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추천여행지] 신안군 증도면 태평염전
널찍한 ‘대파’로 소금을 모으는 염부의 힘겨운 기합이 나지막이 염전에 깔린다.
정오를 넘긴 햇볕이 정수리에 내리꽂히고 습기를 가득 머금은 해풍은 팔뚝을 휘감고 지난다. 태양이 작열하는 둑 위에는 지열이 이글거린다. ‘쌔빠지게’ 일하던 노동의 현장이 일부러 찾아가는 관광지가 되었다. 사람들은 왜 그 짜고 된 삶의 현장을 찾는 것일까……. 보물을 보러 보물섬 ‘증도’로 나섰다가 보물보다 고운 새하얀 보석을 만났다.
140만평의 소금밭
증도甑島. ‘시루섬’이라는 뜻이다. 물이 유난히 귀한 섬이라 섬을 바닥에 구멍이 뚫린 시루에 비유했다. 그렇지만 주변에 쌔고 쌘 게 바닷물. 그 짠물과 햇빛, 바람 그리고 염부의 성실한 땀방울이 새하얀 소금 꽃을 만들어 온 곳이다.
차를 실은 배는 10여 분 후에 증도 버지선착장에 닿았다. 선착장과 지척인 소금박물관이 먼저 외지인을 반긴다. 박물관은 번듯하다. 1945년 증도에 염전이 생길 무렵 지은 소금창고를 지난 7월 태평염전에서 박물관으로 고쳐 개관했다. 이래 뵈도 우리나라 최초의 소금박물관이요, 60년이 넘는 역사적 가치를 인정받아 근대문화유산으로 등록되었다.
3.5Km 뚝방에 줄서 있는 태평염전 1, 2공구 소금창고.
박물관을 둘러본 후 박물관 옆 흙길로 접어들었다. 3.5km 곧게 뻗은 방죽에 까만 소금창고가 착하게 줄을 서있다. 창고는 태평염전의 1, 2공구 지역으로 모두 스물일곱 채가 있다. 창고 하나를 염전 관리사장 두 사람이 나눠 담당하니, 총 50여 염전이 4월말부터 10월초까지 태양과 씨름하며 보석과도 같은 천일염을 생산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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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염부가 염전 결정지에서 '대파'로 소금을 모으고 있다. 염부의
'대파질'로 모은 소금은 소금창고에서 1년 정도 간수를 뺀 후 출하된다.
노동요를 부르며 서로 기운을 북돋우면서 기쁘게 소금을 생산하는 염부鹽夫들을 상상했다. 그런데 염전에는 소금 걷는 사람이 없다. 날이 뜨거워 오후 3~4시가 넘어야 슬슬 소금을 걷기 시작한단다. 그리고 소금도 그 때에 걷어야 한다.
소금박물관을 지나 바로 좌측 염전 전망대에 오른다. 5,040만m2 규모의 우리나라 최대 염전단지인 태평염전이 눈 앞에 펼쳐진다. 저 멀리 3공구 염전에 사람이 있다. 반가운 마음에 전망대 아래 소금공장 주차장에 차를 대고 자전거를 타고 3공구로 달려갔다. 마침 염부들이 소금 걷을 준비를 하고 있었다.
20일 만에 피는 꽃
“코피 한 잔 하실라요?”
붙임성 좋은 염부가 염전의 모든 것이 신기하고 궁금한 외지인에게 말을 건넨다. 커피만큼이나 뜨거운 염부의 환대에 감사하며 물었다.
“여름에는 더워서 일하기 힘드시겠어요?”
“얼마 전 하의도에서 더위 먹고 두 명이 쓰러졌당께요. 요로코롬 앉아서 소금 올라오는 거 보고 있다가 콕 쓰러져 부렀지 뭐. 허허허~”
염부는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웃으며 말한다. 더위 좀 먹는 것은 그들에게 그리 큰 고역은 아닌 듯싶다. 소금 공정에 대해 이것저것 물었다. 염부는 하나하나 성의를 다해 답해준다. 염전은 크게 세 지역 ‘저수지, 증발지, 결정지’로 나눠진다. 저수지에서 바닷물을 끌어다가 증발지에서 염도를 높인 후, 마지막 결정지에서 하루 정도 소금 꽃이 피기를 기다리다가 하얀 소금결정이 생기면 비로소 소금을 걷는 것이다. 이 과정이 20일 정도 걸린다. 우리가 흔히 염전이라고 알고 있는 곳은 바닷물이 하얀 소금결정을 이루는 결정지이다. 소금 꽃이 피면 염부들은 널찍한 밀대인 ‘대파’로 소금을 모아서 손수레로 소금창고에 옮겨 쌓는다. 그리고 1년 정도 간수를 빼고 출하한다.
빈 소금 창고에 빛이 들어온다. 이제 곧 여름 내내
거둔 소금으로 가득 찰 것이다
인부들과 노닥거리며 꼬치꼬치 캐묻는 외지인이 못내 거슬렸는지 지나가던 염전관리사장이 불편한 표정으로 한마디 던진다.
“요로케 사람들 잡고 얘기하고 있어봤자, 이 사람들 일만 못 허지……. 이 사람들 소금 다 밀고 나면 9시가 넘어서나 끝난당께요”
사람 구하기 힘든 요즘 염전 매니저의 각별한 선수 보호 멘트이다.
삶은 계속 중화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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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평염전 2공구 7호 염전의 이만석 씨(65).
올해로 45년 째 소금을 걷어 왔다.
소금체험장이 있는 1, 2공구를 향해 다시 자전거 페달을 밟는다. 볕이 한풀 꺾이자 2공구에서는 채염 작업이 한창이다. 때마침 소금박물관에서 체험하러 온 관람객으로 염전은 신나는 놀이터가 되었다. 저마다 고무장화를 신고 작은 대파를 밀어가며 소금을 모았다 흩었다 장난이 한창이다. 모터 없을 때 염부의 두발로 돌리던 수차에 올라가 보고, 소금바구니 ‘강구’도 어께에 메어본다. 아빠는 즐거운 한때를 보내는 아이들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느라 분주하고, 엄마는 그 와중에도 자식들에게 소금이 어떤 메커니즘으로 생겨나는지 알려주느라 입이 바쁘다. 그러나 아이들은 한 여름에 만나는 하얀 눈꽃이 마냥 신기하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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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염부가 소금 걷기를 시작하기 전 창고에 기대 쉬고 있다
체험장 맞은편 염전에서는 체험을 위한 대파질이 아닌 삶을 위한 대파질이 한창이다. 2공구 7호 염전의 노老염부 이만석 씨(65). 스무 살에 염전과 연을 맺었으니 소금밥만 45년째이다. 군산이 고향인 그는 군산 아래 옥구염전에서 처음 소금 일을 시작했다가 옥구염전이 폐전되자 이곳 신안으로 들어왔다.
“체험장이 들어서서 시끄러우시겠어요?”
체험장의 웃음소리가 혹시 일하는데 방해는 되지 않을까.
“보기 좋지 뭐. 사람 사는 거 같고…….”
맞는 말이다. 영락없이 굵은 소금을 닮은 이곳 증도에 설탕 같은 도시 사람들이 오면 그 짠맛에 묘한 중화가 일어날 지도 모를 일이다.
떨어지는 석양을 보며 내일 날씨를 가늠하는지 노염부는 염전의 낮은 둑에 서서 한동안 노을 지는 체험장에서 시선을 떼지 못한다. 그리고 이내 철썩철썩 고무장화 소리를 내며 분주히 염전을 오간다.
염전 위로 떨어지는 해는 유난히 붉다. 오늘의 마지막을 다하는 태양은 사위를 붉게 적시고 염전 위에 내려앉은 노을은 노염부와 그를 돕는 견습 염부의 일상을 19세기 바르비종파의 풍경화로 만들고 있었다.
보낼 것은 존경
일을 마칠 시간이 되었나보다. 힘이 빠진 일꾼이 소금 수레를 엎는다.
“어허~ 야 야!”
곧바로 불호령이 떨어진다. 그렇지만 이내 농 섞인 말투로 토닥인다.
“오늘 일당은 읍네? 괜찮어 암시랑 안 혀”
어쩌면 노염부는 이제 소금 수레 잡은 지 석 달이 채 안 된 견습 염부가 행여 도망치지는 않을까 내심 걱정이 됐는지도 모른다. 그는 일꾼이 도망가고 염전을 떠날 때마다 대도시에서 사람 구해오기가 여간 힘든 일이 아니라며 하소연한다. 그러면서 역 주변 노숙인들에 대한 불편한 심기와 가시 돋친 독설도 서슴지 않는다. 그도 그럴 것이다. 해방 전에 태어나 6.25 겪고 경제개발 시기에 좌우를 살피지 않고 앞만 보며 달려온 경주마 같은, 노새처럼 살아온 인생이었으니 말이다. 6.25때 불발 수류탄으로 왼쪽 팔목을 잃고서도 소금밭에 뛰어들어 하루를 열흘처럼 살며 새끼들 다 길러내고 지금은 어엿한 염전 관리인이 되었다. 누가 그를 매정한 노인이라고 할 것인가. 그가 받을 것은 동정이 아니라 존경이다.
어느새 해 떨어지고 8시가 다 되어 간다. 반시간 전부터 수레에 소금을 올리던 아주머니가 보이지 않더니, 이제 고만 허고 저녁 드시란다. 일 욕심 많은 노염부는 조금만 더 기다리란다.
“이 놈 다 허고 들어 가야제.”
소금 수레를 엎은 견습 염부는 묵묵히 소금 수레를 계속 나른다.
경운기 자국 울퉁불퉁한 염전 길을 거슬러 올라오며 곧 후회한다. ‘염전을 정원 삼은 늙은 염부의 집에서 저녁 만찬을 맞을 수 있는 유일한 기회를 마다하고 오는 길이었기 때문이다.
소박하고 짭조름한 저녁밥상에는 아마 태평염전 2공구 7호 염전의 천일염으로 담근 맛난 김치와 젓갈이 있었을 것이다.
교통 서해안고속국도 무안IC → 무안읍(1번국도) → 해제·지도방면 → 지도읍 → 지신개선착장 → 증도 버지선착장
증도의 그 외 관광지 해저유물비(낙조전망대), 짱뚱어다리, MBC드라마 ‘고맙습니다’ 촬영지(화도), 우전해수욕장, 갯벌생태전시관, 소금박물관
문의 태평염전 061-275-7541, 소금박물관 061-275-08290
증도면사무소 061-271-7531, 버지선착장 061-275-7685
엘도라도 리조트 061-260-3300
www.eldoradoresor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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