 지내고 간 뒤에 산월이의 그 매부리코만은 그냥 붙여 두었을지언정 육자배기 하나로 굶지는 않을 만큼 불려 다니던 그의 목청을 그만 절벽으로 만들어 놓고 간 이름도 성도 모르는 녀석이다.
산월이는 이 두 녀석 놀래를 안 하자면서도 제가 제 신세 타령을 하려니까 자연 그 두 녀석이 뛰어나오는 것이었다.
말하자면, 기생의 돈이라 무슨 성명이 있으료마는, 다른 기생과는 달라 박색한 탓이었던지 제법 큼직한 녀석이라고는 한 번도 건드려 보지 못한 산월이에게 있어서는, 사천 원 돈이라는 것도 일조일석에 생긴 것이 아니라, 십여 년 동안 그야말로 뼛골이 빠지도록 목청을 팔아서 푼푼이 모았던 돈이었었다. 그러나 설사 그것은 몇만 원의 큰돈이었다 하더라도 한때 즐기던 정남이나 위해 써버린 것이니 산월이 같은 마음에 누구를 칭원할 것도 아니지만 그 녀석, 그 듣도 보도 못하던 뚝건달 녀석으로 말미암아 자기에게는 둘도 없는 밑천인 목청을 결딴내인 것을 생각하면 그만 그 녀석을 찾아서 당장에 육시를 내고 싶도록 치가 떨리었다.
아닌게아니라 산월이는 목청 하나뿐이 재산이었었다. 그의 목이 한번 그 몹쓸 병에 잠겨 버린 뒤에는 그의 생활이 너무도 소상스럽게 변천하여 왔기 때문이다. 전셋집은 사글셋집으로 떨어지고, 사글셋집은 다시 사글셋방으로 내려앉아, 지금은 머릿장 하나도 없이 여관집 빈방으로 떠돌아다니니 쓸데없는 줄은 알면서도 왜 넋두리가 나오지 않을 수 있으랴.
산월이는 열시 치는 소리를 듣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침 열시가 아니라 밤 열시기 때문이다.
어젯밤에도 새로 세시까지나 미친년처럼 싸다니다가 손발이 꽁꽁 얼어 가지고 혼자 들어서고 말 때에는 울고 싶도록 안타까웠던 것을 생각하니 오늘 저녁도 또 헛수코가 되면 어쩌나 하고, 보는 사람은 없어도 무안스러운 생각부터 들어갔다. 그리고 그저께 밤에 당한 일도 다시 눈앞에 떠올랐다. 거의 문 앞까지 곧잘 따라오던 양복쟁이가 쓰단 달단 말도 없이 휙 돌아서서 가버린 것과,
“여봐요, 날 좀 보세요.”
하고 두어 번이나 불러 봤지만,
“쑥이다 쑥이야.”
하면서 뺑소니를 치던 것을 생각하니 다시금 얼굴이 화끈거리기도 하였다.
그러나 이왕 막다른 골목에 나선 길이라, 산월이는 새끼손 끝으로 방울지려는 눈물을 지우며 경대 앞으로 다가앉았다. 그리고 언제나 마찬가지로 머리맡에 놓여 있는 알코올 등잔에 불을 댕기고, 그 위에 단 머리 지지는 가위를 걸쳐 놓았다.
이것은 다른 기생들과 같이 남과 맵시를 다투려는 경쟁심에서 아이론을 쓰는 것은 아니다. 천생으로 보기 싫게 벗어진 이마를 머리털을 내려 덮어 가리려니까, 언제든지 그에게는 아이론이 필요했던 것이다. 더군다나 요새 와서 컴컴한 골목을 찾아나가는 그에게는 분 바른 이마 위에 새까만 앞머리털의 농간이 얼른 잘 드러나는 유혹의 손이 되는 것을 알았기도 때문이다.
눈 온 지는 오래나 바람이 지나칠 때마다 어느 구석에 쌓였던 눈인지 얼굴과 목덜미가 선뜻선뜻하였다.
산월이는 종로 네거리에 나서서는 우선 어느 길을 잡아야 할지 몰랐다. 그래서 전차 타려는 사람처럼 안전지대에 올라서 보았으나, 황금정 편으로부터 전차가 오는 것을 보고는 얼른 찻길을 건너 종각 뒷골목으로 들어섰다.
산월이는 몇 걸음을 가지않아서 중년신사 두 사람과 마주쳤다. 둘이 다 인버네스를 입은 큰 키를 꾸부정하고 산월이 얼굴을 들여다보았다. 산월이도 한 사람과 닥뜨린 것만큼은 반갑지 않았지마는 아무튼 해족해족 웃어 보였다. 그러나, 그만 웃음은 아무 데서나 볼 수 있다는 듯이,
“나는 누구라구…….”
하면서 다시는 돌아보지도 않고 저희끼리 수군거리며 밝은 큰길로 나가 버렸다.
산월이는 또 얼굴이 화끈하였다. 한참 동안은 지나치는 사람도 끊기었다. 백합원 앞을 지나려니까, 한 자는 시궁창에 소변을 보고 섰고, 한 자는 가만히 섰는 것도 몸을 가꾸지 못하고 흔드적거리더니, 노는 계집 같은 것이 제 앞을 지나가는 것을 보고는 성난 소처럼 씨근거리고 산월이가 미처 망토에서 손을 빼기도 전에 달려들었다.
“이런…… 이게 무슨 짓이야…….”
술내가 후끈거리는 사나이 입술은 어느새엔지 산월이의 입 가장을 스치고 지나갔다.
“뭐야, 이년! 더러운 년! 쌍년! 개딸년! 투엣!”
“이 사람 보게. 고…… 고결 먹구 이래, 이…… 이런.”
하는 딴 녀석도 같은 바리에 실을 녀석이었었다.
산월이는 그 녀석과 입맞춘 것쯤은 그다지 분한 일이 아니었다. 그것보다는 그 녀석은 술김에 아무에게나 해버리는 주책없는 욕설이겠지만,
“더러운 년! 쌍년!”
하고 하필 더러운 년이라고 박는 것이 자기 밑구멍을 들쳐 보고 하는 욕처럼 살을 에는 듯한 모욕을 느끼었다. 그러나 마침 그때에 우미관이 파하여 골목이 뿌듯하게 사람이 쏟아져 올라왔다. 산월이는 새 정신이 번듯 돌았다. 그는 물결같이 올려 쏠리는 사람 틈을 쑤시고 한 가운데 들어섰다. 그리고 입으로 부르지만 않을 뿐이지 눈이 뒤집히도록 찾아보았다. 외투를 입었거나 인버네스를 입었거나 나카오리를 썼거나 캡을 썼거나 나이가 이십이 되었거나 사십이 되었거나 기름기만 도는 사내 사람으로 자기의 눈웃음을 알아채는 사람이면 누구든지의 그 누구를 우미관 앞이 다시 비어지도록 찾아보았다. 그러나 산월이의 맡등을 밟고 퉁명스럽게,
“잘못됐소.”
하고 힐끔 쳐다보던 노동자 한 사람밖에는 그를 아는 체하는 사람이 없었다.
산월이는 그 길로 조선극장 앞으로 갔다. 거기는 벌써 파한 지 한참 되어 더욱 쓸쓸하였다. 산월이는 그제야 우미관 앞에서 밟힌 발등을 톡톡 털고 나서 다시 종로 큰 행길로 나서고 말았다.
산월이는 밝은 골목이나 컴컴한 골목이나 바람만 마주치지 않는 골목이면 발길 내치는 대로 다녔다. 순경꾼의 딱딱이 소리에 공연히 질겁을 하고 돌아서다가 얼음강판에 무릎을 찧기도 하면서, 이놈이 그럴듯하면 이놈도 따라 보고 저놈이 그럴듯하면 저놈의 옆도 서보며 밤이 어느덧 새로 두점에나 들어가도록 싸다녀 보았다.
그러나 사내들은 계집이라면 수캐떼 몰리듯 한다는 것도 산월이에겐 거짓말 같았다. 서울 바닥에 이처럼 사내가 귀할까 하고 산월이는 이날 밤에도 낙망하지 않을 수 없었다.
산월이는 피곤하였다. 돈! 돈보다도 이제는 악에 받쳐서 사람이, 사내 사람이 몸이 닳도록 그리워졌다.
“돈 없는 녀석이라도!”
하고 굵다란 팔로 제 몸을 끌어안아 줄 사내 사람이 못 견디게 그리움을 느끼었다. 그래서 산월이는 동관 앞으로 와서 색주가 집들이 많이 있는 단성사 맞은편 골목으로 들어섰다.
이렇게 산월이가 제 몸이 달아서 아무 놈이라도 걸리어라 하는 판이어서 그랬던지, 의외에도 훌륭한 신사 하나가 산월이를 기다렸던 것처럼 어디서 불거졌는지 영빈루 앞을 들어서는 산월의 길을 딱 막고 서 있었다. 검은 외투에 검은 털모자에, 수염은 구레나룻이나 살결이 횐, 어떤 방면으로 보든지 중역이나 간부급에 속할 사십 가까운 신사였다.
“오래간만입니다. 혼자 이런 데를 오셔요…… 저 모르시겠어요?”
구레나룻 신사는 산월이에게서 벌써 말인사를 받기 전에 서로 눈으로 문답이 있은 뒤라 왕청스런 대답은 나올 리가 없었다.
“왜, 모르긴…… 어디서 이렇게 늦었소?”
“난봉이 좀 나서요, 호호…… 그런데 벌써 전차가 끊어졌구먼요…… 어느 쪽으로 가시는지 저 좀 데려다 주셨으면!”
“가만있자, 집이 어디더라?”
“다옥정이지 어디예요. 좀 바래다 주세요, 네?”
산월이와 구레나룻은 말로는 아직 여기까지밖에 미치지 않았으나 걸음은 벌써 큰 행길까지 가지런히 붙어 나왔다.
구레나룻은 자동차를 불렀다. 그리고 자동차 속에서 산월이의 언 손을 주물러주며,
“집이 조용하우?”
하고 운전사는 안 들릴 만치 은근하게 물었다. 구레나룻의 입에서는 약간 서양술내가 펴져 나왔다.
“나 혼자예요…… 혼자.”
구레나룻은 산월이의 목을 끌어안아 보았다. 산월이는 눈치를 따라 하자는 대로 비위를 맞춰 주었다.
자동차는 어느 틈에 작은 광교에 머물렀다. 산월이는 먼저 차를 내리었다. 그리고 차 속에 앉은 채 차삯을 꺼내 주는 구레나룻의 지갑 속엔 푸른 지전장이 여러 갈피나 산월이 눈에 비치일 때 산월이는 뛰고 싶도록 만족하였다.
산월이는 구레나룻을 데리고 가운데 다방골로 들어섰다. 걸음이 날아갈 듯이 가뜬하였다. 구레나룻도 그러하였다. 그들은 정말 나는 사람처럼 이리 성큼 저리 성큼 뛰며 걸었다.
“길바닥에 이게 웬 흙물이에요?”
산월이가 물었다.
“글쎄…… 어디 수통이 터졌을까…….”
“아이, 흙물이라니까 그래요.”
“아까 참 이편에 불이 난 모양 같더니…….”
“불이요?”
산월이는 그리 놀랍지도 않았다. ‘이 가차이서 불이 났든 물이 났든, 내 방만 그대로 있으면’ 하고, 깔아 놓고 나온 자리가 따뜻할 것 밖에는 더 행복스러울 것이나 더 불행스러울 것이나 더 상상할 여지 더 상상할 여지가 없었다.
“어딜 자꾸 먼첨 가세요. 호호, 이 골목인데.”
산월이는 수통백이 골목을 들어서면서 벌써 습관이 되어 속곳 허리띠에 달린 자기 방열쇠부터 더듬었다.
그러나 웬일일까? 주인집 대문간에 달린 전등 때문에 세밤중에 들어서도 대낮같이 환―하던 골목 안이 움 속처럼 캄캄할 뿐 아니라 발을 내어놓을 수가 없이 물천지였었다. 산월이는 그만 가슴이 덜컹 하고 내려앉았다.
구레나룻 말이 옳았다. 불이 났던 것이다. 바로 그 집에서, 바로 그 방에서, 산월이의 앞머리나 지질 줄 알던 알코올 등잔은 산월이의 몇 가지 안 남은 방세간을 태우고 두 달 치나 세도 못 낸 남의 집 방까지 홈싹 태운 후에 대문간과 행랑을 태우고 다시 안채로 옮아 붙다가 소방대 펌프질에 꺼지고 만 것이다.
산월이는 눈앞이 캄캄하였다. 그는 전신주를 끌어안고 생각하여 보았다. 아무리 생각하여도 알코올 등잔에 불을 댕긴 생각은 나도 끈 생각은 나지 않았다.
이때다. 죽은 듯이 컴컴하고 고요하던 주인집 안채에서는 그 호랑이 같은 주인영감의 평안도 사투리로 억센 욕설이 울려 나왔다.
“죽잎 놈의 에미나이! 방세도 싫으니 나녀라 나녀라 해두 안 나니더니 남의 집을…… 체…… 이놈의 에미내가 들어나 와야 가랑머리라도 찢어 놓지그리…….”
산월이는 다시 사지가 오싹하였다. 뒷걸음질을 치며 큰 골목을 다시 나왔다. 그리고 속으로 ‘아― 그이!’ 하고 좌우를 둘러보았다. 구레나룻은 보이지 않았다.
“여보세요?”
하고 나직이, 그러나 힘을 주어 불러 보았으나 대답도 들려오지 않았다. 또 한번 불러 보았다. 그래도 보이지 않쿄 대답도 들리지 않았다. 산월의 입술은 더 움직이려 하지 않았다.
그제야 산월이는 제 방에서 불이 난 것도 처음 안 것처럼 울음이 복받쳐 나왔다. 산월이는 그만 살얼음이 잡히는 진창 위에 그대로 주저앉았다. 그리고 꺼이꺼이 소리를 내어 울고 말았다. 몇십 년이나 정들이고 살아오던 제 남편이나 달아난 것처럼 구레나룻이 없어진 것이 무엇보다도 산월이의 가슴을 찢어 놓는 것처럼 쓰라림과 외로움을 주었던 것이다.
(『달밤』, 한성도서, 193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