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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 순종하는 온전한 믿음으로 성숙하는 달☜
온전(穩全)하게 행(行)하는 자가 의인(義人)이라. 그의 후손(後孫)에게 복(福)이 있느니라
잠23:12-24:7절) 믿는 자의 장래(將來)
운동선수들은 시합에 나가서 좋은 성적을 얻기 위하여 평소에도 열심히 운동을 해야 합니다. 더욱이 올림픽이나 세계 선수권 대회 같은 큰 대회는 자신의 일생이 달린 경기이기 때문에 더 열심히 운동을 해서 준비를 합니다.
그러나 선수가 아무리 평소에 많이 연습을 한다 하더라도 언제나 경기를 잘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어떤 선수는 생각지도 않은 슬럼프에 빠져서 성적이 나빠지기도 하고, 부상을 입기도 하고, 심지어는 경기 당일에 쥐가 난다든지, 실격을 당한다든지 해서 그 동안 훈련한 것을 망치기도 합니다.
이것은 우리 인생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한평생을 살면서 평생 내내 일등을 유지하면서 성공의 길을 달릴 수는 없습니다.
어떤 사람은 초반에는 머리가 좋고, 집도 잘 살아서 성공적으로 살지만, 한 번 크게 실패한 후에는 맥을 추지 못하는 경우도 있고, 어떤 사람은 반대로 초반에는 집에 돈도 없고, 공부도 많이 하지 못해서 너무나도 어려운 처지에 있었지만, 그런 역경을 뚫고, 성공한 후에는 끝까지 축복의 길을 달리는 사람도 있습니다.
물론 우리 생각에 한평생 내내 성공하고, 복을 받으면 좋겠지만, 사실상 사람에게 그런 것은 불가능합니다. 그렇다면, 처음에는 비록 고생을 하더라도 나중에 복을 받는 것이 진짜 복을 받는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당대(當代)에는 하나님의 복을 받지만, 자식들의 시대나 손자들의 시대에 망해서 거지가 되거나 전쟁으로 죽는다면, 그것보다 더 끔찍한 일은 없을 것입니다.
오늘 우리들에게 중요한 것은 우리나 우리 후손들이 어떻게 하면 지속적으로 하나님의 복을 받을 수 있겠는가? 하는 것을 교훈하고 있습니다.
잠언 22장 17절부터 24장까지는 30개의 교훈으로 되어 있는 교훈집이라는 것을 살펴보았습니다. 그 동안 많은 하나님의 지혜를 보았지만, 이 부분에서 지혜자는 마치 학생들이 교과서를 다 배운 후에 요점 정리를 하듯 30가지 교훈을 요점 정리를 해주고 있습니다.
적어도 하나님의 지혜를 배운 자라면, 이 30가지는 달달 외우고 있어야 할 것입니다. 그 중에 열한 개는 이미 살펴보았고, 오늘은 열두 번째부터 스물한 번째 즉 새로운 열개의 핵심을 배우려고 합니다.
Ⅰ.우리의 장래
오늘 말씀에서 핵심이 되는 아주 중요한 말씀은 다음절 말씀입니다.
23:17-18절)네 마음으로 죄인의 형통을 부러워하지 말고, 항상 여호와를 경외하라. 정녕히 네 장래가 있겠고. 네 소망이 끊어지지 아니하리라”
하나님의 백성들은 대단히 미래 지향적인 사람들입니다.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은 앞으로 축복된 미래가 있기만 하면, 현재 당장 어렵고, 힘든 것은 얼마든지 꾹 참고 견딜 수 있는 사람들입니다.
우리들에게 중요한 것은 과연 나에게 아름다운 장래가 있고, 축복된 미래의 소망이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그것에 대해서 우리가 세상을 부러워해서 따라가지 아니하고, 하나님의 생명의 말씀을 붙들고 따라가면, 반드시 우리에게 미래의 축복이 있다고 장담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성경은 우리가 어떻게 해야 한다고 하는 것보다 우리 자식을 어떻게 하나님의 생명의 말씀으로 양육해야 하는 지를 교훈하고 있습니다.
23:12절)훈계에 착심하며 지식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라”
잠언의 지혜자가 가장 중요하게 가르치고 있는 것 중의 하나가 아직 생각이나 감정이 딱딱하게 굳어지지 아니한 어린 시절에 하나님의 생명의 말씀으로 자식들을 확고하게 가르치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생각해야 하는 중요한 질문은 과연 우리 한 사람이 성공하고, 잘사는 것이 어려운가? 아니면 내 자식이 나보다 성공하고 믿음으로 잘살게 하는 것이 어려운가? 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마치 달리기 경기에서 나 혼자 달리기를 해서 일등은 하는 것과 두 명이나 세 명의 선수가 계주(繼走)를 해서 일등을 하는 것 중, 어느 것이 더 쉬운가? 하는 질문과 비슷합니다. 즉 달리기 선수가 혼자 달려서 일등 하는 것은 자기 혼자 달리면 되지만, 릴레이 경기에서 일등을 하려면, 나도 잘 달려야 하지만, 다음 선수가 잘 달릴 수 있도록 배턴(abaton) 터치(touch)를 잘 해주어야 할 것입니다.
대개 부모가 자기 자신은 열심히 공부하거나, 사업을 해서 성공하기는 쉬운데, 자식이 훌륭하게 성공하도록 하는데, 실패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즉 훌륭한 부모가 혼자 달리는 것은 잘하지만, 자식에게 본을 보이거나, 자신을 절제하는 데는 성공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성경은 우리만 성공한다고 해서 좋은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축복을 자식 대에도 몰려주어야 하고, 오히려 자녀시대에 가서 더욱 하나님의 복이 풍성해지도록 하는 부모가 잘하는 부모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어떤 사람이 집을 지을 때, 자기 혼자 잘살다가 나중에는 폭삭 무너지는 집을 지을 수도 있지만, 자기도 살고, 대대 후손들이 얼마든지 잘 살 수 있는 튼튼한 집을 짓는 사람이 더욱 현명한 부모입니다.
사회적으로 보면, 부모 대에는 너무나도 사업도 잘하고, 장사도 잘해서 성공을 했는데, 자식은 똑똑하지 못해서 집안을 말아 먹는 일들이 종종 있습니다. 누구든지 자기 인생이 후회 없는 아름다운 인생이 되려면, 자기 대에서 모든 것을 다 누리려고 해서는 안 됩니다.
부모나 어른들은 반드시 절제(節制)를 하고, 모범을 보여서 다음 세대 사람들이 자신들보다 더 큰 믿음의 사람이 되어 더 큰 축복을 받고, 자기들 시대보다 더욱 큰 부흥이 일어나도록 해야 하는 것입니다.
여기서 가장 중요한 것은 자녀들로 하여금‘훈계에 착심하며 지식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게’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부모가 세상에서 성공하고, 지위가 높아지는 것보다 자녀의 속사람에 하나님의 생명의 말씀을 채우는 것을 더욱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을 말합니다.
‘훈계에 착심하라’고 했으니, 하나님의 생명의 말씀에 아주 온 마음을 다해서 배우도록 하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자녀들이 이렇게 하나님의 생명의 말씀에 착심하게 하려면, 부모들 자신이 하나님의 생명의 말씀에 그만큼 열정을 가져야 하는 것입니다.
대개 부모님들은 자기 자신들이 열심히 살아서 성공하는 것은 잘 알지만, 자녀나 다른 세대 사람들을 위해서 모든 일에 절제(節制)하고, 믿음의 본을 보여야 한다는 것을 생각하지 않을 때가 많습니다.
어른들이 자신이 성공했다 해서 말이나 행동에 절제(節制)하지 않고, 자기가 하고 싶은 대로 다하면서 사는 분들의 자녀를 보면, 가치관이 엉망진창인 것을 볼 때가 많습니다.
부모가 자식에게 물려줄 수 있는 것은 단순히 돈이나 좋은 공부만이 아닌 것입니다. 가장 중요한 것이 자기 자신이 하나님의 생명의 말씀을 사랑하는 태도이고, 하나님의 생명의 말씀에 따라서 자기 자신의 말이나 행동을 함부로 하지 않는 것입니다.
이런 집의 자녀들은 이미 가치관이나 정신이 다른 집 아이들과 근본적으로 다른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십계명에서 하나님이 말씀하시기를“나를 사랑하고 내 계명을 지키는 자에게는 천 대까지 은혜를 베푸느니라(출20:6).고 하셨습니다. 집안이 대대로 복을 받는 성공적인 집안이 되려면, 부모나 자식이 머리만 좋고, 좋은 학교를 나왔다고 해서 되는 것이 아닙니다.
먼저 부모가 하나님의 생명의 말씀을 사랑하고, 자신의 말과 행동을 절제하며 살고, 자녀들에게 다른 어떤 것보다 하나님의 생명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도록 할 때, 그 집은 대대로 복을 받을 기초가 마련되고 있는 것입니다.
부모는 반드시 자기가 뿌린 대로 거둔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부모가 세상에서 돈을 좀 벌었다 해서 하고 싶은 대로 다 하고, 즐기고 싶은 대로 다 즐기고, 자기 할 말 다 하면서 살 때, 자식들은 아무리 잘 믿으라고 해도 말을 듣지 않고, 결국 이상하게 반항적인 자식이 되어버리는 것입니다.
그런 부모는 다음 세대 자식들이 살 집을 짓지 못한 것입니다.
23:13절)아이를 훈계하지 아니하려고 하지 말라, 채찍으로 그를 때릴지라도 그가 죽지 아니하리라”
열두 번째 교훈은 사랑하는 아이를 때리라는 것입니다. 아이들이 성경에서 가장 싫어하는 구절이 바로 이 구절일 것입니다. 아이들은 왜 사랑이 많으신 하나님께서 이렇게 잔인(殘忍)한 말씀을 하셨는지, 이해하지 못할 것입니다.
그러나 부모에게 자식은 너무나도 귀엽고, 사랑스러운 자식일 것입니다. 그러나 부모가 자식의 사랑스럽고, 똑똑한 부분만 보면, 그 자식은 완전히 망치게 될 것입니다. 사랑스럽고, 똑똑한 자식 안에도 무서운 죄(罪)성이 들어 있기 때문입니다.
부모가 자식을 훈계하지 아니하지 말라는 것은 부모는 자식에게 반드시 훈계를 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다른 말로 표현하면, 부모는 자기 자식이 아무리 사랑스러워도 결코 사랑에 눈이 멀어서는 안 되고, 그 아이 안에 있는 무서운 죄(罪)성을 인정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아이도 죄인(罪人)이기 때문에 반드시 하나님의 생명의 말씀을 배우게 해야 합니다.
우리가 교회에서 언제나 경험하는 것이 하나님의 생명의 말씀을 들을 때, 어른들도 이리에서 양(羊)으로 변합니다. 즉 어린아이들도 하나님의 생명의 말씀을 들으면서 자란 아이들과 하나님의 생명의 말씀을 전혀 듣지 못하고, 자란 아이는 그 성품에서 너무나도 다른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또 *채찍으로 그를 때릴지라도 죽지 아니하리라* 했습니다. 어느 부모도 자기 자식을 때릴 때, 가슴이 아프지 않는 부모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부모는 아이가 어렸을 때, 자기 가슴을 찢는 아픔을 느끼면서 아이에게 야단칠 것은 야단쳐서 악(惡)의 뿌리를 뽑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부모는 자식의 좋은 점만 보고, 맹목적인 사랑에 빠져서는 안 됩니다. 그런데 어떻게 자녀안에 있는 악(惡)의 뿌리를 뽑을 수 있을까? 무조건 때린다고 해서 되는 것이 아닙니다. 아이가 잘못하면, 야단을 쳐야 하고, 때로는 벌(罰)도 주어야 합니다.
부모는 벌(罰)받는 아이를 보면, 너무나도 마음이 아프지만, 그래도 꾹 참고 아이에게 벌(罰)을 주어야 하는 것입니다.
23:14절)네가 그를 채찍으로 때리면. 그의 영혼을 스올에서 구원하리라”
어떤 부모도 아이를 세워놓고, 노예를 때리듯이 채찍질하는 부모는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부모가 자식을 너무나 사랑해서 전혀 때리지 못할 때, 아이가 그것을 깨닫느냐? 하면, 전혀 깨닫지 못하고, 오히려 망나니로 자라게 되고, 나중에는 지옥(地獄)의 자식이 되고 마는 것입니다.
부모는 자기 자신이 성공하는 것보다 자식을 믿음으로 자라게 하는 것이 더 힘들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보모가 자식이 나중에 자기보다 더 믿음이 좋은 사람이 되게 하려면, 사랑에 눈이 멀어서는 안 됩니다. 거의 그 자식과 싸우다시피 해서 아이들이 하고 싶은 대로 다하지 못하게 하고, 어른의 말씀에 복종하도록 만들어야 합니다.
그러면 이 아이는 마음속 깊은 곳에서 하나님께 반항하는 기질이 상당히 치료되고, 장차 지속적으로 믿음의 길로 갈 수 있습니다. 그러나 부모가 자식을 너무나 사랑해서 자기가 하고 싶은 대로 다 하면서 컸을 때, 그 아이는 패역(悖逆)한 자식이 될 가능성이 많습니다.
열세 번째 교훈은 부모가 자식에게, 자기가 어떻게 할 때, 부모가 좋아하고 기뻐하는지, 알게 해주라는 것입니다.
23:15-16절)내 아들아 만일 네 마음이 지혜로우면. 나 곧 내 마음이 즐겁겠고 만일 네 입술이 정직을 말하면 내 속이 유쾌하리라”
사람이 공부를 하고 성공을 하는데, 칭찬이 주는 유익이 아주 큽니다. 자식들이 어렸을 때에는 누구든지 자기 하고 싶은 것을 다 하려고 떼를 쓰지만 조금 철이 들면, 부모를 기쁘게 하려고 하는 마음이 생기게 됩니다.
아이들이 부모를 기쁘게 하면, 부모가 자기들을 칭찬하시는데, 아이들로서는 그것이 부모님의 기분도 좋게 하고, 자기에게도 너무나도 기분 좋은 일이라는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부모가 자식을 바르게 키우려면, 부모 자신의 가치관이 일정해야합니다. 대개 부모는 자식이 학교에서 공부를 잘해서 좋은 성적을 받아오면, 굉장히 좋아하고, 자식들을 칭찬합니다. 부모는 자식이 공부를 잘해서 다른 사람보다 우수한 것이 세상에서 성공하는 길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물론 부모님은 자식이 세상적인 공부를 성실하게 하는 것이 기쁜 일임을 부인할 수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부모는 자기 욕심을 절제해야 합니다. 부모는 자식이 세상에서 우수한 것도 기쁘지만, 자녀의 마음이 지혜로운 것을 기뻐해야 하고, 자녀의 입술이 정직을 말하는 것을 기뻐해야 합니다.
자녀의 마음이 지혜롭다는 것은 아이의 마음속에 하나님의 생명의 말씀이 있는 것입니다. 부모는 아이에게 믿음이 들어가는 것을 가장 기쁘게 생각해야 합니다. 즉 자녀의 마음속에 하나님의 생명의 말씀이 쌓인다고 하는 것은 자녀의 인격이 하나님 앞에 보물(寶物)로 변하고 있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부모는 자녀가 당장 공부 잘하는 것보다 긴 미래에 하나님의 축복(祝福)을 받는 사람이 되게 해야 합니다. 모든 사람들은 아이나 어른이나 다 거짓말을 잘한다는 것을 알아야합니다. 어렸을 때에는 아이들이 거짓말을 해도 금방 들통이 나고, 또 어떤 때에는 정직하고 싶을 때도 많습니다.
이때 부모님은 자식들에게 지금 당장 정직(正直)을 말해서 야단을 맞는 한이 있어도 그것이 얼마나 가치가 있으며, 부모가 얼마나 기뻐하는 일인지 알게 해주어야 합니다.
요즘 우리나라에는 너무나도 많은 지도자들이나 운동가들이 거짓말을 하고 있습니다. 이 사람들이 정직(正直)이 얼마나 하나님을 기쁘게 하며, 자기 자신을 가치 있게 하는지를 배우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모르는 사람들은 자기 주장에 궤변(詭辯)을 포장해서 떼를 쓰기만 하면, 되는 줄 알지만, 이런 사람들은 하나님 앞에서 쓰레기보다 못한 사람들인 것입니다.
하나님은 정직(正直)한 사람을 가치 있게 생각하십니다. 그래서 열네 번째 가르침이 악인(惡人)이 잘 되는 것을 부러워하지 말고, 하나님을 경외(敬畏)하라는 것입니다.
23:17절)네 마음으로 죄인의 형통을 부러워하지 말고 항상 여호와를 경외하라”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가장 중요한 자세는 자신의 가치(價値)를 깨닫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이 자칫 잘못하면, 죄인(罪人)이 잘 되는 것을 부러워하기 쉽습니다. 왜냐하면 어떤 사람이 아무리 믿음이 없고, 세상적이라 하더라도 일단 세상에서 돈을 많이 벌고, 인정을 받으니까 부러워지는 것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절대로 죄인(罪人)이 잘 되는 것뿐 아니라, 다른 사람 잘 되는 것을 부러워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즉 나의 길과 다른 사람의 길은 근본적으로 다르기 때문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수평(水平)으로 세상으로 가면서 세상에 있는 부(富)와 명성(名聲)을 모으지만, 우리는 수직(垂直)으로 하나님께 가면서 하나님의 축복을 내려오게 하기 때문입니다.
만일 모든 사람들이 다 세상의 복에 집중한다면, 이 세상은 완전히 축복의 황무지가 되고 말 것입니다. 우리는 세상의 복을 모으는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의 복을 임하게 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세상 사람들이 잘 되는 것을 부러워하거나, 시기(猜忌)하거나, 열등감(劣等感)을 가질 필요가 없습니다.
우리는 단지 다른 사람들이 잘 되면, 좋다고 생각하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실 복은 따로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항상 하나님을 경외(敬畏)해야 합니다. 하나님을 경외(敬畏)한다는 것은 언제나 하나님을 의식(意識)하면서 사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의식(意識)해야 죄(罪)를 덜 짓게 됩니다. 이것이 처음에는 힘들고 답답하지만, 나중에는 우리가 사는 길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내 생명이고, 지혜이고, 능력이기 때문입니다.
23:8절)정녕히 네 장래가 있겠고 네 소망이 끊어지지 아니하리라”
오늘 말씀에서 가장 중요한 요절(要節)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바라보며 하나님의 생명의 말씀을 붙들고 살아갈 때, 우리는 이 세상에서 망하지 않고, 축복(祝福)의 미래가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생명의 말씀을 붙들 때, 수평(水平)으로 가지 않고, 수직(垂直)으로 가기 때문에 세상의 복(福)도 챙기지 못하고, 하늘의 복(福)도 임하지 않아서 망한 것 같고, 이것도 아니고, 저것도 아닌 것 같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하나님을 향하여 갈 때, 하나님은 반드시 우리의 미래를 아름답고 축복되게 하십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의지할 때, 하늘에서 복(福)이 임하여 땅에서도 복(福)이 되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서 우리에게 영적(靈的)인 부흥(復興)이 계속 얼어날 때, 처음에는 우리 영혼(靈魂)에 복이 임하지만, 나중에는 병(病)도 낫고, 하는 모든 일에까지 하나님의 복(福)이 임하기 때문에 결국 복(福)이란 복(福)은 다 받게 됩니다.
그래서 소망(所望)이 끊어지지 아니하리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이 세상을 보면, 처음에는 길이 보이지 않습니다. 도대체 무엇을 소망(所望)으로 삼아서 걸어가야 할지 모를 때가 많습니다. 그리고 믿음으로 걸어가면, 굶어죽을 것 같고, 결혼도 하지 못할 것 같고, 살 집(아파트)도 없어서 거리에 나 앉아야 할 것 같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생명의 말씀을 붙들고 나가면, 이상하게 조금씩, 조금씩 길이 생기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다가 나중에는 길이 점점 넓어지고, 점점 더 하나님의 축복이 많아지고, 커지게 되는데, 엄청난 복(福)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Ⅱ.정도를 걸어라
어렸을 때, 바른 신앙을 가진다고 하는 것은 자식이 부모보다 더 큰 복을 받을 준비가 된 것입니다. 하나님 생명의 말씀의 맛을 알고, 하나님의 생명의 말씀만 붙잡고 간다는 것은 이미 축복(祝福)의 길에 들어선 것입니다.
그러나 주의해야 할 것은 우리가 아무리 하나님의 생명의 말씀을 붙잡고 간다고 해도 우리에게 함정(陷穽)이 없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즉 하나님의 생명의 말씀을 붙잡고 갈 때, 이미 축복(祝福)의 길을 가고 있는 것인데, 우리는 죄 짓는 것이나, 교만해지는 것이나, 너무 유명해지거나, 많은 일을 하려고 하는 유혹(誘惑)에 빠지지 말아야 합니다.
23:19절)내 아들아 너는 듣고 지혜를 얻어 네 마음을 바른 길로 인도할지니라.”
이것이 열다섯 번째 교훈입니다. 이 자녀는 이미 부모님이나 선생님으로부터 하나님의 바른 말씀의 교훈을 받은 자입니다. 그러나 한두 번 바른 말씀을 배웠다 해서 끝까지 갈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 인생에서는 수많은 갈림길들이 있고, 수많은 유혹이나, 시련과 도전들이 있기 때문에 우리가 지속적으로 하나님의 생명의 말씀을 듣지 않으면, 계속 엉뚱한 길로 가게 됩니다. 우리는 모두 처음부터 본성(本性)이 비뚤어져 있어서 하나님의 생명의 말씀이 없으면, 잘못된 길이 바른길로 보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계속 정로(正路)로 가기 위해서는 아예 하나님의 생명의 말씀을 우리 앞에 내세우고, 그 뒤를 따라가야 합니다. 결국 어렸을 때부터 하나님의 생명의 말씀을 배운다고 해서 다 된 것이 아니라, 아예 하나님의 생명의 말씀을 앞세우고 가면서 나에게 주어진 일을 해야만 우리는 정로(正路)로 갈 수 있습니다.
우리 주위에서 다른 사람들이 하는 말들은 전부 귀가 솔깃한데, 그 뒤에는 모두 죄(罪)의 함정(陷穽)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일단 욕심을 부리거나, 무리를 하면, 정로(正路)에서 벗어날 가능성이 많습니다. 당장 잘 되는 것보다는 바른길을 가는 것이 더욱 중요합니다.
잘못된 길로 갔다가 구덩이에 빠지게 되면, 거기에서 빠져 나오는데, 더 많은 시간과 노력이 걸리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지속적으로 바른길을 가기 위해서는 탐욕적(貪慾的)인 친구를 가까이해서는 안 됩니다.
23:20절)술을 즐겨하는 자들과 고기를 탐하는 자들과도 더불어 사귀지 말라”
여기서 술을 좋아하는 자와 고기를 탐하는 자라고 하는 것은 미래의 축복보다 현재의 쾌락(快樂)을 더 좋아하는 사람입니다.
물론 우리 인간들은 이 세상을 살면서 즐거운 시간을 가질 때도 있고, 맛있는 음식을 먹을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탐(貪)한다는 것은 그것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이고, 여기에 푹 빠져 있는 사람을 말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사람이 이 세상을 사는 것은 그냥 한 곳에 정착해 있는 것이 아니라, 앞을 향하여 나가고 있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서 아이들이 학교에서 공부를 하고, 상급학교에 진학하는 것은 미래를 향하여 나가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학생들 중에는 공부하는 것이 싫어서 농땡이를 부리고, 불량학생과 어울려서 노는데 집중하다 보면, 앞으로 나가지 못하는 것입니다.
청소년 때에는 이성(異性)교제도 하고 싶고, 어른 몰래 남녀학생들이 수업을 빼먹고 놀러가고 싶기도 하지만, 계속 그렇게 하면, 결국 되는 것이 아무것도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사람이 앞을 향해서 열심히 나아가다보면, 때로는 재미있는 시간이 있을 수도 있고, 좋은 곳에 놀러 갈 수도 있고, 멋진 사랑을 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보통 사람들은 우리가 미래를 향해서 나갈 수 있는 가장 좋은 길이 공부나 승진이라고 생각하는데, 가장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생명의 말씀으로 우리 속사람이 성숙해지는 것입니다. 강(江)에는 댐이 있는데, 물고기들은 그 댐에서 쏟아지는 물을 박차고 댐 위로 뛰어오르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물고기가 댐 위로 올라가면, 다시 더 넓은 세계를 경험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학생들이 공부를 열심히 해서 좋은 학교에 진학하면, 더 넓은 세계를 경험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아무리 세상에서 공부를 하고, 승진(昇進)을 한다고 해도 하나님의 생명의 말씀이 없으면, 결국 제자리를 맴돌 수밖에 없습니다.
하나님의 생명의 말씀은 우리 인생의 배(船)에 엔진과 같기 때문에 모든 장애를 넘어서 앞으로 나아가게 합니다.
23:21절)술 취하고 음식을 탐하는 자는 가난하여질 것이요 잠 자기를 즐겨 하는 자는 해어진 옷을 입을 것임이니라”
술 취하고, 먹는 것이나 좋아하는 사람은 앞으로 나아가는 것보다 당장 눈앞에 있는 쾌락(快樂)을 좋아하는 사람입니다. 이런 사람은 결국 가난하게 될 것입니다.
미래를 위해서 *복음의 씨를 뿌리지 않기 때문에 거둘 것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여기에 한 가지가 더 추가되어 있는데, 그것은 바로 잠을 많이 자는 것입*니다. 물론 사람에게 잠은 꼭 필요하고, 아주 중요한 것입니다. 그러나 할일도 하지 않고, 잠만 자는 사람은 게으른 자이고, 이런 사람은 결국 옷이 없어서 떨어진 옷을 입게 될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생명의 말씀을 붙든다고 해서 가만히 있기만 해서는 안 되고, 실제로는 다른 사람들보다 배 이상은 부지런해야 합니다. 즉 하나님도 믿어야 하고, 이 세상일도 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단지 다른 사람들과 다른 점은 우리는 모든 것을 믿음으로 최선을 다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 생명의 말씀의 맛을 알았다면, 그것은 길을 찾은 것입니다. 그런데 길을 찾았다고 해서 저절로 목적지에 갈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물론 우리는 길을 찾지 못한 사람들처럼 이리 뛰고 저리 뛰고 할 필요는 없습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길을 정말 성실하고, 부지런히 걸어가야 합니다. 그러면 우리에게 축복(祝福)의 열매가 주렁주렁 맺히게 되는데, 이것들을 다른 사람들에게 나누어주어야 하는 것입니다. 아무리 하나님의 생명의 말씀을 잡았다 하더라도 가만히 있으면, 아무런 *복음(福音)의 열매*가 없을 것입니다.
열여섯 번째 교훈은 부모를 청종(聽從)하고, 공경(恭敬)하는 것입니다.
23:22절)너를 낳은 아비에게 청종하고. 네 늙은 어미를 경히 여기지 말지니라.”
사람이 어느 정도 성공하고, 경제적으로 자립을 하게 되면, 더 이상 부모의 도움을 받을 필요가 없어지게 됩니다. 즉 사람들 중에는 자기가 성공하고 난 후에는 부모의 말씀을 듣지 않고, 오히려 부모를 무시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부모를 공경하는 이유는 부모님이 힘이 있고 없고를 떠나서 우리는 부모의 존재나 헌신적인 사랑이 없었더라면, 아예 이 세상에 존재 할 수 없었던 자들이기 때문입니다. 부모님이 잘나셨든지, 못나셨든지, 전적으로 부모의 사랑의 빚으로 우리는 이렇게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믿음이 있는 사람의 생각은 자기가 이렇게 성공하고, 복(福)을 받는 것은 부모님을 위시해서 많은 사람들의 사랑의 빚 때문이라고 생각해서 성공할수록 더욱 겸손하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 사회에서 공부를 많이 했거나, 사회적으로 성공한 분들은 자기가 훌륭해서 그런 것도 있겠지만, 사실 다른 많은 분들의 사랑의 빚을 지고 있는 것입니다. 그뿐 아니라, 우리가 어렸을 때, 부모님 앞에서 아무것도 모르고 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었던 것처럼, 지금도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아무것도 모르고 있고, 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습니다.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모든 것을 아는 사람이 아니고, 아무것도 모르는 어린 아이와 같은 것입니다. 우리가 부모님을 공경할 줄 알고, 다른 사람 앞에 겸손 할 줄 알 때, 사람들은 뭐라고 하는가 하면, *저 사람은 인간이 되었다*고 합니다.
우리는 결국 인간이 인간답게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돈은 많은데, 도무지 인간 같지 않다는 말을 듣습니다. 또 어떤 사람은 공부는 많이 했는데, 인간성이 되먹지 못했다고 욕합니다. 이런 사람들은 모두 자기 인생에서 실패(失敗)한 사람들입니다.
23:23절)진리를 사되 팔지는 말며 지혜와 훈계와 명철도 그리할지니라.”
*진리(眞理)를 사되 판다*는 것은 하나님의 생명의 말씀을 붙들고 가다가 세상에서 알아주지도 않고, 빨리 성공이 오지 않으니까 어느 순간 버리는 것을 말합니다.
어떤 사람이 진리(眞理)를 잘 따라가다가 어느 한순간 세상의 유혹(誘惑)에 넘어가서 하나님의 진리(眞理)를 배반(背叛)하고, 세상을 따라가는 것이 바로 진리(眞理)를 팔아버리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진리(眞理)를 사기 위해서는 대가(代價)를 지불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진리(眞理)를 사는데 치러야 할 댓가가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진리가 있는 곳을 찾아가야 하고, 그곳에 가서 말씀을 듣는 시간을 들여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또 우리가 지불(支拂)해야 할 대가(代價)는 아무리 하나님의 진리를 붙잡아도 금방 복이 오지 않을 때, 굶어 죽을 각오를 하고, 끝까지 견디는 것입니다. 그러면 무엇이 오게 됩니까? *지혜와 훈계와 명철까지 주어지게* 됩니다. 하나님의 진리(眞理)가 다양한 형태로 우리에게 도움이 되고, 복(福)이 되는 것입니다.
여기에 보면, 자식이 끝까지 하나님의 생명의 말씀을 붙들고 갈 때 부모가 그 열매를 보고, 기뻐할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23:24-25절)의인의 아비는 크게 즐거울 것이요. 지혜로운 자식을 낳은 자는 그를 말미암아 즐거울 것이니라. 네 부모를 즐겁게 하며. 너를 낳은 어미를 기쁘게 하라”
부모는 자신이 성공하는 것도 기쁘지만, 자식이 자기보다 더 크게 복을 받고 성공하면, 더욱 마음이 기쁩니다.
부모는 처음에는 자녀가 세상적으로 잘 되고 성공하면, 너무 좋아서 주위 사람들에게 자랑을 하느라고 정신을 차리지 못합니다. 그리나 나중에 시간이 갈수록 부모의 기쁨은 시들해져 갑니다. 이 자식이 신앙이 없으니까 부모를 공경하지 않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자식이 세상적으로 성공할수록 더욱 오만(傲慢)해지고, 교만(驕慢)해지는 것입니다.
그러면 신앙을 가진 부모는 이 자녀의 성공이 제대로 된 복(福)이 아니라는 것을 알 것입니다. 그래서 부모의 마음이 불안해지고, 무엇인가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답답함이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자녀가 *신앙적으로 복(福)을 받으면* 처음에는 별로 겉으로 잘 된 것이 없어서 다른 사람들에게 자식 자랑할 것이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 *믿음의 자녀는 날이 갈수록 부모를 더욱 사랑하고 공경하여 나중에는 교회에 부흥이 일어나게 되고, 물질적으로도 복을 받고, 유명해지게 되는데, 부모의 입에서 부족한 것이 없다는 고백이 나오게 될 것*입니다.
야곱은 요셉을 잃고, 한평생을 비탄(悲嘆)한 마음으로 보내었는데, 나중에 보니까 요셉이 살아 있을 뿐만 아니라, 애굽의 총리(總理)가 되어 있었습니다. 그래서 야곱은 나중에
*내가 부족한 것이 없다*고 말했습니다.
우리가 부모에게 진정으로 효도(孝道)하는 길은 하나님을 잘 믿고, 신앙의 길로 가는 것입니다. 또 부모가 진정으로 자식들이 복(福)을 받게 하려면 자기 정욕대로 살면 안 되고, 자신이 하나님의 생명의 말씀을 끝까지 붙잡아야 합니다.
열일곱 번째 교훈은 우리 마음을 악(惡)한 음녀(淫女)에게 두지 말라는 것입니다.
23:26절)내 아들아 네 마음을 내게 주며 네 눈으로 내 길을 즐거워할지어다.”
이미 이 자녀는 하나님의 생명의 말씀을 붙잡고, 믿음의 길을 가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혜의 선생은 자녀에게‘네 마음을 내게 달라’고 명령하고 있습니다. 즉 지혜의 선생은 젊은 청년들에게 *네 몸만 여기에 와 있지 말고 네 마음으로 하나님의 길을 즐기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 세상에는 너무나도 많은 쾌락(快樂)이 있고, 화려한 것들이 있기 때문에 거기에 한번 마음을 빼앗기면, 돌아오기 힘들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자신을 하나님의 생명의 말씀의 길로 몰아가야 합니다.
하나님의 생명의 말씀을 따라가면, 세상에서 맛볼 수 없는 진귀(珍貴)한 것들을 실컷 맛볼 수 있습니다. 이것이 우리 뼈를 윤택(潤澤)하게 하며, 우리 영혼(靈魂)을 담대하게 할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조금만 눈을 세상으로 돌리면, 거기에는 음녀(淫女)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23:27절)대저 음녀는 깊은 구덩이요 이방 여인은 좁은 함정이라”
여기서 음녀(淫女)란 우리의 정욕(情慾)을 채우는 삶을 말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하나님의 생명의 말씀을 따라가면서 육체적(肉體的)인 정욕(情慾)을 기피하라고만 말씀하시지 않으십니다.
오히려 우리는 하나님의 생명의 말씀안에서 얼마든지 사랑을 나누고, 아름다운 교제를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인간의 욕심은 자기에게 주어진 것으로는 만족하지 않고, 꼭 하나님이 *하지 말라*고 하는 것을 해야 직성이 풀리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의 생명의 말씀에서 벗어난 정욕(情慾)은 마치 미끼가 있는 낚싯바늘과 같습니다. 겉으로 보기에는 이련 정욕(情慾)이 너무나도 환상적이고 맛이 있는 것 같지만, 일단 한번 물고 나면, 다시는 거기에서 빠져나올 수 없는 것입니다.
특히 이방 여인의 정욕(情慾)이 무서운 것은 이방인들에게는 이런 정욕(情慾)이 전혀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즉 세상에서는 얼마든지 당연하게 채울 수 있는 것이지만, 하나님 앞에서는 무서운 죄(罪)가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어떻게 이런 함정(陷穽)을 피할 수 있을까? 하나님의 생명의 말씀을 계속 들으면, 우리는 옳지 못한 정욕(情慾)이 얼마나 위험한지 알 수 있게 됩니다. 이 잘못된 정욕(情慾)에 한 번 빠졌을 때, 나중에는 얼마나 비참한 파멸에 빠지게 될지 알기 때문에 멀리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아무리 참새라 하더라도 그물을 보면서 일부러 잡히는 참새는 없을 것입니다. 또 야생동물들도 함정(陷穽)을 보면, 피해서 다라날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생명의 말씀을 무시(無視)하는 자들은 이런 정욕(情慾)을 채우는 것이 너무나도 자연스럽고, 당연하게 느껴지기 때문에 겁을 내지 않고, 가까이 합니다.
23:28절)참으로 그는 강도 같이 매복하며 사람들 중에 사악한 자가 많아지게 하느니라.”
이 세상에서 출세(出世)의 함정(陷穽)은 너무나도 많은 곳에서 강도(强盜)같이 매복(埋伏)을 하고 있습니다. 이 세상에는 사악(邪惡)한 자가 많다고 했습니다. 이 사람들은 모두 거짓말을 해도 된다고 조언(助言)하는 사람들입니다. 결국 그들은 모두 *거짓된 모사*(謀士)들이고, *망하게 하는 모사*(謀士)들입니다.
그리고 열여덟 번째 교훈은 술을 멀리하라는 것입니다.
23:29절)재앙이 뉘게 있느뇨 근심이 뉘게 있느뇨 분쟁이 뉘게 있느뇨 원망이 뉘게 있느뇨 까닭 없는 상처가 뉘게 있느뇨 붉은 눈이 뉘게 있느뇨.”
최근 우리나라에서 유명한 인사들 중에서 성추행으로 사회적으로 망신을 당하기나, 법적으로 처벌을 받는 사람들은 전부 술을 마신 사람들이었습니다. 이것을 보면 술이 얼마나 사람을 망령(妄靈)되게 만드는지 알 수 있을 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술을 마시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에서 조사된 바에 의하면, 살인(殺人)사건과 교통사고 거의 대부분이 술 취한 상태에서 이루어진 것으로 나타나고 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모두 술을 마시고 있습니다. 도대체 그 이유가 무엇일까? 사람들이 술을 마시는 이유는 술이 사람의 중추신경(中樞神經)일부를 마비시켜서 잘못된 흥분(興奮)을 일으키기 때문입니다.
사람이 정상적으로는 기쁘지도 않고, 행복하지도 않은데, 술을 마시면, 신경(神經)이 흥분(興奮)되어서 본인이 기분이 아주 좋은 것처럼, 혹은 행복한 것 같은 느낌이 들게 되기 때문입니다. 바로 이 흥분(興奮)때문에 술을 마시지 않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술을 마시는 이유가 여기에 기록이 되어 있습니다. 즉 사람은 마음에 근심이 있고, 걱정거리가 있으며, 분쟁이 있고, 원망이 있고, 화(禍)가 나기 때문에 이것을 잊고서 즐거워지기 위해서 술을 마시는 것입니다.
물론 사람이 행복을 느끼겠다는 것을 나쁘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사람이 술을 마셔서 행복(幸福)한 것은 결국 자기에게서 도피(逃避)하는 것입니다. 술에 취한 사람은 그 사람 자신이 아니라, 다른 그 사람인 것입니다.
술취한 사람은 걸을 때, 똑바로 걸을 수 없습니다. 술 때문에 생각과 몸이 따로 따로 놀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사람이 미치기 시작하는 것이고, 술을 아주 많이 폭음(暴飮)하게 되면, 정신을 잃게 되는데, 이것은 완전히 미친 것입니다.
즉 자기 자신에 대하여 전혀 책임질 수 없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이런 상태에서 살인(殺人)을 저지르고는 기억(記憶)이 나지 않는다고 말합니다. 더욱이 술은 중독성(中毒性)이 있기 때문에 마시기 시작하면, 나중에는 끊을 수가 없게 되어 술의 노예가 되어버립니다.
23:30절)술에 잠긴 자에게 있고 혼합한 술을 구하러 다니는 자에게 있느니라.”
술에 잠겼다고 하는 것은 완전히 술에 빠져 있는 사람을 말합니다. 술 마시는 사람들은 처음에는 사람이 술을 마시지만, 나중에는 술이 사람을 마신다고 합니다.
이것은 완전히 술에 취한 것입니다. 즉 술에 충만하게 된 것입니다. 그리고 혼합(混合)한 술이라고 하는 것은 더 독(毒)한 술을 찾으러 다니는 것을 말합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은 술에 취해서는 안 되고, 성령에 취해야 합니다. 우리 속을 하나님의 생명의 말씀으로 채울 때, 성령님이 우리 안에 임하시는데, 성령님은 우리를 하나님의 기쁨으로 기뻐하게 하십니다.
성령님은 우리의 정신을 맑게 하며, 정확하게 하며, 능력 있게 합니다. 그래서 술 취한 사람과 성령 충만한 사람은 미친 사람과 훈련된 운동선수로 비교할 수 있습니다. 즉 당장 보기에는 술 취한 사람이 더 힘이 있을 것 같지만, 그는 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성령에 충만할 때, 기쁘면서도 능력 있는 사람이 됩니다.
23:31-32절)포도주는 붉고 잔에서 번쩍이며 순하게 내려가나니 너는 그것을 보지도 말지어다. 이것이 마침내 뱀 같이 물 것이요 독사 같이 쏠 것이며”
술이나 정욕(情慾)은 보기에 너무나도 아름답고, 우리를 행복(幸福)하게 해줄 것 같습니다. 즉 포도주는 너무 색깔이 예쁘고, 잔(殘)에 담겨 있는 것을 보면, 정말 맛이 있을 것 같습니다. 또 실제로 마시면, 너무나도 기분 좋게 목을 타고 내려갑니다.
그러나 술은 결국 독사(毒蛇)요, 뱀인 것입니다. 술은 우리의 정신(精神)을 흐리게 하고, 유혹(誘惑)에 약(弱)하게 하며, 죄(罪)에 끌리게 합니다. 독사(毒蛇)에게 한번 물리고 나면, 상당히 오랫동안 고통을 받게 되거나, 아니면 죽게 될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백성들은 술을 보지도 말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술은 독사(毒蛇)이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즉 강도(强盜)를 만나기 전에는 모르지만, 한번 당하고 나면, 신세를 망치는 것처럼, 독사(毒蛇)도 한번 물리고 나면, 치료받기가 어려운 것입니다.
Ⅲ.하나님의 축복을 오래 받는 방법
우리가 단회적으로 복(福)을 받고, 그 후에는 비참하게 살지 않으려면, 악인(惡人)이 잘 되는 것을 부러워하지 말고, 끝까지 생명의 말씀의 길을 가야 합니다. 그래서 열아홉 번째 교훈은 *악인(惡人)이 잘 되는 것을 부러워하지 않는 것*입니다.
24:1절)너는 악인의 형통함을 부러워하지 말며 그와 함께 있으려고 하지도 말지어다.”
여기서 악인(惡人)이란 반드시 악(惡)학 사람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생명의 말씀을 붙잡지 않고, 세상적인 방법으로 성공한 사람을 말합니다. 왜 하나님의 백성이 악인(惡人)이 형통한 것을 부러워해서는 안 될까? 우리의 길이 서로 다르기 때문입니다.
악인(惡人)은 세상의 복을 모으는 자요, 하나님의 백성은 하늘의 복을 가져오게 하는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이 처음부터 세상의 복을 가지지 못하는 것은 이상한 것이 아니고, 당연한 것입니다.
그러나 만일 하나님의 백성들이 하늘의 복을 구하지 아니하면, 이 세상은 영적(靈的)인 황무지(荒蕪地)가 되어 모두 다 피폐(疲弊)해지고, 망하고 말 것입니다. 하나님의 자녀들은 하나님의 자녀로서 자부심(自負心)이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반드시 우리에게 물질적인 복까지 덤으르 주실 것입니다. 즉 나중에 하나님은 사랑하는 자녀들에게 복이란 복은 모두 다 부어주실 것입니다. 그런데 악(惡)한 자와 함께 있는 것도 원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우리도 인간이기 때문에 당장 눈앞에 보이는 것이 다르면, 열등감(劣等感)이 생기게 되고, 믿음이 침체(沈滯)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자꾸 하나님의 백성들끼리 모여서 하나님의 생명의 말씀을 듣는 것을 기뻐해야 합니다.
24:2절)그들의 마음은 강포를 품고 그들의 입술은 재앙을 말함이니라.”
하나님의 생명의 말씀이 없는 사람은 일단 이 세상에서 공격적(攻擊的)입니다. 왜냐하면 세상에서 성공하려고 하면, 일단 경쟁자(競爭者)를 이겨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결코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길이 아닙니다.
우리는 믿음의 열매를 맺어서 이것으로 다른 사람들을 축복(祝福)해야지, 토개공처럼 빼앗고 강탈하는 것이 우리의 성공이 아닌 것입니다. 결국 우리와 세상 사람들은 사는 원리가 다르기 때문에 함께 갈 수가 없습니다.
스무 번째 교훈은 결국 우리가 축복(祝福)의 집을 어떻게 짓느냐? 하는 것입니다.
24:3절)집은 지혜로 말미암아 건축되고 명철로 말미암아 견고하게 되며”
여기서 집이라고 하는 것은 우리 일생의 복을 말합니다. 우리가 사는 이 세상은 많은 환난과 위험이 있는 곳입니다. 우리가 한평생을 모두 다 행복하게 산다는 것은 인간의 힘으로는 불가능한 것입니다.
그런데 한평생을 하나님의 생명의 말씀으로 지으면, 우리 평생 내내 부흥이 일어다면서 하나님의 복이 부어지게 됩니다. 또 우리 생애 매순간 순간이 가장 행복했던 것을 깨닫게 됩니다. 즉 하나님의 생명의 말씀과 함께 부흥이 있는 인생이 가장 행복한 인생인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그때그때 명철의 말씀으로 우리 인생을 결코 무너지지 않도록 하나님의 축복위에 세워주십니다.
24:4절)또 방들은 지식으로 말미암아 각종 귀하고 아름다운 보배로 채우게 되느니라.”
여기서 방이라고 하는 것은 매순간 우리가 살아가는 인생의 시기(時期)를 말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어려서 미숙할 때나, 청년의 때나, 장년이나, 노년 때에나, 언제든지 지식(知識)으로 채워주시는데, 너무나도 귀하고 아름다운 보물(寶物)로 우리 인생을 채워주셔서 후회되는 때가 없도록 만들어주십니다.
결국 하나님의 축복(祝福)은 한 가지만 있는 것이 아니라, 너무나도 다양한 복(福)들이 있는데, 하나님의 생명의 말씀과 함께 하는 인생은 인생 전체를 하나님의 복(福)으로 채움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스물한 번째 교훈은 하나님의 생명의 말씀이야말로 진정한 힘이라는 것입니다.
24:5절)지혜 있는 자는 강하고 지식 있는 자는 힘을 더하나니”
왜 하나님의 지혜 있는 자가 강할까? 그것은 쓸데없는데, 힘을 낭비하지 않고 집중시킬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지식(知識)있는 자가 힘을 더한다고 하였는데, 우리가 하나님의 생명의 말씀을 붙들 때, 집중력만 생기는 것이 아니라, 무한한 하나님의 능력을 끌어오게 되는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자기가 가진 힘이 전부이고, 또 사정에 따라서 그 힘을 다 쓰지 못할 때가 많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백성들은 힘을 집중시킬 수 있고, 그 뒤에 무한한 하나님의 능력이 오게 됩니다.
24:6절)너는 전략으로 싸우라. 승리는 지략이 많음에 있느니라.”
*전략(戰略)으로 싸우라*는 말은 무식(無識)하게 힘으로 싸우려고 하지 말라는 뜻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지혜를 써야 하나님이 우리를 도우셔서 쉽게 이길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일은 쉽게 되는 것이 특징입니다. 그리고 여기 *지략(智略)은* 말이 많은 지략(智略)이 아니고, *충성(忠誠)된 지략*(智略)입니다. 하나님의 일은 모든 일에 믿음을 가진 *충성(忠誠)된 사람*이 필요합니다. 이것은 돈으로 환산 할 수 없는 힘인 것입니다.
24:7절)지혜는 너무 높아서 미련한 자가 미치지 못할 것이므로 그는 성문에서 입을 열지 못하느니라.”
무식(無識)한 사람들은 하나님의 생명의 말씀이 케케묵었고, 시대에 뒤떨어진 것이라고 우습게 알지만, 위기(危機)를 이길 수 있는 것은 하나님의 지혜입니다. 사람들은 하나님의 지혜가 얼마나 높은 수준의 말씀인지 모르기 때문에 아예 배우려고 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나중에 나타난 결과를 보면, 입을 열지 못하게 될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이 하나님 생명의 말씀의 길을 끝까지 지켜서 자손대대 약속하신 복(福)을 받는 가정들이 다 되시기 바랍니다.아-멘 찬송가 446장 *주 음성 외에는*
*매일 새벽 4-5시 기도하는 습관을 가집시다.*새벽에 하나님이 도우시리로다(시46:5)
▣ 알 림
◁가족같은 교회. 교회같은 가족▷
☞ 비전(vision) (잠29:18) ☞ 알림의 내용들을 협조할 때☜
각 셀(cell)공동체의 분기별 수련회(치유, 성장, 양육) 성례전과 긴급기도 공유와 나눔과 연약한 셀(cell)지원과 직분(職分)과 상벌(賞罰)과 상담 등 우리와 다음 세대의 행정 중앙 총괄본부가 될 것입니다. 그리고 풍성하고 다양하고 균형잡힌 육신과 영혼에게 유익한 생명의 양식이 공급됩니다.
※ 후반기는 필(必)히 행정서식을 작성제출해야 교갱원소속 A급 셀(cell)로 다함께 자립 새 출발 할 수 있습니다(가명과 먹튀는 제외).
(정착완료. 양식보존. 새벽기도. 교갱원설립후원. (春)(秋)심방. 실뢰와 실명으로 소통)
후계자 : 정현흥 목사(총신대학원 졸업). 경력 : 지혜로운아이들, 찬양사역,레크리에이션(recreation강사, 젊은 협동목사가 교갱원(공동체)을 섬길 것입니다.
보물을 하늘에 쌓을 創立memb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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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 예수교 장로회(합동)교회갱신 성경연구원 정 의 영 목사 ☎ 010-8772-01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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